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해항로

장석주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0년 1월 8일 | ISBN 978-89-374-0778-9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48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시 쓰기를 넘어, 시를 사는 시인 장석주
절대자유와 무위자연의 삶을 실천하며 오체투지하듯 써 내려간
한 폭의 진경산수화처럼 펼쳐지는 질박한 시의 향연
투명한 마음의 눈을 뜨고 오롯이 살아 있음을 느끼라!

30년 넘게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출판인, 방송 진행자, 북 칼럼니스트, 대학교수 등 다양한 활동을 해 온 장석주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 『몽해항로(夢海航路)』가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 실린 59편의 시편들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 만큼 빠르게 변하는 세상살이 속에서, 시를 쓰는 일, 또 시를 읽는 일의 의미를, 즉 느리게 사는 것의 가치를 보여 준다. 이 시집에는 서울을 벗어나 안성에 터를 잡은 후 10년 동안 고요의 삶 속에서 느림과 비움의 삶을 통해 얻은 마음의 기쁨과 평화, 인생의 참의미와 행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자연 속에서 진지한 자기 성찰과 치열한 자기 반성을 통해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 시 세계를 보여 주며, 지천명에 이른 작가의 인생에 대한 관조와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몽해항로는 흑해(黑海), 그 죽음을 향해 가는 험난한 길을 뜻한다. 꿈속 바닷길을 항해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깨 버리면 그만인 덧없는 꿈이지만, 그 꿈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은 확대되고, 기존 현실과는 다른 현실을 탐색함으로써 삶의 지평은 확장된다. 그것은 단순히 상상의 공간만이 아니라, 삶의 실제 영역을 더 충일하게 느끼게 한다. 우리는 그의 신선한 감각과 시어로 인해 세계를 새로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편집자 리뷰

■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보고 듣고 느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장석주’ 하면 ‘책’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시대 최고의 다독가이자 북멘토, ‘서고(書庫) 속의 수도승’이라 불리는 그에게 책은 곧 밥이다. 세끼 밥을 챙겨 먹듯 그는 마음의 끼니로 책을 먹고, 읽고, 써 왔다. 장서가 3만여 권에 달하고 하루 여덟 시간씩 책을 읽으며, 그간 펴낸 책만 해도 시, 소설, 에세이, 평론 등 60권 가까이 된다. 그런 그가 으뜸으로 꼽는 책이 바로 노자의 『도덕경』이다. ‘절대자유’와 ‘무위자연’을 실천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바쁜 도시인으로 살았던 시인은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느림’과 ‘비움’의 삶을 찾아 안성으로 내려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 낮음을 지키며 산다’라는 뜻의 ‘수졸재(守拙齋)’에서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한 지 10년이 넘었다.
장석주는 “한 시대의 회색빛 영혼들의 바이블”로 불렸던 첫 시집 『햇빛사냥』을 비롯해 초기에는 해소되지 않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절망과 허무, 슬픔을 노래하는 도시적이고 감각적인 시를 쓰면서, 인간의 몰개성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의 단절 등을 그려 냈다. 그러나 서울에서 안성으로 주거지를 옮긴 2000년 이후 그의 시들은 자연 속에서 진지한 자기 성찰과 치열한 자기 반성을 통해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 시 세계를 보여 준다. 인생에 대한 관조와 여유가 담긴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잘 우려낸 좋은 차를 마시는 것처럼 깊은 차향이 느껴진다.
파리, 모기, 벼룩, 자벌레, 얼룩, 빨래, 비둘기 등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소한 것들은 그에게 삶을 예찬하는 재료들이 된다. 사소하고 하찮은 모든 것들이 그의 시 안에서는 아름답고 강렬한, 생동감이 넘쳐 나는 하나의 이미지로 되살아난다. 사계와 함께 천천히 변화해 가는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비로소 느리게 익어 가는 인생의 지혜를 깨닫게 된 것이다.  
  ‘몽해항로’는 ‘흑해(黑海)’를 향해 가는 길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흑해는 세상의 끝으로 여겨지며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또한 흑해는 죽음을 상징한다. 우리는 모두 그 흑해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 항로는 안개와 파도와 폭풍이 몰아치는 험난하고 위험한 길이다.    그의 시 속에는 바로 그 몽해항로 중에 인간이 겪는 먹고사는 일의 설움, 험난한 인생살이가 녹아 있다.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모기, “지문이 다 닳”도록 “평생을/ 손발 빌며 살아”가는 파리, 취객의 토사물을 먹는 비둘기를 보고 “숭고한 수행”이라고 말하면서도(「비둘기」), 동네 남자들이 잡는 개의 “우레” 같은 비명에 “이런 세상이구나!/ 이런 세상을/ 피안인 듯 살았구나!”라고 토로한다.(「초복」) 또한 빛을 피해 바다 깊숙한 곳에서 은거하는 ‘심해어’가 있는가 하면, 7년간의 땅 밑 생활을 목 놓아 우는 ‘매미’가 있고, 단 한 번의 승부로 판세가 결정되는 바둑의 ‘일국(一局)’이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단순히 설움을 토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에 항의하고, 이 항의 속에서 다시금 긍정한다.
시인은 생명의 싱싱한 기운을 즐겨 노래한다. 그것은 바로 푸름, 즉 젊음으로 나타나며,  ‘청산’이나 ‘새순’, ‘초경’, ‘젖니’ 등으로 표현된다. 그는 자연스러운 것, 즉 삶의 본래적 리듬을 억압하지 않는 상태를 꿈꾼다. 견디며 세월을 이겨 내는 데 이 살아 있는 푸른 것들은 가장 큰 위로다.

