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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13권 세트 (전 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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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부제: 프루스트 서거 100주년의 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드디어 완간, 불문학자 김희영이 10년 만에 맺은 경이로운 결실!

원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마르셀 프루스트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2년 11월 18일

ISBN: 978-89-374-5610-7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2x217

가격: 89,000원

분야 외국 문학

수상/추천: 공쿠르상


책소개

프루스트 서거 100주년의 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드디어 완간

불문학자 김희영이 10년 만에 맺은 경이로운 결실!

 

“예술 작품만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임을 (……)

그리하여 나는 문학 작품의 이 모든 소재가 내 지나간 삶이라는 걸 깨달았다.”

— 마르셀 프루스트

 

14년간 글을 쓴 마르셀 프루스트, 10년간 번역한 불문학자 김희영

20세기 최고의 문학을 21세기 감각과 언어로 재탄생시키다

마지막 7편 「되찾은 시간」(민음사판 12, 13권) 출간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완간 대장정 완성!

 

《타임스》, 《르 몽드》 선정 20세기 최고의 책

프루스트 이후 모든 현대 소설의 출발점

국내 최초 ‘프루스트 전공자’의 완역본

새로운 프랑스 갈리마르판 번역, 풍부한 각주,

한국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정본으로 남을 작품

 

“20세기 소설의 혁명”,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이라고 일컬어지는 걸작!

기존 소설의 틀을 벗어던지고,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독특한 서술 방식을 통해

집요할 정도로 정밀하게 인간 내면과 시대상을 섬세하게 담아낸 기념비적 작품.

현대 문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20세기 최고의 대하소설!

 


목차

7권 「소돔과 고모라 1」

8권 「소돔과 고모라 2」

9권  「갇힌 여인 1」

10권  「갇힌 여인 2」

11권  「사라진 알베르틴」

12권  「되찾은 시간 1」

13권  「되찾은 시간 2」


편집자 리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관하여▿▿▿▿▿▿▿▿▿▿

 

■ 14년간 ‘잃시찾’을 써 나간 프루스트, 10년간 ‘잃시찾’을 번역한 불문학자 김희영

    20세기 최고의 문학을 21세기 감각과 언어로 재탄생시키다

 

마르셀 프루스트 서거 100주년이 되는 올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지막 7편 「되찾은 시간」(민음사판 12, 13권)이 민음사에서 출간됨으로써 총 13권이 완간되었다. 1편 「스완네 집 쪽으로」,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3편 「게르망트 쪽」, 4편 「소돔과 고모라」, 5편 「갇힌 여인」, 6편 「사라진 알베르틴」에 이어 10년 만의 결실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총 7편에 이르는 연작 소설로서, 그 분량을 합하면 수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이다. 2013년 첫 책인 1편 「스완네 집 쪽으로」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출간 100주년을 맞아 펴낸 이래, 민음사에서는 7편 「되찾은 시간」을 끝으로 완역을 성취했다. 이로써 김희영 역자의 ‘프루스트 번역 10년 프로젝트’가 완료되었으며, 이는 세기를 교차하는 문학사의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원서 1편 「스완네 집 쪽으로」는 1913년에 출간되었으며, 원서 7편 「되찾은 시간」은 프루스트 사후 오 년 만인 1927년에 출간되었다. 민음사에서는 1편 출간 100주년 기념이 되는 해인 2013년부터 완역을 목표로 『스완네 집 쪽으로 1, 2』(1권, 2권)를 출간하였으며,(1판 1쇄일은 2012년 8월 25일) 마지막 7편 『되찾은 시간 1, 2』(12, 13권, 1판 1쇄일은 2022년 11월 18일)을 프루스트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에 출간함으로써 완간의 순간을 맞이했다.)

