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만세

정용준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2년 8월 12일 | ISBN 978-89-374-1951-5

패키지 양장 · 46판 128x188mm · 212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소설가 정용준의 첫 에세이집

 

“소설을 쓰고 읽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럴 가치가 있어요.

 

당신이 소설을 그렇게 지킨다면

소설 역시 당신을 그렇게 지켜 줄 것입니다.”

편집자 리뷰

정용준은 200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내가 말하고 있잖아』 『바벨』 『선릉 산책』 등 여덟 권의 소설책을 펴내며, 섬뜩하고 생생한 이미지와 서사, 세계로부터 외따로 떨어진 인물의 섬세한 감정, 문학의 실험적 재미 등 다채롭고 고유한 문학적 궤적을 그려 온 소설가다. 황순원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등 굴지의 문학상 수상 이력은 그가 밟아 온 성실하고 치열한 시간을 짐작게 한다. 정용준은 소설을 “단 한 사람의 편에 서서 그를 설명하고 그의 편을 들어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사람이며, “당신이 소설을 그렇게 지킨다면 소설 역시 당신을 그렇게 지켜 줄 것입니다.”라는 믿음을 지닌 사람이다. 그런 그가 첫 번째 산문집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역시, 다름 아닌 소설과 문학이다.

소설가 정용준의 첫 에세이집 『소설 만세』가 민음사 ‘매일과 영원’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매일과 영원’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문학적 순간을 길어 올리는 작가들이 내밀하고 친밀한 방식으로 써내는 자신의 문학론을 한 권의 책에 담아 펴내는 에세이 시리즈다. 『소설 만세』는 민음사 격월간 문학 잡지 《릿터》에 2021년 2월부터 1년 동안 연재되었던 결과물에 작가의 창작 원칙과 문학적 화두, 소설을 시작하던 때의 생생한 마음을 담은 글들을 더해 완성되었다. 연재 당시 『소설 만세』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글이 전하는 커다란 용기와 위로 덕분이었다. 정용준의 글은 오직 소설에 대해서만 말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용기와 위로의 표정을 띤 채 가 닿을 수 있었을까?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해 문장마다 마침표 대신 투명한 ‘만세’를 적는 마음이었다는 그의 일화처럼, 정용준이 소설을 대하는 태도는 절실하고 순전하다. 당신이 무한한 ‘만세’를 보내고 싶은 무언가를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용준이 써낸 고요하고 단단한 ‘만세’가 분명한 힘이 되어 줄 것이다.

 


 

■ 소설을 썼다. 그걸 계속 반복했다.

 

소설을 썼다. 소설이 안 써지면 남의 소설을 읽었다. 소설이 안 읽히면 시나 산문을 읽었다. 읽기든 쓰기든 아무것도 안 되면 그냥 잤다. 그리고 일어나면 다시 소설 쓰기를 시도했다. 그걸 계속 반복했다.

-168쪽

 

정용준은 20대 중반부터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는 산문시가 어떻게 시일 수 있는지 자신 있게 질문하던 ‘문학 문외한’으로 그 시절의 자신을 묘사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온종일 도서관에 박혀 문학만 생각하던 지독한 소설가였다. 그는 문학 강의 시간이면 지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은 욕심에 어설프게 읽어 낸 철학서를 잔뜩 인용하는 성마른 학생이기도 했지만, 오직 소설을 위해 2년 동안 인터넷이 되지 않는 방에 부러 머물기로 하는 꿋꿋한 소설가였다. 문학을 너무도 사랑하는데, 아직 그게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으니 일단 열심을 다하고 보는 마음. 자신이 다한 열심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어디로 가도 좋다는 듯이, 남김없이 건네는 마음. 그것이 정용준이 소설을 시작하던 때의 서툴고 소중한 마음이었다.

 


 

■끝까지 기다려 주는 소설

 

소설을 만나 더 나은 입술을 얻었다. 그 입술 역시 온전치 못해 더듬기는 매한가지지만 차이가 있다. 소설은 끝까지 기다려 준다. 다시 말하게 해 주고 때로는 했던 말도 고칠 수 있게 해 주며 오늘 말 못하면 내일 말할 기회를 준다. 그것이 고맙다.

