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처럼

김경욱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1년 12월 31일 | ISBN 978-89-374-2060-3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3x196 · 412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개구리 왕자와 결혼한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평범하게 아픈 어른들의 조용히 애쓰는 연애
‘소설의 왕’ 김경욱이 쓰는
마법 없는 현실, 동화 같은 사랑

편집자 리뷰

소설을 세공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한국문학의 스타일리스트, 작가 김경욱의 장편소설 『동화처럼』이 오늘의 작가 총서 39번으로 출간되었다. 김경욱이 써낸 작품들은 한국일보 문학상, 동인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걸출한 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적 재미와 문학성을 입증 받아 왔다. 11년 만에 다시 펴내는 소설 『동화처럼』은 2010년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던 작품으로, 2021년의 끝자락에 새로운 색과 모양을 입고 다시 한 번 오늘의 독자 앞에 선다. 김경욱이 그리는 로맨스, 연애부터 결혼으로 이어는 보통 사람들의 대서사시는 그 사건과 주인공들을 미화(美化)하지 않고 동화(童話)한다. 작가는 동화 속에 숨은 코드들로 세상에 숨어 있는 진실들을 읽어 낸다. 그리고 다 큰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더듬더듬 삶을 살아가는, 상처입고 우왕좌왕하는 어른들에게, 그들의 속 깊은 곳에 사는 아직 자라지 못한 ‘어른 아이’들에게 나지막이 그 진실을 들려준다.


 

동화 속에 숨은 삶의 진실,
삶 속에 숨은 동화적 순간,
그 모든 것을 담아내는 소설이라는 마법

‘현실 로맨스’를 다루는 『동화처럼』에 담긴 사랑과 삶에 대한 진실은 대체로 낭만적이지 않고 아름다운 순간은 희박하다. 그러나 동시에 어린아이가 읽는 이야기로 알고 있는 ‘동화’ 역시, 그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상상하게 되는 포근하고 달콤한 이미지에 비해 꽤 슬프고 가혹한 이야기들을 다룬다는 사실도 생각해 봄 직하다. 이를테면 「성냥팔이 소녀」에 맛있는 칠면조와 따뜻한 촛불과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장면들이 나오지만 동시에 추운 겨울 몸을 녹이려 밤새 성냥을 긋다가 숨을 거두고 마는 소녀의 모습 또한 나오는 것처럼. 동화는 생각보다 언제나 아름답지 않으며,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조금은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 왕자가 가시덤불을 지나고, 공주가 계모의 괴롭힘을 견디는 동화 속 장면들은 현실의 우리가 하루하루 맞닥뜨리고 지나가는 일상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김경욱이 들려주는 ‘보통 어른의 현실 연애’ 이야기는 이러한 동화와 현실의 양면을 모두 담고 있다. 현실의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까? 동화처럼 영원히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마법이 현실에도 있을까? 독자들이 묻는다면 작가는 고개를 가로젓지도 끄덕이지도 않은 채 그저 이 사람들을 보라고 눈짓 할 것 같다. 장미와 명제. 사랑과 삶이라는 동화의 주인공들.

『동화처럼』의 주인공인 ‘장미’와 ‘명제’는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서로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진 이후에는 연애가 주는 경이로움을 만끽하지만, 결혼을 결심한 순간부터 사랑 아닌 다른 이유들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동화의 운명은 현실의 우연에 가깝고, 동화 속 공주와 왕자가 첫눈에 서로를 발견해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결말로 단번에 건너뛰는 데 비해 현실의 우리는 결코 어떤 시간을 건너뛸 수 없다. 동화의 결말이자 연인의 목적인 ‘운명의 상대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일’은 현실에서 자꾸만 방해받는다. 그 방해 요인의 이름들은 보편적이고도 전형적이다. IMF, 실직, 질투, 외도, 권태, 자존심, 침묵. 이때 작가는 주인공들에게 주어지는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요정이 뿌려 주는 마법 가루 같은 명쾌한 방법을 쓰지 않는다. 다만 평범한 공주와 왕자가 낯선 이와의 관계를 살아 내는 일에 대해 쓴다. 사랑을 위한 사소한 모험과 지루한 도전에 대해,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리는 일상의 전투에 대해.