 

1909년부터 1922년 11월 18일 죽는 날까지, 마르셀 프루스트는 ‘작가의 내적 고향은 동일하며 따라서 작가는 엄밀한 의미에서 한 권의 책밖에 쓰지 못한다.’라고 외치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고 또 썼다. 프루스트가 1909년에 계획한 책은 ‘마음의 간헐’이라는 제목 아래 ‘잃어버린 시간’과 ‘되찾은 시간’의 이분법적인 구성이었다. 그러나 그가 출판사 찾기에 실패하면서 1913년 신생 출판사인 그라세 출판사(현 갈리마르 출판사)가 자비 출판을 조건으로 예고한 작품은 처음 두 권에서 세 권으로 늘어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제목 아래 「스완네 집 쪽으로」, 「게르망트 쪽」, 「되찾은 시간」의 세 권이었으며, 이것이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수많은 교정 작업을 진행하게 된 덕분에 일곱 권으로 늘어난다. 그러므로 「되찾은 시간」의 여정은 ‘일찍부터 문학적 소명을 꿈꿔 온 한 문학청년이 무엇을 쓸 것인가와 어떻게 쓸 것인가에 관한 답을 발견하고, 드디어 작가의 꿈을 실현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 프루스트를 읽을 수 있는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 그리고 최선의 선택!

    프루스트 전공자의 완역본, 갈리마르 플레이아드 판본 번역, 풍부한 주석 작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국내 최초의 ‘프루스트 전공자’인 김희영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 교수가 “프루스트 전공자로서 사명감과 용기를 가지고” 번역에 모든 정열과 노력을 쏟아부은 필생의 역작이다. 1985년 국내 처음으로 번역된 판본(1954년판)과는 달리, 1987년 출간된 프랑스 플레이아드 전집 판본을 새로운 저본으로 삼아,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프루스트 연구자들의 주석 작업 그리고 영미권, 중국과 일본 등 여러 국가의 판본들을 비교, 참고해서 진행한 이번 번역서는 그야말로 프루스트의 ‘정본’이라 할 만하다. 옮긴이 김희영 교수는 이번 번역 작업을 통해 “길고 난해한” 프루스트의 문장을 “최대한 존중”하여 “텍스트의 미세한 떨림”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독자의 이해와 작품의 올바른 수용을 위해 최대한 많은 주석 작업을 하여 문화적, 예술적 차이를 극복하려” 했다고 말한다.

 

■ 20세기 최고, 최대의 소설이자 문학적 사건!

   프루스트를 읽지 않고 소설을 읽었다 말할 수 없다

 

프루스트 이전 소설들의 종착지이자, 프루스트 이후 현대 소설의 출발점이 될 만큼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타임스》, 《르 몽드》 등 세계 유력 일간지에서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꼽히며, 엘리엇, 모루아, 발레리, 베케트, 보부아르 같은 거장들뿐만 아니라 들뢰즈, 리비에르, 베냐민 등의 비평가, 철학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소설이다. 17∼18세기 소설들이 인간 내면보다 인간이 자리한 사회의 모습과 대자연의 광대한 힘을 담아내려 했다면, 프루스트는 오로지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이 구현하는 ‘의식의 흐름’ 자체에 생각과 펜을 맡긴 채 유례없이 장엄한 대작을 완성시켰다.

 

코르크로 문틈을 막은 방에 스스로 유폐되어, 천식과 맞서 싸우며 14년에 걸쳐 쓴 이 작품은 모두 7편, 수천 쪽에 달하는 원고로 이루어진 “20세기 최대의 문학적 사건”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나’라는 화자의 성장과 세심한 시선, 집요한 기억에 따라 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극한의 사유를 오롯이 담아낸다. 그 속에 유년기의 추억, 사랑과 정념, 질투와 욕망, 상실과 죽음, 예술, 사회, 문화, 정치, 역사 등 그야말로 ‘인간 삶’의 총체적인 모습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며, 독자로 하여금 “진정으로 가장 큰 체험”(버지니아 울프)을 하게 해 준다.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밝혀진 삶,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체험하는 유일한 삶은 바로 문학이다.”라는 프루스트의 말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우리가 ‘소설’을 통해 얻고 바라고 체험하고 희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따라서 그 누구도 프루스트를 읽지 않고는 소설을 읽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유년, 사랑, 정념, 예술 그리고 죽음까지

   19세기를 관통해 20세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르는 인간 삶의 총체적 서술

 

