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정재율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2년 6월 7일 | ISBN 978-89-374-0918-9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84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슬픔이 머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고
사랑을 볼 수 있도록 창을 닦아 주는,
아직 부서지지 않은 영혼들을 위한
약하고 튼튼한 마음의 작은 집

편집자 리뷰

2019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정재율의 첫 번째 시집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가 민음의 시 298번으로 출간되었다. 등단 이후 섬세하고 투명한 ‘마음’을 닮은 시편들로 꾸준한 주목을 받아 왔던 정재율 시인의 작품들이 시집이라는 ‘몸’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마음을 담은 이 한 권의 몸은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니고, 흔쾌히 산뜻하지만 한없이 가볍지 않으며, 불현듯 슬프지만 곱씹을수록 용감하다. 시인의 시선은 눈앞에 없는 사람에게 가닿고, 시인의 시간은 지나갔거나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오간다. 정재율은 어린아이였던 시절로 돌아가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 버린 아이들을 불러 모아 더 이상 그들의 영혼이 부서지지 않도록 따뜻하고 연약한 집에서 머물게 한다. 가끔 그 집에 정재율이 홀로 남을 때면 이제는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온다. 떠나 버린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 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도록 시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의 말을 받아 적는다. 모든 혼자였던 이들과 살고 싶던 이들에게 “우리는 서로 닮았다”고 말해 주는 시인. 작별하기 위해 초대하고 사랑하기 위해 잘 우는 시. 정재율이 지은 마음의 집으로 들어서면 그런 것들을 만나게 된다.


 

■함께 울기 위해 지은 집

숲이 나무를 흘리고 다녔다. 나는 그것을 주워 집을 만들었는데 이 집은 영원히 타오르지 않을 거야, 내가 말했다.
-「축복받은 집―숲」에서

정재율은 부지런히 자리를 만든다. 작은 토끼가 들어와 편히 쉬도록 산속 오두막을 지키는 노래의 주인처럼, 이곳에 오고 싶은 이들이 언제든 올 수 있고 이곳에서 가벼워진 사람들이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그곳에서 시인은 가장 인내심이 많고 가장 관찰력이 뛰어난 집 주인이 된다. 마지막까지 그 집에 와야 할 사람들의 기척을 기다리며, 온 감각을 곤두세워 그 신호들을 수신한다. “사람 떨어지는 소리”(「물탱크」)를 들으려 귀를 기울이고, “생각보다 많게/ 숟가락을 더 놓고/ 준비한 찻잔을 꺼”(「어떤 향은 너무 강렬해서 오래 기억에 남게 되는데」)낸다. 담담해 보이는 이 과정은 실은 정재율 시의 화자들의 꿋꿋하고 아름다운 노력에 의해 가능해지는데, 이들이 거듭 다짐하는 것은 “잘 우는 사람이 되고 싶”(「너무 열심히 달려서」)다는 마음이다. 이들은 확신보다는 소망으로, 이미 그런 사람이 된 영웅처럼 굴지 않고 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아이처럼 바랄 뿐이지만, 그 약하고 어린 기도는 떠난 사람들과 주파수를 맞추기에 충분하다. 잘 우는 사람은 슬픈 사람이고, 간혹 “둥둥 떠다니는 마음 같은 건/ 다 가라앉아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생각하게 되지만 그는 함께 우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모두 한꺼번에 슬픔을 나누면/ 그건 그거대로 슬프지 않”(「축복받은 집―레밍」)다는 믿음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워지며 되살아나는 사랑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라는 물음에 나는 물을 담듯이 두 속을 모아 내밀어 보여 주었다
-「영화와 해변」에서

