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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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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카피: ‘자기 탐구’의 달인 몽테뉴가 쓴 107가지 이야기 3권

원제 Les Essais

미셸 드 몽테뉴 | 옮김 최권행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2년 6월 24일

ISBN: 978-89-374-7226-8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42x225 · 656쪽

가격: 26,000원

분야 외국 문학


책소개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최고의 사상가,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

‘자기 탐구’의 달인 몽테뉴가 쓴 107가지 이야기

‘에세이essay’의 기원이 되는 『에세』 1588년판 보르도본 완역판 출간!

 

10년의 번역, 5년의 검수, 국내 초역 후 반세기 만에 탄생한 완역본!

시시각각 변하는 ‘나, 미셸’을 드러내고 증언하는 초상화 같은 글

 

“나는 잠잘 때는 잠을 자고 춤출 때는 춤을 춘다.”

 

“『에세』를 읽다 보면 내가 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16세기 시인 타브로

 

“이 책에서 내가 본 것 모두 몽테뉴의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 17세기 사상가 파스칼

 

“전생에 내가 직접 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19세기 수필가 에머슨

 

“몽테뉴가 글을 씀으로써 이 지상에서 사는 기쁨이 늘어났다.”

— 20세기 철학자 니체

 

“그가 바로 나 자신인 것 같다.”

— 20세기 소설가 앙드레 지드

 

목차

[에세 1]

 

옮긴이의 말 [005]

서문: 독자에게 [035]

 

1장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비슷한 결말에 이른다 [039]

2장 슬픔에 관하여 [045]

3장 우리 마음은 늘 우리 저 너머로 쓸려 간다 [052]

4장 정념의 진짜 대상을 놓쳤을 때, 영혼은 어떻게 그 정념을 엉뚱한 곳에 풀어놓는가 [064]

5장 포위된 곳의 우두머리가 협상을 위해 성 밖으로 나서야 하는지에 관하여 [068]

6장 협상할 때가 위험하다 [073]

7장 우리 행동은 의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077]

8장 무위(無爲)에 관하여 [080]

9장 거짓말쟁이들에 관하여 [083]

10장 재빨리 또는 굼뜨게 말하는 것에 관하여 [092]

11장 예언에 관하여 [096]

12장 의연함에 관하여 [103]

13장 왕끼리 회동하는 의식에 관하여 [107]

14장 좋고 나쁜 것은 우리 견해에 달려 있다 [110]

15장 요새를 사수하려 분별없이 집착하면 처벌당한다 [140]

16장 비겁함에 대한 벌에 관하여 [142]

17장 몇몇 대사의 특징 [145]

18장 공포에 관하여 [150]

19장 우리 행복은 죽은 뒤에나 판단해야 한다 [155]

20장 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160]

21장 상상의 힘에 관하여 [189]

22장 한 사람의 이익은 다른 이의 손해이다 [207]

23장 습관에 대해, 그리고 기존의 법을 쉽게 바꾸지 않는 것에 관하여 [209]

24장 같은 계획의 다양한 결과들 [236]

25장 현학에 관하여 [251]

26장 아이들의 교육에 관하여 [271]

27장 우리 능력으로 진실과 허위를 가리는 것은 미친 짓이다 [328]

28장 우정에 관하여 [335]

29장 에티엔 드 라 보에시의 소네트 스물아홉 편 [356]

30장 중용에 관하여 [358]

31장 식인종에 관하여 [366]

32장 신의 뜻을 함부로 판단하려 들지 마라 [388]

33장 목숨 바쳐 속세의 쾌락을 피하다 [392]

34장 운수는 가끔 이성과 보조를 맞춘다 [395]

35장 우리네 살림살이의 결함에 관하여 [400]

36장 옷 입는 풍습에 관하여 [403]

37장 소(小) 카토에 관하여 [409]

38장 우리는 같은 일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416]

39장 홀로 있음에 관하여 [422]

40장 키케로에 대한 고찰 [442]

41장 자신의 영광을 남과 나누지 않는 것에 관하여 [452]

42장 우리들 사이의 불평등에 관하여 [456]

43장 사치 금지법에 관하여 [473]

44장 잠에 관하여 [477]

45장 드뢰 전투에 관하여 [481]

46장 이름에 관하여 [484]

47장 우리 판단의 불확실성에 관하여 [494]

48장 군마(軍馬)에 관하여 [505]

