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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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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김혜지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1년 10월 8일

ISBN: 978-89-374-4230-8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5x205 · 276쪽

가격: 13,000원

분야 한국 문학, 한국문학 단행본


책소개

“대가 없이 주어지는 건 없어.”

간신히 꿈꾼 것은 악몽이 되고,
벗어나려 디딘 발이 다른 발을 넘어뜨릴 때
꿈에서 깨어난, 넘어진 곳을 돌아본 이들이
천천히 부르는 노래 같은 고백


목차

언니 7
그녀가 「오, 사랑」을 부를 때 41
지아튜브 103
꽃 113
아가야, 어서 오렴 139
나쁜 피 177
제주행 213

작가의 말 251

작품 해설
우리의 최선이 우리를 해치지 않도록_이지은(문학평론가) 255

추천의 글 271


편집자 리뷰

201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혜지의 첫 소설집 『대가 없는 일』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김혜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생의 일들에 제대로 된 우선순위를 두기 위해 오래 다닌 회사를 나왔다”고 밝힌다. 10년간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그는 15초 남짓으로 흘러가던 ‘속도의 세계’에서 더 오래 바라보고 느리게 담아내는 ‘소설의 세계’로 몸을 틀었다. 느리지만 무거울 펜으로 김혜지가 처음 만든 이야기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의 이야기(등단작 「꽃」)였다. 작가는 세상의 ‘대세’들과 같은 속도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들이 지닌 삶의 처세를 익히기 힘들고, 그들 같은 결과를 낼 수 없는 이들을 본다. 요령은 없고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라 생의 요철 앞에 어쩔 줄 몰라 하고 말문이 막혀 버린 이들의 목소리를 상상한다. 각자의 속도대로 성실하게 달리지만 순식간에 고꾸라지거나 자꾸만 뒤처지는 사람들의 이상하고 슬픈 걸음에 대해 쓴다. 작가가 무척이나 오래 돌본 이야기들을 읽으며 우리는 그의 눈과 손이 닿은 곳을 한 번 더 보게 될 것이다. 『대가 없는 일』에 수록된 일곱 편의 소설을 따라 읽는 일은 고꾸라진 이의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 주고, 뒤처지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신음과 울음 사이에서 침묵하기
김혜지가 주목하는 인물들은 ‘세상’과 ‘나’ 사이에서 휘청이는 이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상속도’ 혹은 ‘정상인 상태’가 되고 싶은 이들과, 남들이 말하는 정상보다는 ‘오롯한 나’이고 싶은 이들. 그러나 두 갈래의 소망 모두 자꾸만 좌절되는 이들이 소설집 『대가 없는 일』에는 등장한다.
수록작 「아가야, 어서 오렴」의 주인공인 ‘현주’는 회사에서 유일하게 출산 계획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사에게 눈총을 받으며, 동시에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임신 때문에 괴로운 난임 시술을 끝없이 시도한다. 현주의 고통은 오롯이 생생하지만, 어렵지 않게 임신하고 출산한 친구들은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비혼인 친구들은 이 시대에 왜 사서 고생이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온다. 결국 현주가 마음 둘 곳은 비슷한 처지의 여자들이 모인 곳, 인터넷 난임 카페뿐이다.
반면 「그녀가 「오, 사랑」을 부를 때」의 주인공 ‘진희’는 시나리오를 전공한 대학 시절 동경하고 따르던 선배 ‘은주’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쓰는 일도 사는 일도 ‘보통’, ‘무난’, ‘정상’ 등의 말들과는 거리가 멀던 날들. 글은 더디 쓰이고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날을 떠올리게 된 데는 무엇보다 은주의 죽음이 있다. 타인에게 속고 자신을 의심하며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던 ‘나’와 그래서 포기했던 ‘쓰기’를 다시 붙들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보통 사람처럼 살지 못해도 쓰는 일을 가장 사랑했던 어느 선배다.
작가는 저마다 아주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는 인물들의 울음이 터지는 순간을, 혹은 울음이 삼켜지는 순간을 바라보려 한다. 어떤 이들이 꿈꾸는 것이 어리석은지 어리숙한지 판단하기 이전에, 말소리 밑에 나직이 깔리는 것이 신음인지 울음인지, 혹은 그 무엇도 아닌 다른 소리인지 듣기 위해 귀 기울인다.


