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선물

조해주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2년 9월 27일 | ISBN 978-89-374-0921-9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60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풍경의 시간과 단어의 무게를 바꾸는
세심한 관찰과 무심한 표정
이제 시의 다른 감각을 이야기하는
조해주의 두 번째 시집

편집자 리뷰

2019년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조해주의 두 번째 시집 『가벼운 선물』이 민음의 시 301번으로 출간되었다. 조해주는 담백하고도 용기 있게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하는 시를 선보이며 독자와 동료 시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조해주의 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정물화를 그리는 듯한 시선으로, 불필요한 형용을 과감히 제거하는 수다스럽지 않지만 존재감 있는 문장으로 쌓여 왔다. 첫 시집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하던 시인은 두 번째 시집 『가벼운 선물』에서 이제는 가벼워지자고 제안한다. 그가 물으면 “무거워?”(「잠이 쏟아지면 울기 어렵다 눈이 자꾸 감기기 때문이다」)라는 질문도 가볍게 들린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가벼워서”(「풍선의 무게」)라는 말의 뒷맛은 생각보다 무겁게 남는다. 조해주는 아주 자세히 봐야 알아차릴 수 있는 섬세한 무표정으로 가벼움의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조해주가 우리의 손에 들려 주는 물음표는 중력을 이기는 새로운 시적 감각이다. 시인으로부터 받은 이 선물로, 이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느껴지는, 시의 무게를 바꿔 볼 수 있다.


 

■사려 깊은 이가 문득 덧붙이는 물음표
『가벼운 선물』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질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조해주 시의 화자들이 물음표를 건네는 순간은 일상적이면서도 시적이다. 무심히 건네는 것 같지만 상대방의 상태나 의식이 나와 같은 곳에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들. 시 속에서 그런 질문을 받아든 이들은 그 상황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자리, 혹은 존재를 재인식한다. “무슨 생각해?”라는 질문에 대체로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까? 조해주 시의 상황은 아주 단순한 질문으로 세계를 확장시킨다. 이를테면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흩어지고 있다는 것을”(「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어요」)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으로. 조해주에게 물음표는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열쇠처럼 작동한다. 아주 작지만 상상 이상의 에너지를 지닌 버튼처럼, 눈에 보이는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거나 다른 존재가 되어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시인이 이 신기한 작동법을 지닌 물음표를 붙이기까지 사려 깊은 얼굴로 고민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작은 병에 든 물약을 마실까 말까 고민할 때처럼. 조해주의 시 속에서는 “여기서 뭐 하니?”같은 안부 인사마저 질문을 받는 이로 하여금 어느덧 공간을 벗어나고 거리를 넘어선 자신을 발견하게 하기 때문이다. “박물관 앞에서/ 만리장성 위에서/ 폭포 밑에서/ 붉은 광장 한가운데서”(「여전하네, 잘 지냈어?」) 새로운 현실을 감각하는 일. 시인의 작은 물음표 하나가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나의 삶에 불쑥 들어오려는 작은 것, 시 같은 것
조해주의 시 속 화자들은 종종 비일상의 순간과 맞닥뜨린다. 그때마다 그들은 익숙했던 세계의 질서를 벗어난 것이 조금은 불편하지만, 변해 버린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서두르지 않고, 우왕좌왕하지도 않고, 자신의 상태를 조용히 납득하고자 하는 마음. 조해주는 적응하는 화자를 탄생시킨다. 평소처럼 물컵을 들여다보다가 “바닥에 가라앉은 것을 자세히 살핀다는 것이 그만/ 눈동자 안에 통째로 유리컵이 들어가 버렸다”고 진술하는 화자는 어떤가. 그는 눈에 물컵이 들어간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일상에 돌입한다. “컵에 물이 찰랑이고 있어서” “함부로 물구나무를” 서지 않는다. 눈에 들어온 물컵과 함께 사는 일이 일상적임을 받아들이려는 비일상적 화자. 우리가 조해주의 시에서 사귈 수 있는 독특한 친구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충격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는 쪽이므로, 그로부터 오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게 될 것이다. “컵이 눈에 들어온 뒤로/ 무엇을 보면 쉽사리 잊히지도 않아서”(「좁은 방」)라는 고백이 그것이다. 조해주의 화자들이 그들의 몸에 불쑥 들어온 작은 것들을 받아들이려는 시도, 순식간에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버린 그것들을 이리저리 느껴 보려는 시도는 우리가 시를 읽는 순간과 닮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는 어느새 우리 마음에 붙어 아주 작은 변화들을 일으킬 것이다. 『가벼운 선물』을 읽은 뒤 우리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이제 우리가 시를 받아들일 차례다.


 

■본문에서

저어도 저어도 매끈한 죽의 표면

듣고 있어요?

