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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아래서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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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이기철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1년 11월 5일

ISBN: 978-89-374-0911-0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84쪽

가격: 10,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291

분야 민음의 시 291


책소개

영원의 시간, 잠시의 삶,

그리고 삶의 승화


목차

시인의 말

 

1부

이슬로 손을 씻는 이 저녁에 13

벼랑에서 말하다 14

내가 가꾸는 아침 16

생활에 드리는 목례 17

책상의 가족사 19

문장수업 21

비밀 23

그곳의 저녁은 따뜻한지요 26

행간 29

식탁보 30

서정시 한 켤레 31

꽃눈 33

안 되는 일이 많아 행복하다 34

국정교과서 36

시가 올 때 38

영원 아래서 잠시 39

설화명곡에서 반월당까지 40

수요일에 할 말 42

가을 타는 나무 43

양지꽃 휴양지 46

가을에 도착한 말들 47

십일월 엽서

문답 48

나와 함께 사는 것의 목록 50

아픈 이유의 전부들

세상을 건너는 바람 52

7월 53

씨앗을 받아들고 54

오늘이라는 이름 55

노래 사이를 걸어다녔다 56

오전을 사용하는 방법 58

천변 풍경 60

 

2부

나무마다 그늘이 있다 63

올 한 해 65

라넌큘러스-코로나바이러스에게 66

거룩한 일은 잘 저물고 잘 일어나는 일 67

인생사전-누구나 가졌지만 시로 쓰면 진부한 것 69

하루는 언제나 이별을 준비한다 71

외젠 에밀 폴 그랭델에게 72

피안도품(彼岸道品) 74

카펠라의 먼 길

구룡포에서 오래 생각하다 76

메소포타미아 81

아지랑이 백 필의 봄 날 82

누이는 일생 어린 양을 키웠었지

꽃나무 아래 책보를 깔아주었다 84

오후 3시가 이마를 밟고 지나간다 86

나무에 대한 편견 87

봄밤의 유혹 88

바람이 정원을 싣고 다닌다 90

십일월 엽서 91

전주 92

삼랑진에서 여여(如如)를 만나다 95

노령에 눕다-장수에서 97

주막-박달재에서 99

 

3부

보내주신 별을 잘 받았습니다 103

살아오면서 나는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았다 105

시 가꾸는 마을 106

무한의 빛깔 108

여름 산 109

가을의 규칙 110

그리운 베르테르-언어 최후의 사랑노래 111

신생대의 아침 114

각북에서 쓰다 116

백서(帛書)-시에게 118

아지랑이의 소리 끈 120

사랑이라는 생물 121

오슬로로 보낸 시집 122

눈을 위한 밸런스 1 124

디셈버 모닝 125

아픈 날마다 꽃모종을 심으리니 126

냉이꽃 127

하느님께 보낸 편지-어떤 동화 128

고1 교과서 129

 

해설_김우창(문화사가·고려대 명예교수) 131

영원의 시간, 잠시의 삶, 삶의 승화


편집자 리뷰

문장으로 오랜 시간 동안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시인 이기철이 선보이는 이번 시집은 영원과 잠시의 조화에 대한 심오한 골몰을 가볍고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자연이라는 신에 대해 탐구해 온 시인이 신작 시집에서 집중하는 테마는 영원성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의 삶을 살지만 그 스침으로 인해 영원한 세계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을 갖는다. ‘영원’과 ‘잠시’의 조화에 관심을 가지며 지적, 정신적 탐구를 이어가는 시인의 정제된 사유 속에서 그의 시적 여정에 대한 회고와 반성적 성찰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 사물에 대한 미시적 관찰

시집에서 시의 소재가 되는 대상들은 대체로 자연현상들이다. 그중에도 작은 자연의 현상, 거기에서 탄생하는 생명현상에 시인은 주목한다. 시인의 눈에 들어오는 사물은 연약함을 느끼게 하는 작은 것들, 즉 “손톱나물, 첫돌아이, 어린 새, 햇송아지/ 할미꽃 그늘에 앉아 쉬는 노랑나비”와 같은 것들이다. 연인의 얼굴에 보이는 사랑의 마음도 시인의 눈길을 붙잡는 작은 자연이다. 그러나 이렇듯 여린 생명은 강인하고 지속적인 생명 현상의 일부다. 인간 삶의 총체적인 조건이 되는 상황 속에서 작은 자연들을 바라볼 때 작다는 것은 연약함만을 이르지는 않는다.

