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들 2

원제 The Ambassadors

헨리 제임스 | 옮김 정소영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1년 2월 19일 | ISBN 978-89-374-6376-1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364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심리적 사실주의 기법’으로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원형 제시한 헨리 제임스

 작가 스스로 “어느 모로 보나 가히 최고”라고 평한 후기 문제작

 1980년 국내 초역 이후 40년 만에 새로 번역

 

 

▶ 동시대 작가 중 가장 지적인 인물. ─ T. S. 엘리엇

 ▶ 생존한 작가 중 헨리 제임스보다 더 높은 기준을 가진 작가나 그보다 더 한결같이 위대한 성취를 이룬 작가는 없다. ─ 버지니아 울프

 ▶ 헨리 제임스 이후 소설은 완전히 새로워졌다. ─ 존 밴빌

편집자 리뷰

■ 제임스의 국내 팬들 사로잡을 명작, 인간 심리에 대한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

   헨리 제임스 문학 세계의 정수 드러나는 ‘뉴욕판 서문’ 수록

 

“운 좋게 아직 시간이 있으면 그때가 언제나 적절한 때야. 삶다운 삶을 살라고!”

 

동시대 작가 중 가장 지적인 인물, 20세기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심리적 사실주의 기법으로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원형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헨리 제임스의 후기작 『대사들』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5․376으로 출간되었다. 『대사들』(1903)은 『비둘기의 날개』(1902), 『황금 주발』(1904)과 함께 제임스의 후기 삼부작으로 꼽히며, 작가 스스로 “어느 모로 보나 가히 최고”라고 꼽을 만큼 주제나 구성 면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국내에서 헨리 제임스는 정통적인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쓰이고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초기작 『나사의 회전』(1898)(2020년 4월 개봉된 영화 「더 터닝」의 원작), 『데이지 밀러』(1878)(1974년 동명의 영화 개봉), 『여인의 초상』(1881)(1996년에 동명의 영화 개봉) 등이 영화화되어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제임스의 후기 삼부작은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문학 전공자들에게도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제임스의 난해함은 파편성이나 상징적 연상 등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모더니즘의 실험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사들』은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 놓인 인물들의 내면 심리와 의식의 망을 최대한 드라마처럼 사실적으로 펼쳐 내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 반영되어 있어, 전반부의 난해함을 견디면 어느새 몰입해 헨리 제임스만의 문학성에 흠뻑 빠져들 만큼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이번 전집판에는 헨리 제임스가 그의 삼부작 이후 출간된 스물네 권의 뉴욕판 전집에 새로 쓴 『대사들』의 서문을 수록했다. 서문을 통해 독자들은 이 책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습작 비하인드, 독서 가이드뿐 아니라 헨리 제임스가 생각하는 문학관을 함께 전달받을 수 있다. 제임스는 서문에서 “제대로 인도하기만 하면 소설은 지금도 여전히 가장 독립적이고 가장 탄력적이면서 그 무엇보다 놀라운 문학적 형식”이라 말하며, 『대사들』은 『비둘기의 날개』와 달리 작품을 쓰는 동안 전혀 불안이나 의심에 시달리는 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 주제가 환히 빛났다고 강조한다.

 

“말하자면 심지어 최상의 선(善) — 최상의 선과 관련해서만 명예로움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으니까 — 중에서도 틀림없이 선함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있기 마련이어서, 그것을 환기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믿음을 최고로 고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게는 나만의 주제가 진정 환하게 빛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고백하건대 『대사들』의 주제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그 빛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이 작품이 지금까지의 모든 작품 중에서 ‘어느 모로 보나’ 가히 최고라고 솔직하게 평할 수 있다.”(「뉴욕판 서문」에서)

 

 

■ 어느 여인이 채드를 이토록 세련되게 변화시켰나

 

“기묘하고 구체적인 실체로서의 젊음. 그것은 안쪽만이 아니라 바깥공기에도 있었다.”

 

상속자인 아들 채드를 미국으로 데려오라는 뉴섬 부인의 특명을 받고 영국으로 건너온 스트레더는 우연히 친구인 웨이마시를 알고 있는 마리아 고스트리 양을 만난다. 사교적인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대사’의 임무를 수행하는 스트레더는 파리에서 방탕한 생활을 할 거라고 여겼던 채드가 세련되고 성숙한 젊은이의 모습으로 등장하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채드의 주변을 조사하던 중 스트레더는 그의 변화가 비오네 모녀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19세기적 미국의 가치에 젖어 있던 그 자신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들 앞에 뉴섬 부인이 보낸 또 다른 대사들이 당도하고, 채드가 사랑에 빠진 상대가 비오네 부인인지 그녀의 딸 잔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게 된다.