49장 오래된 관습에 관하여 [519]

50장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에 관하여 [527]

51장 말의 공허함에 관하여 [533]

52장 고대인의 검소함에 관하여 [ 539]

53장 카이사르의 한마디 [ 541]

54장 쓸데없는 묘기(妙妓)에 관하여 [ 544]

55장 냄새에 관하여 [ 549]

56장 기도에 관하여 [ 553]

57장 나이에 관하여 [ 569]

 

[에세 2]

 

1장 우리 행동의 변덕스러움에 관하여 [011]

2장 주벽(酒癖)에 관하여 [023]

3장 케아섬의 관습에 관하여 [039]

4장 사무는 내일로 [061]

5장 양심에 관하여 [065]

6장 수련에 관하여 [072]

7장 명예포상에 관하여 [090]

8장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 관하여 [096]

9장 파르티아인의 무장(武裝)에 관하여 [126]

10장 책에 관하여 [131]

11장 잔인성에 관하여 [153]

12장 레몽 스봉을 위한 변호 [177]

13장 타인의 죽음을 판단하기 [460]

14장 우리 정신은 얼마나 스스로를 방해하는가 [470]

15장 우리 욕망은 난관을 만나면 더 커진다 [472]

16장 영광에 관하여 [482]

17장 오만에 관하여 [504]

18장 거짓말하는 것에 관하여 [556]

19장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 [564]

20장 우리는 순수한 어떤 것도 맛볼 수 없다 [571]

21장 게으름을 지탄함 [576]

22장 역참(驛站)에 관하여 [583]

23장 나쁜 수단을 좋은 목적에 사용하는 것에 관하여 [586]

24장 로마의 권세에 관하여 [592]

25장 병자를 흉내 내지 말 것 [595]

26장 엄지손가락에 관하여 [599]

27장 비겁함은 잔인의 어머니 [601]

28장 모든 일에는 제때가 있다 [616]

29장 용기에 관하여 [620]

30장 어느 기형아에 관하여 [632]

31장 분노에 관하여 [635]

32장 세네카와 플루타르코스의 변호 [647]

33장 스푸리나의 이야기 [658]

34장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병법에 관한 고찰 [670]

35장 현숙한 아내 세 사람에 관하여 [683]

36장 가장 탁월한 남자들에 관하여 [695]

37장 자식들이 아버지를 닮는 것에 관하여 [708]

 

[에세 3]

 

1장 실리와 도리에 관하여 [011]

2장 후회에 관하여 [037]

3장 세 가지 사귐에 관하여 [060]

4장 기분 전환에 관하여 [080]

5장 베르길리우스의 시 몇 구절에 관하여 [099]

6장 수레에 관하여 [211]

7장 권세의 불편함에 관하여 [241]

8장 대화의 기술에 관하여 [250]

9장 헛됨에 관하여 [294]

10장 자기 의지를 조절하는 것에 관하여 [399]

11장 절름발이에 관하여 [439]

12장 외모에 관하여 [459]

13장 경험에 관하여 [511]

 

부록: 몽테뉴의 서재와 천장의 금언 [609]

몽테뉴 연보 [636]

 


편집자 리뷰

■ 10년의 번역, 5년의 검수

   국내 초역 후 반세기 만에 탄생한 『에세』 1, 2, 3 완역본!

 

“이것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종류의 책으로,

외골수의 황당무계한 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최고의 교양인이자 사상가, 철학자인 미셸 드 몽테뉴가 서른여덟 살에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몽테뉴 성 서재에 칩거해 죽기 전까지 써 나간 필생의 작품 『에세』 완역본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우리에겐 ‘수상록’으로 알려진 손우성 선생의 완역본(1965년 5월 5일 초판 발행) 이후 반세기 만으로, 1588년판(생전 마지막판) 보르도본(여백 부분에 몽테뉴가 수기로 새 글을 첨가) 번역이다. 원서로 1000여 쪽(우리 번역서로는 1988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에세』는 불문학자인 심민화, 최권행 역자가 10년의 번역 기간과 5년의 검수를 거쳐 15년 만에 이뤄 낸 결실이다. 심민화 역자는 『에세』 번역을 위해 몽테뉴의 고향인 보르도를 찾아가 그의 자취를 살피고, 도서관에 보관 중인 보르도본을 실견하며 철저한 감수를 진행했다. 1571년 법관직을 사직한 뒤 몽테뉴 성으로 은퇴한 몽테뉴는 1592년 죽을 때까지 이십여 년간 107편의 짧고 긴 에세들을 집필했으며, 글쓰기를 시작한 지 칠 년째 되던 해에 그간에 쓴 글들을 묶어 ‘에세(Les Essais, 에세들)’라는 제목으로 초판을 출간하며 새로운 글쓰기 형식의 탄생을 알렸다. 에세(essai)는 ‘시험하다’, ‘경험하다’, ‘처음 해 보다’ 등을 뜻하는 동사 ‘에세이예(essayer)’에서 몽테뉴가 만들어 낸 명사로, 이 특별한 글쓰기 형식인 에세에서 영어로 통용되는 글쓰기 형식인 ‘에세이’가 탄생했다.

