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는 걸음

백지은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1년 8월 23일 | ISBN 978-89-374-4463-0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52x225 · 504쪽 | 가격 22,000원

책소개

세월호를 목격하고 미투 운동을 통과하며

깨지고 이어지는 비평가의 마음

이전을 기억하고 이후를 상상하며

흔들려도 멈추지 않는 비평의 걸음

편집자 리뷰

2007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글을 발표하며 비평 활동을 시작한 문학평론가 백지은의 두 번째 비평집 『건너는 걸음』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2021년 한국에 사는 사람이 현재를 어떤 ‘이후’로 감각하는 일은 전혀 특이한 것도, 예외적인 일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지속적으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감각’을 느낀다. 전세계적 변화이자 흐름인 코로나19, 미투 운동부터 한국 국민들에게 삶의 돌출점 혹은 절단면이 된 촛불 집회, 세월호 같은 사건들을 포함하여, 우리의 삶은 계속 분리되거나 깨어진다. 이때 문학은 어디에 서 있을까? 어느 쪽으로 걸어가려 할까?

백지은은 읽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쓰는 사람으로서 시대에 비추어 문학을 읽어 내고 문학에 기대어 시대를 써 내려간다. 두 번째 비평집 『건너는 걸음』에는 그가 지난 7년여 간 그렇게 쓴 평론들이 모여 있다. 어딘가를 넘어서 건너가는 일, 그리고 걸어온 길을 계속해서 걷는 일은 과거를 이전에 붙박거나 지우는 동작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진 이후를 수색하려는 활동이다. 문학과 비평의 걸음은 이전과 이후, 양쪽의 사이를 벌리기보다 가로지른다. 이전을 기억하며 이후로 떼는 걸음. 그것은 비평가의 손에 들린 펜과 같다. 그 펜에 의해 쓰인 글을 통해 우리는 문학을 더 오래 되돌아보고 삶을 더 넓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총 30편의 글이 6부에 걸쳐 5편씩 배치되어 있다. 1부에는 2014년 봄 이후, 세월호 사건을 침묵 속에 목격했던 우리가 다시 입을 열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 그 단절과 연결에 대해 쓴 글들이 모여 있다. 1부를 여는 첫 글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장면을 통해 2014년의 세월호 사건을 묻는다. 사건 이후 쏟아져 나온 박민규, 김애란, 황정은 작가의 글쓰기와 최은영의 작품을 통해 문학이 쓰이고 읽히는 자리가 휘청이는 것을 본다. ‘바다’, ‘여행’ 같은 단어가, ‘광장’, ‘합동 분향소’ 같은 단어가 2014년 이후 우리에게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는지에 대해,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기록하고, 또 기억하고자 한다.

2부는 페미니즘 리부트를 건너며 여성 서사의 중요성을 실감한 글들이 수록되었다. 백지은은 사회적으로 거세게 일어난 폭로 운동인 ‘미투 운동’을 통과하며, 페미니즘 문학과 담론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그 맥락을 살핀다. 2010년대에 출간되어 현재까지 독보적인 문학 베스트셀러인 『82년생 김지영』과 『쇼코의 미소』를 통해 여성 작가들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그려냈는지 설명하는 동시에, 1990년대와 2000년대 작가와 비평가들의 활동을 돌아보며 문학 담론장이 ‘페미니즘 문학’을 호명하는 일이 유례없이 나타난 일시적 사태나 우연히 발생한 돌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짚어 낸다.

3부과 4부에는 작품론 혹은 작가론으로 묶일 수 있는, 비평가로서 한 작가의 작품을 보다 깊이 읽어 낸 글들을 모아 두었다. 3부에서 한데 놓은 작가는 이주란, 김엄지, 백수린, 정이현 등이다. 백지은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작가가 써낸 당대의 생활과 세속과 세계를 건너는 소설을 바라보며 그들의 지금과 다음을 함께한다. 4부에 실린 작가들에게는 다음 이후의 믿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김애란, 배수아, 윤성희, 권여선, 은희경에 대한 글들이 그것이다. 백지은에게 이들의 소설을 읽는 일은 이전의 읽기, 혹은 이전의 나를 되새기는 일이며, 이후로 건너가도 이 작가들에 대한 독서가 지속되리라는 애정을 드러낸다. 5부에는 김희선, 김경욱, 김성중 등 현실을 비틀어 현실을 말하는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글들을 수록했다.