정재율의 시에서는 고통받고 외롭던 이들이 미약한 목소리로 되살아나 속삭인다. “한여름이 오기 전에 시코쿠에 가고 싶어”(「매미 소리와 빗소리와 망치 소리가 들리는 여름」)라고 말하는 목소리, “같이 걷고 싶어서요”(「현장 보존선」)라고 말하는 목소리. 정재율의 화자는 시코쿠에 가고 싶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같이 걷고 싶다는 말에 함께 걷기 시작한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이들에게 몸과 대답을 빌려준다. 목소리들이 서로 투닥거릴 때는 아주 다정하게, “너희에게 내 만화책을 몽땅 나눠 줄게 그러니 싸우지 마”(「축일」) 하고 달랜다. 정재율의 화자들은 상대방을 빈틈없이 끌어안기 위해 자신을 비운다. 자신의 얼굴이 비치지 않는 유리창에 목소리만 남은 “죽은 생명체들”의 모습을 “붓과 물감으로/ 더 자세하게 그”(「사랑만 남은 사랑 시」)린다. 자신을 지우고 흐릿해져 가는 이의 얼굴을 되살리는 일. 정재율이 보여 주는 기억과 재생과 대화의 시도는 ‘나를 비우는 일’이자 흰 종이만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일이다. 정재율 시의 화자가 보내는 편지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사랑만 남은 사랑 시」)라고만 쓰여 있고, 보내는 이의 이름은 없다. 사랑을 보내지만 자신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오로지 받는 사람을 위하는 편지를 완성한다. 자신의 이름이 놓일 자리를 지우며 그곳까지 마음으로 채워 둔다. 이 시집을 받아든 이들이 알 수 있듯, 편지에 가득 담긴 것은 마음, 보이지 않는 자리의 이름은 사랑이다.


■본문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죽기 전 무엇을 하고 싶냐고 내게 물었다

마중을 나갈 거야

(……)

만약 천국에 갔는데
내가 나빠지면 어떡하지 한참을 생각했다
-「고해 성사」에서

문지방을 밟으면 귀신이 나온대 언니야
조심해

나는 놀라지 않았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적지 않아도
누군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약한 세계」에서

자전거를 처음 탔을 때처럼 멀리 더 멀리 가서
잘 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

너무 열심히 달려서 작별해야 하는 것들과 제대로 작별하지 못했는데 비는 계속 내렸으면 좋겠어
-「너무 열심히 달려서」에서

지구본에 스티커를 붙인다
그와 내가 가고 싶은 곳은 하나도 겹치지 않고
나는 태풍이 오기 전
그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어 준다

바깥에는 수거되지 않은 마음들이
인간보다 많다
-「온다는 믿음」에서


 

■추천의 말

정재율의 시를 읽으면 한 손에 물뿌리개를 들고 슬픔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떠오른다. 슬픔아, 물을 줄게. 잘 자라길 바라. 시인은 물을 주며 잘 보살펴야 하는 슬픔이 있다는 걸 안다. 그는 식물 같은 슬픔에게 햇빛을 주고 어둠도 준다. 흙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고 화분 받침에 고인 물은 받아서 버린다. 그리고 슬픔이 말라 바스라지기 전에 잊지 않고 물뿌리개를 들고 다가간다. 슬픔은 충분히 자라 나무가 되고 숲이 되어 서늘한 그늘을 제공한다. “물을 주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최후의 빛」)는 그의 고백은 진심일 것이다. 시집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는 ‘슬픔에게 물 주기’의 다른 말이 아닐까.
-문보영(시인)

목차

1부 작은 유리알 파편처럼
물탱크 13
투명한 집 14
개기일식 17
축복받은 집 — 숲 18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20
빛을 내는 독처럼 23
최후의 빛 26
가정 예배 28
매미 소리와 빗소리와 망치 소리가 들리는 여름 30
현장 보존선 32
줄눈 35
물고기의 마음 38
사랑만 남은 사랑 시 41

2부 사랑했던 것을 조금 남기는 기분으로
축일 47
라스 우바스(Las uvas) 50
축복받은 집 — 레밍 52
끝과 시작 54
0 56
종합병원 60
홀 62
레몬과 회개 65
프랑스 영화처럼 68
시네마 천국 71
영화와 해변 74
최초의 빛 76
예배당 78

3부 잘 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
고해성사 83
여름은 온통 내가 사랑한 바깥이었다 86
선이 맞는 않는 91
미약한 세계 94
감자보다 고구마를 좋아해 96
어떤 향은 너무 강렬해서 오래 기억에 남게 되는데 99
굴뚝 집 102
최초의 잼 104
서교동 사거리 107
너무 열심히 달려서 108
공 110
축복받은 집 112
로즈메리 114
여름 일기 117
사슴의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120

4부 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서
밤 123
가지는 착하다 125
롤러코스터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128
생활 132
초판본 시집 134
입석 136
선샤인 호텔 140
부표 142
온다는 믿음 145
라인 크로스 148
달리고 달려도 바뀌는 건 없고 여전히 날씨는 제멋대로입니다 152

5부 진심으로 비춰 보면 진심으로 갈 수 있다 믿었다
수영모 157

작품 해설–김보경(문학평론가)
멜랑콜리 페이션시 158

추천의 말–문보영(시인)
슬픔의 정원사 175

작가 소개

정재율

1994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19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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