 

사건이 아니라 생각을 기술하는 몽테뉴의 에세들은 107가지의 다양한 제목 아래 인간사를 만드는 온갖 정념과 인간 세상의 오만 양상을 펜 끝에 소환하여, 마치 법정에서처럼 그의 정신과 마음, 영혼 안에서 서로 반박하거나 거들며 ‘나, 미셸’을 드러내고 증언하고 만들어 간다. 조상들이 정성을 쏟은 몽테뉴 성을 개축하고 고대인과 인문주의자들이 선망하던 ‘사색적 삶’을 살아보고자 은퇴한 몽테뉴는 ‘자기만의 방’에서 정신적 위기를 맞았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정신의 움직임을 글로 기록하기로 한다. 그의 글쓰기는 자기 정신을 관찰하고 제어하여, 자신의 본래 성정과 반대되는 우울에서 벗어나고, 그리하여 스스로 자기 정신의 고삐를 쥔 자가 되기 위한 ‘자기 탐구’의 방편이었다. 몽테뉴는 의문을 자극하거나 마음을 사로잡는 주제가 떠오르면 서적에서건 풍문에서건, 역사적 사실이나 일상 이야기에서건 그 에피소드와 관련한 예화들을 나열하고 대비하며, 서로 상충하고 모순되는 사례들이 만들어 내는 불확실성 속에서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가 처음 자기 안에서 발견한 것은 그 혼란스런 정신 이외에는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자기 탐구의 과정을 통해 몽테뉴는 자기 안에서 인간 정신의 잡다함과 유동성을, 인간 감각과 이성의 허술함과 편파성을 발견하고, 그 한계를 보편적 인간 조건으로 인식한다. 그러고 나서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내가 무엇을 아는가?(Que sais je?)’

 

■ 중세 자기 인식 탈피한 ‘정신적 개인’의 탄생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몽테뉴식 글 유랑

 

“우리도, 우리의 판단도 그리고 모든 필사의 사물들도

끊임없이 흐르고 굴러간다.”

 