김경욱의 인물들은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겪어 낸다. 우연에 기꺼이 속으며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운명이라고 믿으며, 운명이 사랑을 방해할 때에도 거듭 다시 사랑의 손을 잡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변한다. 아이처럼 작은 마음인 채 머무르지 않고, 깨뜨리고 부수며 조금씩 마음을 자라게 한다. 누군가가 뿌려 주는 마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변하게 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 받으며, 또 상처 주며. 소설은 동화 속에서 사용되는 코드를 현실의 순간들과 겹쳐 둠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각자가 지닌 보통의 아픔들을 꺼낼 수 있게 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명의 타인, 그 두 편의 삶을 한 편의 동화로 읽는 일. 그것이 바로 『동화처럼』이라는 소설이고, 작가가 서툰 어른들에게 내미는 작은 위로다. 김경욱이 마법 없는 현실에 소설이라는 장르로 건네는 마법 같은 순간은 아마도 이런 것일 테다. 소설을 통해 우리가 생에서 겪은 사랑과 상처의 순간들을 저마다의 이야기로서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것. 그 순간들이 만든 ‘나’라는 주인공을 이해하게 되는 것. 매순간의 선택 속에서 나만의 진실을 쌓아 가는 것이 우리의 삶임을 보다 더 소설로 보여 주는 것 말이다.


■본문에서

6년 만에 남자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장미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계좌를 새로 개설하면서 통장 사본 챙기는 걸 깜박해 다시 들르게 한 고객은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한다며 흥분했다. 삿대질에 욕설까지 감수해야 했다. 고객의 비난보다 제 실수가 어처구니없어 속상했다. 더구나 옆 창구에는 애인과 눈이 맞은 신참이 앉아 있었다. 그래서 더 속상했다. 눈물을 수습하기 위해 화장실에 가려던 참이었다. 하필 그때 남자가 창구 앞으로 다가왔다. 남자는 지나간 번호표를 내밀며 계좌를 만들어 달라 했다. 둥그스름한 얼굴, 새까만 눈썹, 꼬리가 살짝 처진 눈, 말끔한 피부. 선량하고 깔끔한 인상이었다.
-93쪽

공을 넘기는 방법의 단점은 상대의 결정을 초조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장미는 휴대전화를 수시로 체크했다. 첫째 날에는 들었다 놨다 했고 둘째 날에는 진동 소리만 들어도 깜짝 놀랐고 셋째 날에는 배터리가 닳지는 않았는지 거푸 확인했다. 그렇다고 남자의 연락을 간절히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후하게 봐도 세상을 뒤집을 그릇 같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기다림의 마력이란 오묘해서 그냥 기다리는 것과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뭔가를, 누군가를 기다리기 시작한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작당이라도 한 듯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07쪽

해 본 사람들은 안다. 결혼이라는 통과의례가 얼마나 복잡다단한가를. 이혼을 억제하는 것은 부부 클리닉도,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주위의 이목도 아닌 결혼이라는 제도의 번거로움이다. 보금자리를 물색하고 예식장을 예약하고 예물을 맞추고 예복을 고르고 웨딩 촬영을 하고 신혼여행을 준비하느라 명제는 녹초가 되었다. 가급적 간소하게 치르자고 여자와 뜻을 모았지만 빠뜨릴 수 없는 최소한의 것들만으로도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문제는 돈이었다.
-166쪽

성산포 입구에서 갈치조림을 먹었다. 여자가 고른 메뉴였다. 여자는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지만 명제는 깨작거리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배 안 고파?
—속이 안 좋아.
뱃멀미를 한 뒤로 내내 속이 쓰렸다. 마음이 더 불편했다. 여자가 뱃머리에 서정우와 나란히 서 있던 모습이 자꾸 어른거렸다. 명제는 궁금했다. 둘이 어떤 사이였는지. 정말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둘이 어디까지 갔는지. 캐묻지 않은 것은 거짓말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듣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은 어쩌면 진실인지 몰랐다.
-183쪽

—한서영 때문이야?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자들이 대개 그렇듯, 명제는 치명적인 말을 내뱉는 자신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순간 여자의 몸에서 새어 나오던 희미한 빛이 완전히 죽어 버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 같다는 여자의 말을 듣고서야 명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여자의 안에서 죽은 것은 명제였고 명제의 언어였다. 명제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여자는 밥이 탔다며 울상이 될 것이고 명제가 배고프다고 하면 여자는 비가 올 것 같다고 대꾸할 것이었다. 아집과 몰이해와 이기심이 모든 것을 죽였다.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것은 오직 침묵뿐이었다.
-341쪽


 

