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기원

조경란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1999년 1월 25일 | ISBN 89-374-0316-1

패키지 양장 · 46판 128x188mm · 212쪽 | 가격 7,000원

책소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언어나 거북이, 고래, 꿀벌, 그리고 무지개송어 같은 세상의 동물들을 혐오했다. 생래적으로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어 제가 태어난 곳으로 어떻게든 타박타박 걸어 회귀하는 것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장 속에서도 주문을 외웠다.” 가족 이데올로기만 부황하게 떠돌 뿐, 가족은 없다는 작가 조경란의 인식은 도저하다. 그 이데올로기의 늪을 응시하며 그는 가족을 포함한 모든 허황한 인간 관계를 서늘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조경란의 섬세한 눈길과 글길은 비판과 해체에서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관계 형성의 진정한 가능성을 탐문해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조경란이 보여준 ‘타자의 얼굴’은 매우 아름답고 진실한 가능성이다. – 우찬제 /문학평론가

편집자 리뷰

『가족의 기원』의 표면적 줄거리는 한 가정의 경제적 파산과 그로 인한 가족의 와해, 거기서 떨어져 나와 부유하는 한 여자의 일상이다. 허영과 맹목적인 ‘가족주의’라는 기반 위에 서 있던 중산층 가정의 몰락을 냉정하고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가족의 기원』에서 집안의 몰락은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경제적 위기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알레고리이면서 동시에 개체를 구속하는 허황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개체가 진정한 자유와 독립을 찾는 길이 무엇인지, ‘가족’이 해체된 곳에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적 유대 관계란 어떤 것인지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조경란은 이 소설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탄탄한 문장력으로 풀어 간다. 『식빵 굽는 시간』으로 제1회 <문학동네 신인 작가상>을 수상하며 “지저분한 설명이 없고 전환이 빨라 ‘생략과 속도’의 기법 활용이 탁월하며 감정의 객관화와 전이, 통상적 어법을 뛰어넘는 표현력을 갖추었다.(도정일)”라는 평가를 받았던 조경란의 문장력은 이번 소설에서 더욱 성숙한 장인적 기량을 발휘한다. 또한 작가가 소설 구석구석에 적절하게 심어 놓은 상징들이 구성해 내는 신선한 이미지는『가족의 기원』이 세태소설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 준다. 특히 실성한 옆집 노인의 몸을 닦아 주고 같이 잠드는 부분의 묘사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것을 소설 속에 형상화해 내는 작가의 힘을 느끼게 한다.

 
 
* 소설의 줄거리
 
내가(유정원) 하는 일은 아무도 찾지 않는 옥탑방에 들어앉아 책을 읽는 것과 일주일에 두 번, 유부남인 애인을 만나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파산했다. 그래서 내가 사는 집의 가장은 나의 여동생이다. 나의 어머니와 막내동생은 내가 옥탑방으로 도피했듯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산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파산을 인정하면서도 예전의 허영을 버리지 못한 채 눈물과 한탄으로만 시간을 보낸다. 막내동생은 대학원에 진학하여 유학을 꿈꾼다.
어느 날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던 동생이 집을 떠난다. 조수미의 높은 목소리와 김치찌개를 좋아하던 스물여섯의 가장은 가족에게 퇴직금의 반을 주고 나머지 반을 가지고 캐나다로 날아간다. 아침 7시에 출근했고 회식이 없는 날에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8시쯤 퇴근해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 놓고 잠이 들던, 한 달에 한 번씩 월급을 받아와 쌀을 사고 전화요금을 지불하던 동생이 가출한 후 나도 집을 떠난다. 나는 동생이 떠난 자리에서 동생이 그랬던 것처럼 엄마의 애인이자 남편으로 살아가기에는 지나치게 냉소적이다. 가족은 없다. 가족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데올로기가 원하는 가족의 모습은 현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집을 나온 나는 우연히 알게 된 카페 여주인의 집에서 살게 된다. 그 연립주택에 사는 동안 나는 주변에서 몇 가지 유형의 집을 관찰하게 된다. 재혼을 앞둔 카페 여주인과 그녀의 딸이 사는 집, 날마다 만취해서 돌아오는 남편과 그 남편에게 이유 없는 구타를 당해야 하는 아내가 사는 집, 바람난 남편과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채지 못하고 성실하게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열심히 문화센터 강좌를 쫓아다니는 아내가 사는 집, 죽은 아내의 시체와 몇 달씩 한 방에서 함께 지내온 노인의 집…….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연어나 거북이, 고래, 꿀벌, 그리고 무지개송어 같은 세상의 동물들을 혐오한다. 생래적으로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어 제가 태어난 곳으로 어떻게든 타박타박 걸어 회귀하는 것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잠 속에서도 주문을 외운다.
왜 사랑한단 말을 한 번도 하지 않는 거니? 라고 애인이 물어 오면 입술을 꼭 다문 나는 시선을 돌려 버린다. 사랑이란 당신이 쏟아 내는 한 방울의 정액이나 당신이 내게 건네주는 숟가락 같은 것들이 아니다. 사랑은 없다. 세상에 없기 때문에 당신은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과 가족을 지탱하는 ‘사랑’이라는 관념, 모두를 부정하며 집을 떠나왔어도 집을 잊을 수는 없다. 보습 학원에 취직해서 용돈을 벌고, 여전히 일주일에 두 번씩 아내 몰래 찾아오는 남자를 맞아들이고,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 전화해서 보험을 들고, 집주인의 딸이 어지럽힌 집 안을 청소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내가 떠나온 가족을 생각한다. 실종이 되었다는 아버지와 빚 독촉일까 두려워 전화를 받지 않는 어머니와 두 언니가 떠난 집에서 막막함에 떨고 있을 막내동생을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주인의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예정보다 빨리 제대를 하게 되고 나는 임시로 살던 그 집을 비워 주어야 할 상황이 된다. 그때 막내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어머니와 동생은 동네 여관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난날에 대해 생각한다.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번 돈을 불리기 위해, 계와 적금에 돈을 쏟아 붓고 딸들을 수제비와 밀가루 빵으로 키우며 하루에 한 알씩 원기소를 먹이던 어머니의 삶에서 남은 것은 무엇인가.
부모의 맹목에 가까운 헌신적인 삶이 딸들에게 독립과 자유를 키워주는 대신 허영만을 심어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시로 살던 집을 나와 현관 열쇠를 집 앞 화단에 집어던져버린 나는 발목에 힘을 주며 걷는다. 두 손으로 껴안듯 트렁크를 붙잡고는 멀리, 어두운 길 저쪽으로 걸어간다.

목차

1.변명들 2.거짓말의 여운 속에서 3.식물의 눈 4.저녁의 지도 5.작가의 말

작가 소개

조경란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전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불란서 안경원>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환절기>, <아름다운 칼>, <당신의 옆구리>등이 있으며, 제1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함으로써 주목받는 신예작가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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