환멸과 폭력의 시대를 살면서 몽테뉴는 인간의 비참, 세상의 비참을 넘어 ‘세상 저편’, 또는 ‘무덤 저 너머’를 추구하지 않았다. 죽음은 삶의 매 순간을 강렬하게 만드는 배수진이 되고, “매 순간 내가 내게서 빠져나가는 것 같다.”라던 그의 인식은 글을 쓰면서 “시간의 신속함을 내 민첩함으로 나꿔채고 싶다.”라는 적극성으로 바뀐다.(『에세 3』 13장) 몽테뉴는 자기 정신의 산물을 ‘망상’이나 ‘몽상’이라고 부르기를 그치지 않았지만, 그 겸손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일 새롭게 주어질 대상 세계의 가능성, 새로운 ‘나’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간에 대해서나 세상에 대해서나, 삶이 종지부를 찍을 미래에 대해서조차 환상 없이 오직 현실과 현상, 실재를 움켜쥐고,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잘 살고 잘 죽는 길을 찾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 “세상에 잉크와 종이가 있는 한” 기록될 지금/여기(hic et nunc)의 시간, 부정에서 긍정으로 이행하는 시간, 『에세』를 읽으며 우리도 그 시간에 실려 간다. 『에세』를 읽다 보면 니체가 왜 그를 ‘승리자’라고 부르며, “승리자와 함께하면 행복하다.”(『반(反)시대적 고찰』)라고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고대와 중세에도 자기 성찰은 자기 수련의 주요 항목이었으며, 그 성찰은 철학적, 종교적 유파들의 집단 강령에 따라 수행되었다. 중세인의 자기 인식은 종족, 가문 등 보편적이고 집단적인 형태에서만 이해 가능한 것이었다. 몽테뉴의 자아 탐구는 이러한 인식을 탈피한 ‘정신적 개인’인 ‘나’로 출발하며, 자기의 실재를 확인하고 스스로를 재정립하는 자기의, 자기에 의한, 자기를 위한 시도였다. 몽테뉴는 퓌론주의(회의주의)의 무견해 관습을 받아들여, 시시각각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 그대로를 관찰하여 글로 기록했다. 이러한 판단정지(에포케, Épochè)에 의한 현상학적 기술은 자기에 대한 자신의 주도권을 회복하고, 비판적 의식을 동반한 ‘주관적 견해’를 가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주체’로 사는 길을 연다. 보편적 인간 조건을 말할 때 그는 ‘우리(nous)’를 주어로 말하고, 자신의 견해를 말할 때는 ‘나(je)’를 주어로 말한다. “이 에세들은 나의 변덕스러운 생각이요, 그것들을 통해 내가 하려는 것은 사물에 대한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알게 하려는 것이다.”(『에세 2』 10장) 종(種)으로서의 닮음은 우리를 동포가 되게 한다. 개개인의 다름은 우리를 대화하게 한다. ‘우리’이며 각각 개인인 독자는 지금, 몽테뉴와 동일한 보편적 인간 조건을 지닌 그와 동등한 ‘주체’로서, 그리고 우리와 마주한 한 근대인 몽테뉴를 만나게 된다.

 

“어느 시대 누구에겐들 그렇지 않을까만 — 우리에게도 누군가를, 누군가의 마음과 영혼을 만나는 일이 삶의 방향과 모습을 형성해 간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그러니 내게는 몽테뉴라는 평생의 벗을 만난 것이 적잖은 행운인 셈이다.(최권행)
이 책을 펼쳐든 모든 독자를 위해서도 몽테뉴의 마지막 말을 빌려 기원한다. 부디 ‘건강과 지혜, 진정 유쾌하며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게 하는 지혜’(『에세 3』 13장)를 얻고 누리시기를…….”(심민화)
― 옮긴이의 말 중에서

■ 『에세』를 충분히 즐기며 읽는 두 가지 포인트는?

   1588년판 보르도본 A, B, C 표식과 인용문들

 

“나는 춤출 때 춤을 추고, 잠잘 때 잠을 잔다. 그리고 (……)

홀로 있음의 아늑함으로, 그리고 나 자신에게로 내 생각들을 데려온다.”

 

『에세』는 몽테뉴 생전에 다섯 번 발간된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까지 알려지고 보존된 것은 1580년, 1582년, 1587년, 1588년판 네 판이지만, 몽테뉴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1588년판 『에세』의 여백에 빼곡히 수기를 첨가하면서, 그의 손으로 “6차 출간을 위한 것”이라고 명시해 놓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르도본’이라고 불리게 된 몽테뉴 개인 소장본은 몽테뉴 사후 부인에 의해 페이양 수도원 도서관에 기부된 뒤 오랫동안 잊혔으나, 20세기 들어 그것을 원본으로 하는 새로운 판이 발간되고, 보르도본의 사진 복사본이 만들어지자, 각 장을 구성하고 있는 지층이 드러났고, 몽테뉴가 새로 발간할 때마다 덧붙인 부분들이 구별되었다. 본문에 붙어 있는 A, B, C는 그 지층을 구별해 주는 기호이며,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작은 글씨로 붙어 있는 이 기표에도 관심을 가지며 읽는다면 몽테뉴 사유의 움직임과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A: 보르도의 시몽 밀랑주 출판사에서 두 권으로 출판한 1580년판과 1582년판에 실린 부분.

(1587년 파리의 장 리세 출판사에서 출간한 3판은 1582년판과 동일하다.)

 

B: 1588년 파리의 랑젤리에 출판사에서 3권의 열세 장이 추가되면서 책 전체에 첨가된 부분.

 

C: 몽테뉴가 갖고 있던 1588년판(보르도본)의 여백에 수기로 빽빽이 첨언한 부분.

