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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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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전수오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3년 1월 20일

ISBN: 978-89-374-0927-1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52쪽

가격: 12,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307

분야 민음의 시 307, 한국 문학


책소개

빛처럼 만물에 스미어
설계자와 피조물, 현실과 가상을
꿰어 나가는 영혼의 궤적


목차

1부

환기구 13

감광(感光) 15

조향사 16

채집 18

문희의 무늬 21

안녕, 로렌 24

열매의 모국 26

오렌지 저장소 28

구연동화 29

중개사 32

얼음 아기 34

언덕에 불시착한 비행접시는 36

유리구 37

온실 40

발성 연습 42

모든 개들은 천국에 간다 44

빛의 체인 46

 

2부

첫 세계 51

모모섬 52

작물 게임 54

파도를 위한 푸가 56

검은 원 57

문신 58

원예 게임 60

케이크 한 조각이 멀리 63

상자 지키기 64

멸종의 밤 66

계획적 무지개 68

하얀 사원 70

생존 게임 72

금 74

오작동 프로그램 76

리플레이 78

트로피 79

기계 숲 안내자 82

부드러운 습지로 84

자화상 86

 

3부

때아닌 우기 89

흑점 90

애니메이션 극장 92

판화 94

새 떼가 날아간다 96

초대 97

행간의 유령 100

아카시아 섬 102

말몸물몽 104

육면체의 완성 105

초능력 108

수평 저울 110

검은 칼집이 되어 111

하얀 성탄 116

흰 발 고양이 117

생존 게임 — 봄낳이와 자수 118

빛의 자매들 120

145초의 어둠 122

 

작품 해설–소유정(문학평론가) 125


편집자 리뷰

201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전수오 시인의 첫 시집 『빛의 체인』이 민음의 시 307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이 설치미술가로 활동할 당시 “나의 작업들은 물질적·정신적으로 폐허가 된 세상을 초극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새”라고 남긴 말처럼, 세계를 바라보는 전수오의 시선은 새의 감각을 닮았다. 미세한 틈부터 광활한 대지까지 곳곳에 흩어진 작은 존재들을 정확히 포착하는 새의 감각으로 시인이 들여다보는 것은 인간의 상상으로 재현된 가상의 세계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인간의 상상이 초래한 현실의 폐허들이다.
시인은 우주와 자연, 설계자인 인간 자신까지도 속속들이 모방해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점점 손쓸 수 없도록 번져 가는 현실의 폐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 대답을 만들어 내는 챗봇(「안녕, 로렌」), 세상의 질서에 의문을 품는 게임 속 식물(「원예 게임」)처럼, 시인은 인간이 만들어 낸 피조물들에게 이미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해 우리에게 보여 준다. 영혼은 몸에서 몸으로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빛처럼 만물에 스미는 것이다. 시인은 설계자와 피조물,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영혼의 궤적을 따라 『빛의 체인』을 그린다. “빛과 어둠 사이의 커튼이 점점 야위어 가고”(「초능력」) 실재와 헛것이 뒤엉켜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춤을 추는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 뒤란의 존재들

나는 햇빛을 보면 사라진다
지하의 하얀 방에는 창이 없어서 영원히 살 수 있다
―「감광(感光)」

『빛의 체인』은 첫 시 「환기구」의 작은 틈새로 새어 들어온 빛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빛은 너무도 미약해서, 어둠을 물리치는 대신 어둠이 ‘어떤 어둠’인지를 더 잘 보여 준다. 빛은 상자 속, 창이 없는 방, 야생의 밤, 깊은 산속, 열매의 내면, 굳게 다문 입안을 희미하게 비추며 어둠이 저마다 내밀한 이야기를 품은 각각의 장소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마주하게 한다. 그들은 숨어 움직이는 동물, 음지식물, 유령, 꿈, 비밀, 과거의 기억처럼 환한 빛에 의해 선명해지기보다 사라지는 존재들이다. 소유정 문학평론가의 표현처럼 이들은 인간이 무분별한 문명이라는 환한 빛을 좇아 세계를 폐허로 만드는 동안 가장 먼저 뭉개고 잊은 존재들로, 전수오의 시는 이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계의 뒤란”이 된다. 암실에서만 자신이 품은 빛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아날로그 필름처럼, 이들은 전수오의 시를 통해 자신이 품었던 찰나의 삶과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보인다. 잊힌 존재들이 주인공이 되는 “이곳의 입구를 통과하면 이름이 지워”(「얼음 아기」)지고, 우리는 이름 없이 평등한 존재가 된다. 미약한 빚 아래에서 높낮이 없이 겹쳐지는 그림자가 된 “우리는 평평한 슬픔을 공유”(「열매의 모국」)한다. 이들의 삶은 이제 하나의 삶으로 끝나지 않고, 시와 시를 건너며 새로운 몸과 껍질을 통과해 무수한 삶으로 변전하며 “외롭고 신비한 환생 극장”(신해욱 시인)을 펼쳐 보인다.