■작가의 말

사랑 앞에서라면 우리는 진지해진다. 심지어 비장해지기도 한다. 최후의 결전을 앞둔 병사처럼. 농담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농담을 던지지 못한다는 것은 혹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증거가 아닐까? 죽음의 경우처럼. 죽음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대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살아가거나 죽어 가거나 둘 중 하나이듯 사랑하고 있거나 사랑하지 않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뿐.
-초판 작가의 말

초판을 내고 11년 만에 개정판 교정지를 받아들었다. 한 문장 한 문장 들여다보고 있자니 정리하기도 그대로 두기도 애매한 오래된 앨범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부끄러움의 크기만큼 아련했고 아련함의 크기만큼 부끄러웠다. 사실 『동화처럼』의 시작점은 4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발표한 단편 「천년여왕」에서 나는 세상에 없는 가상의 소설을 몇 편 지어냈다. 작가가 되려는 주인공이 완전히 새롭다며 짜낸 스토리마다 이미 소리 소문 없이 존재한다는 설정이었으니. 같은 상대와 세 번 결혼하는 비현실적 이야기도 그때 탄생했다.
-개정판 작가의 말


 

■추천의 말

고독은 깨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깨는 것이다. 따라서 김경욱의 『동화처럼』은 한 번쯤 연애를 해 본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소설이 될 테고, 두세 번쯤 연애의 실패를 맛본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이란 나를 비우는 지경임을 경험해 본 자들에게는 애틋한 성장소설로 읽힐 것이다. 지독히 상처받은 만큼 자라는 아이처럼 열렬히 사랑하는 만큼 성장한다. 세상은 흉터만큼의 공간을 허락한다. 그것이 우리가 『동화처럼』을 연애성장소설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유정(문학평론가) / 작품 해설에서

목차

눈물의 여왕 7
침묵의 왕 14

1부
밤에 피는 장미 23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28
진실 게임의 불편한 진실 33
개구리 왕자는 백조를 타고 39
진짜 왕자를 가려내는 법 45
진짜 공주를 가려내는 법 50
눈의 여왕 57
엔트로피의 법칙 63
라푼첼이 잘린 머리카락을 받아들이기까지
겪는 심적 변화의 6단계 70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78

2부
복권이냐, 벼락이냐 87
카운슬러 마라의 수수께끼 93
테헤란로와 광화문 사이의 거리만큼 100
커피냐, 오렌지주스냐 106
개구리 왕자가 좋아했던 난쟁이 112
세상을 뒤집은 사나이 119
운명의 손은 차가워 125
세 개의 시험 131
완벽한 키스를 위해 필요한 것들 138
빨간 모자와 늑대 143
늑대와 빨간 모자 152
황금 벨트를 주고받을 때 오가는 말 159
머피의 결혼식 166

3부
제주도의 아침은 파랗다 175
제주도의 밤은 파랗다 181
귀가 아파서 187
욕조의 물이 식기 전에 챙겨야 할 것 193
욕조에 물을 채우기 전 확인해야 할 것 200
운명의 오프사이드 207
푸른 수염이 지하실에 감춰 둔 것 215
과거는 현재의 미래다 221
현재는 미래의 과거다 228
시간은 힘이 세지만 237
The more we try 245
사랑도 힘이 세다 253
눈물은 사랑의 씨앗 259

4부
개구리 왕자의 두 번째 아내 269
결혼식, 사랑의 자물쇠, 그리고 황금 개구리 276
침묵의 왕자냐, 눈물의 공주냐 284
굿바이, 명랑 290
장미전쟁 297
문제는 개구리 냄새가 아니야 305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개구리 왕자 311
개구리 왕자 또는 쇳대를 두른 하인리히 319
AGAIN 1998 326
넌 어느 별에서 왔니? 333
머나먼 눈물의 별 339
침묵의 여왕 346
눈물 공주와 침묵 왕자 354
인어 공주의 혈액형은? 362
마지막 수수께끼 371
동화처럼 378

작품해설|강유정(문학평론가) 386
어른들을 위한 연애 성장 테라피

개정판 작가의 말 403
초판 작가의 말 406

작가 소개

김경욱

1993년 중편소설 「아웃사이더」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장국영이 죽었다고?』 『위험한 독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 장편소설 『황금 사과』 『천년의 왕국』 『동화처럼』 『야구란 무엇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 『나라가 당신 것이니』, 중편소설 『거울 보는 남자』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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