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도

이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7년 8월 17일 | ISBN 978-89-374-8133-8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5x205 · 352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사회의 제도적 모순에 대한 그 치열한 묘사,‘선’과 ‘악’의 근원을 향한 유미적 탐구―작가 이현의 첫 번째 소설집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해, 그리고 개인과 사회제도의 근원적 모순에 대해 철학적으로 탐구하며,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천착해 온 작가 이현의 첫 소설집 『수라도(修羅圖)』가 나왔다. 「시선(施善)에 대하여」, 「개와 맥주」, 「입석」, 「노조 탄생」, 「대미(大尾)」등 다섯 편의 단편과 중편 한 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의 표제작 「수라도(修羅圖)」는 원고지 520매 분량으로 거의 경장편에 버금가는 역작이다. 문학평론가 권영민은 이 작품을 “근래 보기 드문 본격소설”이라 칭하며, 삶의 경험과 밀도가 소설적으로 잘 형상화되었다고 높이 평가했다.그 밖에 화젯거리는 또 있다. 이현이 작가 이문열의 친형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철학적 깊이와 사유의 폭에 있어서 두 작가는 상당히 많이 닮아 있다. 뿐만 아니라 단편 「시선(施善)에 대하여」는 MBC ‘베스트셀러극장’에서 드라마로 방영한 바 있는데, 인간 행위의 관계를 심성에 근거하여 관념적으로 풀어 나가면서도 결코 해학을 잃지 않는 작가의 탁월한 글쓰기 능력이 돋보인다. 일상에서 겪게 되는 인간의 심성과 합리성의 문제를 소설적 무대로 끌어올려, 미학적 성찰로 구현해 낸 작품집 『수라도』는 독자 여러분에게 삶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하며 다시 한번 사유하도록 하는 하나의 계기로서 작용할 것이다.