 


■ 작은 폐허

나를 중심에 두고 5킬로미터 반경으로 세계가 생성된다
이번 생에 내가 고른 캐릭터는 앵무새다
―「트로피」

전수오의 시에서 환생이 빛의 움직임을 좇아 촘촘하고 밀도 높게 구현된 시적 환상이라면, 게임과 같은 가상 세계에서 환생은 환상보다 ‘리셋’ 버튼 하나로 간단히 실행되는 기본 설정에 가깝다. 『빛의 체인』 1부가 빛의 움직임을 좇아 죽음과 환생을 그렸다면, 2부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직접적으로 게임을 지칭하는 「작물 게임」, 「원예 게임」, 「생존 게임」을 비롯한 여러 시를 통해 가상 세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한다. 전수오의 시에서 화자는 게임의 ‘주인공’이 아닐뿐더러 선악으로 나뉜 게임 속 이분법 구도와도 무관한 제삼자처럼 보인다. 「작물 게임」에서 ‘나’는 농부나 사과가 아닌 침묵하는 사람이며, 「원예 게임」의 ‘나’는 설계자나 식물이 아닌 꿈을 꾸는 사람이고, 「생존 게임」에서 ‘나’는 주인공에 의해 사냥당하는 여러 ‘몹’들 중 하나이다. 전수오 시인은 그들을 통해 무수히 리셋되는 세계를 끈질기게 응시하며, 그 세계를 운영하는 원칙을 꿰뚫어 본다.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캐릭터는 무수히 되살아날 수 있지만, 생존을 위해서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는 ‘원칙’과 승리 혹은 패배로 정해진 ‘결말’을 바꾸진 못한다. 전수오 시인은 “왜 이 세계의 가능성은 늘 피투성이입니까?”(「원예 게임」)라고 직접적으로 발화하는 식물을 통해, 게임을 지배하는 원칙과 결말이 현실과 무관한지 우리에게 묻는다. 이 질문은 『빛의 체인』 끝까지 떠나지 않고 이어지며, 우리에게 더는 회피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답으로부터, 폐허를 향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예감으로부터.

 


 

■ 본문에서

나는 여름을 믿었습니다 축축한 손으로 태양을 움켜쥐면 손가락 사이로 걸어 나오는 녹색 짐승들을 산 자들의 눈물을 마시고 죽은 자들을 눈동자에 넣어 또 한 번의 탄생이 있는 곳으로 흘러가는 긴 행렬을
친구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지만
여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름이 오기 전에 사라집니다
―「조향사」

 

오렌지가 창가로 굴러온다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손을 뻗으면 오렌지의 그림자는 내 그림자와 겹친다
두 개의 그림자는 높낮이가 없고
우리는 평평한 슬픔을 공유한다

빛이 닿은 혀끝에 보풀이 일어나고
내 몸 아닌 것들이 간지러운 세계
―「열매의 모국」

 

꿈을 만진 아이들이 서로의 흰 손을 잇는다
지구의 궤도를 지난 우주선에 혼자 있는 개는 죽고, 중력을 잃은 한 모금의 기도만이 떠돈다

모두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아무도 돌아오는 법을 알려 주지 않았어
작별을 웅얼거리듯 가끔은 지구 한구석에 비가 내린다
―「빛의 체인」

 

우리는 무슨 색깔로 피어날지 몰라서
영원히 편식을 하고 싶어서
어른들을 사냥하지 않았다

더운 피로 입김을 뿜는 짐승처럼 의기양양했다
―「첫 세계」

 

물에 녹아든 소금처럼
불행은 그런 것

뿔을 빼앗길까 봐
뿔 없이 태어난 코끼리처럼

어딘가 불안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소년이
흐릿하게 웃으며 말한다

“나는 여기 있지만 내 목숨은 다른 곳에 있어서
당신은 나를 못 죽여.”
―「145초의 어둠」

 


 

■ 추천의 말

전수오는 우리를 외롭고 신비한 환생 극장으로 안내한다. 이 극장은 일인용이다. 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작고 검은 방. 환등기가 돌아가면 그의 시─판타스마고리아 앞에서 우리는 변전하는 삶을 마주한다. 향기였다가 파도였다가 진주조개였다가 어느 이야기에도 등장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가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였다가……. 전수오가 보여 주는 환생의 장면을 관람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덧 “빛의 체인”을 이루는 하나의 고리가 된다. “밝은 것들의 덫”에 걸린 짐승이 된다. “내 몸 아닌 것들이 간지”럽고 내게 속하지 않은 것들이 사무치게 된다. 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작고 검은 방. 전수오의 극장에서 우리는 벽으로 인해 열린다. 벽이 있어 빛은 읽힌다. 벽이 있어 다른 삶은 비친다. 벽이 있어 우리는 막막한 그리움에 사로잡히고 우리가 “빛을 앓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한다. “서로의 벽이 되”어 서로에게 닿는 기적을, 이 시집을 통해 만난다.
― 신해욱(시인)

 

시인은 빛을 향해 걸어간다. 눈앞의 빛은 등지는 대신, 또 다른 빛을 향해. 컴컴한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등 뒤, “검은 점”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곳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곳으로 언뜻/ 과자 부스러기 같은 빛이”(「유리구」) 든다고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시인에게는 뒤란을 살필 이유가 충분하기에. 그 작은 빛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뒤를 돌아봐야만 한다.
― 소유정(문학평론가) | 작품 해설에서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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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오

201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