 

몽테뉴가 언급하는 수많은 인물과 인용문을 보고 ‘『에세』를 읽으려면 고전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한 것 아닐까?’ 하고 짐작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글을 읽기 위해 머리 싸매고 공부부터 하는 것은 몽테뉴가 원치 않을 것이다. 그 공부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몽테뉴 자신이 쓴 글에도 나와 있다.

 

“나는 이 장식들이 나를 뒤덮고 나를 가리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의도와는 반대이니, 나는 오직 나의 것만을, 그리고 원래 내 것인 것만을 보여 주기를 원한다. 그리고 만약 내가 충분한 자신감만 있었더라면 모든 것을 운에 맡기고 오직 내 목소리로만 이야기했을 것이다.”((『에세 3』 12장)

 

몽테뉴가 본문 중 인용한 말 이외에 인용의 출처를 거의 밝히지 않은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몽테뉴는 인용들을 그저 가져다 쌓아 놓고 젠체하는 문집본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많은 인용들에서 어떤 것을 훔쳐다 변장, 변형시켜 쓸 수 있으니 나는 아주 편하다. 원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는 평을 들을 것을 무릅쓰고, 나는 그것들이 완전히 겉도는 남의 글이 되지 않도록 내 손으로 어떤 특별한 방향성을 부여한다.”(『에세 3』 12장)

 

그러면서 몽테뉴는 인용에 관해 독자에게 아주 간단한 주문을 남겼다. “인용한 것에서는 내가 내 주제를 두드러지게 할 수 있는 뭔가를 고를 능력이 있었는지를 볼 일이다.”(『에세 2』 10장) 그러니 독자인 우리는 몽테뉴의 말을 믿고 ‘나, 미셸’을 편히 음미하여 읽으면 된다.

 

■ 『에세』 1, 2, 3 본문 중에서

 

[1권]

 

“우리는 편안하게 제집에 머무는 적이 없고 늘 저 너머로 나가 있다.”(3장)

 

“확고한 목표가 없는 영혼은 길을 잃고 만다. 사람들이 말하듯 도처에 있다는 것은 아무 데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8장)

 

“고통을 없애지는 못할망정 참을성으로 덜어 보고, 육체가 고통에 시달릴지라도 영혼과 이성만은 강건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14장)

 

“다른 사람의 삶을 판단할 때 나는 항상 그 마지막이 어땠는지를 고려한다. 그리고 나 자신의 삶에 대한 주요한 관심 중 하나는 그 마지막이 잘 이루어지는 것, 즉 고요하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다.”(19장)

 

“보라, 젊은이나 늙은이나 같은 조건에서 삶을 떠난다. 누구도 지금 삶에 들어와 있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삶에서 나가지 않는다.”(20장)

 

“삶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너희가 무엇에 내어 주느냐에 따라 삶은 선의 자리도 되고 악의 자리도 된다.”(20장)

 

“남의 지식으로 학자야 될 수 있다손쳐도, 우리 자신의 지혜가 아니면 지혜로울 수 없다.”(25장)

 

“사람들이 누군가는 여행을 다녀와서도 나아진 게 전혀 없다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사람, 자기를 지고 다녀온 모양이지.’”(39장)

 

“우리의 만족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만 달려 있게 해 놓자. 우리를 타인들과 묶어 놓는 모든 끈에서 풀어 주자. 정말로 혼자 살아가는 힘, 그리고 마음 편하게 그런 방식을 고수해 갈 힘을 우리 자신에게서 얻도록 하자.”(39장)

 

“우리가 사냥개를 칭찬하는 것은 빠르기 때문이지 목걸이 때문이 아니요, 새를 칭찬하는 것은 날개 때문이지 끈이나 방울 때문이 아니다. 왜 우리는 한 인간을 그처럼 그에게 고유한 것에 준해서만 평가하지 않는 것일까?”(42장)

 

“우리의 행불행은 오직 우리에게 달렸다. 봉헌과 맹세는 운수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바치자.”(50장)

 

“우리 삶이 얼마나 무력한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암초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인생의 너무 큰 몫을 출생이며 빈둥거리기, 수련 과정 따위에 할애해서는 안 될 것이다.”(57장)

 

 

[2권]

 

“우리가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휩쓸려 간다. 부유물처럼, 물이 거세냐 잔잔하냐에 따라 때로는 순하게, 때로는 격하게.”(1장)

 

