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정동진에 가면

이순원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1999년 8월 4일 | ISBN 89-374-0327-7

패키지 양장 · 46배판 188x257mm · 174쪽 | 가격 6,000원

책소개

옛추억의 여인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잃어버린 성정(性精), 꿈을 복원해 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유년 시절 아름답지만 가난했던 봄과 아픈 사랑을 더듬어 가는 이순원의 장편은 추억과 여행과 자연에 대해 우리 현대 문명이 가하는 섬뜩한 폭력을 고발하며, 그럼으로써 잃어버린 삶의 근원을 아스라이 반추하고 있다.

편집자 리뷰

<동인문학상> 및 <현대문학상> 수상 작가 이순원의 신작 장편 『그대 정동진에 가면』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불과 한 달여 전에 장편 『19세』를 발표했던 그는, 1988년 등단 이래로 가장 왕성히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이며, 가장 많이 주목받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유년 시절 아름답지만 가난했던 봄과 아픈 사랑을 더듬어 가는 이순원의 장편은 추억과 여행과 자연에 대해 우리 현대 문명이 가하는 섬뜩한 폭력을 고발하며, 그럼으로써 잃어버린 삶의 근원을 아스라이 반추하고 있다.
사회 문제든, 개인의 일상사이든, 가족사의 풍경이든, 일단 소재만 붙들면 그것을 완전히 장악하고서, 작고도 조용하게, 그 세계를 천천히 음미하도록 하는 이순원의 글쓰기는 이 작품에서도 역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장편 『19세』에서는 풍자적 글쓰기의 한 전형을 보였던 반면, 이 작품에서는 옛 추억의 여인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잃어버린 성정(性情), 잃어버린 꿈을 복원해 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충실히 반영되어 있어서 『여자의 사랑』 이후 작가가 시도하는 또 하나의 연가(戀歌)이자 애가(哀歌)이다.
 
 
 