 

■변명과 비명 사이에 숨은 감정들
묵묵한 고통을 담아낸 소설들이 있는 한편, 『대가 없는 일』을 구성하는 또 다른 목소리들이 있다. 이들은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채 자신을 그대로 발설한다. 자신을 방어하고 변명하며 상대를 꼬집고 공격하려 하지만, 스스로 망설이고 마는 순간이 있다. 그들의 새되고 볼멘 목소리 사이에 웅크린 것은 무엇일까?
「지아튜브」는 키즈 유튜브 채널 ‘지아튜브’의 주인공 ‘지아’가 막내 작가로 일했던 ‘희진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다. 희진 언니는 ‘유명 키즈 유튜브 채널, 지아튜브의 진실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글을 썼다. 그 결과 지아는 가족의 사업이던 유튜브 채널을, 엄마 아빠의 사랑을, 친구들의 부러움을 잃었다. 지아는 희진 언니에게 지아튜브를 돌려내라고 화를 내지만, 그 사이의 어떤 진심을 숨기지는 못한다. 지아야, 찍기 싫으면 안 찍어도 돼, 하던 희진 언니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순간만큼은.
「언니」의 주인공 ‘은영’은 육아 인플루언서 ‘주희’와 만나던 첫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이 어그러졌던 순간을 어느 영화의 내레이션처럼 차분히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 목소리로 재현되는 장면들은 생의 어느 때보다 드라마틱하다. 무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에게 단짝으로 선택받는 순간, 그와 함께 평소에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누리고 타인의 시선을 받는 순간, 그러다가 한순간에 느끼는 격차와 배신감. 주희를 동경하고, 닮고 싶어 하다가 은영은 보이지 않는 계정 뒤에 숨어 그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지아튜브」 속 지아의 목소리가 내 걸 돌려내라고 지르는 비명처럼 들린다면, 「언니」의 은영이 내뱉는 목소리는 그래서 그만 제가 그랬어요, 하는 변명에 가깝게 들리기도 한다. 다만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한 두 여자의 긴긴 고백에는 공격한 자와 공격당한 자를 가릴 수 없는, 편지를 받을 이와 보내는 이가 나누었던 기묘한 감정이 있다. 사랑과 배신감이 함께이고 미움과 고마움이 함께인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 작가는 편지를 이루는 한 줄 사이 사이에 그런 것들을 둔다.


 

■본문에서

어머, 모찌하은맘! 잘 왔어요.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 다들 언니 주위로 몰려들어 한마디씩 떠들기 시작했어요. 완전 팬이에요, 인스타 잘 보고 있어요, 실물이 더 예뻐요,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도 돼요? 언니는 ‘모찌하은맘’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육아 인플루언서였어요. (……)
분당맘인 언니가 왼편 테이블에 앉자 모임의 공기가 달라졌어요. 분당맘들이 갑자기 주눅 든 모습은 좀 고소하기까지 했고요. 언니는 저희 테이블 사람들과 두루 이야기를 나눴어요. 심지어 제일 구석에서 겉돌던 제게도 말을 걸어 줬죠. (……)
언니가 가만히 절 보다가 물었어요.
돌 지났으면 유아차 절충형으로 갈아탈 때 되지 않았어요? 이번에 휴대용 유아차 사서 남는 게 있는데, 혹시 필요하면 드릴까요?
-「언니」 11쪽

