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목욕탕

김지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9년 9월 30일 | ISBN 978-89-374-8289-2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5x205 · 276쪽 | 가격 11,000원

책소개

“미안해, 네, 얘기를, 오래 듣지 못해서.
미안해, 너의, 침묵을, 오해해서.
미안해, 혼자, 살아남아서.”

가장 밀도 높은 여성의 세계를 열어 가는 작가 김지현의 첫 장편소설

한 남자의 죽음으로 타인이 되어 버린 가족,
세상에 남겨져 버린 세 여자의 상실과 고통, 치유의 드라마
상처와 상처의 등을 맞대고, 고통과 아픔을 씻어 내며,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시간

 
생생하고 섬세한 인물 묘사와 농익은 주제 의식으로 여인들의 신산한 삶을 치밀하게 형상화한 『플라스틱 물고기』의 작가 김지현의 첫 장편소설 『춤추는 목욕탕』이 출간되었다. 김지현의 소설에는 늘 강인하고 본능에 충실한 ‘야생의 여성성’을 지닌 여성들이 등장하여 원초적인 욕망을 발산한다.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도 도발적이고 대담한 언어로 ‘여성’과 ‘몸’이라는 키워드를 집요하게 몰아붙인다. 이 작품은 남편이자 아들이자 사위인 한 남자의 죽음으로 인한 세 여자의 상실과 고통, 치유의 드라마를 감동적인 필치로 그려 내면서, 누구나 “홀로 감당해 내야 할 슬픔”, 그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의 은밀한 속살, 그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져 준다.

편집자 리뷰

■ 슥슥삭삭, 살이 살을 만나는 소리, 벌거벗은 몸뚱이 사이의 긴밀한 대화
 
세상에 절반은 여자라지만, 김지현의 소설에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온통 여자들만 사는 세상 같다. 게다가 그녀의 여자들은 좀, 다르다. 청순가련하고 약하디약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원초적 욕망을 발산하는, 본능에 충실한 야성적 여자들이 도처에 등장한다. 김지현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 소통의 원형은 바로 ‘여성성’이다. 때문에 그녀의 작품에는 늘 모성적 본능, 모성적 욕망의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소설 속 인물들의 현실은 하나같이 고통스럽고 과거는 상처투성이지만, 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꿈틀거린다.
김지현의 첫 장편소설 『춤추는 목욕탕』은 한 남자의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세 여자의 우정 어린 고통 관리법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세 여인 미령, 호순, 복남은 서로 모녀 관계, 고부 관계, 사돈 관계이다. 작가는 이 관계들의 구심점이 되었을 현욱(미령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교통정보센터에서 프리랜서 리포터로 일하는 주인공 미령에게 교통사고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사건이지만, 남편 현욱의 죽음은 유일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현욱의 예고 없는 ‘죽음’은, 그녀들에게 가족이라는 가장 친밀한 공동체의 차원에서 ‘함께’ 나눌 수 없는 고유한 고통을 동반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으로, 오직 “홀로 감당해 내야 할” 성질의 슬픔이다. 그리하여 상처 받은 세 여인은 상처를 이겨 내기 위해 자기 자신과의 끝없는 전쟁을 시작한다.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령은 현욱이 생전에 일하던 복사실에서 발견한 이구아나를 보살피는 일과, 시어머니를 만나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상처를 극복해 나간다. 자기 학대와 자포자기를 반복하면서 때로는 자신을 없는 셈 치는 시어머니와 대립하면서 스스로 상처 낸 몸을 벗고 새로운 몸을 갖는 “탈피의 시간”을 견뎌 간다. 
미령의 엄마 정호순은 ‘거짓말하기’를 통해서, 시어머니 박복남은 ‘목욕하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각각 남편과 아들(사위)을 잃은 상실과 고통의 시간을 견딘다. 호순은 자신의 비참한 처지와 절망적인 상황을 ‘뻥’과 ‘거짓말’로 살짝 뒤집어 놓는다. 한편 복남은 “무엇이든 벗겨질 때까지 닦아 내길 좋아하는” 성격으로 우울과 슬픔을 행동으로 극복하려 한다.
고단한 몸뚱이를 주무르고 문지르는 일을 업으로 삼는 때밀이 박복남의 작업장이기도 한 목욕탕은 상처 받은 모든 이들을 위해 작가 김지현이 마련한 치유의 공간이다. 목욕탕은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발가벗은 ‘몸뚱이’만으로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 솔직하고 평등한 공간으로, 그곳에서는 몸을 씻겨 주는 자와 씻는 자 사이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 자신의 본래 모습에 다가간다. 복남은 ‘몸뚱이’를 통해 타인들과 소통한다. 누군가의 맨몸을 쓸어내리며 화병을 치유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젖가슴을 바라보며 ‘허망한 숨소리’를 듣기도 한다. 몸의 최전방을 타인에게 내맡기는 순간, 자신의 허물과 고통의 상처를 씻어 내고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것이다. 어느 날 복남의 목욕탕에서 모인 그녀들은 “살이 살을 만나는 소리, 살이 살을 배려하는 소리, 살이 살을 이해하는 소리”를 통해, “때를 벗고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 작품 해설 중에서