6부는 백지은이 문학평론가로서, 첫 번째 비평집을 건너 온 문학평론에 대한 마음가짐을 드러낸 글들을 묶었다. 한편 한편의 글들에는 비평에 대한 그의 의심과 자긍심이 묻어난다. 백지은의 섬세한 글쓰기에서 먼저 드러나는 것은 무엇보다 새로이 다가오는 시대와 독자와 함께 걷는 비평의 걸음이 알맞은 빠르기인지 묻는 스스로를 향한 의심이다. 그러나 그의 물음을 끝까지 따라갔을 때 남는 것은 머뭇거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옮겨 보는 걸음의 균형과 무게감이다. 백지은은 소설이 쓰인 시대의 사건과, 소설을 읽는 독자의 목소리와, 무엇보다 소설 그 자체와 자신을 함께 점검하고 흔들리며, 그러나 멈추지 않고 문학을 향한 다음 걸음을 내딛는다.


 

■책머리에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세상, 문학, 비평 등의 장소에서 나의 반성과 긍지와 기대는 자못 초라하다. 이 마음이 겸양도 부끄러움도 아닌 것은, 세상의 온갖 말들을 건너다니며 문학을 모색하는 비평의 욕망이 내 삶에서 사라지게 하지 않겠다는 미약한 용기 덕분일까. 그럼에도 읽기와 쓰기에 관한 여러 방면의 환경을 고려할수록 한없이 위축되고 마는 나의 변변찮은 말들을 생각하면, 미약한 용기가 이후의 세상, 문학, 비평 속에서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지는 모호하기만 하다. 다만 지금으로선 나의 말은 다른 이들의 걸음이 닿아 주기를 기다리는 말이 아니라 내가 다른 이들로 건너는 걸음을 떼기 위해 필요한 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게으르고 허약한 말이나마 지우거나 막아 버리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남의 귀를 쫑긋하게 하는 말도 필요하지만 자기 입술을 단단하게 모으는 말도 소중하다고 믿는다.


■본문에서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5월 광주’에 관한 이야기지만 여러 지면에서 ‘4월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로 읽히곤 했다. 두 사건 사이의 유사성을 직감할 때 자연스러운 독법일 것이다. 그렇다면 황정은의 『야만적인 앨리스씨』(2013)를 펴 들고 “배에서도, 육지에서도, 공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 “고통과, 고통을 대면하는 시선이며 목소리며 하는 것들. 그리고 고통의 편에 서는 일에 과연 유력한 가능성 같은 게 있을지 생각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라고 고백하는 일은 어떤가. 그 소설들의 출간 시점이 일러주듯 세월호 사건과는 무관하게, 국가가 국민을 저버렸던 과거의 참상을 이야기했고 강력한 고통에 휩싸인 한 인간의 상태를 말했던 것이, 공교롭게도 세월호 사건과 겹치는 주제로 얘기되었을 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소설들에서 특정한 주제를 다루었다기보다 어떤 주제들의 장 속에서 그런 소설들이 나온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소설들에 그려진 것을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맥락화한 것이 아니라 그 소설들을 읽자 세월호가 떠오르는 공론화된 맥락 속에 우리가 이미 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36~37쪽

 

2010년대 후반 현재,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한 최근의 여성 소설들, 예컨대 강화길, 김혜진, 박민정, 정세랑, 최은영 등의 여성 작가들이 ‘여성의 삶’을 주체화하여 쓴 소설이나 한국의 남성적 문화에서 만연한 (성)폭력을 다룬 소설 등이 ‘페미니즘 문학’으로 호명되고 이해되는 배경이나 이유가 문학 담론장의 흐름과 더불어 설명될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현재 문학장 안팎을 막론하고 활기차게 번져 가는 이런 시도들과 분위기가 유례없이 나타난 일시적 사태도, 우연히 형성된 돌발적 현상도 아닌 만큼이나, ‘페미니즘 문학’의 흐름/진행/전진이 갑작스러운 열기인 것도, 오직 현재적 사건인 것도 아니다. 최소한 지난 일이십 년간 한국문학에서 ‘여성성’, ‘여성 문제’ 등을 키워드로 했던(혹은 하지 않았던) 논의들은 현재적 상황과 더불어 재고(再考)되어야 한다. 과연 한국문학은 내내 여성 문제에 무관심하다가 이런저런 사회적 맥락 속에서 부각된 페미니즘 이슈에 이제 막 부응하기 시작한 것인가?