나만 빼고 모두가 반짝반짝 빛난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나는 언니들 세계의 가장자리에라도 초대받길 바라고 또 바라면서 한편으론 언니들이 나를 귀찮아하거나 마냥 어린애 취급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런 내게 그 시절 은주 언니는 내게 없는 걸 모조리 가진 사람, 너무나 까마득한 사람, 차마 질투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오, 사랑을 부를 때」 61쪽

담임선생님도 상담센터 선생님도 똑같은 걸 계속 물어. 외국 키즈 유튜브 영상 보여 주면서 그대로 따라 하라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니? 친구 필통 훔치는 장면 찍을 땐 무슨 생각이 들었어? 10분 안에 치킨 버거 네 개 먹기 먹방은 누가 찍자고 했어? 그럼 난 대답해. 그냥 논 거예요, 카메라 앞에서. 그럼 어른들은 또 물어. 정말 논 거 맞아? 시켜서 한 거 아니고? 그쯤 되면 좀 화가 나. 역시 아빠 말이 맞구나 싶어서. 사람들은 아빠랑 지아가 놀면서 논 버는 게 배 아픈 거야.
-「지아튜브」, 107~108쪽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의 어려움에 비해 멀어지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를 생각하면 종종 아득해진다. 또 이미 멀어져 버린 관계라 할지라도 기어이 기억의 조각들을 남기고야 만다는 것도. 의외로 기억의 밑바닥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건 아주 사소한 장면들이다. 신문지를 깔고 앉아 언니가 내 앞머리를 잘라 주던 밤에 부엌 가위에서 나던 사각 소리, 굴소스를 듬뿍 넣고 언니가 해 준 볶음밥을 먹던 오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노래, 내가 심한 몸살을 앓던 새벽에 물수건을 갈아 주며 이마를 짚어 보던 언니의 손길 같은 것들.
-「제주행」, 245쪽


 

■추천의 말

김혜지 소설에는 내가 아는 것 같은 사람들이 나온다. 전화번호는 가지고 있지만 연락한 적 없는 오래 전 동창, 거리에서 우연히 스치면 잘 지내지? 응, 너도? 인사를 나누며 어색하게 뒤돌아설 친구의 친구, 한 아이를 아기 띠로 동여매고 또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이웃집 여자. 알지만, 분명히 알지만, 정말 그를 아느냐고 질문 받으면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힐 듯한, 그 얼굴들을 여기서 본다.
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망하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 살아야 망하지 않는지 몰라서 그저 남들을 따라 살고자 했던 그들에 대하여 작가는 쓴다. ‘남들처럼’ 살겠다는 그 모방의 의지가 어디서 온 것인지 헤아릴 여력도 없이, 자기 안의 여러 마음들이 왈각대며 부딪히는 소리에 깜짝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하여. 위선에도 위악에도 영 재능이 없는, 누구를 미워해야 할지 몰라 스스로를 미워하다 영혼이 부서진 사람들에 대하여.
-정이현(소설가)

대가 없는 일에 살고 있는 인물들은 삶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들의 최선은 그들이 바라던 대가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곧잘 그들의 삶을 해치고 만다. (……)
아마 소설의 인물들이 분투하고 실패하고 좌절하는 어느 지점에 우리의 삶도 겹쳐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에 수록된 소설들은 삶에 대한 우리의 노력과 애착이 어디로 향하는지 비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삶에 함몰되어 가늠할 수 없었던 각자의 ‘최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소설 속 이웃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최선’이 할 수 없는 일에 악다구니를 쓰며 매달리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그렇다고 체념의 테두리 속에서 삶을 소진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길. 우리의 최선이 우리를 해치지 않길. 과오를 인정하되 반복하지 않길. 그리하여 남아 있는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길. 이 책의 마지막 장 너머로 펼쳐질 시간은 ‘최선’이라는 말에 담긴 본래의 밝음을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
-이지은(문학평론가) / 해설에서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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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지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하고, 다수의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각색했다. 2011년부터 10년 동안 광고회사 TBWA KOREA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2019년《매일신문》신춘문예에 「꽃」이 당선되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현진건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