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 파키스탄

대립의 역사

조길태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9년 1월 23일 | ISBN 978-89-374-2652-0

패키지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498쪽 | 가격 28,000원

책소개

약 50년간의 역사를 가진 신생국가 파키스탄!
국내 최초의 파키스탄 입문서

인도사 연구에만 35년간 전념해 온 역사학자 조길태 교수가 인도 아대륙의 신생국가 파키스탄의 탄생 역사를 고찰했다. 저자는 수천 년 간 역사적 전통을 함께 이어 온 인도 아대륙이 영국의 오랜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힌두의 인도와 무슬림의 파키스탄으로 분립하고, 파키스탄은 다시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로 분립되고 나서도 지금도 카슈미르 지역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과정을 면밀히 살피면서 비극적인 상황으로 이끌어간 인도 정치가들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서술한다. 어느 한쪽으로도 편향되지 않은 객관적이고 정확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역사 서술로 이루어진 이 책은 인도 아대륙의 세 나라의 분쟁이 서로에게 끼친 영향과 그 결과, 그리고 이에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조심스러운 해결책까지 제시함으로써 남북이 대립하고 있는 우리의 역사와 상황을 돌이켜보게 하는 한편 국내 최초의 파키스탄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

편집자 리뷰

파키스탄 탄생의 서막
–무슬림 민족주의와 영국의 분리 통치 정책

인도의 무슬림 민족주의 운동에 있어서 19세기 후반의 무슬림 지도자는 사예드 아메드 칸이었고, 20세기 전반의 지도자는 모하메드 알리 진나였다. 진나는 후일 파키스탄의 창설자이지만, 사예드는 반힌두주의를 내세우며 무슬림 민족주의를 주장했다. 사예드는 무슬림 왕조인 무굴 제국이 멸망하고 영국이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현실에서 무슬림의 이익을 추구기 위해, 힌두에 비해 관직 등용에서 뒤처진 무슬림의 영어 교육을 강화하고, 무슬림에 유리한 분리 선거제의 특혜를 영국 정부로부터 얻어냈다. 그러나 영국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인도에는 상충하는 두 개의 민족 공동체, 즉 힌두와 무슬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며 이는 무슬림의 종교에 의한 분열 운동을 조장시켰다. 그리고 인도에서 파키스탄을 분립시키는 무슬림연맹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인도 아대륙의 비극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립은 피할 수 없었는가

2차 세계 대전의 종식과 함께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영광스러운 독립을 쟁취한다. 그러나 인도를 구성하고 있던 두 개의 이질적인 종교, 힌두와 무슬림이 각각 종파적 민족주의에 몰입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립되는 비극으로 나아간다.
힌두 측의 입장에서는 진나가 인도 국민의 소수 민족인 무슬림을 대표하면서도 힌두와 동등한 권리를 요구한 것은 민주주의에 어긋나며, 그의 지나친 고집이 분립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무슬림 측으로서는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가 강자의 입장에서 소수 민족인 무슬림에게 양보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했다면 분립의 파국은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힌두의 양보 없는 상황에서 진나는 무슬림의 권리를 어느 정도 보장해 주었던 영국인이 물러갈 경우, 인도가 의회 정치 아래서 통일을 유지한다면 소수인 무슬림은 힌두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진나는 무슬림 다수 지역을 분리하여 따로 독립 국가의 건설을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근대 세계사의 주류를 이루었던 민족주의의 위력에 편승하였다. 진나는 민족주의에 호소하였고 인도 무슬림이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함으로써 파키스탄은 분립되었다.
영국 정부가 인도에서 정치적 급진주의를 억제하고, 종파적 균형을 가시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제국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하여 ‘분리 통치’ 정책을 도모한 것도 분립에 영향을 주었다. 영국의 분리 통치 정책은 인도에서 상대적 약자인 무슬림을 자극하였다. 무슬림연맹은 분립이야말로 내란에 대처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였다. 더욱이 북서부의 무슬림 다수 지역들이 인접해 있는 것이 무슬림으로 하여금 그들의 분리된 지역을 주장하는 열쇠가 되었다.
원래 진나는 합리적인 의회주의자로서, 또 힌두·무슬림 화해의 주역으로서 정치생활을 시작하였지만 힌두 측의 배신행위에 실망하고, 일단 파키스탄 분립 운동에 접어들자 돌아보지 않고 오직 이 목표만을 위해 돌진하였다. 네루를 포함한 인도 정치가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국민회의를 위협할 수 있을 만큼 막강했던 마하트마 간디조차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욕을 막지 못하였다. 결국 인도·파키스탄의 분립은 정치적 지도자들에 의해 종파적 민족주의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제시되어 수용된 것이었다.