목욕하는 몸은 성적 은유나 문학적 전위라는 상징적 옷을 벗은 ‘벌거벗은’ 몸이다. 폐인의 몸은 훈육 공간 안에서 강요하는 직업적 피동(被動)이나 노예적 사역(使役)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몸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을 통해서 김지현이 주목한 몸은, 온몸에 피가 돌고, 땀이 흐르고, 심장이 뛰는, 그리고 고통에 무감하지 않은 상처 받는 ‘인간’의 몸이다. 왜소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가련한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스스로를 합리화하지 않는 방법은 고통을 피하는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김지현의 물고기-인간은 ‘몸’으로 말한다. 여기서 ‘언어의 몸’이 보여 주는 부력(浮力)과 ‘몸의 언어’가 말해 주는 유영법(游泳法)은, 안전선 밖에서 세상을 구경하는 관람객의 관조법이 아니라 타인과 살과 살을 맞대면서 살고자 하는 자의 언어적 고투이다.  
이제 작가의 ‘집게손가락’이 시계 방향으로 휙 돌아간다. 책을 읽는 당신 “돌아누우라는 신호”다. 이제 누구에게도 보여 준 적 없는 당신의 ‘등판’을 보여 줄 차례다.
― 양윤의(문학평론가)

■ 본문 중에서

복남이 목을 휘감은 줄을 움켜쥐고 거짓말이야, 울부짖고 있을 때였다. 죽은 엄마가 서 있던 자리에, 열세 살 난 현욱이 책가방을 메고 서서 복남의 기이한 행동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복남은 바닥을 밟고, 제대로 섰다. 아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자전거 페달 돌리는 것 같았어요, 엄마.”
현욱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복남은 얕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들킨 기분이었다. 얌전히 줄을 풀고 “밥, 줄까?” 우물쭈물 물었다가 “김밥, 사 먹고 왔어요.” 하는 찬바람 도는 소리만 들었다. 그날, 죽은 엄마와의 거리만큼이나 현욱과의 거리도 멀어졌다.        ― 48쪽
 
미령은 민둥민둥한 머리에 모자로 가려진, 타인들에게서 밀려난 몸뚱이로 데굴데굴, 눈, 코, 입이 사라져 허옇게 표백된 얼굴로 데굴데굴 굴러간다. 타인에게서 날아오는, 혹은 자신에게서 날아가는 경계심을 데굴데굴 구르며 몸에서 털어 낸다. 얼굴과 몸통, 팔다리가 둥글게 뭉쳐져 달걀이 되어 간다. 달걀이 되어 구른다. 깨지기 쉽다는 이유로 달걀이 아니다. 달걀은 껍질이 연약할지라도 구를 수 있다는 것,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 비상시에는 누군가의 허기를 달랠 수 있다는 것. 이것을 잊으면 곤란했다.                        ― 73~74쪽
 
“배부르다, 거짓말처럼.”
호순은 중얼거렸다. 밥을 먹고 사는 일도 이런 것이 아닐까. 뻥, 하고 튀겨 낸 옥수수로 허기진 속을 달래는 일, 뻥 부푼 오장육부에 충만함을 느끼는 일. 배부를 때의 충만함이 어느 순간 푹 꺼져 들고 또다시 그 충만함을 그리워하는 일이 일과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거짓말 같은 충만함에 위로받는 것이 사는 일이 아니었던가.                           ― 107쪽
 