판자들은 삭고 판자에 박힌 못들은
붉은 땀을 흘리며 세월을 견딘다.
조카딸년과 당신과 사철나무는 푸르고,
이쁜 것들은 다 푸르다. 
나는 뻔뻔한 자들과 연루되었다.
용서하는 자가 아니라 용서받아야 할 자다.
푸른 것들만 무죄다.
푸른 것들의 계보에 속하는
당신 속에는 암초와 법칙들이 자라난다.
나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
                   ―「저공비행」에서

시인은 기러기 떼에서 누군가의 명필을 읽는가 하면, 검은 구름이 몰려 있는 것을 “만삭”이라 표현하고, 구름이 비가 되어 흘러내리는 것을 “양수가 터진다”라고 말한다. 그의 시에서는 죽음조차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삶의 일부이다. 추운 날 세상을 떠난 노인네를 두고 “꽃철 오면/ 맘 변할까/ 서두른 게 분명하다”라고 노래한다. 우리는 그의 신선한 감각과 시어로 인해 세계를 새로이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그의 시는 항해 같은 삶의 경로에서 꿈의 변경을 넓혀 준다. 그것은 단순히 상상의 공간만이 아니라, 삶의 실제 영역을 더 충일하게 느끼게 한다.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어.
좋은 것들은
늦게 오겠지, 가장 늦게 오니까
좋은 것들이겠지.
아마 그럴 거야.
아마 그럴 거야.
            ―「몽해항로 6―탁란」에서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은 앞으로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것은 지금 여기를 견뎌 내기 위한, 아주 절박한 희망이다.
그는 시를 쓰는 것을 넘어, 시를 산다. “자벌레”가 사각사각 “뽕잎 경(經)”을 먹고 살듯, 시를 쓰고, 시를 행하며, 시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고은 시인의 말처럼 “못내 긴 세월 시인이었고 더 긴 세월 시인일 것이다.”

