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신달자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8년 3월 31일 | ISBN 978-89-374-8177-2

패키지 반양장 · 신국변형 130x200 · 260쪽 | 가격 9,500원

분야 논픽션

책소개

“영원히 싸우고 사랑해야 할 것은 오직 인생뿐”

시인 신달자의 화려한 삶 뒤에 감추어진 처절한 고통의 나날들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며 깨달은 인생의 빛과 그림자
그 절망의 늪에서 건져 올린 희망의 메시지

“어쩌면 나는 불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 절체절명으로 불행한 일은 없다. 사람들은 아직 벗어날 방도가 있는데도 너무 일찍 절망하는지 모른다. 인간은 희망에 속는 일보다 절망에 속은 일이 더 많다. 내가 그랬다. 너무 빨리 불행하다고 외쳐 버렸는지 모른다. 그러고는 지쳐 쓰러지고 희망이 없다고 단정했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어느 현자는 말했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마음이 편안할 때 그것이 지고의 경지라고. 그래, 나는 지금 물처럼 편안하고 고요하다.”
                                                                  —본문 중에서

편집자 리뷰

지상에서 가장 붉고 처절한 울음꽃으로 피어난 시인 신달자
그녀의 붉은 눈물, 노을로 번지며 세상을 끌어안다

“나는 지금 지난 세월이 아주 희미하다. 내가 결혼을 했었는지, 내가 그 남자 때문에 피를 토하며 죽는 고비를 넘겼는지, 내가 암 수술을 받은 환자인지 나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가 쓰러진 것도, 정신병원을 기어오르던 일도, 그가 쥐약을 먹고 널브러져 있었던 일도, 작은집 가듯 자주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도, 내 팔이 부러지고 눈알이 터졌던 일도, 온몸이 멍으로 푸른 바다를 짊어지고 다닌 것도, 하늘과 땅이 딱 들러붙는 생의 이상 현상도, 그가 숨을 거둔 일도 생각나지 않아. 24년이라는 그의 환자 생활 속에서 내가 열두 번도 더 곤두박질하며 죽음 연습을 했던 것도 나는 생각나지 않아. 시어머니가 9년이나 환자로 누워 있었던 사실도 기억나지 않아. 다 모르는 일이야. 나는 모든 걸 잊어버렸어.”
 
다름 아닌 시인 신달자의 고백이다. 삶의 실존론적 고뇌를 섬세한 여성적 감성으로 표현하며 우리 문학에서 여성 시의 영역을 개척하고 대표해 온 신달자 시인이 자신의 화려한 삶 뒤에 감추어진 처절한 고통의 나날들을 고백하는 에세이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를 펴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며, 시어머니와 어머니의 죽음, 본인의 암 투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과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고통을 이겨 낸 감동적인 드라마로서,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뼛속까지 새겨진 상처를 온몸으로 고백한다.
이 책에서 시인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깨달은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 주며, “영원히 싸우고 사랑해야 할 것은 오직 인생뿐”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질곡의 세월 속에서 탁월한 감수성으로 건져 올린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깊은 사유를 때론 열정적으로, 때론 담담하게 풀어 나가는 시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노라면 삶의 한 고비를 넘어온 여성의 여유로움과 따스함, 모성과 포용력이 느껴진다.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시인의 눈이 뜨겁다.
딸 같은 제자인 ‘희수’에게 지난날을 술회하는 형식으로 4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산문 중간 중간에 수록된, 당시의 감정을 눈물로 쓴 13편의 시는 그녀의 삶이 어떻게 그녀의 시의 뿌리를 이루었는지 여실히 보여 준다.

■ 본문 중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인간에게도 생애 단 한 번은 완전한 주목을 받으며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죽음이다. 한 생애를 통해 오직 한 번밖에 허용하지 않는 절정이 있다면 그것 역시 죽음이다. 더는 다른 생각으로 흘러들지 못하게 모든 사람의 시선을 붙잡고 단 한 번의 눈 맞춤, 단 한마디의 대화를 안타까운 애원으로 빌어 보는 긴장의 순간. 그것도 죽음이다. 생과 사는 그렇게 가깝고 먼 것이었다. (……) 죽음은 그저 끝이고, 사라지는 것이고, 비어 있는 것이다. 없다는 것. 그 사실만이 그 현실을 설명해 준다. 죽음에는 찬사도 있을 수 없다. 죽음을 철학으로 말하지 마라. 죽음은 그저 허망, 죽음은 그저 배반 그 자체로 끝나는 것뿐이다.(7~10쪽)
 
