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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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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김언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1년 7월 2일

ISBN: 978-89-374-0905-9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56쪽

가격: 10,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285

분야 민음의 시 285, 한국 문학


책소개

미지의 장소에서 태어나

영원을 유랑하는 말들


목차

1부

무의미 13

사랑 14

괴로운 자 16

백지에게 18

투신 20

모두 폭발하러 가는 것 같다 22

영원 24

바쁜 사람 25

쉬고 싶은 사람 26

슬픈 사람 27

 

2부

자세 31

외투 32

두 사람 33

누가 불러서 왔습니까? 36

제안 38

이것은 40

가족 42

배운 사람 44

혼자 울고 있다 45

산 자와 괴로운 자 48

된다 49

신원 50

만년필 51

파리의 기억 52

고향 앞으로 54

나는 원했다 58

원산지 60

 

3부

계속되는 마지막 63

필자 64

종소리 66

기술자 67

파티에 가는 일기 70

등장인물 74

약속 78

다시 밤이다 81

용건 없는 사람 84

불안 86

불안 91

상관없는 밤 92

 

4부

당신 95

겪어 보지도 않고 나쁜 사람 96

악인 100

미의 102

저쪽은 모른다 105

다만 본다 106

미친 사람 ― 찰스 부코스키를 읽다가 108

없다 111

어쩌다가 만났을까? 112

반려 113

누가 숨어서 우는가? 114

우는 사람 115

인생 116

얼마 남아 있지 않다 118

돈 120

여분 122

언제 한번 보자 123

 

작품 해설 125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도 없는 곳으로_ 박대현(문학평론가)


편집자 리뷰

김언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백지에게』가 민음의 시 285번으로 출간되었다. 2018년 두 권의 시집을 잇달아 출간한 시인은 인터뷰를 통해 “『한 문장』이 전격”이라면,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은 파격 또는 변격”에 대한 시도라고 말한 바 있다. 전격과 파격 혹은 변격의 시도를 지나, 2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 『백지에게』에는 여전히, 그러나 새로운 실험을 출발하는 김언 시인의 역동적인 문장들이 형형히 담겨 있다.

그동안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등 상징성 짙은 심상들을 선명하게 그려 냈던 김언의 기존 시집 제목들과 나란히 놓고 보면, ‘백지에게’가 주는 담백함은 다소 뜻밖이다. 그러나 김언 시인에게 ‘백지’는 시공간을 부유하듯 유랑하는 말들이 모여 시가 빚어지는 장소이자, 닿을 수 없는 태초와 영원을 포착하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둘 때, 시인이 담담하게 백지에게 말을 거는 듯한 제목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백지에게』는 김언 시인이 오랫동안 골몰해 온 경계 밖을 향한 사유와 실험적인 언어가 정점의 정점을 거듭해 나아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마치 홀로 백지 앞에 앉아 나지막이 읊조리듯 전하는 시인의 일상과 진솔한 고백 또한 짙게 담겨 있다. 올해 김현 문학패를 수상하며 “독자로 하여금 삶을 살아 보고 싶게 만드는 시인”이자 “언어와 세계 양쪽을 모두 운동시키는 시인”이라는 극찬의 심사평을 받은 시인의 정점에 달한 시력과 단단하고도 말간 목소리를 『백지에게』에 담아 전한다.

 


 

 

■ 존재를 깨우는 목소리

 

얼음이 되지 못하는 사람도 웃는다. 원산지가 어디냐고 물으니까 웃는다. 멀리서 왔다고 한다. 그래, 원산지는 멀다. 가까운 곳에선 나지 않는다.

―「원산지」에서

 

태어난 순간을 하나의 장소처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모두 시작된 곳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존재들이다. 그리고 여전히 멀리 떠나가고 있는 중이다. 자신이 탄생한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탄생의 증거일 뿐, 태어난 순간은 깜깜한 망각 속에 묻혀 있다. 영원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탄생의 순간이라는 과거는 미래와도 닮았다. 김언의 시 속 존재들은 이런 시간의 속성 속에서 유랑하듯 떠다닌다. 그들은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 말을 시작한다. 갑자기 ‘저곳’이나 ‘외투’가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거나, ‘너’를 가진 사람이자 가지지 못한 사람이 동시에 되려 한다는 실현 불가능한 의지를 선언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는 어쩌다가 앉아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모두 폭발하러 가는 것 같다」) 하며 현재 상태에 대한 고민에 골똘히 빠진다. 그 목소리들은 마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낯설게 느끼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 같다. 그 목소리는 세상의 소음을 멈추고 오직 지금 그 목소리를 듣는 ‘나’라는 존재를 깨운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까마득한 과거와 미래까지도 한꺼번에 불러와 의식하게 한다. 김언의 말들은 깜깜한 곳에서 태어나 깜깜한 곳으로 떠나간다. 아득히 먼 곳에서 시작해 여전히 아득히 먼 곳으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를 깨우는 목소리로 『백지에게』가 말을 건다.