-137쪽

 

문학비평의 전문성 재정립과 관련된 맥락에서 최근 문학지의 혁신/개편 과정에 가장 확연하게, 활발하게 개입하여 기존의 것들을 내파하는 동력이 ‘페미니즘’이라는 사실 —즉 특정 문학 텍스트로부터 촉발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을 유의미하게 상기해 볼 수 있다. 이 사회의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직접적으로는 ‘#문단_내_성폭력’ 고발로 그것은 터져 나왔고, 이로 인한 경각심이 ‘문학장’을 흔들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문학장의 내부와 외부를 분리하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문학’의 이름이 달리지 않은 쪽의 고발과 저항으로 시작된 이 자각과 분투가 ‘문학’의 이름을 달고 있던 쪽으로 번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적 세계의 가치와 의미를 재고하여 현실의 질서를 조정하려는 실천적 움직임이다. 현실의 질서란 곧 언어가 작동하는 맥락에 다름 아니고, 그렇기에 사회적 실천이란 곧 언어가 유통되는 기존의 맥락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든 데서 시작된다. 세계의 변화를 원한다는 것은 기존의 질서/논리가 지겨워졌다는 뜻이자, 다른 질서/논리를 짤 수 있는 새 언어가 필요해졌다는 뜻이다. 즉, 사회의 구성원들이 삶에서 느끼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실천은 언제나 다른 언어/의미/가치를 세우기 위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 투쟁은 필연적으로 ‘문학적’ 변동을 가져온다. 따라서 현재 한국 문학장은 그 외부에서 발생한 페미니즘 이슈들을 ‘반영한’ 결과가 아니라 문학장 외부에서 당겨진 페미니즘 이슈가 문학으로 ‘파고든’ 결과라고 해야 한다. 삶의 질문은 반드시 문학을 끌어당긴다.

-468쪽


 

목차

책머리에 5

 

1부

수평선이 보인다 —이후로 가는 문학 15

한사코 문학 —‘K문학’ 유감 40

텍스트를 읽는 것과 삶을 읽는 것은 다르지 않다 53

신을 만든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71

이것이 쓰이고 읽혀서 자기를 —왜 지금 SF가 이렇게 93

 

2부

소설 리부트 —(표현) 민주화 시대의 소설 119

전진(하지 못)했던 페미니즘 —2000년대 문학 담론과 ‘젠더 패러독스’의 패러독스 135

지금 여성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158

여자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었는가 166

여자 어른은 어떻게 사랑을 하는가 181

 

3부

덜컹거리는 열차 위에서, 우리의 세계는 —백수린 「여름의 빌라」 外 193

차갑고 치열한 심정 —이주란 『모두 다른 아버지』 206

공허와 함께 안에서 밀고 가기 —정이현 『상냥한 폭력의 시대』 220

세속의 시간과 무의미 꾸러미 —김엄지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235

하나의 장면에 두 개의 그림 —임현 『그 개와 같은 말』 253

 

4부

모르는 아비 —김애란 「달려라, 아비」 265

비개인적인 글쓰기 —배수아 『에세이스트의 책상 』 271

최대 소설의 기도 —윤성희 『베개를 베다』 283

당신이 알고 있나이다 —권여선 『아직 멀었다는 말』 298

모든 지금의 작가 —은희경 『빛의 과거』 318

 

5부

구원 혹은 창조 —김성중 『에디 혹은 애슐리』 331

다른 계절의 원근법 —이장욱 『천국보다 낯선』 344

관심의 제왕 —김희선 『라면의 황제』 358

잘하는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김경욱 『소년은 늙지 않는다』 373

설화적 모더니즘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391

 

6부

길고 짧은 것은 대보지 않아도 안다 409

왜 소설에 사적 대화를 무단 인용하면 안 되는가 431

견인 454

존재를 위한 희망 473

오늘도 인간을 귀하게 490

작가 소개

백지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 비평집으로 『독자 시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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