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핸드

조용우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3년 2월 27일 | ISBN 978-89-374-0930-1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32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나의 매일에 태연히 스미어

일상의 소란을 삼키는 초월적 순간들

 
편집자 리뷰

2019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조용우의 첫 시집 『세컨드핸드』가 ‘민음의 시’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들뜸이나 과장이 없이 자기의 세계를 거머쥐고 들여다보는 시선의 깊이”가 놀랍다는 데뷔 당시 심사평처럼 조용우는 그만의 깨끗하고 묵묵한 시 세계로 첫 시집 출간 전부터 2022년 ‘문지문학상’ 후보로 선정되는 등 평단의 주목을 받아 왔다. “조용우는 스스로를 최대한 기꺼이 작게 만든다. 요란과 과장 같은 건 절대 금물이다.”(임솔아 시인)라는 추천의 말은 조용우의 시 세계가 데뷔 당시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얼굴로 오래도록 쌓여 왔음을 예상케 한다.

조용우 시는 미동조차 없을 만큼 완벽에 가까운 고요로 오히려 이목을 끈다. 모두 바삐 오가는 거리 위에 우뚝 서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한 번씩 돌아보기 마련이듯 그의 고요는 가만히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다. 무엇에 대해 침묵하는지, 무엇을 기다리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그렇게 서 있는 것인지 어느새 먼저 묻게 만든다. 마침내 신중히 말을 고르던 자가 입을 연다. 『세컨드핸드』는 그 첫 번째 이야기다.

 


 

■ 초월적 순간이 일상적인 현실

 

시장에서 오래된 코트를 사 입었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자

다른 나라 말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누런 종이에 검고 반듯한 글씨가 여전히 선명했고

 

양파 다섯, 감자 작은 것으로, 밀가루, 오일(가장 싼 것), 달걀 한 판, 사과 주스, 요거트, 구름, 구름들

―「세컨드핸드」에서

 

 

『세컨드핸드』의 제목을 직역하면 ‘두 번째 손’이 되듯, 조용우의 시적 화자는 어느 행렬의 가운데 들어와 있다. 첫 번째에 서서 행렬을 이끌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뒤로 처져 전체를 가늠해 보기 어렵지도 않은 두 번째의 자리.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상의 행렬을 한시도 멈출 수가 없기에, 그는 앞으로 쉼 없이 걸으면서도 자신의 앞과 뒤를 살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렇게 내민 손에 때때로 이상한 것이 포착된다. 시장에서 사 입은 오래된 중고 코트에 들어 있던 식료품 쇼핑 목록 끝에 천연덕스럽게 “구름, 구름들”이 적힌 것을 목격하거나, 식당에서 국수를 먹다 고개를 드니 “유리문 바깥 식당 안을 들여다보는/ 키가 큰 천사 몇몇”을 발견하는 식이다. 도무지 이곳에 속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그렇게 화자의 앞과 뒤에 슬며시 자리한다. 침투의 방식이 무척이나 고요한 덕분에 화자는,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것을 하나의 일상으로 이해하게 된다. 초월적 순간들을 일상의 바로 곁에 두기. 이는 조용우가 지난한 현실을 구성하고 겪어 내는 방법이다.

 


 

■ 고요하고 뜨거운 기다림

 

우리는 발소리를 죽이고

기다린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이런 생활이 익숙하다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이가 있다면 그에게는 더

잘 드는 도끼가 필요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서

 

조용우는 시를 통해 미래에 대한 단서를 여럿 제공한다. 미래는 가까이에 있으며, “배가 홀쭉”하다. 또한 미래는 다가가면 “그르렁 소리를” 내며, 계속 “끓고 있는 소리”를 낸다. 끓는 소리로 존재의 기미를 끊임없이 내비치면서도 그르렁 소리로 접근을 막는 미래에 대해서라면,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조용우의 화자들은 끈기 있게, 한편으로는 별수 없이 기다리기로 한다. 미래가 너무 놀라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이고” 이제는 익숙해진 기다림을 지속해 나간다. 오래 이어질 기다림이 결코 풍족하고 안락할 리 없으므로 화자들에게는 “잘 드는 도끼”가 한 자루씩 쥐어진다. 시인 강성은이 조용우의 시를 두고 “소리도 미동도 없”으며 “여전히 뜨겁”다고 평한 지점은 미래에 대한 시인의 이와 같은 태도에 있다. 우리는 다소 사납게 끓고 있는 미래 곁에서 숨을 죽이며, 마침내 미래가 다 끓고 완성되어 우리에게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 우리를 해하려는 것들에게는 도끼날을 세워 가면서, 초월적인 존재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로.