헨리 제임스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대사들』에서도 지혜롭고 매력적인 여인들이 등장한다. 뉴잉글랜드 울렛이 대표하는 전형적인 미국적 가치를 지닌 스트레더나 일찌감치 파리의 삶에 진입한 채드 역시 유럽에서 만난 여인들로 인해 변화하게 된다. 스트레더의 경우 자신이 지금껏 보고 알던 세계를 넘어설 수 있는 ‘알아보는(see)’ 능력을 회복하는 데 마리아의 도움을 받는다. 인식 능력이 뛰어난 고스트리 양은 21세기를 사는 사람이라고 여겨질 만큼 현대적이고 주체적이며, 독자 입장에서는 작품 속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제임스는 특히 스트레더와 마리아 간의 대화를 통해 사건의 국면과 변화 등을 입체감 있게 독자에게 전달한다. 채드의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비오네 부인은 지적이고 현명한 데다 무모할 만큼 열정적이어서 독자를 매료시킨다. 비오네 부인은 소설 속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채드의 모녀 뉴섬 부인과 그녀를 대변하는 딸 세라와 대결을 벌이는 형국인데, 이는 마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를 계승한 미국의 경직된 문화와 자유롭고 열정적이며 도전적인 유럽 문화와의 대결처럼 펼쳐진다.

제임스에게 깨달음이란 주로 시각적인 작용이기 때문에 스트레더가 파리의 의미와 채드의 본질을 깨닫는 과정은 여러 중요한 장면들로 이루어진다. 밤 11시 스트레더가 공연장 특별석에 들어온 채드를 처음 만나자마자 군데군데 눈에 띄는 흰머리, 몸에 밴 유럽의 세련됨을 발견하고 그것을 변화의 강렬한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장면, 채드의 무리와 만나는 자리에서 가감 없이 각자 의견을 펼치는 토론 분위기에서 감화를 받는 장면, 여러모로 핵심적인 장면인 글로리아니 저택에서의 풍경. 즉 자유, 강렬함, 다양함, 그리고 쏟아지는 이미지의 공격 등에서 유럽의 종합적인 특성을 간파해 내는 장면, 파리의 한적한 시골 강가에서 노를 저으며 내려오는 채드와 그의 여인을 스트레더가 우연히 발견하는 장면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치밀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눈에 보이듯 선명한 하나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그것은 경이로운 예술의 세계를 영원히 비추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횃불 중에서도 특별한 최상의 불꽃이었을까, 아니면 그보다는 인생의 담금질로 단련된 그만의 예리함으로 파 내려간 길고 곧은 갱도였을까? 이보다 기이한 일은 없을 것이고, 의심할 바 없이 누구보다 예술가 자신이 놀랄 일이었지만, 그로서는 정말로 그 순간 자신의 임무 수행에서 엄청난 시험에 처한 듯했다. 글로리아니의 매력적인 미소에 담긴 깊은 인간적인 노련함 — 아, 그 뒤의 무시무시한 삶이라니! — 이 스트레더의 능력을 시험하듯이 불꽃처럼 그에게 내리꽂혔던 것이다.”(1권 254~256)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주 잘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노를 잡고 있는 한 남자와 배 뒤편에 분홍색 양산을 들고 앉아 있는 여성을 태운 보트 한 척이 굽이를 돌아 모습을 드러내며 다가왔던 것이다. (……) 얼굴을 가리려는 듯이 돌려서 들고 있는 탓에 그 눈부신 광경 속에서 우아한 분홍색 점을 이룬 그 양산을 들고 있는 부인은 그가 아는 사람이었다. 그건 너무나 엄청난 일이어서 100만 분의 1의 확률도 안 될 정도였지만, 그 부인이 아는 사람이라면 여전히 등을 돌린 채 가만히 있는 저 신사, 목가적 풍경 속 셔츠 바람의 남자 주인공인 저 신사, 그녀에 이어 함께 놀랐던 저 신사는 그 못지않게 놀랍게도 바로 채드였다.”(2권 251~252)

 

 

■ 누군가를 온전히 돕는다는 것, 삶을 충실히 ‘보는’ 것에 대한 세밀한 성찰

 

『대사들』의 주인공인 램버트 스트레더는 어떤 주인공보다 제임스와 가깝게 느껴진다. 이전 소설들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 워낙 많기도 하고 중년의 미국 남성은 특히 헨리 제임스의 작품 세계에서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스트레더와 작가인 제임스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신혼여행을 제외하고 내내 뉴잉글랜드 소도시에 박혀 살았던 스트레더와 달리 제임스는 어려서부터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인생의 대부분을 유럽과 런던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스트레더는 『아메리칸』의 주인공 뉴먼의 중년 판, 『여인의 초상』의 이사벨 아처의 남성 판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리고 이는 헨리 제임스가 초기에 다루던 ‘국제 주제’와 맞닿는다. 제임스는 신흥 자본주의에 경도되어 즐길 줄 모르고 부를 과시하는 경직된 미국 문화와 세련되고 자유로운 문화적 토양을 지닌 유럽의 문화를 대비하며, 새로운 시대를 이끌 진정한 가치와 문화에 대해 상기시킨다. 『대사들』에서는 이러한 문화를 이후 세대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표출된다.