*줄거리
유년기 기억 속의 사랑을 찾아가는 화자(나)의 여행은 김미연이라는 어린 시절의 기억 속의 아이를 찾아 정동진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내 기억 속에 잠자듯 누워 있던 바다와 산들……. 그곳은 한 TV 드라마가 탤런트를 내세워 만들어 낸 인공의 관광지 정동진역이 아니라, \’내 마음의 정동\’ 탄광 마을일 뿐이었다. 그곳은 외지 사람들의 이발소 그림 같은 바다와 역일 뿐이며,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속 정동의 순결에 상처라도 입은 듯한 기분이다.
열여섯 나이에 떠나간 그곳 정동은, 아버지의 꿈이 있었고, 꿈의 상실이 있었던 곳이며, 가난과 부끄러움과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여인이 있던 곳이었다.
가난 때문에 진달래꽃을 꺾어 가겟집 아주머니에게 연필이든, 책이든, 국수든 바꿔오던 시절에 만난 미연은 손에 든 진달래꽃보다 더 꽃 같았다. 광업소 부소장집의 딸 미연과의 추억은 그렇게 아름답고 애틋하다. 그렇지만 바라보면 황홀하고 마주치면 부끄러웠다.
아버지는 늘 산으로만 다녔다. 광업소 일을 하던 아버지는 그 일을 그만두고 직접 탄광을 발견하기 위해서 무모하게도 \’노다지\’를 캐러 가는 것이다. 여러 해가 흐르는 동안 몇 개의 노두(드러난 석탄 광맥)를 발견하긴 했지만 매장량이 터무니없이 작아 채산성이 없는 것들뿐이다. 결국 아버지는 가족이 기거하는 방에 넣을 연탄 한 장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산에서 사고를 당한다. 어머니는 광업소에 나가 돌이나 불순물을 골라내는 선탄 일을 했다. 아버지 대신 일하는 어머니의 품삯의 일부로 분탄을 가져와 그것으로 연탄을 찍어 내었다. 어머니를 도와 광업소에서 타다 만 연탄을 가져오는 것은 내 몫이었다. 광업소 저탄장에서 분탄들을 긁어모아 집으로 가져오던 날, 맞부딪힌 미연은 그토록 나에게 가난에 대한 부끄러움을 내 마음속의 아픈 풍경으로 기억하게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서울로 이사 가게 된 나는 미연과의 이별에 한 절차를 두고 싶었다. 지난 몇 해 동안, 광업소 부소장인 아버지를 통해서 탄을 보내 준 고마움에 대해서도, 그 동안 부끄러워 말은 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너를 많이 좋아했다는 말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미연에게는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나보다 두 해 위의 형이 있었다. 통학 기차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항상 가슴 옆이거나 얼굴 옆에 가만히 손을 펴보이곤 한다. 그 형의 존재 때문에 부끄러우면서도 애틋한 사랑을 속으로 간직했던 것이다. 이사 가기 전 일요일 강릉에서 열리는 백일장에 같이 참석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그 아이에게 서울에 간다는 말을 한다. \”나중에 큰 사람이 되어서 꼭 다시 와야 해.\”라는 말만을 첫사랑의 언약처럼 간직한 채 나는 서울로 간다.
서울에서 예정도 없이 내려온 이유는, 우연히도 강릉에서 열렸던 작가사인회 때 김미연이 자신의 친구를 대신 보내서였다. 어린 시절 헤어져 잊어버린 줄 알았던, 그녀를 그녀의 친구를 통해서 다시 찾으려 한다. 그녀의 친구 심연희는 나에게 그녀의 과거에 대해 들려준다. 미연은 어린 시절의 나(석하)를 첫사랑으로 여겼으며, 그 두 해 위의 선배란 사촌오빠일 뿐이었다. 미연 역시 대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후 서울 생활 하는 동안 사촌오빠에게 마음을 의지하다가 두 사람의 관계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미연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한 사촌오빠는 결국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자살하게 된다. 그리고 미연은 마치 속죄하듯, 그 집안의 버려진 아이를 맡아 지금까지 혼자 길러온 것이다.
심연희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미연을 다시 만나게 되지만, 그들에겐 또 다른 이별의 절차만이 남아 있었다. 그 동안 서로간의 애틋한 사랑의 정을 확인했을 뿐. 나는 그녀에게 \”꽃을 바치러 다시 오고 싶다.\”고 말하지만, 미연은 훼손되지 않은 서로의 옛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 한다.
이제 다시 서울로 향하는 나에게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의 꿈도, 그 꿈의 상실도, 가난과 부끄러움과 사랑을 통해서 키워 왔던 \’내 마음의 정동\’은 없었다. 그 대신 남아 있는 것은 한 그루의 이발소 그림 같은 소나무와 뒤늦게 이 자리로 자신의 명성을 호객하러 나온 살집 좋은 시비(詩碑)가 장승처럼 이곳을 지키고 있는 정동진과 정동진역뿐이었다.
 
 
 
 
 
