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제로는 뼈

마이조 오타로 | 옮김 정민재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2년 11월 25일 | ISBN 978-89-374-2743-5

패키지 반양장 · 46판 128x188mm · 296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재미없는 패턴에 조금이라도 저항해 봐. 궁리해! 책을 읽어!

자신을 바라보면서 다시 생각해 봐!

무엇이 진부하고 깊이가 없는지,

이야기를 읽지 않는 인간에게는 이해될 리가 없다.”

 

삶의 모든 순간을 서사의 한 장면으로 바라보는

진지한 괴짜 소녀 카오리의 자유로운 성장기, 이상한 집필기

 

편집자 리뷰

출생지와 생년 외에는 알려진 정보가 전무한, 일본의 ‘복면 작가’ 마이조 오타로의 장편소설 『인간의 제로는 뼈』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마이조 오타로는 2001년 소설 『연기, 흙 혹은 먹이』로 제19회 메피스토 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였고, 2003년 『아수라 걸』로 제16회 미시마 유키오 상을 수상했다. 데뷔 직후 짧은 기간 동안 상반된 성격의 문학상을 받으며 화제 속에 등장한 작가는 미스터리‧추리‧판타지 등 장르적 성격과, 자유로운 문체와 질주하는 전개 등 문학성을 두루 갖춘 작품 세계로 다양한 독자층의 사랑을 받아 왔다. 작가는 이후 소설 외에도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에서 활동하며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국내에도 수상작 두 편을 포함한 『좋아 좋아 너무 좋아 정말 사랑해』, 『쓰쿠모주쿠』 등의 소설이 번역 출간되며 그의 독특하고 고유한 문학 세계에 매료된 탄탄한 독자층이 형성되었다. 마이조 오타로의 새로운 작품이 번역되기를 바라 온 독자에게 이번 출간 소식은 반가운 단비와 같을 것이다.

『인간의 제로는 뼈』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괴짜 소녀 ‘카오리’의 성장기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카오리는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을 서사의 한 장면으로 바라보며 그렇게 완성된 한 편의 서사, 즉 삶 자체를 정확히 이해하고자 무던히 노력한다. 자신을 덮쳐 오는 삶의 파도 속에서 ‘진짜 이야기’를 발굴하며 삶을 정면 돌파해 나간다. 전형성을 그 무엇보다 싫어하는 카오리의 성격답게, 이 솔직하고 통쾌한 성장담은 전혀 새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나는 누구일까? 좋은 이야기란 무엇일까? 삶이란 무엇일까? 심오한 질문에 가뿐하고 당당하게 답을 내놓는 카오리의 시간들을 읽어 보자. 우리의 삶도 이야기의 옷을 입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마이조 오타로의 문장은 간결하다. 시간을 마구 넘나든다. 처음 보는 의성, 의태어를 뻔뻔한 얼굴로 품는다. 이전까지 쌓아 둔 서사를 단 하나의 문장으로 뒤집는다. 인간의 본질은 결국 “뼈”라는 카오리의 말처럼 소설의 본질만 남긴 문체다. 마이조 오타로의 문장 안에서 겨울밤 추위에 얼어붙은 자갈돌은 밟을 때마다 카랑, 코롱, 하고 울리며 15세였던 카오리는 금세 대학원생이 되고, 앞선 문장은 바로 다음 문장에서 속셈을 간파당해 끊임없이 전복된다. 『인간의 제로는 뼈』가 한 소녀의 삶을 그려 내면서도 거대한 파괴력과 확장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은 마이조 오타로의 문체 덕분이다. 문학의 가장 큰 미덕이 독자를 자유롭게 하는 데서 온다면, 마이조 오타로는 그 미덕에 누구보다 충실한 작가다. 각자의 삶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답답한 문제들을 카오리처럼 낱낱이 해부하고 소화시켜 보자. 그것이 마이조 오타로 문학이 주는 자유로움이다.

 

■진지한 괴짜 소녀 카오리

깊은 속내를 고백할 친구도, 좋아하는 상대도 없는 진지한 괴짜 소녀 카오리는 늘 이야기를 갈망한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말들은 몸 안에 차곡차곡 쌓여 한 편의 서사가 된다. 카오리의 이야기는 깊은 밤 이불 속에서 남동생 토모노리와 함께 새벽녘의 철로를 거니는 공상의 형태를 띨 때도 있고, 얼마를 쥐여 주면 아빠가 여자 친구와 이별하고 가정으로 돌아올지 예측해 보는 현실적인 표정을 해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서사로 발전되지 못한 채 순간들로만 남아 고여 있기도 하다. 가족은 한집에 마땅히 함께해야 한다는 틀에 박힌 철학을 늘어놓는 동생을 바라보며 카오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재미없는 패턴에 조금이라도 저항해 봐. 궁리해! 책을 읽어! (……) 무엇이 진부하고 깊이가 없는지, 이야기를 읽지 않는 인간에게는 이해될 리가 없다.” 동생의 말이 진부한 까닭은 동생이 소설을 읽지 않기 때문이라는 카오리. 카오리는 왜 이렇게까지 이야기만을 생각하는 걸까? 카오리가 믿는 이야기의 힘이란 무엇일까?