프루스트는 오랜 시간에 걸쳐 대가들의 작품을 모작하거나 번역하며 이전 세대 모든 문학과 예술을 책이라는 공간에 끌어들였다. 이런 시도는 그를 ‘현대 소설의 선구자’라는 영예뿐만 아니라 현대 사유의 중심에 자리하게 했다. 독일의 문예 비평가 발터 베냐민에 따르면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삶에서의 실제 ‘체험’이 아니라, 그런 체험의 “기억을 짜는 일”이며 프루스트는 낮 동안 짠 실을 밤이면 풀어헤치는 ‘텍스트’라는 개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작가였다. 텍스트의 어원인 ‘직물’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프루스트는 “끝없는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텍스트를 짜고 풀고 덧붙이며 한 권의 책 속에 우리 삶을 모두 담으려 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담론이다. 어린 ‘나’는 스완의 딸 질베르트를 짝사랑하고, 스완은 화류계 출신 여성 오데트를 욕망한다. 어린 소년의 풋사랑, 환상이라는 옷을 입고 아름답게 채색된 첫사랑, 어머니에 대한 소년의 집착, 질투로 얼룩진 욕망 그리고 금기와 죄의식에 사로잡힌 동성애 등 이 작품은 온갖 사랑의 형태에 따른 아름다운, 혹은 비극적인 서술로 가득하다.

 

프루스트는 사랑을 “그 사람을 소유하려는 고통스럽고도 미친 욕망”이라고 정의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곧 그에 대한 완전한 소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타자를 완전히 소유하기란 이 세계의 법칙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런 소유에 대한 욕망은 주체를 광기와 혼미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며, 그리하여 사랑의 대상은 쾌락의 대상이 아닌 탐색과 고통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주체를 사로잡는 이 강렬한 질투의 감정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이 감정은 진실에 대한 열정을 되찾게 해 주며 비록 그 열정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관계되는, 부분적으로 왜곡된 것이라 할지라도 마비된 우리 영혼을 일깨워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삶의 진실에 보다 근접하게 해 준다. 프루스트의 소설은 이처럼 사랑 또는 정념에 내재하는 고통에 의해 주체가 그 불가능의 지평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화자는 예술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는다. 스완은 오데트를 사랑하지 않지만 그녀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가 보티첼리의 그림에 나오는 여인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랑에 빠진다. 콩브레 시골 부엌 하녀는 조토의 「우의상」에 나오는 처녀 ‘자비’와 흡사하다. 그뿐만 아니라 모네와 마네, 터너 그리고 베네치아 유파의 카르파초, 플랑드르의 페르메이르 등도 작품 속에 자리한다. 회화와 함께 음악 역시 셸링과 쇼펜하우어 등 독일 낭만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뱅퇴유의 등장을 통해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하지만 프루스트의 유려한 문체로 말해지는) 세계를 조망한다. 이처럼 생시몽, 라신, 발자크, 플로베르, 보들레르로 이어지는 문학가들, 조토, 카르파초, 페르메이르, 렘브란트, 휘슬러, 모네, 르누아르 등의 화가들, 그리고 바그너, 드뷔시, 생상스, 프랑크 같은 음악가들…… 나아가 성당과 채색 유리, 종탑, 장식 융단과 보석 세공, 의복, 화장, 사진, 요리, 저잣거리 소음과 장사꾼들의 세속적인 노래에 이르기까지 문화와 예술, 사회 풍속 전반에 걸친 성찰과 섬세한 묘사는 “총체적 예술로서의 문학 이미지”를 구현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한 소년이 유년기를 거쳐 사랑을 알게 되고, 예술을 향유하며 한 시대를 살아 나가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인간 내면과 삶의 총체적 모습을 드러내는, 전대미문의 기념비적 대하소설이라 할 수 있다.

 

▿▿▿▿1권부터 13권까지, 10년의 경이로운 결실, 김희영 역자가 번역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시대, 인물,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텍스트 번역

 

김희영 역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한국어 번역에서 오늘날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되는 단어의 이해를 위해 당시 발간된 사전이나 자료를 적극 활용하였다. 이전 번역본에서 볼 수 있는 어휘상의 오류를 바로잡았으며, 시대적 풍습과 프랑스어 다의성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되는 오역도 신경 써서 번역하였다. 예를 들어 게르망트 부인이 착용한 목장식(cravate)을 목도리 또는 넥타이로, 르그랑댕이 맨 넥타이(lavallière)는 나비넥타이로 옮긴 번역본이 있는데, 이는 넥타이 변천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번역한 경우다. 화자가 어린 시절 책을 읽던 덮개 달린 버드나무 의자(guérite)는 움막 또는 파수막으로 번역되기도 했는데, 조그만 시골 정원에 파수막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2편에 나오는 카바레(cabaret)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카바레란 단어가 당시에는 고급 레스토랑을 의미하는데 그냥 ‘카바레’로 옮긴 것은 인물 성격 규정에 혼란을 자아낸다.