“도 서방을 네 속에 묻어 가야 해. 그러다 보면 네 몸이 도 서방을 기억하게 될 거다. 어느 순간 눈동자 색깔이 바뀌지. 세상이 달리 보이는 거야. 심장 뛰는 것도 전과 다르고, 웃고 우는 일도 전과 딴판이 될 때가 오지. 그럴 땐 몸이 한 뼘 자랐다! 라고 말하는 거야.”
“몸이 한 뼘 자라? 전부 잊고 싶어. 백지가 되었으면 좋겠어.”
“세상에 백지라는 게 있는 줄 아니? 흰색이다 싶지만 자세히 보면 잡색이 섞여 있기 마련이야. 내 마음에 찌꺼기처럼 가라앉은 걸 어떻게 써먹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뿐이야. 그대로 있다가는 웅덩이 물처럼 그냥 썩는 거야.”
딸이 운다. 홀로 감당해 내야 할 슬픔이다. 엄마는 안다. 딸애에게 등을 보이고 누웠으나 엉덩이, 몸의 작은 일부만 닿아도 그 슬픔의 강도를 느낄 수 있다. 딸의 엉덩이가 서늘하다. 안타까움으로 전율하는 엄마의 엉덩이는 달아오른다. 엄마는 뜨거워진 엉덩이를 딸애 곁에 바짝 붙였고, 반대편 벽을 보고 소리 죽여 울었다.                             ― 117쪽

■ 줄거리
 
젖빛 안개가 가득한 서해대교 위, 결혼 3년차 부부인 미령과 현욱은 여행을 가던 중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고, 현욱은 목숨을 잃는다. 홀로 살아남아 3개월 만에 의식을 되찾은 미령은 남편 현욱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령의 시어머니 박복남은 무엇이든 벗겨질 때까지 닦아 내길 좋아하는, 목욕관리사, 소위 때밀이다. 동네 과부와 눈이 맞은 남편과 이혼하고 30년 가까이 때밀이를 하며 아들을 홀로 키워 냈다. 남편과 헤어지던 날, 그녀는 목을 매달아 자살을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러나 아들에게 그 모습을 들키고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긴 채, 아들과 멀어지게 된다. 복남은 아들이 죽자 며느리가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누워 있는 사이, 아들과 며느리가 살던 전세 아파트를 팔아 버리고 보험금까지 챙긴 채, 며느리에게는 반지하 방 하나만을 얻어 주며, 선물이랍시고 종이쪽지 하나를 남긴다. 그것은 바로 ‘때밀이 일일 교환권. 특별 고객 우대. 오일 마사지 공짜. 목욕 관리사, 박복남.’
미령의 엄마 정호순은 ‘개마고원’처럼 넓디넓은 자신의 엉덩이를 북처럼 퉁퉁 쳐 대며 뻥을 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다. 남편이 죽은 후 쓰러져 요양원에서 지내던 호순은 미령의 사고 소식을 듣고 나와 병원에서 딸을 간호한다. 퇴원하여 교통정보센터 프리랜서 리포터로서 방송에 복귀한 미령은 사고 후유증과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일하던 복사실, 바로 현욱의 의자에서 이구아나 한 마리를 발견한 미령은 이구아나를 잡느라 땀범벅이 되고, 복남에게서 받은 목욕 쿠폰을 떠올리고는 복남의 목욕탕을 찾아간다. 호순의 엉덩이가 냉장고와 부딪쳐 냉장고가 고장 나자, 미령은 아픈 엄마를 반지하 방에 홀로 둘 수 없어 복남의 집에 맡기게 되고, 호순은 복남과 함께 목욕탕에서 일하며 점점 가까워진다. 현욱이 죽고 나서 받은 보험금으로 산 아파트 분양권이 사기라는 사실을 안 복남이 충격에 드러눕고, 미령은 복남의 집에서 현욱의 유골함을 발견하게 된다. 미령과 복남이 유골함을 서로 빼앗으려 옥신각신하다가 그만 유골함을 깨고 만다. 유골 분을 쓸어 모으느라 진땀을 뺀 세 여자는 다 함께 목욕탕으로 향하는데…….

목차

서해대교의 아침
핏자국
목욕탕
8차선 도로
은행나무 아줌마
교통정보센터, 방송 20분 전복사실 숨바꼭질
첫 번째 때밀이 쿠폰
엄마의 엉덩이
장터의 햇살
혼자 살아남은 밤
알람, 알람
뒷물하는 시간
대사성 뼈 질환이 뭡니까?
두 번째 때밀이 쿠폰
마지막 냉장고
부탁해요, 사돈
장아찌
서비스 센터
세 번째 때밀이 쿠폰
저녁의 사우나
똥간동자를 아시나요?
새끼손가락 아래, 배우자 손금
고무장갑
달빛 아래 CCTV
목욕하는 여자들
알람이 필요한 이유
안녕, 이구아나
사과, 오징어 그리고 소금 호수
 
작가의 말
작품 해설  ‘탈피(脫皮)’를 위한 온욕 매뉴얼_ 양윤의

작가 소개

김지현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사각거울」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플라스틱 물고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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