 

■카오리가 찾아 헤매는 ‘진짜’ 이야기

카오리의 의지 덕분일까, 카오리 주변에는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한밤중 이불 속 공상, 아빠의 외도, 이웃의 정원에 머무는 기린에 대한 소식, 동생과의 피 튀기는 싸움, 동생이 학교에서 휘말린 복잡한 사건, 마을 축제 현장에서 아빠 애인과의 만남……. 떠들썩한 사건들이 덮쳐 올 때마다 카오리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이 사건이 실체보다 부풀려진 허상은 아닐지, 삶의 진실과는 무관한 맥거핀은 아닐지. 시험대에 오른 사건들은 낱낱이 분석되고 재정립되어 카오리의 삶이라는 중심 서사를 이루는 결정적 장면들이 된다. 카오리가 ‘진짜 이야기’를 찾아 고민과 공상을 거듭하는 이유는 이것이 카오리가 인간과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제로는 뼈인 것이다, 다시금 생각한다. 그것에 살점과 이야기를 덧붙여 간다.” 모두 같은 제로(0)에서 출발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완성된 우리들. 카오리의 결백한 시선은 생을 관통한다. 시끄러운 소동극 속에서도 카오리는 삶의 본질을 향해 계속 걸어 나간다.


■추천의 말

소설 속 중학교 1학년의 카오리와 대학원을 마치고 회사에 다니는 카오리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으면 긴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종종 잊을 정도로 말이다. 다만 ‘이야기’로써 경험해 버린 것들을 지나 여러 사건과 감정을 경험하며 어떤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 그 시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마주하게 된 것이 카오리에게 일어난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마이조 오타로가 여러 소설을 통해 보여 주는 ‘그러니까 내가 만든 이야기가 진짜야.’라는 외침을 나는 완전히 지지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고 너무나 언제나 정말로 그런 마음이기 때문이다.

─박솔뫼(소설가)

 

삶을 자랑하거나 내세우거나 강조하거나 호소하지 않으면서 ‘나’라는 인간의 인생을 서술하기 위해, 오직 그러한 깨달음을 위해, 히로타니 카오리는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카오리라는 화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을 집어 들어 읽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부디 『인간의 제로는 뼈』가 아직 자신의 이야기를 찾지 못한 독자에게 전해져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히기를 소망한다.

─정민재(『인간의 제로는 뼈』 옮긴이)


■본문 발췌

“새벽 3시면 여름이라도 아직 어둡고 조용한 시간이고 집과 창문이 전부 철로의 반대쪽을 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깔려 있는 자갈들을 밟으면 카랑 코롱 울려서 시끄러울 테니 되도록 레일이나 침목 위를 걷거든. 걷고 있지만 리듬에 올라타는 느낌이 좋단 말야. 침목 침목 레일, 침목 레일 침목 레일 레일 레일 레일 침목…….”

(……) 나는 밤의 철도 노선에 대한 꿈이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

실제로 그곳에 가 보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건 벌써 ‘이야기’로써 내 안에서 경험해 버린 일이니까.

―14~21p

 

지금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다는 건 잘못된 걸까?

나의 언어는 몸 안에서 바깥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늑골 사이에서 슉 하고 등 쪽으로…….

누군가의 솔직한 본심이 완전히 드러난 이야기는 나를 두렵게 한다. 분명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나뿐만이 아닐 테지. 세상 사람들 중 일부는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진짜 감정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진짜 감정을 언어화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하겠다는 마음도 없다.

어쩌면 그런 사람 중에서 또 일부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일 테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 이야기는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39~40p

 

아카리는 친구들도 많고 남자애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만약 같은 반이었다면 절대로 내가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쪽은 평범하게 말을 걸어오거나 하겠지만, 내 쪽에서 말을 걸면 다른 애들에게는 특히 그 애를 신경 써 주는 것처럼 보일까 봐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싫다거나 어렵다는 건 아니지만, 곤란한 패턴이다. 나는 이것저것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서 늘 버벅대고 만다.

―59p

 

토모노리는 필사적으로 익숙해진 것처럼 보여 주려고 할 뿐이지 무너지고 있다. 그야 그렇다. 올바른 의견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서 제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의 어려움.

하지만 그게 아니란다, 토모노리. 올바른 의견은 타인을 교정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올바른 의견은 어디까지나 ‘나’라는 잠수함의 주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발신하는 소나인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느끼고 믿는 의견을 퐁! 하고 보내서, 돌아오는 반향음으로 지형을 조사하는 것이다. 소나로 내 앞의 길이 열릴 리는 없다.

―205~206p

목차

인간의 제로는 뼈 7

 

역자 후기 279

추천의 말_박솔뫼(소설가) 291

작가 소개

마이조 오타로

1973년 일본 후쿠이 현 출생. 출생지와 생년 외에는 작가에 관해 알려진 정보가 전무하다. 2001년 『연기, 흙 혹은 먹이』로 제19회 메피스토 상을 수상하며 데뷔했으며 2003년 『아수라 걸』로 제16회 미시마 유키오 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국내 번역된 소설책으로 『좋아 좋아 너무 좋아 정말 사랑해』 『쓰쿠모주쿠』 등이 있다. 경쾌하고 독특한 문체와 기묘한 전개가 특징적인 소설 외에도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민재 옮김

1993년생.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철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학술지 《일본비평》에 서평 「부흥의 불가능성과 희망의 가능성에 대해」를 기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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