야콥을 둘러싼 추측들

원제 Mutmassungen über Jakob

우베 욘존 | 옮김 손대영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0년 10월 29일 | ISBN 978-89-374-6257-3

패키지 반양장 · 신국변형 132x225 · 400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독일 분단 문학의 시작을 알린 “두 독일의 작가” 우베 욘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철도원과 그를 둘러싼 분단 독일의 차가운 현실정치적, 역사적 현실과 개인의 심리를 탁월하게 직조해 낸 욘존의 데뷔작
“두 독일의 작가” 우베 욘존의 『야콥을 둘러싼 추측들』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57)으로 출간되었다. 독일 분단 문학의 시작이자 고전으로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동독의 슈타지(국가안전부 소속의 비밀경찰)가 서독의 NATO에서 일하는 통역원을 첩자로 포섭하기 위해 벌이는 비밀공작과 그 와중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철도원 야콥에 대한 이야기이다. 형식상 건조한 문체, 반(反)소설적 요소로 욘존 특유의 ‘비판적 중립’의 입장을 철저히 따르고 있으며, 내용상 분단과 냉전이라는 정치적 현실에 부딪힌 개인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는 소설이다. 욘존은 데뷔작인 『야콥을 둘러싼 추측들』을 통해 파편화된 사실과 주관적인 추측 속에서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를 물으면서 독자들을 1950년대 냉전 시대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다.
▶ 20세기 가장 위대한 장편소설 중 하나. — 《쥐트도이체 차이퉁》
▶ 대(大)테마는 대작가를 필요로 한다. 지금 최초로 그 대테마를 예술의 선 위에서 분석한 사람이 바로 우베 욘존이다. — 발터 옌스(독일 소설가・문학 평론가)

편집자 리뷰

■ 독일의 분단 문학은 이 작품에서 비롯되었다

철로에 놓인 한 쌍의 레일은 영원히 함께하지만 결코 만나지 않는다. 그래서 평행한 선로는 절대 화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상황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곤 한다. 현재의 남한과 북한이 그렇듯이, 1990년까지의 동독과 서독이 그랬듯이.
이 선로를 “숙달된 솜씨로” “무심히 넘어” 다니는 사내가 있다. 엘베 강변의 역에서 철도원으로 일하는 야콥 압스. 칠 년간 제국철도에서 일한 그에게 선로를 가로질러 사무실로 걸어가는 것은 그저 일상의 한 모습에 불과하다. 그러나 작가 욘존은 평행한 선로를 넘어 다니는 이 동독의 철도원을 동서독 간 치열한 정보전의 소용돌이 속에 배치시켜, 분단된 독일, 반목하는 동독과 서독 사이에 다리를 놓고 싶은 작가 자신의 소망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이야기는 1956년 가을, 작가가 가상으로 설정한 동독의 도시 예리효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동독 국가안전부 소속의 롤프스는 서베를린의 NATO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지네를 포섭하기 위해 그녀의 주변 인물들에게 접근한다. 게지네를 어머니처럼 돌봐주었던 야콥의 어머니 압스 부인은 롤프스와 만난 뒤 위협을 느끼고 급히 서독으로 도망쳐 버린다. 롤프스는 다음으로 게지네와 오누이처럼 자란 야콥에게 접근해 게지네를 동독으로 초청하라고 설득한다. 며칠 후 게지네는 위험을 무릅쓰고 야콥을 찾아오고, 두 사람은 예리효의 고향집까지 가지만 결국 롤프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그와 협상한다. 롤프스는 게지네와 서베를린에서 다시 만난다는 조건 하에 그녀를 서독으로 돌려보내 준다. 야콥은 어머니와 게지네를 만나러 짧은 시간 서독을 방문하지만, 그곳에 남으라는 두 사람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동독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안개가 잔뜩 낀 어느 새벽, 알 수 없는 사고로 선로에서 목숨을 잃는다.
당시 독일은 베를린 장벽이 건설(1961)되기 전이었고, 분단은 되었지만 동서독 간 이동이 가능한 상태였다. 동독 출신인 욘존도 1959년 데뷔작인 『야콥을 둘러싼 추측들』을 출간하고 서베를린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분단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작가로 구미 각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분단된 두 독일 사이에 존재하는 이질감과 이해의 어려움 그리고 분단 상황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분단 문제에 접근했다. 또한 동독에서 금기시되었던 주제인 슈타지를 본격적으로 다루어, 그 기능과 활동, 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야콥을 둘러싼 추측들』은 분단이라는 첨예한 대립의 상황에서는 물론 독일 통일 후 분단과 동독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 독일 분단 문학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 혼란스러운 현실을 서술 형식으로 구현해 낸 욘존의 성과