 
■ 작품 해설에서
 
「몽해항로(夢海航路)」 연작은, 그 상상력이 오늘 여기와 저기 저 너머, 구차한 생활과 이 생활의 지속, 북풍과 봄빛, 악취와 자유, 죽음과 그 너머의 관계를 예술의 타자적 가능성 속에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절창(絶唱)이 아닐 수 없다. 타자적 가능성이란 곧 윤리적 가능성이다. 시인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추억하고, 그리워하면서도 이 그리움을 지우며, 결의하면서도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면서 이 모든 몸짓이 시의 꿈이자 삶의 궤적이길 희구한다. 이러한 힘은 아마도 사랑에서 나올 것이다. 이 사랑의 힘을 장석주는 시에서 얻고, 이렇게 얻은 힘으로 자기 시간을 일구어 간다.
시는 아직 오지 않은 참되고 선하며 아름다운 것들을 지금 여기로 불러들이는 사랑의 방식이어야 한다. 이 사랑의 방식을 체현하고 있는 장석주의 시는 분명 오늘의 문자 위축 상황을 거스르는 소중한 노작(努作)이다.
                                 — 문광훈(문학평론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 추천의 말

 장석주의 이번 시집은 시를 읽는 우리를 글자 밖에 있게 한다. 시의 행들이 다 난간이고 난간 아래 저 멀리 정적 속에 시가 있다. 그의 혀는 입속에 있지 않고, 그가 아닌 것들 속에 있다. 빗방울 속에 있고, 바람 속에 있고, 적막 속에 있고, 우주 속에 있다. 아무래도 장석주는 이 시들을 쓰면서 “제 몸 벌겋게 태워 부르는 노래, 필경 청음(淸音)을 얻었”나 보다. 그는 우리를 앞서간 시인들이 꾸렸던 우리말의 드높고 적막한 경지, 그 필멸의 포에지를 얻었다.
  그는 리듬을 남겨,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얻고, 생의 비루한 장엄을 얻었다. 그러나 감정과 관념과 의미는 내쳤다. 심지어 내용도 내쳤다. 그러자 우리 눈앞에 단지 몇 개의 선으로 그어 놓은 상처의 깊이로 가라앉는 투명한 “길 없는 백색 제국”, “공중에 박새 한 마리 설산 등지고 날아가”는 스스로 애절한 절경 몇 점!
                                                 — 김혜순(시인,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목차

1부
 
시 1
시 2
겨우
수요일
그믐 눈썹 – K에게
자벌레 
그믐
뱀을 밟다
협재 바다
서귀포
대한 
당신에게
빨래
얼룩과 무늬
심해어
몽해항로 1 – 악공(樂工)
몽해항로 2 – 흑해행
 
 
2부
 
모기
벼룩 
파리
매미 1
매미 2
쌀벌레
귀뚜라미
비둘기
달팽이

청산에 살다
풀밭을 걸어 봐!
저공비행
 
 
3부
 
나의 한때는 푸르렀다
가을밤
소나기
장마
수의를 깁는 밤들

소한
젖니
폭설
돌개바람 이는 날
적(寂)
추사
사막
영월
바둑 시편
 
 
4부
 
숯의 노래
석불(石佛)
초복
가을 아침에

저 여자!
소리박물관
가을의 시
장한몽 – 이문구
성북동 호랑이 – 만해 한용운
몽해항로 3 – 당신의 그늘
몽해항로 4 – 낮에 보일러 수리공이 다녀갔다
몽해항로 5 – 설산 너머
몽해항로 6 – 탁란
 
작품 해설/문광훈
속시경(續詩經)

작가 소개

장석주

195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 「심야」가,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날아라, 시간의 포충망에 붙잡힌 우울한 몽상이여」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햇빛사냥』, 『완전주의자의 꿈』, 『그리운 나라』, 『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 『어떤 길에 관한 기억』,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 『크고 헐렁헐렁한 바지』, 『간장 달이는 냄새가 진동하는 저녁』, 『물은 천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붉디붉은 호랑이』, 『절벽』, 『몽해항로』, 『오랫동안』 등이 있다. 그 외 산문집과 인문학 저서가 여럿 있다. 애지문학상(비평 부문), 질마재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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