식당 한쪽에서
무언가 깨뜨리는 소리가 들리고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직원이 걸어가는 동안

그는 죽을 깨끗이 비운다

그릇을 긁어내면
수저에 죽이 묻어 나온다

-「처음 보는 사람」 부분

너무 가벼워서
아무것도 안 입은 것 같다

어제 입었던 옷을 오늘도 입는 것은
아직 더러움이 모자라기 때문에

하나를 오래 입는 것은

입는 한
도무지 가벼워지지 않기 때문에

옷 같은 마음을 갖고 싶다

-「잠이 쏟아지면 울기 어렵다 눈이 자꾸 감기기 때문이다」 부분

어쩌다 이런 곳에 땅콩이 생겼는지 모를 일이지만……
문득 손바닥에 거칠게 만져지는 게 있어 들여다보니 땅콩이 틀림없구나. 손바닥 한가운데 땅콩이 박혀 있는데도 아프지 않다니. 나는 땅콩 나무가 되어 가는 것일까?

이렇게 구체적인 굳은 살을 가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낙엽을 떨구듯 옷을 홀랑 벗고 거울 앞에 서 본다.

-「다름 아닌 땅콩」 부분

넉넉한
셔츠를 입고
그는 찌르듯이 걷고 있다

셔츠가 그의 몸을 드나든다
그네처럼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나는 그에게 달려가 손을 뻗는다

셔츠를 움켜쥐면

셔츠가 날아간다

-「셔츠의 크기」 부분


■추천의 말

이미 첫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하자』에서부터 그의 시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다른 존재론을 보여 주었으며, 이번 시집 『가벼운 선물』에서 그 정확성과 풍부함은 절정에 이른 듯 보인다. 이것을 ‘극미존재론’이라 이름할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히 그의 시는 지금까지의 문학적 관성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우리들의 미세한 손짓, 눈짓, 표정, 움직임들을 보여 준다. 우리 존재가 이런 일상의 부스러기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 부스러기들을 한곳에 주워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다른 존재이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조해주 시인은 낡은 감상이 사라진 자리에 정확한 감성으로 이 극미한 존재들의 세계를 묘사한다. 그의 시 속에 우리들은 한없이 얇고 구체적으로 탐지되며,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순간의 감각뿐이다. 기존의 문학으로 덮을 수 없는 극세한 몸짓의 낱낱을 그가 세밀하게 그려 냄으로써, 이 무한한 디테일 속에 다시 새로운 시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은 시에 ‘가벼운 선물’이라 할 것이다.
-이수명(시인)

‘무게 바꾸기’가 본격화되며 점차 놀이로서의 양상을 띠어 갈 때, 우리는 일종의 희열마저 느끼게 된다. 놀이에 가까워질수록 인식론적 가벼움은 존재론적 가벼움으로 진화해 가기 때문인데, 이 과정에서 조해주가 사용하는 생략과 증폭은 새로운 무표정을 만들어 내는 독특한 미감으로 이어진다. 가령 “가까운 거리는 택시를 이용한다”(「가까운 거리」)는 표현은 가까운 거리는 걸어간다는 통념에근거한 표현을 전복하며 새로운 가벼움을 만들어 낸다. “굳이/ 말은 먼 길을 빙 돌아가고 있다”는 표현 역시 가까운 길을 빙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배반하면서 ‘거리감’에 대한 기존의 의미를 무화시킨다. 조해주의 이런 시들은 거리감을 비롯해 우리의 감각을 구성하고 있는 상식들을 해체함으로써 기존에 통용되는 의미의 그물망을 하나하나 풀어 간다.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치의 전복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이것은 시적으로 세상의 논리를 뒤집는 조해주 시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품 해설에서 / 박혜진(문학평론가)

목차

밤 산책 11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어요 12
가까운 거리 15
여전하네, 잘 지냈어? 18
평일 21
좁은 방 24
표범의 마음 27
처음 보는 사람 30
조용한 사람 32
트램펄린 35
체조 경기를 보다가 38
근린공원 40
최근 42
나무들이 끝없이 늘어선 길을 가로지르는 사람 44
시먼딩 46
여의도 48
일곱 시 51
아웃 포커스 54
옆에 있는 사람 56
아홉 시 58
파리공원 61
에게 64
끝 67
생일 70
주말 73
안방해변 76
CLOSED 79
생활감 82
안목해변 85
누수 88
한 동네에서 오래 91
이브 94
편식 97
잠이 쏟아지면 울기 어렵다 눈이 자꾸 감기기 때문이다 100
소금 항아리 102
백년서점 104
참외의 길이 106
다름 아닌 땅콩 108
마침 110
음악 때문에 112
가방의 깊이 114
셔츠의 크기 116
좋은 하루 되세요 118
OPEN 120
그런 사람 122
풍선의 무게 124
BREAK TIME 126
일기예보 128
펜팔 130
잘 찾아오실 수 있겠죠? 132
여력 134

작품 해설–박혜진(문학평론가) 137

작가 소개

조해주

2019년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독자 리뷰(1)
도서 제목 댓글 작성자 날짜
가벼워서 더 강해지는
DGNL 2022.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