1934년생인 욘존은 나치즘에 한 번, 그리고 사회주의에 또 한 번 열광했다 좌절하는 경험을 반복했다. 이는 욘존이 현실을 인식하는 태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후 그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대상에 대해 거리를 두고,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는, 이른바 ‘비판적 중립’의 입장을 작품 전체에서 견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의 소산은 『야콥을 둘러싼 추측들』의 서술 형식으로 구현되었다. 이 작품에는 반소설에서 사용하는 서술 기법이 총동원되었다. 줄거리는 해체되어 있고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으며, 시제도 섞여 있고, 독백과 서술이 구별 없이 등장한다. 화자는 여러 사람이 번갈아 맡는 데다 그나마도 누구인지 불분명할 때가 적지 않다. 욘존은 심지어 구두법을 파괴하거나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는 문장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가장 큰 특색은 작품의 서술 형태가 대화, 독백, 서술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작품은 알 수 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철도원 야콥을 둘러싸고, 그와 오누이 같은 관계이자 동독을 떠나 서베를린의 NATO에서 일하는 게지네, 동독 슈타지로 게지네를 첩자로 포섭하려는 롤프스, 사회주의에 대한 글을 쓰려는 동베를린 대학 영문학과 조교로 게지네에게 첫눈에 반해 예리효를 찾아오는 요나스, 야콥의 직장 동료인 기관사 외혜가 나누는 대화가 도처에 삽입되어 있다. 형식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분리되는 대화, 독백, 서술이 두서없이 번갈아 제시되면서 독자들은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각 부분의 화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화자의 생각에서 드러나는 야콥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는 와중에 조각 퍼즐을 맞추는 듯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서술 기법상의 장치들은 전지적인 서술자를 내세워 단순하고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는 대신 분명하게 조망할 수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조각난 채로 보여 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즉 “어느 누구도 자신을 둘러싼 의견들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점에 우리는 일치를 본 겁니다.”라는 롤프스의 말처럼 주변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재구성된 야콥은 추측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욘존은 동독과 서독을 둘러싼 의견들도 어느 하나가 절대적 진리가 될 수 없음을 우회적으로 말하려 했다.

■ 냉전의 격랑 속에 던져진 무력한 개인을 ‘비판적 중립’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야콥을 둘러싼 추측들』에는 당시의 역사적인 사건들과 국제 정치학적 지형이 촘촘하게 엮여 있다. 1950년대 초 동독 정부의 중공업 우선 정책과 1953년 유혈 진압된 노동 봉기로 수많은 사람이 동독을 떠났으며 게지네도 이즈음 아버지와 야콥 등을 남겨 두고 서독으로 건너간다. 작품의 배경이 된 1956년에는 2월 흐루시초프가 소련 공산당 전당 대회에서 소위 ‘스탈린 격하 연설’을 한 이후 냉전 이데올로기가 약화될 조짐을 보이고, 동독에서도 요나스와 같은 지식인을 중심으로 강압적인 스탈린식 통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롤프스가 야콥과 게지네에게 접근하기 시작한 10월에는 헝가리 혁명(작품 속에서는 ‘헝가리 봉기’로 불린다.)이 일어나지만 소련이 진압하고, 프랑스와 영국이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게지네는 NATO 일에 회의를 느끼고 통역 업무를 결국 그만둔다.
이렇게 욘존은 작품 곳곳에서 역사적 사건과 등장인물의 행동을 치밀하게 연결시킴으로써 사실성을 획득함은 물론, 역사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잘 보여 주었다. 특히 소련 병력이 헝가리 혁명을 진압하러 이동하는 것을 야콥이 그대로 통과시키는 장면에서, 냉전의 격랑 속에 하릴없이 휩쓸리고야 마는 개인의 모습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그가 늘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신이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는 명분은 결국 이렇게 씁쓸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다.

그녀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요나스는 예리효로 왔다. 어머니는 기차를 타고 서베를린의 탈주민 수용소로 갔다. 그리고 나는 그들 모두가 그들이 원하는 곳에 제시간에 맞춰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욘존은 “독자가 살고 있는 시기와 관계된 소설은 새로운 것이다. 각기 서술되는 과거는 우리에게 다만 우리의 현재 상황을 이야기해 줄 뿐이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분단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야콥을 둘러싼 추측들』은 새로운 소설이며 1956년을 서술하는 그의 목소리는 우리의 현재 상황을 다시금 생각해 볼 계기를 던져 준다. 욘존은 야콥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이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어떻게 휩쓸려 가는지,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고 비판적 중립의 입장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 주고자 했다. 그의 의도가 충실히 구현된 『야콥을 둘러싼 추측들』은 “두 독일의 소설”, “분단 독일의 대로망”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작가 소개

우베 욘존

1934년 현재는 폴란드에 속하는 포메른 지방의 카민에서 태어나 메클렌부르크의 안클람에서 성장했다. 아홉 살 때 레크니츠로 피난 가고 열네 살 때 아버지가 소련의 수용소에서 사망하는 등 제2차 세계 대전의 파고 속에서 나치즘의 몰락을 경험했다. 동독 건설기인 1949년에 자유 독일 청년단에 가입, 열성적인 사회주의자가 되지만 폭력적으로 진행되는 동독의 사회주의에 좌절하고 1953년 탈퇴했다. 나치즘과 사회주의 두 번에 걸친 정치적 열광과 실망은 욘존이 현실을 인식하는 태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이후 그의 문학 세계에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대상에 대해 거리를 두고,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는, 이른바 ‘비판적 중립’을 지키는 태도가 일관되게 드러난다. 1956년 어머니가 서독으로 이주했고, 번역이나 편집 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도 1959년 『야콥을 둘러싼 추측들』을 출간하고 서베를린으로 이주했다. 이 작품으로 ‘두 독일의 작가’라는 별칭을 얻었고, 47그룹으로 활동하면서 1960년 폰타네 상을 수상했다. 산문집 『카르쉬』, 장편소설 『두 가지 견해』, 『기념일들』을 출간하고 서독 펜 클럽 회원, 서베를린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으나, 동독과 서독 모두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방황하다 결국 1974년에 제3국인 영국에 정착했다. 이듬해부터 심장 질환에 시달린 데다 동독 슈타지가 그의 아내를 비공식 정보원으로 포섭하고 감시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큰 충격을 받았다. 영국 시어니스 지방에서 외롭게 지내다 1984년 마흔아홉 살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다. 다른 작품으로 『클라겐푸르트로의 여행』, 『베를린의 일들』, 『부수 현상』, 『어느 불행한 남자의 소묘』 등이 있다.

손대영 옮김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우베 욘존의 작품에 나타난 분단 현실의 문학적 형상화―‘야곱에 대한 추측’을 중심으로」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명덕외국어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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