 

■ 삶의 체험들

시인이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물에는 자연물 이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다.「생활에 드리는 목례」는 이 점을 보여 주는 시다. 시인이 어린 이파리들에게 이름을 묻고 있을 때, 시인에게 다가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생활”이다. 생활은 그에게 스스로의 이름을 아느냐고 묻고, 그와의 관계에서 시인 자신이 누구인지 아느냐고도 묻는다. 이에 시인은 “친구” “연인” “노복” 그리고 “도반”이라는 대답을 들려준다. 생활이 앞으로고 그를 따르겠냐고 묻자 시인은 “화병에 물을 채우고 몇 송이/ 슬픔을 기쁨으로 갈아 꽂으며 생활을 “꽃피우고야 말겠다”고 말한다. 생활을 꾸려 나가는 일의 신성함을 발견하는 것은 영원 속에서 순간을 보듯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는 일이기도 하다.

 

표제시 「영원 아래서 잠시」는 삶을 큰 시간 진행의 원근법으로 재보는 시다. 이 관점에서 모든 것은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 「영원 아래서 잠시」는 시간 속의 삶과 영원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영원은 대답하지 않지만 그 부재가 영원을 끊임없는 가능성으로 만들며, 그리하여 그의 시는 순간들을 기념하는 찬사가 된다.

 

모든 명사들은 헛되다

제 이름을 불러도 시간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금세기의 막내딸인 오늘이여

네가 선 자리는 유구와 무한 사이의 어디쯤인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영원은 대답하지 않는다

 

-「영원 아래서 잠시」 부분

 

■ 과거에서 포착되는 시적 순간들

미완성은 삶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니 시가 미완성으로 끝나는 것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체념은 있는 그대로의 인생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인생을 그 나름으로 완전한 것이 되게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이기철 시인은 어설픈 시간을 시로 마감하는 것을 공책의 “낱장을 찢어 종이 비둘기를 만”드는 일에 비교한다. 그것은 하나의 완성을 시도하는 일이자 완성을 완성이라는 테두리에서 꺼내 주는 시적 순간에 다름 아니다.

 

■ 시인의 말

세상의 나의 교실이고 사람살이가 나의 교과서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는다. 이 세계, 어느 외딴곳에 아름다움을 심는 사람, 슬픔을 가꾸어 기쁨을 꽃피우는 사람, 그들과 함께 살고 싶어 나는 오늘도 시를 쓴다.

 

■ 해설에서

영원의 대답이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영원은 끊임없이 그 가능성을 비춘다. 그리하여 하나의 느낌은, “영원은 제 명찰을 달고 순간이 쌓아 놓은 계단을 건너간다” 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사라지는 것들에게 “사랑의 문장”을 써 주고자 한다. 그는 그가 “다독여주지 못한 찰나들이 발등에 쌓이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깨달음에 따라, 이기철 시인의 많은 시들은 순간들을 기념하는 찬사가 된다. 이 찬사에서 주로 찬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식물들, 그중에도 이름 없는 풀포기와 풀꽃 그리고 나무들이다. -김우창 / 해설에서

 

■ 본문 중에서

 

연필 깎아 쓴다

 

누구에게라도 쉬이 안기는 아침 공기를

섬돌 위에 빨아 넌 흰 운동화를

 

손톱나물, 첫돌아이, 어린 새, 햇송아지

할미꽃 그늘에 앉아 쉬는 노랑나비를

 

밟으면 신발에 제 피를 묻히는 꽃잎

가지에 매달려 노는 붉은 열매 식구들을

-「내가 가꾸는 아침」 부분

 

내일도 나를 따라올 거냐고 묻는 그에게

화병에 물을 채우고 몇 송이

슬픔을 기쁨으로 갈아 꽂으며

당신을 피우고야 말겠다고 대답했다

가끔은 흐리고 가끔은 맑아지는 그에게

주소를 알려 주면

꽃다발을 들고 한번 찾아가겠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생활에 드리는 목례」 부분

 

열매를 익히는 것은 나무의 유구한 관습

열매가 악기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가을 타는 나무」 부분

 

바람은 정원을 싣고 다니다가 함부로 내다 버린다

철새가 돌아올 때 빈 들판의 표정이 밝아진다

슬픔은 사슴처럼 혼자 있으려 하고

기쁨은 할 말이 많다고 두루미를 날려 보낸다

네 시간 동안 비애를 바느질한 시를 읽었더니

오늘은 부추꽃만 한 슬픔 한 송이는 내려놓아도 되겠다

-「바람이 정원을 싣고 다닌다」 부분

 

절망을 쳐부수느라 보낸 한 생

고통에 끊임없이 주석을 달던 쉰 해

지나온 날이 행복했는가 물으면 나는 그저 웃고 말겠다

-「비밀」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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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이며 교수다. 1943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영남대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72년 ≪현대문학≫에 여러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이 되었다. 쉽고 따뜻한 감정이 묻어 있는 시를 쓰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연과 인생에 대한 깊은 생각이 담긴 시집 13권이 있고 에세이집과 소설집도 있다. 김수영문학상(1993), 도천문학상(1993) 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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