“우리는 모두 조각들로 이루어진 데다 어찌나 종잡을 수 없는 복잡다기한 구조로 되어 있는지 조각들 하나하나가 매 순간 제멋대로 논다.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에는 우리와 남 사이만큼의 차이가 있다.”(1장)

 

“인간의 가장 나쁜 상태는 자기 인식과 자기 통제력을 잃었을 때이다.”(2장)

 

“양심은 우리를 두려움으로 채우듯, 우리를 확신과 자신감으로도 채워 준다.”(5장)

 

“내가 여기에 쓰는 것은 내 행위가 아니라 나이다. 나의 본질이다.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데는 신중해야 하고, 자기를 증언할 땐 비천하건 고매하건 똑같이 양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6장)

 

“누가 자기 아래만 내려다보면서 자기 지식에 도취하거든 지난 세기들을 향해 눈을 들게 하라. 자기를 발아래 뭉갤 이들을 수천이라도 발견하고 뿔을 내리리라.”(6장)

 

“모든 죽음은 당사자의 삶에 부합해야 한다. 우리는 죽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나는 항상 삶에 비추어 죽음을 해석한다.”(11장)

 

“우리의 존재에도, 사물들의 존재에도, 항존하는 실체(實體)란 없다. 우리도, 우리의 판단도, 그리고 모든 필멸의 사물들도 끊임없이 흐르고 굴러간다.”(12장)

 

“우리의 욕망은 갖지 못한 걸 잡으려고, 손안에 있는 것은 하찮게 여기며 넘겨 버린다.”(15장)

 

“우리는 모두 속이 빈 허당이다. 우리 안에 채워 넣어야 할 것은 바람과 소리가 아니다. 우리를 수선하려면 좀 더 견고한 실체가 필요하다.”(16장)

 

“내가 내 인생에 바라는 영광은 평온하게 살았다는 영광뿐이다. (……) 철학도 평온으로 가는 만인 공통의 좋은 길을 찾아내지 못했으니, 각자 자기 자신에게 맞는 고요를 찾아야 한다!”(16장)

 

“나는 내가 나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근심하는 만큼 남에게 어떤 자로 보이는가를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빌려 온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것으로 부자이고 싶다.”(16장)

 

“모든 명예로운 인간은 자기 양심을 잃느니 차라리 명예를 잃는 편을 택한다.”(16장)

 

“진실에 불성실한 자는 거짓에도 불성실하다.”(17장)

 

“인간의 이성은 양날을 가진 위험한 검이다. 이성의 가장 가깝고 친한 친구인 소크라테스의 손안에서조차 그것이 얼마나 여러 개의 모서리를 가진 몽둥이인지를 보라.”(17장)

 

“심오한 기쁨은 즐겁다기보다는 근엄하다. 완전히 충만한 극도의 만족감은 경쾌하기보다는 묵직하다.”(20장)

 

“분노란 저 혼자 장구 치고 북 치며 부풀어 오르는 정념이다. 그릇된 이유로 흥분한 나머지, 누가 우리에게 정당하게 반박하거나 변명을 제시해도, 진실 자체에 대해, 그리고 엉뚱한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린 일이 얼마나 많은가?”(31장)

 

 

[3권]

 

“마음을 열고 솔직히 터놓는 이야기는 마치 포도주나 사랑이 그렇게 만들듯 상대도 마음을 열고 다가오게 만든다.”(1장)

 

“나는 존재를 그리지 않는다. 그 추이를 그린다. 이 시대에서 저 시대가 아니라, 혹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7년에서 다른 7년이 아니라,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추이를 그린다.”(2장)

 

“내 책과 나는 발맞춰 나란히 나아간다. 다른 곳에서라면 만든 사람과 별개로 작품을 칭찬하거나 비난할 수 있다. 여기서는 아니다. 하나를 건드리는 것은 나머지 하나도 건드리는 셈이다.”(2장)

 

“내가 지금 얻는 오직 그만큼의 평판을 위해서만 나는 세상에 뛰어든다. 세상을 떠날 때면 그 뒤 영광이야 무슨 상관이랴.”(2장)

 

“영혼의 위대함은 커다란 일들이 아니라 평범한 일들 속에서 발휘된다.”(2장)

 

“우리의 주요한 능력은 다양한 일에 적응할 줄 아는 것이다. 별수 없이 오직 한 가지 생활 방식에만 매달린 채 지내는 것은 존재하고 있는 것일 뿐 사는 것이 아니다. 가장 고매한 영혼은 가장 많은 다양성과 유연성을 지닌 영혼이다.”(3장)

