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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년이 서 있다


첨부파일


서지 정보

허연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08년 10월 10일

ISBN: 978-89-374-0766-6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16쪽

가격: 12,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149

분야 민음의 시 149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2년 6월 30일 | 최종 업데이트 2012년 6월 30일 | ISBN 978-89-374-3545-4 | 가격 5,600원


책소개

나쁜 소년, 다시 시 앞에 서다
비루함과 소멸, 그 푸르스름한 허무의 시학

“누구와도 닮지 않았고, 그 어떤 유(類)도 아니며, 자기만의 공화국”을 가지고 “‘무의미의 의미’라는 두려우리만치 아름다운 미학을 창출”(문학평론가 故 황병하)하여 극찬을 받은 시인 허연이 『불온한 검은 피』 이후 13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로 돌아왔다. 그는 추함, 비루함, 소멸, 허무 등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지독하게 대면시키며 “불온한 검은 피”를 끊임없이 수혈한다. 이 시집에는 자신을 포함한 세상을 들여다보는 투사의 시선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다. 그 시선은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찌르고 들어가면서 시적인 깨달음을 얻게 한다. 그의 시는 말라비틀어진 현실을 직시하게 하면서도 거기 묘하게 고여 있는 생의 감로수를 발견케 한다.


목차

간밤에 추하다는 말을 들었다
도미
난분분하다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슬픈 빙하시대 1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커피를 쏟다
수천만 년 전
빛이 나를 지나가다
생태 보고서 2
슬픈 빙하시대 4
살은 굳었고 나는 상스럽다
슬픈 빙하시대 2
탑-비루한 여행
포를 떠 버린 시간
산을 넘는 여자
슬픈 빙하시대 5
태평성대
슬픈 빙하시대 3
세상 속으로
바다 위를 걷는 것들
바벨탑의 전설
어느 날
면벽
박수 소리
생태 보고서 1
서걱거리다
도시에서 꽃을 꺾다
나비의 항로
경계선의 나무들
검은 지층의 노래
경첩
등뼈로만 살기-지원의 얼굴
길바닥이다
더러운 주기
눈물이란 무엇인가 1
그 산을 내려오지 못했다
달리기
고산병
파이트 클럽
일요일
추운 나라에서 온 바이올리니스트
지층의 황혼
천국보다 낯선
우물 속에 갇힌 사랑
장마 또는 눈물
호숫가
오베르 성당

휴면기
엄마의 사랑
소도시
소립자
멸치
용달차 기사
생태 보고서 3
통증
추전역
지옥
신성한 모든 것은 세속적으로 된다
사내
사는 일
말로 할 수 없는 것

작품 해설/차창룡
시인, 반항, 직관, 푸른색


편집자 리뷰

■ 나쁜 소년의 성숙한 푸른 직관

오랫동안 시 앞에 가지 못했다. 예전만큼 사랑은 아프지 않았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비굴할 만큼 비굴해졌고, 오만할 만큼 오만해졌다.

(중략)

아무것도 아닌 시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며 시 앞에 섰다.
—「휴면기」 부분

나쁜 소년이 돌아왔다. 13년 만이다. 일간지 문화부 기자이기도 한 허연 시인은 낮에는 세상 한가운데서 상(常)스럽게 살다가, 밤이 되면 세상 한 귀퉁이에서 상(象)스럽게 시를 쓴다. 그렇게 상(常)스러운 삶을 상(象)스럽게 그려 낸  63편의 시가 여기 모여 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차창룡의 말처럼 “시인이란 일찍이 허무를 알아 버린 자들이고, 허무를 알았음에도 대책 없는 자들이고, 또 스스로 대책 없는 자라는 것을 아는 자들”이며, 허연은 생래적으로 바로 그 허무를 몸으로 깨달은 시인이다. “예전만큼 사랑은 아프지 않았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비굴할 만큼 비굴해졌고, 오만할 만큼 오만해졌다.” 바로 그가 침묵했던 이유다. “아무것도 아닌 시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며” 나쁜 소년은 “때 묻은 나이”, “죄와 어울리는 나이”(「슬픈 빙하시대 2)」가 되어 다시 시 앞에 섰다.
이전의 허연이 구원을 부정하고 세상에 대한 도전과 반항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자신을 포함한 세상을 들여다보는 투사의 시선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다. 그 시선은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찌르고 들어가면서 시적인 깨달음을 얻게 한다. 싫은 일의 절반쯤만 하는 것은 곧 좋은 일의 절반을 날려 버리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으며(「탑—비루한 여행」), 이 세상엔 결국 나 혼자만 외롭게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으며(「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좆도 아니게 된 것은 이미 좆도 아니었던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생태 보고서 1」).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너무나 처연하게 늘 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한두 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은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전문

표제작이기도 한 이 시는 이번 시집의 모든 시들을 요약하면서, 동시에 허연 시인의 지금까지의 삶을 요약한다. 푸른색은 “늙어서도 젊을 수 있”게 하는 색, 다시 말해 시적 직관으로 살게 하는 색이다. 그 “푸른 직관”으로 바라본 세상의 “푸른 기억”을 모아 이 한 권의 시집에 담은 것이다.

\”형 좀 추한 거 아시죠.\”
얼굴 도장 찍으러 간 게 잘못이었다. 나의 자세에는 간밤에 들은 단어가 남아 있었고 고양이의 자세에는 오래전 사바나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녀석이 한쪽 발을 살며시 들었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고. 나는 골목을 포기했고 몸을 돌렸다. 등 뒤에선 나직이 쓰레기봉투 찢는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와 나는 평범했다.