카슈미르에서의 힌두·이슬람의 전쟁과 방글라데시의 분립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립 후 세 번의 전쟁을 치렀는데 두 번이 카슈미르 문제가 발단이 되었고 나머지 한 번은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이었다. 카슈미르는 무슬림이 다수이므로 파키스탄에 속해야 했으나 네루를 지도자로 한 새로운 인도는 힌두만의 편협한 종교 국가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카슈미르를 인도에 편입해야 했다.
카슈미르의 점유권을 놓고 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한 때부터 유엔은 카슈미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중재자로서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은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인도·파키스탄의 정치적 군사적 정세를 오판한 데서 비롯되었다. 지체하다가는 앞으로 인도를 제압하기 어렵다는 초조감에서 파키스탄은 전쟁을 도발하였으나 인도·파키스탄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소득 없는 전쟁이었다. 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은 종교적 결속력만으로는 국가가 성립할 수 없음을 여실히 드러낸 전쟁이었다. 동서 파키스탄이 커다란 인도를 사이에 두고 하나의 국가로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결속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파키스탄이 서파키스탄으로부터 경제적 수탈을 당하자 벵골 민족주의가 일어났다. 동파키스탄 문제가 터진 것은 좌우에 적대 세력을 두고 있던 인도에게는 위협적인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동파키스탄을 도와 독립시키면 방글라데시(동파키스탄)는 인도의 새로운 우방이 되기 때문이었다. 인도로 밀려오는 엄청난 피난민을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였는데 이러한 부담을 도와줄 수 있었던 미국이 냉담한 태도로 파키스탄 편을 들자 인도는 전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강대국들이 망설이는 관망 속에서 인도는 속전속결로 파키스탄을 제압하고 방글라데시를 탄생시켰다.

종파적 민족주의로 인한 분쟁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점하고 있고, 지역적으로는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전체의 크기만큼이나 광대한 인도 아대륙이 불행하게도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립한 것은 민족주의의 위력 때문이었다. 영국의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독립한 것이 인도 민족주의의 승리였다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립하고 다시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함으로써 아대륙이 해체된 것도 종파적 민족주의의 결과였다.
오늘날 민족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자행되는 국지적 분쟁은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절박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인종적 종파적 분쟁 지역 가운데서 인도 아대륙의 불안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큰 잠재적인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핵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지역에서의 반목과 충돌은 쌍방의 파멸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가공할 재난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인도 아대륙에서의 반목은 단순한 인종적 종파적 분규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문명의 충돌’, 즉 힌두권과 이슬람권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목차

책머리에
서언
1장 무슬림 민족주의와 영국의 분리 통치 정책
사예드 아메드 칸과 무슬림 민족주의 운동
사예드 아메드 칸의 영국통치에 대한 신념
사예드 아메드 칸과 알리가르 운동
대의 정치에 대한 무슬림의 반응
심라 대표단과 분리선거제
맺음말

2장 진나와 파키스탄 분립 운동
진나와 힌두·무슬림의 화해 노력
킬라파트 운동과 힌두·무슬림의 연합 그리고 반목
지방 연립 정부 구성의 실패와 분립 운동
두 민족 이론과 파키스탄 결의
맺음말

3장 인도·파키스탄 분립 과정과 정치 지도자들의 태도
1935년의 인도통치법과 인도 지도자들의 반응
라호르 선언과 그 반응
크립스 사절단의 제의에 대한 반응
정권이양의 제의에 대한 반응
인도·파키스탄의 분립으로
맺음말

4장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카슈미르의 지정학적 중요성
카슈미르 민족주의 운동
영국의 조급한 정권 이양
제1차 카슈미르 전쟁
유엔의 역할
맺음말

5장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인도가 카슈미르에 집착한 이유
제2차 카슈미르 전쟁
종전 노력과 타슈켄트 선언
맺음말 3

6장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과 방글라데시의 탄생
동서 파키스탄의 이질성과 경제적 불균형
아와미 연맹과 ‘6개 조’ 개혁
선거, 협상 그리고 탄압
인도와 강대국들의 반응
맺음말

7장 카슈미르의 자발적 폭동과 카르길 지역의 충돌
압둘라의 통치
자발적인 폭동(intifada)의 전개
카르길 지역의 충돌
맺음말

결론: 인도·파키스탄의 분립과 분쟁에 대한 소회
연표
찾아보기

작가 소개

조길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인도 델리대학교 대학원에 유학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교수를 지냈다.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과 강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거쳐 아주대학교 사학 전공 교수로서 인문대학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대학교 명예교수로서 아주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인도사』, 『인도 민족주의 운동사』, 『영국의 인도 통치정책』, 『인도와 파키스탄 —그 대립의 역사』, 『세계문화사』(공저), 『개관 동양사』(공저), 『인도의 오늘』(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서양 문명의 제 문제』(공역), 『서양사 신론』(공역), 『봉건제도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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