-72쪽

 

소설을 이토록 사랑하는 그에게, 소설은 시간을 선물했다. 그가 개인적인 고난들로 좌절할 때, 소설이 마음처럼 잘 풀리지 않아 고민할 때, 적절한 언어를 정확한 때에 내뱉기가 어려워 오랫동안 침묵할 때, 소설은 변함없이 그를 기다려 주고 다시 말하게 해 주었다. 소설에게서 넉넉한 시간을 건네받은 정용준은 이제 소설의 시간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자신이 소설 안에서 시간을 보내며 많은 어려움들을 거쳐 왔듯이, 소설 속 인물에게도 당장의 어려움이 전부가 아니라 내일이 있음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 것이다. 소설에게 시간을 선물받고, 소설의 시간에 대해서도 고민하면서 그는 “인물에게 여유를 주고 내일을 주고 걸어갈 길을 보여 주고 문을 열어 주는” 글을 쓰고자 하는 소설가가 되었다. 소설을 끝마치고 작가가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듯, 소설이 끝난 뒤에도 정용준의 인물들은 제 삶을 살게 된다.

 


 

■한 사람을 사랑하듯 소설을 생각한다면

 

나는 소설을 한 사람의 삶에 들어가 그의 마음과 감정을 살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알고 확인하는 것을 넘어 알게 된 것에 책임감을 갖고 그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그를 믿고 변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45쪽

 

소설가 정용준이 소설을 생각하는 방식은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려는 마음과 닮았다. 잘 사랑하는 법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일단 열심을 다하고, 내 마음의 크기와 상대의 마음의 크기가 다른 것 같아 슬퍼하고, 곧 내 슬픔의 깊이를 살피기보다는 상대를 보다 잘 이해하고자 하고, 끝내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영원한 관계가 된다. 그가 소설과 주고받은 마음과 태도에 대한 글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소설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살아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다. 대상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사랑이라면 정용준은 소설을 마침내 잘 사랑하게 된 것이겠다. 『소설 만세』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그가 전하는 안부 인사처럼, 그의 ‘만세’는 자연스레 또 다른 ‘만세’들로 이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어 준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에서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믿는 그것을 언제나 소중히 간직하세요. 그리고 그것과 함께 살며 자신 있게 만세!를 외칠 수 있는 행복한 날들 되세요. 그럼 안녕!”

 


 

■본문 발췌

가끔 마침표 뒤에 나만 볼 수 있는 괄호를 열고 ‘소설 만세’를 집어넣은 뒤 살며시 괄호를 닫곤 했다. 투명해서 나만 읽을 수 있는 그 문장은 중얼중얼 애처로운 주문이 되었다. 나중에는 불가능한 목표를 적어 벽에 붙인 표어 같은 것이 되었고 지금은 불안하여 뭐든지 믿어 보려는 믿음이 되었다. 믿음이 필요해서 믿음을 삼은 것이 믿음이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소설이 필요한 내게 그 문장은 분명 힘이 된다.

―「프롤로그」에서, 10쪽

 

알고 싶은 마음은 아는 마음보다 어리석다. 하지만 강하다. 지금 당장은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지만 알고 싶은 마음은 앎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움직임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잠든 토끼를 이기는 거북이처럼 알고 싶은 마음은 마침내 그 어떤 앎보다 많이 알게 된다.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나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 중에 결국에 나를 더 많이 알게 되는 이는 알고 싶어 하는 사람 쪽일 거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계속 소설을 쓰고 싶다.

―「불가능한 싸움」에서, 46쪽

 

고통을 느꼈다.

슬픔을 느꼈다.

죽고 싶었다.

이렇게 소설은 끝나지만 인물에게는 소설이 끝난 이후에도 삶이 있다. 그런데 그 삶을 고려하지 않고 한순간의 감정과 감각에만 몰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끝내면 안 될 것 같다. 아픈데, 어떻게, 얼마나 아프냐면 말이야, 묘사하고 보여 주는 것보다는, 어찌하여 이렇게 됐는지를 생각하게 됐다고 할까. 인과, 고통의 전후, 슬픔의 전후에 대해 생각했고 소설이 끝난 이후 계속 살아 낼 그의 삶을 고민했다.

―「인물에게도 내일이 있다」에서, 87~88쪽

 

소중하고 귀한 것은, 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무대에 서기 전 리허설 하는 것. 발표하기 전 방에서 혼자 연습해 보는 것.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나기 전 거울을 보는 것. 고백하기 전 단어와 음성을 골라 보는 것. 편지를 쓰기 전에 빈 종이에 수많은 문장을 썼다 지웠다 연습해 보는 것.