그리고 그는 다시 생명 연습에 들어갔다. 지루할 만큼 지루했다. 환자 생활 24년을 뒷바라지하면서 증오심도 억세게 끓어올랐고 억장 무너지는 순간순간을 맞으며 남편의 마지막 시간이 언제인지 하느님께 질문하려다가 입을 닫은 적이 어디 한두 번이겠니. 나는 아프지 않았지만 죽었고 그는 아팠지만 살아 있었다. 그것이 24년간의 우리 부부 생활이었다. 나는 24년 동안 많은 죄악을 저질렀다. 그 죄악의 동기는 남편이었고 그 죄악을 근절한 것도 남편이었다. 나는 그동안 소리 없는 총기를 구하고 다녔다. 그래, 물론 그의 심장을 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야. 얼마나 그가 죽기를 기다렸겠니. 아, 그런데도 그가 숨이 멎는 그 순간에 나는 신통력을 갖고 싶었다. 아! 소리치며 시간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가 죽는 일에 죽어도 동의할 수 없다는 폭발적 외침이 저 밑바닥에서 절절 끓어올랐다.(13쪽)
 
그러나 나는 안다. 나는 불바다의 결혼 생활을 지나온 사람이지만 결혼은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화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변함이 없어. (……) 그렇게 스스로를 만들며 살아가고 어딘가 빛을 만들며 사는 일, 그것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지. (……) 결혼은 그냥 옆에 있는 것이야. ‘우리’라는 말을 같이 사용하는 사람, 그 정도로만 생각하면 어떨까. 옆에 있는 사람이 목마르면 물 한 잔을 가져다주고 몸이 아프면 같이 병원에 가 주는 그런 정도로…….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그냥 필요한 존재로 그저 그렇게 말이야.(34~35쪽)
 
아침에 창을 열었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
그저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소한 일상용어들을 안아 볼을 대고 싶다
(……)
발끝에서 타고 올라와
가슴 안에서 쾅 하고 울려오는
삶 속의 돌다리 같은 소중한 말
안고 비비고 입술 대고 싶은
시시하고 말도 아닌 그 말들에게
나보다 먼저 아침밥 한 숟가락 떠먹이고 싶다(226~227쪽)
 

■ 줄거리

대학교수인 남편이 결혼 9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한 달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만 반신불수가 된 남편과 팔순 시어머니, 어린 세 딸아이를 뒷바라지하며 지옥 같은 현실을 헤쳐 나간다. 간신히 학교에 복귀하지만 뇌졸중 후유증으로 사회생활이 쉽지 않은 남편을 물심양면으로 돌보지만, 자괴감과 절망감에 빠진 남편은 시인에게 매질을 하는 등 점점 난폭해져만 간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설상가상으로 시어머니까지 쓰러져 9년 동안 병상에 계시다 돌아가신다. 기구한 운명 앞에 신을 원망하였지만 종교에 귀의한 후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보따리 장사로 생활을 꾸려 가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문학과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한다. 대학교수의 꿈도, 베스트셀러 작가의 꿈도 이루지만 끝내 남편은 세상을 뜨고, 시인마저 유방암 판정을 받는다.

목차

그 남자의 죽음
죽음 연습
이제야 나는 너에게 진실의 입을 연다
운명을 받아 안다
결혼은 왜 하는 거니?
서울에는 청파동이 있다
나의 자주색 신혼여행 가방
젊고 싱싱한 눈물이 넘치던 대방동의 아름다운 집
나는 여자에서 어머니가 되었다
죽음의 강
한심하고 한심한
작은 잎새에게도 나는 부끄러웠다
어머니, 피눈물을 닦아 드릴게요
중환자실에는 돌비가 내린다
혜화동 성당을 가다
붉은 울음꽃
기적의 아침이 왔다
시퍼런 채찍이 내 목을 감아 오다
다시 한방병원으로
운명의 구둣발이 내 가슴을 짓밟다
어처구니없이 변해 가는 그의 행동들
그 남자의 첫 강의
이끌어 주소서
암울한 겨울날의 일기
알 수 없는 고통의 높이
걱정하지 말라
벼랑 위의 생
어머니의 죽음
상처에 피는 꽃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또 하나의 비극이 내 등에 업혀 왔다
다시 부는 바람
드디어 학장이 된 그 남자
백치애인의 부활
내 꽃밭에 무지개 서다
등 푸른 여자
푸른 하늘 위로 흰 나비 날아오르다
여보! 비가 와요
사진 한 장과 두 권의 책
나는 다시 아내가 되고 싶다
결혼하지 마!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다
내가 수술대 위에 주인공으로 눕다
꽃밭에서 꽃밭으로

작가 소개

신달자

1943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1964년 《여상》 여류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했고 1972년 박목월 시인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재등단했다. 『열애』, 『종이』, 『북촌』 등 다수의 시집이 있다. 정지용문학상, 대산문학상, 서정시문학상, 만해대상, 석정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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