 
  <작가의 말>
  그대, 정동진에 가보셨는지요?
  우리 마음속에 가장 비눗방울 같은 모습의 이미지로 비눗방울 속의 바다와 비눗방울 속의 철도가 함께 있는 곳. 비눗방울 속의 간이역과 그 앞에 몸을 눕히고 있는 비눗방울 속의 소나무가 있는 곳.
  그곳에 가면 내가 바로 그 소나무에 몸을 숨기던 비눗방울 속의 그녀이고, 그 비눗방울 속의 그녀가 내 곁의 그녀일 것 같은, 그래서 한번 흘러내리면 다시 오지 않을 모래시계 시간 속에 아프고 안타까워 더욱 비눗방울 속의 것 같은 그들의 사랑까지도 내 것이고 우리의 것 같은 마음으로 밤기차를 타고 찾아가는 곳.
  오늘도 변함없이 누군가의 발밑까지 파도가 다가올 것이고, 그 파도를 밟고 기차가 지나갑니다.
  아주 오랜 예전에 어느 노인은 그곳에서 끌고 가던 암소를 놓고 붉은 바위 끝을 올라가 꽃을 꺾어 어느 부인에게 바쳤습니다.
 지금도 부채끝처럼 바다를 돌아가는 그 ‘헌화로’의 절벽 길은 왼쪽으로는 검푸른 바다로부터 흰 파도가 자동차에 바로 부딪칠 듯 밀려들고, 오른쪽으로는 검붉은 색으로 수십 층의 기암절벽이 층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바다의 높이와 길 높이가 크게 다르지 않아 군데군데 ‘파도주의’ 표지판이 서 있고, 또 어떤 곳은 파도가 쳐올려 뿌린 물기로 한여름에도 눈이 온 듯 길바닥이 하얗게 젖어 있기도 합니다.
  정동진은 그런 곳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만이 정동진의 모든 것은 아니겠지요.
  바른 동쪽의 의미도 모른 채 대대로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사람들.
  목숨을 바쳐 그곳 땅속 깊숙한 곳에서 탄을 꺼내왔던 사람들.
  김을 따고 미역을 따고 고기를 잡기 위해 거친 바다와 싸우고 파도와 싸워온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그것들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어부와 또 뒤늦게 바다로 나가 어부가 되었거나 대처로 막일을 떠난 옛 광부들…….
  지금처럼 그곳에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러, 혹은 우리 마음 안의 비눗방울 같은 환상 속에 왠지 꼭 한번 가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으로 그곳에 간 그대가 밟고 선 곳이 혹시 그런 그들의 삶의 마당이었던 자리, 지금도 그 마당인 자리가 아닌가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대, 정동진에 가면 말이지요.
  그리고 지난겨울, 바쁜 중에도 여러 날 동안 예전과 너무 달라져 내가 다 알지 못할 정동진의 구석구석을 자신의 자동차로 안내해 주고 설명해 준 그곳의 내 오랜 친구 방덕균 형께 감사드립니다. 아마 그의 따뜻한 도움이 없었다면 이 글은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언제 그곳 헌화로에서 소주 한잔 함께 다시 하지요.
이 책을 또 하나의 내 자식으로 꾸며 주신 민음사의 여러 친구들 역시 언제 한번 그곳 헌화로의 바닷길로 함께 가도록 하지요. 술은 내가 준비하고, 그 잔을 채울 파도는 바다가 미리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1999년 여름      이  순  원

작가 소개

이순원

상고를 1,2등으로 졸업하면 한국은행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1972년에 강릉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왼손잡이라 다른 아이들만큼 능숙하게 주판을 놓을 수가 없어서 이순원은 은행원이 되는 대신 고랭지 농사를 지어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이후 학교를 그만두고 대관령으로 올라가 농군이 되지만 고된 농사일을 체력이 감당하지 못해 2년 뒤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그 시기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눈부셨던 시절로 남아 있다. 앞으로도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싶다고 한다.

1978년에 나온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도 소설에는 소설적인 문장이 따로 있는 줄로만 생각했던 그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간명하고 정확한 단문이 얼마나 아름다운 소설 문장인가를 깨닫게 된다.

이순원은 데뷔 이후 왕성한 필력으로 문단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순원 문학은 작가가 비관주의자임을 명료하게 드러내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실현하는 것에 대한 비관이다. 이러한 비관주의는 부정적인 대상물을 찾아 극단적으로 부정적 요소를 과장하고 도드라지게 형상화하거나 역으로 작고 연약하고 위태로운 가치나 존재들에 대한 관심으로 형상화된다.
이순원의 작품세계는 「수색」연작들을 전후로 하여 성격을 달리하는데, 「압구정동」시리즈를 비롯한 「수색」연작 전의 작품들이 현실에 대한 발언의 수위가 높은 작품이고, 연작 이후의 작품들에선 구체적 삶의 체험과 내면세계가 밀도 높게 반영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순원의 후기 작품들이 작가의 사적 체험을 소재로 하면서도 개인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 가치의 차원으로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독자 리뷰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