 

 


 

 

■ 울고 걷고 돈을 세는 사람들

 

장례식장에서 누가 가장 슬픈가? 유가족이겠지. 그런데 그들이 가장 바쁘다. 그들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그들이 가장 바쁘게 소리를 내고 그들이 가장 바쁘게 울음을 울고 그들이 가장 바쁘게 서 있다.

―「바쁜 사람」에서

 

그동안 김언의 시는 목격하는 순간 허공으로 사라지는 ‘연기’, 보이지 않는 ‘유령’의 말, ‘공백’으로 차 있는 문장 등 쉽게 실체를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을 중심으로 빚어졌기에, 독해 또한 이런 이미지를 중심으로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번 시집 『백지에게』에는 유독 「바쁜 사람」 「쉬고 싶은 사람」 「슬픈 사람」 「배운 사람」 「용건 없는 사람」 「겪어 보지도 않고 나쁜 사람」 「미친 사람」 「우는 사람」 등 구체적인 ‘사람’의 모습을 지칭하는 제목의 시가 많이 보인다. 그 ‘사람’은 슬픔에 빠져 있지만 바쁘게 손님을 받아야 하는 장례식장의 유가족들처럼 실제 생활을 가진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한 시인이 생활하는 흔적 또한 곳곳에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자신에게 악의를 보이는 사람을 향해 냉소하는 목소리,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백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 “수중에서 나가는 돈은/ 다 큰돈”(「미의」)이라는 생활의 말들이 날것의 감각으로 다가온다. 『백지에게』는 “선풍기를 바꾸려고 했다. 아주 본질적으로 바꾸려고 했다. 돈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시인의 말로 시작하고 있다. 생활의 냄새를 가득 머금고 있는 “선풍기”와 “돈” 사이에 놓인 “본질적”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생경하다. 선풍기의 본질에 대해, 선풍기의 본질을 바꿀 돈에 대해 거듭 고민하다 보면 선풍기도, 돈도, 본질도 모두 낯설어진다. 이 낯선 감각은 우리 생활 속에 도사리고 있던 비밀의 문이 열리는 신호탄이다. 그렇게 김언은 『백지에게』로 또 하나의 새로운 통로를 열었다. 일상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직 김언의 시를 읽는 동안의 감각으로만 가닿을 수 있는 세계의 통로를 말이다.

 

가을 없이는 겨울도 없다는 말. 무의미하지. 겨울 없이는 봄도 여름도 없다는 말. 무의미하지. 의미는 뒤통수니까. 뒤통수에 있으니까.

―「무의미」에서

 

백지가 있다. 백지에서 나오는 말들. 백지에서 나와 백지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말들. 도무지 백지가 될 수 없는 말들이 한마디로 그치지 않을 때 두 마디로도 그치지 않고 모자랄 때 모자란 만큼 잠식하는 백지의 운동은 백지를 갉아먹는다. 백지를 지워 나간다.

―「백지에게」에서

 

선물받은 만년필이 안 보인다. 지금까지는 잃어버린 것이 분명한 만년필은 내 책상 서랍에도 없다. 대여섯 개는 되는 내 가방 안에도 없다. 아니면 강아지 꽁지가 물고 가서 어디 감춰 둔 것일까? 꼭지가 돌 일은 아니지만 선물받은 만년필은 지금까지 분실된 상태다. 내가 잃어버린 상태다.

―「만년필」에서

 

삼월에는 사월이 되어 가는 사람. 사월에는 오월이 되어 가는 사람. 그러다가 유월을 맞이해서는 칠월까지 기다리는 사람. 팔월까지 내다보는 사람. 구월에도 시월에도 아직 오지 않은 십일월에도 매번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사람. 우리가 언제 만날까?

―「언제 한번 보자」에서


 

그곳에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을 떠나왔으나, 그의 시는 여전히 아무도 살지 않는 곳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시는 무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언가를 쓰고 있다. “가을에 무의미한 시는 가을을 지시하지 않겠”지만, “가을에 무의미한 시는 하늘이 무너져도 무언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쓰는 과정에서 그는 여전히 담배를 태우고 살아 숨 쉬고 그렇게 씌어진 시를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아무도 없는 곳을 떠나왔지만, 여전히, 아무도 없는 곳을 ‘미리’ 살고 있다.

―박대현(문학평론가)┃작품 해설에서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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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

1973년 부산에서 태어나 1998년 《시와사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한 문장』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산문집으로 『누구나 가슴에 문장이 있다』, 시론집으로 『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등이 있다. 미당문학상, 박인환문학상,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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