 

또 다른 예시는 작품 앞부분에 나오는 콩브레 종소리 장면으로, 손님이 울리는 작은 종소리와 문이 열릴 때 나는 요란한 쇳소리, 그리고 이런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집안사람이 ‘연결 장치를 벗겨 일부러 소리가 나지 않게’ 한다는 부분이다. 이 문단은 손님들이 들어올 때는 줄을 잡아당겨 수줍은 듯 조용한 종소리가 나지만, 집안사람들은 끈을 잡아당기지 않고 그냥 문을 열어 요란한 쇳소리가 난다는 이분법적 대립을 통해 내부인과 외부인 사이에 존재하는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또한 토요일이면 점심 식사를 한 시간 앞당겨 그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을 ‘야만인’ 취급하는 콩브레 사람들의 ‘편협한 국수주의’로도 귀결된다. 이 같은 폐쇄적인 콩브레의 지형도는 훗날 드레퓌스 사건으로 인한 유대인 배척파와 유대인 지지파, 1차 세계 대전 때에는 국수주의자와 친독파로 확대되면서 20세기 초반의 그 소용돌이치는 사회상으로 연결된다.

 

■ 작품의 이해를 돕는 풍부한 각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예술에 대한 작품이다. 문학, 음악, 미술, 연극, 건축, 조각 등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를 망라한 예술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어 서양 문화와 예술사를 잘 모르는 독자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성경이나 신화, 다른 예술 작품에 대한 암시가 독자에게 불러일으키는 반응은 서구 독자와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석 작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루이 16세나 중세, 루이 15세, 제정시대 실내 장식품이나 고대 조각, 르네상스 시대 미술에 대한 설명 없이는 스완과 오데트의 대화를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많은 주석을 단 새로운 프랑스 판본들은, 프랑스 독자들 역시 프루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 예술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주석의 필요성을 말해 주는 한 대목을 예로 들면 「스완네 집 쪽으로」 서두에서 켈트족의 윤회설에 대한 언급으로, 이 부분은 작품 마지막에 이르면 “드루이드 승려의 관을 쓴 떡갈나무”로 회귀한다. 이렇게 켈트족 종교인 드루이드교의 떡갈나무로 작품을 마무리한 것은 기억에 의한 부활의 이미지를 각인하고 작품의 순환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드루이드교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 읽기 좋으면서도 생생하게 살려낸 프루스트의 호흡

 

번역은 작품의 문학성과 연결된다. “작가에게 문체는 화가에게 색채가 그렇듯이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비전의 문제다. 그러므로 문체란 바로 이 세계가 우리 앞에 나타나는 방식에서 볼 수 있는 질적인 차이로서 (……) 만약 예술이 없다면 각자의 영원한 비밀로 남아 있을 그런 차이다. 우리는 오직 예술에 의해서만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우리와 같지 않은 다른 사람이 보는 우주를 볼 수 있다.”(플레이아드, IV, 474)라는 화자의 말은 프루스트에게 문체가 곧 작가임을 말해 준다. 마치 비단을 짜는 누에고치에 비유되는 문장 쓰기 앞에서, 수많은 종속절과 줄표, 쉼표, 쌍점, 쌍반점이라는 부호들의 그 무시무시한 소용돌이 앞에서 어떻게 작가의 긴 호흡을 존중하면서도 텍스트의 가독성을 확보할 것인가. 프루스트 번역가들에게 최우선의 과제로 등장하는 이 문제에 대해 김희영 역자는 여러 번 심사숙고한 끝에 긴 문장에서 쌍반점이 사용된 경우 호흡이 끊긴 걸로 간주하고 문장을 끊었다. 또 앞 문장에 대한 보충 설명보다는 새로운 이미지들을 전개하는 수단으로 종속절을 사용하는 프루스트 문체의 특징에 따라 원문 단어들의 순서와 이미지들의 전개 순서를 따르려 했다.(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말 어순과 비슷한 일본어로 현재 프루스트를 번역 중인 교토 대학교 요시카와 교수도 같은 견해를 표명한다.)

