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도서목록 | 보도자료 게시판 프린트 | 읽기도구 닫기

모피방


첨부파일


서지 정보

전석순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2년 5월 20일

ISBN: 978-89-374-4287-2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5x205 · 308쪽

가격: 13,000원

분야 한국 문학, 한국문학 단행본


책소개

“아내가 방을 비우는 동안

너는 아버지가 떠난 세탁소를 비워야 했다.”

삶이 자꾸만 허술한 테두리만 남아도

가족의 얼굴이 낯설고 희미하게 떠올라도

나를 둘러싼 것들이 전부 사라지지 않도록

힘을 빼며 버티기, 휘청이며 균형을 잡기


목차

모피방 7

사라지다 43

때아닌 꽃 79

달걀 113

수납의 기초 149

회전의자 183

벨롱 217

전망대 253

작가의 말 285

작품 해설

빛과 그림자의 세계_ 임정균(문학평론가) 290


편집자 리뷰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해, 2011년 『철수사용설명서』로 제11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소설가 전석순의 첫 번째 소설집 『모피방』이 출간되었다. 제목인 ‘모피방’은 한때 중국에서 유행했던 인테리어 방식으로, 내부에 기본 골조 외에 어떤 다른 옵션도 없는 방을 뜻한다. 이 방은 기본적인 인테리어가 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화장실이나 부엌 등 기능이 명확한 곳 역시 정해져 있지 않아 세입자의 결정에 따라 직접 배관이나 수도 공사를 해야 한다. 애초의 의도는 리모델링이 필요 없이 처음부터 취향대로 인테리어를 할 수 있도록 비워 둔 방이었으나,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주로 소득이 낮은 이들이 이곳을 찾게 되었다. 취향대로 인테리어를 할 수 없는 이들이, 변기도 수도도 놓여 있지 않은 텅 빈 방에 들어가 지내게 되는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과 무한한 갈팡질팡의 대명사처럼 보이는 모피방이라는 공간의 방식. 전석순의 소설에는 그 방식을 닮아 눈이 부시게 하얗기만 한 날들 앞에서 알맞은 자리를 찾으려는 이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자리는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의해,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지고 만 사회 재난에 의해 휘청이고 무너지거나 사라진다. 작가는 막막한 삶의 소용돌이 앞에 조용히 서서 가만히 손가락을 꼽아 보는 인물들을 그려 낸다. 자신에게 닥친 일들이 자신의 잘못인지, 슬퍼해도 괜찮은지,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같은 것들을 생각하는 이들. 전석순의 인물들은 눈이 멀 듯한, 거리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백색의 고통 속에서 천천히 과거를 되짚어 보려고, 미래를 가늠해 보려고 애쓴다. 오래 서 있다 보면 원근감과 방향감을 잃을 듯한 평면의 날들이 지속되어도 입체의 생을 살기 위해, 질감과 색감을 찾기 위해 다시 자세를 잡는다. 자신이 걸어온 거리와 걸어갈 방향을 찾으려 노력하는 이들이 『모피방』에는 있다. 휘청거릴지언정 균형을 잡고 포기할지언정 버텨내는 인물들은 소설을 읽는 우리가 삶에서 백색 공간을 마주했을 때 각자의 방향 잡기를 도와줄 것이다. 우리는 이 수줍은 도움을 받아 모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갈 것이다.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 자리 잡기
작가는 오랜 시간을 견뎌 왔으나 이제는 사라질 일을 앞둔 과거의 공간과 예비가 불가능하고 지속이 불안정한 현재의 공간을 나란히 놓는다. 수록작 「회전의자」는 고향에서 물난리가 발생해 손에 잡히는 것만 건져 임시 대피소에 머무는 어머니와 그곳을 떠나 홀로 자신의 좁은 공간을 꾸려 가야 하는 딸의 통화로 시작한다. 젖지 않은 곳이 없고 아무리 기다려도 마르지 않는 축축한 마을과 금세 눈알이 뻑뻑해지고 흘린 눈물도 흔적 없이 메말라 버리는 건조한 자취방이 나란히 놓인다. 표제작인 「모피방」에는 ‘너’의 부부가 곧 입주하게 될, 아직 기능도 역할도 채워지지 않는 백색의 새집과 ‘너’의 아버지가 평생 동안 운영해 온 빽빽하게 걸린 옷과 세탁 기계들로 가득 찬 낡은 세탁소가 나란히 등장한다. 화자는 자신이 속해 있었고 속하고 있는 두 세계를 오가며 축축함과 버석거림 사이에 선 자신의 삶들을 생각한다. 두 세계 사이에 선 인물들의 마음은 약하지만 결코 작지 않다. 자신이 담겼던 곳과 담길 곳을 생각하는 마음은 커다란 존재감으로 두 세계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비록 사라질 세계와 미정인 세계 사이에 웅크리듯 자리를 잡았으나, 작가가 그리는 인물들은 휘청이기만 하지 않는다. 선 자리에 언젠가 단단히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울상처럼 보이지 않도록” 웃어 보려는 의지를 심어 둔다.