쓰이는 대로 쓰고 싶지 않다. 다 쓰고 난 뒤, 분명히 내가 썼지만 내 의도와 내 마음과 달라진 소설을 읽고 이렇게 완성됐으니 이게 내 의도고 이게 내 마음이겠지, 합리화하고 싶지 않다. 나는 사는 대로 살고 싶지 않다. 매 순간 오고 가는 변덕스러운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꼭’ 해야 하는지 묻는다면」에서, 137쪽

 

글을 쓰면 안 되는 이유는 너무너무 많은데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글쓰기에 대한 고민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방해만 될 뿐이다. 마음이 있다면 그것에 사랑이 있다면 읽거나 쓸 것이다. 어떻게든 읽기를 향해 쓰기를 향해 나아가려고 애를 쓸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말자. 똑똑한 이성과 논리에 내 마음을 맡기지 말자. 상황이 어렵다. 시간이 없다. 재능이 없다. 반응이 안 좋다. 전망이 어둡다. 끊임없이 말하는 똑똑한 머리는 내 마음을 잘 모르거나 모르고 싶어 할 테니.

―「고속버스와 기차와 지하철에서 읽고 쓰기」에서, 174쪽

목차

프롤로그 9

 

1부 용기가 필요한 일

소설은 허구가 아니다 15

단 한 사람의 세계 22

먼저 울지 않는 사람 32

그것은 존재한다 35

불가능한 싸움 42

당신이 소설을 그렇게 지킨다면 47

몸에 좋은 소설 52

나만의 서커스 57

 

2부 내가 소설을 쓸 때

새로운 제목을 썼다 65

「떠떠떠, 떠」와 『내가 말하고 있잖아』 68

낙서로부터 열리는 74

새벽의 목욕탕 81

인물에게도 내일이 있다 85

더욱 인간인 것 91

 

3부 창작 수업

창작 수업이 도움이 될까? 99

나의 선생님 104

노력에 관한 몇 가지 생각 122

‘꼭’ 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133

스토리와 스토리텔러 139

서로 고개를 끄덕여 주는 사이 145

새로움은 어디에 깃들까 149

소설 속 인물들처럼 용감하게 158

 

4부 뜨겁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없던 그 방 165

고속버스와 기차와 지하철에서 읽고 쓰기 170

어느 새해 다짐 175

아는 것과 익히는 것 185

내가 하려던 그 말 191

구하기 전에 먼저 원할 것 195

그게 유령의 삶이라면 201

 

작가의 말 207

작가 소개

정용준

2009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굿나잇, 오블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작품으로 『바벨』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프롬 토니오』 『가나』 『세계의 호수』 『유령』 등의 소설이 있다. 「선릉 산책」으로 황순원문학상과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로 소나기마을문학상을, 「사라지는 것들」로 문지문학상을, 『프롬 토니오』로 한무숙문학상을 받았다.

독자 리뷰(2)

독자 평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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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이 책은 소설을 읽고 쓰는 사람이 일상을 더 잘 일구어 나가게 도울 문장들로 수두룩하다. 나는 ‘쓰다’라는 동사의 목적어 자리에, 내가 나로 서 있기 위해 써 내려간 모든 글도 넣고 싶다. 솔직히 말해서 소설 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살면서 소설을 딱 한 편 써봤다. 한 창작 수업의 기말 과제로 제출하기 위해서. 얼마나 쓰기 어려운지 몸소 깨달았다. ‘잘’ 쓰는 건 무슨, 완성하는 것도 어찌나 힘들던지. 분명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소설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그러니 부단히 소설을 읽는 사람으로 남기로. 읽은 것에 관해 쓰기를 멈추지 않기로. 읽은 것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치지 않고 말하기로 하자.

그러나, 읽고 쓰고 쓰고 읽어도 무엇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회의에 빠지게 되는 밤도 숱하게 있다. 그런 내게, “읽지 않고 쓰지 않으면 마음은 더 안 좋아진다”(54쪽)고 말해주는 작가의 목소리. “내 문제와 어려움을 토로하듯 말했더니, 그 고백과 일기가 끝난 곳에 가벼움과 내일이 있었다”(89쪽)고도. 이런 음성과 함께라면, 더 가볼 수도 있지 않을까. 보편적인 개별성과 개별적인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평범한 삶이 특별해지는” 순간은 “사람 속에 숨어 있는 특별함이 적절하게 이야기될 때”(25쪽)라는 걸 기억하며. ‘쓰기’에 갇히지 않으면서 그것으로 내 삶을 일구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으로 감상을 마무리한다.

“시큰둥하게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엔터를 누르고 단어 하나를 시작으로 새로운 문단을 시작한다.” (56쪽)

↵ Enter, 하나의 단어, 새로운 문단. 그렇게 시작하는 매일으로 영원을 쓰기.
도서 제목 댓글 작성자 날짜
소설을 쓰고 싶게 만들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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