 

이렇게 원문 순서에 따라 주절을 먼저 제시하고 종속절을 나중에 제시하는 것은 비교절이 끝없이 이어지는 경우에도 텍스트의 의미 전달에 별다른 손상 없이 문장을 끊을 수 있게 해 준다. 예를 들면 작품 앞부분 쌍반점과 줄표로 연결되는 방에 대한 긴 문장에서는 쌍반점과 줄표를 기점으로 겨울 방, 여름 방, 루이 16세풍 방, 피라미드 모양 방이라는 네 단락으로 나누어, 거기 전개되는 이미지들을 차례로 서술함으로써 화자의 머리에 떠오르는 사유나 기억의 흐름을 존중하면서 텍스트의 가독성을 높이려 했다. 물론 텍스트의 순서를 따른다는 이런 원칙도 문맥에 따라서는 예외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옥같은 문장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스완네 집 쪽으로」

 

“생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차의 첫 모금을 마신 순간으로 되돌아가 본다. (……) 나는 정신에게, 사라져 가는 감각을 붙잡을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해 달라고 부탁한다.”— 「스완네 집 쪽으로」

 

“깊은 잠과 마찬가지로, 마술적인 독서의 이 점은 환각에 사로잡힌 내 귀를 속이고, 고요라는 창공의 표면에서 금빛 종을 지워 버린다는 데 있다.”— 「스완네 집 쪽으로」

 

“어떤 이미지에 대한 추억은 어느 한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아! 집도 길도 거리도 세월처럼 덧없다.”— 「스완네 집 쪽으로」

 

“지혜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 그 누구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고, 면제해 줄 수 없는 긴 여정을 통해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라네. 지혜란 사물을 보는 하나의 관점이기 때문이지.”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인간이란 결코 곧게 난 길과 닮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또 우리가 지나가기 힘든 그렇게 기이하고도 피할 수 없는 우회로를 취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다.”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때 사랑의 모순을 철학적으로 자신의 운명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인다면, 이는 바로 그 순간 우리가 사랑을 느끼지 못해 그렇게 마음 편하게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사랑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친구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난 그녀들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었고, 곧 네모레이드의 웃음마냥 잔잔한 물결 소리에 휩싸여 내 귀까지 올라오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죽음은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찾아오기도 하고, 건강한 사람의 외출길에 찾아오기도 한다.”

— 「게르망트 쪽」

 

“어떤 추억이나 슬픔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다가, 때로는 다시 돌아와 오랫동안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게르망트 쪽」

 

“여명의 빛이 뿌리는 자개 조각들로 가득 채워진 수면 위로 (……) 몇몇 배들 이 저녁에 돌아올 때처럼 그들의 돛과 앞쪽 돛대 끝을 노랗게 물들이는 그 기울어진 빛에 미소 지으면서 지나갔다.”

— 「소돔과 고모라」

 

“고독자는 이제 그에게 기차 시간이나 일등실 요금을 물으러 갈 수 없으며, 그래서 그리젤다처럼 자신의 탑 속에 돌아가 꿈을 꾸기 전에 해변을 서성인다.”— 「소돔과 고모라」

 

“단 하나의 진정한 여행, 젊음을 안겨 주는 유일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와는 다른 눈을 가지는 것이다.”— 「갇힌 여인」

 

“사랑이란 우리의 가슴에 느껴지는 시간과 공간이다.”— 「갇힌 여인」

 

“모든 것이 마멸되고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폐허로 변하는 것, 아름다움보다 잔해를 덜 남기면서 보다 완전하게 파괴되는 것은 바로 슬픔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알베르틴」

 

“이별이 우리 가슴에 가하는 물리적 충격은 우리 육체가 지닌 끔찍한 기록 능력에 의해 그 고통을 우리가 괴로워했던 삶의 모든 시기와 동시대의 것으로 만든다는 데 있다.”— 「사라진 알베르틴」

 

“얼마나 많은 추억과 기분과 관념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떠나 우리의 시계로부터 멀어지는가!”— 「사라진 알베르틴」

 

“나는 본질적인 책, 유일하게 참된 책은 이미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위대한 작가는 통상적인 의미에서 발명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번역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의 임무와 역할은 바로 번역자의 그것이다.”— 「되찾은 시간」

 

“만일 내게 작품을 완성할 만큼 충분히 오랜 시간과 힘이 있다면, 비록 그 일이 인간을 괴물과 같은 존재로 만들지라도 인간을 묘사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을 터였다.”— 「되찾은 시간」