간밤에 추하다는 말을 들었다.
—「간밤에 추하다는 말을 들었다」 부분

난 때로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침묵하기도 한다. 따라서 나는 매우 실존적인 잡놈이다.
—「슬픈 빙하시대 4」 부분

굳은 채 남겨져 있는 살이 있다. 상스러웠다는 흔적. 살기 위해 모양을 포기한 곳. 유독 몸의 몇 군데 지나치게 상스러운 부분이 있다. 먹고 살려고 상스러워졌던 곳. 포기도 못했고 가꾸지도 못한 곳이 있다. 몸의 몇 군데

흉터라면 차라리 지나간 일이지만. 끝나지도 않은 진행형의 상스러움이 있다. 치열했으나 보여 주기 싫은 곳. 밥벌이와 동선이 그대로 남은 곳. 절색의 여인도 상스러움 앞에선 운다. 사투리로 운다. 살은 굳었고 나는 오늘 상스럽다.

사랑했었다. 상스럽게.
—「살은 굳었고 나는 상스럽다」 전문

그의 시는 이처럼 거침없고 솔직하다. 날것 그대로의 일상적인 언어로 이토록 가슴 찡한 서정성을 보여 준다. “럭비공 같은 비약, 문맥의 비예견적인 뒤틀기”로 표현되는 그의 개성적인 언어는 이번 시집에서도 여지 없이 드러난다.
이 시집에 실린 다섯 편의 연작시 ‘슬픈 빙하시대’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 이 시대는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는 시대(「슬픈 빙하시대 1」), 스스로 청춘을 보내고 세상의 온갖 때가 묻은 시대(「슬픈 빙하시대 2」), 사라진 역사를 망각해 버린 시대(「슬픈 빙하시대 3」), 돈 벌기 위해 아무도 진실하지 않은 시대(「슬픈 빙하시대 4」), 비루한 생에 집착하는 시대(「슬픈 빙하시대 5」)이다.
“쓰고 말한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는 곳/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는 기적이 하루 종일 일어난다는” 그 사막의 길을, 모래바람이 그의 발자국을 지울지라도, 그는 끊임없이 걸을 것이다. 이 슬픈 빙하시대에서 나쁜 소년의 불온한 검은 피는 여전히 뜨겁다.

■ 작품 해설 중에서

문득, 나는 깨닫는다, 시인이란 일찍이 허무를 알아 버린 자들이고, 허무를 알았음에도 대책 없는 자들이고, 또 스스로 대책 없는 자라는 것을 아는 자들임을. 허연은 몸(감각)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시인으로서 상당히 조숙한 편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세상이 허무하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은 시인이다. 허무 철학을 공부해서가 아니고, 도를 닦거나 기도를 통하거나 신의 계시에 의해 터득한 것이 아니라 허연은 거의 생래적으로, 아니 체험에 의해 세상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연 시의 열쇠어에 해당하는 시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푸른색’이다. 푸른색은 나이 든 허연을 젊은 허연으로, 나쁜 소년으로 살게 하는 색, 늙어서도 젊을 수 있게 하는 색, 다시 말하면 시적 직관으로 살게 하는 바로 그 색이다. 젊은 허연으로 돌아가 제법 나이 든 시인은 어느새 성숙한 나쁜 소년이 되었다. ‘나쁜 나이 든 소년의 성숙한 푸른 직관’, 허연 시의 새 출발을 요약하는 구절이다. 허연의 푸른색은 말라비틀어진 현실을 직시하게 하면서도 거기 묘하게 고여 있는 생의 감로수를 발견케 한다.
—차창룡(시인․문학평론가)
■ 추천의 말

시인 허 씨는 한강에서 사는 상어다. 가야 나라 허 황후의 후손처럼 생겼는데 2000년째 이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살고 있다. 바다에 갇혀 살기 싫어서, 물에 몸을 적시기 싫어서, 사는 일이 어색해서 바다를 탈출한 것 같다. 노래방에서도 그런 면모가 나타난다. 그는 자식 잃은 어미처럼 벽을 치는 듯한 안무와 함께 흘러간 노래를 부른다. 상어가 한강에서 몸을 뒤트는 포즈가 그럴 것이다. 그때 우리는 뭍으로 나온 상어의 ‘튀어나온 눈’을 보게 된다. 흡사 “푸른 유리 조각” 같다. 이 시집은 푸른 유리 조각으로 본 세상이자 그 렌즈 자체이다.
—김중식(시인)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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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서울 도심에서 나고 자랐다. 오랫동안 꿈꿔 온 가톨릭 사제의 길을 포기하고 시인의 길을 선택, 스물여섯 살에 「권진규의 장례식」 외 7편의 시가 《현대시세계》 신인상에 당선되며 등단했다.『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오십미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등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문청들의 교과서이자 청춘의 경전으로 불리는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에서부터 성과 속의 세계를 동시에 살아내는 실존주의자의 허무를 노래하는 근작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광기와 심리적 허기가 불협하며 만들어 낸 시적 착란은 매번 새롭게 아름다운 폐허의 한복판을 만들어 내며 허연의 시가 지닌 독자적 리듬과 독보적 색채의 근간이 되었다.

시집 외에도 『고전여행자의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 『시의 미소』 등 고전을 탐닉하며 쌓아올린 지성과 취향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명작의 세계를 안내하는 저서를 다수 출간했다. 현대문학상, 시작작품상, 김종철문학상, 한국출판학술상 등을 받았다. 일본 게이오대 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을 지냈으며 매일경제신문 문화선임기자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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