 

“제 운명이 자기를 어디로 데려가든 편안하고, 자기 집 짓는 일이나 사냥, 송사에 대해 제 이웃과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며, 목수나 정원사와 기분 좋은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는 영혼 말이다. 자기 시종 중 가장 미천한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대하고, 자기 집 하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나는 부럽다.”(3장)

 

“자연에 있어서 유일하고 희귀한 것은 없으며, 우리의 앎도 역시 그러한데 그 위에 우리의 학문 체계를 세우기에는 그것은 너무도 빈약한 토대이다.”(6장)

 

“이 세계는 우리 못지않게 크며, 모자람 없고, 사지 건강하며, 그럼에도 너무도 새롭고 너무도 아이 같아서 아직 가나다라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6장)

 

“내가 드높아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결단성에서, 지혜에서, 건강에서, 그리고 또 부유함에서이며, 그것도 절제되고 조심스럽게, 나를 위해 적합한 방식으로 성장해 가기를 바란다.”(7장)

 

“우리 정신의 가장 비옥하고 자연스러운 훈련은 대화이다. 나는 그것이 우리 삶의 다른 어떤 행위보다 더 달콤한 경험이라고 여긴다.”(8장)

 

“운명은 내 삶을 이제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고 또 누구에게도 방해되지 않는 지점에 데려다 놓았으니, 내 삶을 무엇과도 가볍게 교환할 수 있게 도와준 운명의 신은 얼마나 고마운가!”(9장)

 

“가장 안전한 길은 세상의 표면을 조금 가볍게 흘러가는 것이다. 세상을 미끄러져 갈 일이지 거기 처박혀 서는 안 된다. 쾌락마저도 그 심연에서는 고통스럽다.”(10장)

 

“나는 춤출 때 춤을 추고, 잠잘 때 잠을 잔다. 그리고 아름다운 과수원 사이에서 홀로 산보를 하노라면 한동안 그 순간과 무관한 일들을 떠올리지만,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산보로, 과수원으로, 홀로 있음의 아늑함으로, 그리고 나 자신에게로 내 생각들을 데려온다.”(13장)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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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드 몽테뉴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최고의 교양인, 사상가, 철학자, 때로는 정치인으로 부각되기도 하는 몽테뉴. 그러나 곧 덧붙여 말해야 한다. 그는 당대 인문학자들과 달리 라틴어가 아닌 속어(프랑스어)로 글을 썼고, 나아가 장바닥의 생생한 말로만 쓰고 싶다고 한 교양인이요, 어려운 개념도 체계도 교화적 목적도 없이, 누구나 부딪히는 실존적 문제들에 대한 인간적이고 온당한 답, 주어진 삶을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사는 길을 찾고자 하는 보통 사람의 “자기 탐구”로 사상가, 철학자가 된 최초의 사람이다. 내란으로 분열된 나라에서 중재자로, 보르도의 시장으로 일했지만, 공적 생활에 염증을 느껴 서른여덟 살에 은퇴하여 ‘자기만의 방’으로 물러났고, 왕이 하사하는 은전을 거절하고, 억지로 시장직을 맡았으며, 사적 삶의 문제로도 벅찬 사람으로서, 공적인 일에 ‘손’과 ‘어깨’까지는 빌려줄 수 있어도 그 일을 ‘간과 폐’에 담지는 않겠다고 공언한 사람이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면서, 유대인 핍박과 신대륙에서 저지른 유럽인들의 잔인한 행위를 큰 소리로 비판한 유일한 문인이요, 농부를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삶의 교훈을 얻은 사람, 그가 읽고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여기 20여 년 동안 써 내려간 『에세』에서 그의 시대만큼 혼란스런 시대를 사는 21세기 독자에게 들려준다.

"미셸 드 몽테뉴"의 다른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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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권행 옮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대학원에서 ‘몽테뉴와 신세계’를 주제로 석사학위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17세기 프랑스 소설’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김지하 시집 『화개(花開)』를 샤를 줄리에와 함께 프랑스어로, 애덤 펜스타인의 『파블로 네루다』를 김현균과 함께 우리말로 옮겼으며, 「몽테뉴와 정치의 인간화」, 「몽테뉴의 독자와 자유인의 공동체」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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