 

“우리가 어느 일정 시기에 본 사물이나 읽은 책은, 단지 그때 우리 주위에 있던 것에만 언제까지나 연결되지 않고, 당시의 우리 모습 그대로 충실하게 남아 있으면서 그때의 우리 감성이나 인간, 상념에 의해 다시 느끼고 다시 사유할 수 있게 한다. ” — 「되찾은 시간」

 

“모든 예술 작품에서 우리는 예술가가 가장 증오한 인물들과, 또 슬프게도 가장 사랑한 여인까지도 알아볼 수 있다.”— 「되찾은 시간」

 

“문학은 사랑의 환상이 해체된 작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감정에 일종의 사후의 삶을 부여한다.”— 「되찾은 시간」

 

“예술 작품만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임을 (……) 그리하여 나는 문학 작품의 이 모든 소재가 내 지나간 삶이라는 걸 깨달았다.” — 「되찾은 시간」

 

“사랑에서 위험하고 고뇌를 배태하는 것은 여인 자체가 아니라, 그녀의 일상적인 현존, 매 순간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한 호기심이다. 그것은 여인이 아니라 습관이다.” — 「되찾은 시간」

 

“내가 그토록 산책을 많이 하고 몽상했던 두 개의 커다란 산책로가 ― 그녀의 아버지 로베르 드 생루에 의해 게르망트 쪽이, 그녀의 어머니 질베르트에 의해 ‘스완네 집 쪽으로’ 가는 메제글리즈 쪽이 ― 마침내 그녀에게 이르렀다.” — 「되찾은 시간」

 

“어둠 속에서 살아온 삶이 밝혀질 수 있고, 우리가 끊임없이 왜곡하는 삶도 본래의 진정한 삶으로 되돌릴 수 있고, 그리하여 마침내 책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이 순간 삶은 얼마나 살 만한 것으로 보였던가!” — 「되찾은 시간」

 

“만일 내게 작품을 완성할 만큼 충분히 오랜 시간과 힘이 있다면, 비록 그 일이 인간을 괴물과 같은 존재로 만들지라도 인간을 묘사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을 터였다. 거기서 인간은 공간 속에 마련된 한정된 자리에 비해 반대로 지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며, 세월 속에 침잠한 거인들처럼 그토록 멀리 떨어진 여러 다양한 시기를 살아 그 시기 사이로 많은 날들이 자리하러 오면서 삶의 여러 시기와 동시에 접촉하는 그런 무한으로 뻗어 가는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시간’ 속에서.”— 「되찾은 시간」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더불어 20세기 2대 걸작 중 한 편이다. 이들을 읽지 않고 문학을 논할 수 없다.” —T. S. 엘리엇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앙드레 모루아

 

“생명력이 가득 넘쳐흐른다.” —폴 발레리

 

“한없이 다시 읽고 또 읽고 싶은 작품.” —시몬 드 보부아르

 

“진정으로 내게 가장 큰 체험은 프루스트다. 이 책이 있는데 과연 무엇을 앞으로 쓸 수 있단 말인가?” —버지니아 울프

 

“한 인간 삶의 가장 완벽한 재현.” —알랭 드 보통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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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1871년 파리 근교 오퇴유에서 파리 의과대학 교수 아드리앵 프루스트와 부유한 유대인 증권업자의 딸 잔 베유 사이에서 태어났다. 명문 콩도르세 학교에 진학하여 공부하다가 열여덟 살이 되던 1889년 군에 지원하여 일 년간 복무한다. 제대 후 아버지의 권유로 법과대학과 정치학교에 등록하지만 학업보다는 글쓰기에 전념하여 《월간》에 브라방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기고한다. 이후 여러 문인과 교류하며 극장, 오페라 좌, 살롱 등을 드나들고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그림을 감상한다. 1909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하며 오랜 칩거 생활이 시작된다. 이후 여러 출판사를 찾아다니지만 출간을 거절당하고, 결국 그라세 출판사에서 자비로 책을 낸다. 1919년 갈리마르에서 개정판을 출간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로 공쿠르 상을 수상, 1920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1922년 기관지염이 악화되어 폐렴에 걸리나 마지막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원고를 다듬다 결국 11월 18일, 쉰한 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루스트 사후 오 년 만에 완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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