편집자 리뷰

■ 인간들의 처절한 싸움터 ‘修羅圖’에서 건져 올린 관념과 사유의 미학적 형상화 「수라도」는 주인공 ‘나’를 중심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얽히며 서로 다른 두 개의 공간이 중첩된 구조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 두 개의 공간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물론 여기서 그려지는 ‘불암사’라는 절이나 세속의 일상적 현실은 모두가 표면적으로는 그 성질이 전혀 다른 세계다. 작가는 공교롭게도 신성의 세계와 세속의 영역을 중첩하면서 이 두 개의 공간을 오가는 주인공의 입장을 때로는 방관자처럼, 때로는 피해자처럼 그려 낸다.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공간이 아수라(=수라)의 현장임을 독자가 알아차리게 만드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외환 위기 상황과 맞물려 ‘나’의 사업을 의도적으로 파멸해 이르게 한 ‘권오달’은 자신의 불우한 삶에서 터득한 악의에 대한 보상 심리로 ‘나’의 선의를 증오하고 제압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어려서 단신으로 월남해 군수사관 생활 끝에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내몰린 ‘박봉출’ 역시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다 아수라의 세계를 지배하는 힘의 논리를 제시하며 신성한 청량의 도장을 타락한 욕망의 공간으로 바꾸어 나간다. 작가 이현은 악신 아수라를 상징하는 두 인물과 주인공 ‘나’를 대칭적으로 묘사하며, ‘선’이란 사실상 관념으로만 존재할 뿐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모든 사회구조가 실제로는 ‘악’의 논리로 지배된다는 다소 역설적인 소재를 통해 선악의 본질을 규명하고 있다.「시선(施善)에 대하여」는 매우 특이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소설은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구걸 장면을 소설적 상황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베풀기’와 ‘구걸하기’라는 인간 행위의 관계를 심성에 근거하여 밝히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행위의 구체성에 그 존재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들인 소설적 장치로서 그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행위의 일방성이다. 동냥을 베푸는 것은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의 상황이나 형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더구나 선행을 베푸는 일이란 그 심성의 착함과도 관계없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언제나 베푸는 자의 자기만족 또는 자기과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구걸하는 자의 경우도 자연스럽게 베푸는 행위에 내재하는 베푸는 자의 자기만족 논리에 편승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모든 것이 상대적 논리에 따라 작용하는 셈이다. ‘구걸하기’와 ‘베풀기’ 사이에 내재한 이 엄청난 허위의식은 인간의 행위와 그 행위를 뒷받침하고 있는 심성의 본질까지도 변질시킨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에 작용하는 인간 윤리라고 작가는 말한다. 또한 「입석」에서는 야간열차의 입석 표를 구입하여 만원 기차에 오른 상황을 통해 사회적 제도와 인간의 관습 문제를 연관시키고 있으며, 학교 운동장에 배구대를 이전 설치하는 작업 과정을 묘사한 「노조 탄생」에서는 일을 ‘부리는 자’와 일을 ‘하는 자’ 사이의 관계를 도식적으로 해부하여 보여 주고 있다. 이렇듯 작가 이현은 인간과 사회제도의 구조적 문제,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치열한 유미적 탐구를 통해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독특한 소설 미학을 펼쳐 나가고 있다.■ 작품 해설 중에서중편소설 「수라도(修羅圖)」는 그 이야기 방식과 문제의식에 있어서, 단편소설이 추구하는 상황성과 장편소설이 의도하는 역사성을 동시에 포섭한 근래 보기 드문 본격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이현은 제도의 합리성과 그것을 운영하는 인간관계의 신뢰성, 이른바 현대사회의 모더니티의 궁극점에 해당하는 것을 문제 삼는다. 또한 인간의 삶에서 궁극적인 영역이 인간 자체임을 강조한다. 등장인물들은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가로막는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자기 정신에 내재해 있는 조화로운 삶에 대한 지향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인물들이 평범한 개인이면서도 문제적인 인물이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결국 이 같은 문제적 인물과의 대화 통로를 다시 열어 두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권영민|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본문 중에서나는 속수무책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기계는 내가 알 수 없는 그의 하수인들에게 낙찰됐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훗날 그는 “그 기계는 어차피 남의 손에 넘어가게 돼 있었고 나도 그들 중 하나임에 불과했다.”고 강변했다. 오래잖아 기계가 사라지고 건물도 다시 옛날처럼 입에 수없이 많은 자물통을 물고 문을 닫았다. 나는 다시 무(無)로 돌아갔다. 노자는 무로서 본체를 삼았다. 장자는 무 이전에는 무무(無無, 없음도 없음)가 있고, 또 그 이전에는 무무무(無無無, 없음도 없음이 없음)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깨달은 것은 무는 유에서 생기고 유는 반드시 무로 돌아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유무(有無)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변화무쌍한 것이라고 자위했다. 나는 오히려 짐을 벗어던진 나무꾼처럼 홀가분한 기분으로 그가 한때 저질렀던 각종 부정행위의 근거 서류를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자의 둔중한 유음을 상기했다. 진인(眞人)은 역경을 억지로 거역하지 않고 성공을 자랑하지도 않으며 아무 일도 꾀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잘못을 해도 후회하지 않고 잘되어도 자만하지 않는다.나는 왔던 길을 되짚어 경춘가도를 달렸다. 팔당호 부근에서 늦은 가을을 보았다. 잎사귀들이 붉게 물들어 지천으로 떨어졌다. 엷어진 햇살 속에는 원인 모를 슬픔이 배어 있었다. 아이들이 부챗살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나는 마치 어머니의 품속을 찾아가는 어린아이처럼 불암사를 향해 한걸음에 달려갔다.―「수라도」, 133~134쪽 “원래 우리의 구걸 대상은 비정한 다중(多衆)의 우발적인 자기포기(自己抛己), 곧 충동자선(衝動慈善)이었습니다. 목적 있는 자선이나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순수한 선의(善意)의 지폐보다는, 분노나 혐오감에 차 내던지고 돌아서서는 사기당한 기분을 느끼는 여럿의 동전이 더 소중한 것이었지요. 그런 면에서 선생 같은 분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거북한 손님이었습니다.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떨어뜨리는 동전이 비슷한 시간대에 거듭해서 내 동냥 그릇으로 들어옴을 확인한 순간부터 솔직히 나는 불안했습니다. 또 무슨 오해가 일어나고 있구나, 오래잖아 그 오해에 호된 값을 치르게 되겠구나, 대개 그런 불안이었는데 과연 그게 적중하고 말더군요, 바로 지난달 선생의 제의였습니다.선생의 가장 큰 오해는 구걸의 본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도덕 교과서의 막연한 관념적 선행(善行)을 아무런 비판 없이 믿어 버림으로써 모든 걸 혼자서 떠맡으신 것입니다. 무모한 짓이며 낭비였지요. 우선 경제적으로도 그동안 선생은 이래저래 40만 원이 훨씬 넘는 돈을 내놓았습니다만 우리에게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선생이 아니었더라도 어차피 내게 그만한 돈이 들어왔을 것이니까요. 누가 준 돈이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면 오히려 나는 선생과의 거래로 다소간의 손해까지 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전에 없던 열등감과 무력감만 느끼게 해 주었을 뿐입니다. 전에는 불특정한 다수에게로 분산되어 별로 느끼지 못했던 그런 감정들이 선생 하나에게로 집중됨으로써 새삼 나를 짓씹어댄 까닭이지요.거기다가 이번 일의 가장 나쁜 결과 중 하나는 내가 좋은 목을 하나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자리지요. 이 자리는 내가 불편한 몸을 끌고 수없는 답사와 통계를 거듭한 끝에 찾아낸, 집에서 가장 가깝고도 벌이가 좋은 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나는 이 자리를 홧김에 팽개치는 게 아니라 선생의 순수함에 기꺼이 바치는 것입니다.―「시선(施善)에 대하여 」, 197~198쪽
■ 이 현(본명 李蓮)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동아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문학사상》에 단편 「시선(施善)에 대하여」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10여 편의 중단편을 발표했다. 특히 「시선에 대하여」는 MBC에 방영된 바 있다.월간 《의료계》 및 미래문학 대표, 《환경일보》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목차

책머리에 수라도(修羅圖) 시선(施善)에 대하여 개와 맥주 입석 노조 탄생 대미(大尾) 작품 해설 인간 심성 또는 합리성의 문제 논하기. 권영민

작가 소개

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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