 

■결국 하나가 아닌 우리의 자리
전석순이 그리고자 하는 서로 다른 세계는 비단 보금자리뿐만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관계 속에서 우리의 자리에 적힌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 단일하지 않은지에 대해서 얘기한다. 수록작 「수납의 기초」의 아버지는 철거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로,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 이후 해고된 실직자다.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피해자인 동시에 그로 인한 경제난을 함께 짊어져야 하는 가족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지 않는 무심한 아버지이자 남편이기도 하다. 수록작 「달걀」의 화자 역시 복잡다단한 상황 속에서 거듭 자리가 바뀐다. 어느 날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는 화자의 아이가 학교 폭력을 저질렀다고 알린다. 화자는 가해자의 어머니인 동시에 장사를 하던 상가 건물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로 다친 남편을 둔 피해자의 아내다. 상가에서 알고 지내는 상인들 사이에서 역시 그녀는 추모비 건립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의 격렬한 차이 그 한가운데 있다. 화재 사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과 털어 버릴 것을 털어 버리고 다시 상가로 사람들이 모였으면 하는 마음 사이에. 작가는 함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관계의 자리에 대해 모노톤의 색채를 입히고 조용한 내레이션을 얹어 보여 준다. 선명한 색채가 아니어서 유심히 들여다봐야 하고, 작은 목소리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서게 될 하나가 아닌 자리다.


 

■본문에서

집은 표백제를 듬뿍 넣고 밤새 삶은 듯 희기만 했다. 아내에게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비어 있을 줄은 몰랐다. 문조차 없어 전체가 트여 있었다. 베란다로 나가는 곳에도 문은 없었다. 밖을 내다보면 누가 등을 떠밀 것처럼 어질했다. 5층이라고 했는지 6층이라고 했는지 헛갈렸다. 어쩐지 자꾸 높아지는 것 같았다.
아내는 너를 밀치고 성큼성큼 나섰다. 그러더니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줄자로 크기를 쟀다. 세탁소에 왔을 때 “이제 이건 필요 없겠네요?” 하면서 들고 나온 줄자였다.
-「모피방」, 24쪽

“가족사진도 찍어 둬. 가족도 사라질지 몰라.”
선배 목소리는 터널 안에서 제멋대로 퍼졌다. 뒤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옆에서 튀어나왔다. 어느 순간 머리 위에서 물방울처럼 떨어졌다.
“너무 늦었어요.”
대답은 어둠에 파묻혔다. 터널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게 시원찮아 얼마나 들어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 출구는 손에 잡힐 듯한데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선배를 따라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뒤에서 선배가 따라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울퉁불퉁한 벽과 뺨에 닿는 서늘함뿐이었다. 사라질 것을 얘기하는 선배 목소리마저 어딘가로 계속 흡수됐다. 그때마다 억지로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지다」, 73쪽

책에 따르면 가끔 찾는 공구는 맨 아래 칸에, 자주 쓰는 조리 도구는 손을 뻗으면 닿을 자리에 놓아야 했다. 그래야 애써 정리해 놓은 물건이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초보자라면 알아보기 쉽게 투명한 수납함이나 구멍이 뚫린 바구니를 이용하는 게 좋다고 덧붙여져 있었다. 이름표를 붙이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끝내 수납이 안 되는 물건은 분명 필요 없는 것일 테니 과감히 버리라고 조언했다. 수납의 기초는 버리기에 있었다. 그다음 단락부터 1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는 물건은 미련 없이 내놓으라는 문장이 지나치다 싶은 정도로 자주 반복되었다. ‘버리는 건 실패한 과거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나은 미래를 위한 행동이다.’나 ‘들이는 것보다 포기가 삶을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해 준다.’는 문장에 이르렀을 땐 책 제목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수납의 기초」, 179~180쪽

귀신의 집 안 곳곳에는 포기하고 싶을 때 누르는 초록색 버튼이 있었다. 버튼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어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대기하던 담당자가 튀어나와 가장 가까운 출구로 안내했다. 일단 귀신의 집에 들어서면 중도에 포기해도 환불은 없었다. 그런데도 처음에는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억울하다거나 돈이 아깝다는 건의가 빗발쳤다. 담당자는 강시가 덜 기괴해 보이도록 분장하거나 효과음을 낮추고 조명을 약간 밝히는 정도로 프로그램을 수정할 예정이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쳤다.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소문이 돌면서 귀신의 집이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전망대」, 260~261쪽


 

■추천의 글
휘청이는 세계에서 이야기를 쓰다 보면, 항의에 가까운 물음표와 선언으로 수렴하는 느낌표를 남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곤 한다. 그럴 때 전석순 소설가를 떠올린다. 쇠락을 묘사할 때도 동정 없이, 눈물로 가득 차서도 오열 없이, 외부에서 허물어뜨려도 헐리지 않는 내면에 대해 온점 다음 온점으로 점묘화를 그려 나가는 신뢰할 수 있는 목소리를. 중심에서 주변으로 시야를 옮기는 그만의 속도에 맞추어, 다급해졌던 호흡이 다시 편안해진다. 나란히 누운 사람의 몸이 닿지 않아 멀게만 느껴져도, 태어나 자란 소도시의 표정이 점점 변질되어도, 재난 다음 재난이 회복의 막간을 주지 않고 찾아와도 슬픔이 공감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다음이 있다. 지극한 방식으로 슬퍼하는 전석순이 걷고, 머물고, 뒤돌아보며 그다음 이야기를 써 주길 기다린다.
―정세랑(소설가)


 

■작가의 말
세탁소가 허물어진 자리는 어림보다 훨씬 옹색했다. 이 안에 크고 투박했던 탈수기와 드라이클리닝 기계가, 거기에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재봉틀에 다리미판까지 오밀조밀하게 들어앉아 있었다는 게 때늦은 농담 같았다. 수십 년 동안 켜켜이 쌓인 이야기까지도.
세탁소 안부를 묻듯 한참 서성거렸다. 사방이 트여 있으니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쯤 금고와 달력이 있던 듯했고 맞은편에 와이셔츠를 걸어 뒀던 것도 같았다. 건너편에 은행나무를 보자 겨우 방이 있던 자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원래는 방이 아니었는데 마땅한 이름이 없어 부르다 보니 어느 틈에 방이 되었다.


작가 소개

--

전석순

 1983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회전의자」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2011년 장편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전석순"의 다른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