■ 본문에서

젊고 바른 사람들이었다

둘은 날이 밝으면 함께 불행을 그려 볼 수 있었지만 둘의 불행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고 밤에는 낮의 일들을 잊었다 주말에는 밖으로 나가 함박스테이크와 삶은 감자를 사 먹었다 건조기가 조용히 돌아갔다

―「삼익뉴타운」에서

 

여전히 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된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의

오목눈이가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지고

 

누군가 검정색 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다 말하며

창문에 테이프를 붙인다

―「인식론」에서

 

그런 것이 시냐 아니냐는 중요치 않다 나는

사람들이 없는 길을 걷고 싶었다

사람들은

공원 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깔거나 간이 의자를 폈다

거기 앉아 강을 바라보는 일이 집에 있는 것보다 시원하다는 듯이

단지 그것을 위해서

더운 날에도 공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양화답설」에서

 

 

■ 추천의 말

조용우의 시는 조용하다. 그의 시를 읽는 일은 소리도 미동도 없는 영원 속으로 밀려 들어가는 일이다. 천사와 모르는 사람과 하나님과 고양이와 죽은 이가 낡은 옷을 입고 우리를 바라보는 순간, 최저임금과 기도의 밤들이 통과해 간다. 시인은 무덤덤한 손으로 영원이 스친 빈자리를 만져 본다. 그곳은 여전히 뜨겁다. 시작되지도 끝나지도 않는 시적 상태다. 조용히 끓고 있는 세계다. 때때로 시와 삶은 구별되지 않는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이 구별되지 않듯. 영원과 순간이 그렇듯.

─강성은(시인)

 

조용우는 탐조를 하는 시인이다. 새들을 지켜보려면 “큰 소리와 동작은 금물”이지 않은가. 조용우는 스스로를 최대한 기꺼이 작게 만든다. 요란과 과장 같은 건 절대 금물이다. 작아진 조용우가 멀리서 이 세계를 관찰한다. “어떤 사람이 탐조를 하게 되는 것인가.” 당연히 새를 사랑하는 일이 우선이지 않은가. 조용우의 시 세계에서는 먼지마저도 새다.

─임솔아(시인·소설가)

목차

1부

영원한 미소 13

천사는 여름에도 따듯한 물을 마신다 15

마뜨료나와 같이 18

세컨드핸드 21

삼익뉴타운 24

뉴타운 28

하우스 30

지난가을 33

미드소마 34

지나가는 마음 36

유원지 38

남아 있는 나날 40

 

2부

인수공통 43

하나님 하늘에 계시고 44

저지대 47

사천 48

가까운 미래 50

스테인리스 52

새서울 54

점령기 55

계열화 56

적막강산 58

자나 깨나 60

그때 62

간밤에 꾼 꿈 64

 

3부

해피 아워 69

매일 아침 견과 73

일요일 타르트 74

누가 가짜 새를 우리에 두고 76

인식론 78

시에 80

경제적인 문제 81

스포일러 82

우리들의 유산 84

젊었을 때 쓴 시 85

양화답설 88

어려운 시 90

 

4부

테라스 95

빛을 버리는 부분 96

새로운 생활 98

영원맨션 100

메시지 102

스웨터는 해변으로 돌아가고 싶다 104

온누리약국 106

목재 혹은 무명의 부스러기 108

겨울 방향 110

버드 워칭 112

여름 소설 114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116

사람의 시 118

 

추천의 말 – 강성은(시인) 122

임솔아(시인·소설가)

작가 소개

조용우

199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9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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