 

“가능한 한 최대로 살아. 그렇게 안 하는 건 잘못이야. 자네 자신의 삶을 살고만 있다면 딱히 어떤 삶을 사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자네 자신의 삶을 살지 않았다면 도대체 지금까지 얻은 게 뭐란 말인가? (……) 그런데 이젠 늙어 버렸지. 어쨌든 지금 내가 보게 된 것에 비해선 너무 늙었어. (……) 잃어버린 건 잃어버린 거지. 그건 분명히 해야 해. (……) 그렇지만 여전히 자유에 대한 환상은 있지. 그러니까 나처럼 그 환상에 대 한 기억도 없이 살지는 말게. 난 결정적인 시기에 너무 어리석었던지 아니면 너무 똑똑했던지 환상을 가진 적이 없어. 어느 쪽인지는 잘 모르겠네. 물론 지금 내 경우는 과거의 실수에 대 한 반발이고 당연히 반발심에서 하는 얘기는 늘 그 점을 고려해서 받아들여야지. (……) 나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만 아니라 면 뭐든 원하는 대로 하게. 그건 정말 실수였거든. 삶다운 삶을 살라고!”(1권 279~281쪽)

 

스트레더는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종국에는 자신의 안정된 미래를 포기하면서까지 젊은 청년 채드의 사랑을 지켜 주려 노력한다. 구세대가 놓친 삶다운 삶의 가치를 채드로 대변되는 이후 세대가 ‘지금’ 누리기를 바라는 스트레더의 의지, 그래서 노후가 보장된 안정된 삶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잃어도 삶의 총체성을 ‘보는’ 주체가 되었음에 만족하는 그의 진정성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스트레더 자신에겐 ‘이미 늦어 버린’ 어떤 것 때문에 치르는 대가로는 너무 커 보이지만, 이제 그는 무엇보다 ‘볼 수 있게’ 되었으므로 이것은 포기나 체념이 아니다. 헨리 제임스에게는 뭔가를 ‘하는 것’보다는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가 보고 분별하는 시각을 가진 인물이 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1980년 국내 초역 이후 40년 만에 새로 번역된 헨리 제임스 최고작

    영문학자 정소영의 섬세한 번역으로 ‘심리적 사실주의 기법’의 감동 전달

 

이번에 출간된 『대사들』은 국내 초역은 아니다. 1980년대 영문학자 장왕록 교수가 번역해 소개한 바 있으나 절판되었고, 사십 년이 지나 다시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독자들이 헨리 제임스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대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꼼꼼하고 섬세한 번역으로 정평이 난 영문학자 정소영의 기나긴 노력 끝에 맺은 결실이다. 『대사들』이 작가 스스로 공언하듯, 헨리 제임스의 최고작인 이유를 몇 가지 꼽자면, 앞서 소개했듯 그의 소설 중 이례적으로 중년 남성이 주인공으로 전면에 나서서 이야기의 국면과 장면을 이끌었다는 점, 일인칭 시점의 사건 전개와 설명적인 초기작과는 달리, 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주인공과 작가와의 거리를 두고, 작가가 ‘장면’을 묘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서문에서 밝히듯, 오직 주인공의 시선으로, 또 묘사할 수 없는 인물의 심리를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목격하듯 묘사하려는 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야기꾼에게 있어서 이야기 자체에 대한 관심이란 언제나 부정할 수 없는 결정적 요소이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큰 이점이다. (……) 최상의 상태일 때 이야기는 스스로 밝게 빛을 내며 나타나고, 최후의 결정적인 앎을 통해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 하나의 중심만을 취해 그것을 모두 주인공의 의식의 범위 안에 둔다는 그 특성에 비추어 보면 형식과 압축의 문제가 모두 미미하게 느껴졌다. 문제의 핵심이 무엇보다 이 인물의 내적 모험에 있었으므로, (……) 이런 것들을 보여 주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그에 대한 스트레더의 인식, 오직 그의 인식뿐이어야 했다.”(「뉴욕판 서문」에서)

 

타락한 파리의 여성으로부터 뉴섬 부인의 아들 채드를 구하기 위해 대사의 임무를 맡고 유럽으로 온 스트레더. 그러나 그는 유럽에서 삶다운 삶을 체험하게 되고 파리의 감각적 문화를 몸소 체험하며 스스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스트레더가 19세기적 감성에 매몰되어 마비된 채 살아온 자신의 삶을 해방시키고 진정한 내면의 자유를 되찾는 과정을 제임스는 온전히 주인공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가 접하는 인물의 심리와 사건을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묘사하겠다는 의지로 기술하였고, 그 노력의 결실이 바로 『대사들』이다. 인간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사실적으로 언어화하겠다는,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헨리 제임스는 이 작품을 통해 시도했고, 그 모더니즘적 시도를 통해 작가는 ‘심리적 사실주의 기법’이라는 그만의 자산을 성취한다. 현대 독자가 읽기에 조금 난해할 수 있는 이 작품을 지금 독자들에게 권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렇게 읽기 빡빡한 문체에 신나는 사건도 없으면서 분량도 상당한 이 작품은 아무래도 간결하고 짧은 글을 선호하는 요즘 추세와는 잘 맞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스트레더의 여정에 공감할 독자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는, 세상이 어떻게 변화든 그저 고답적인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그런 분별력이 우리의 삶에 너무 소중하다고 믿기 때문이다.”(「작품 해설」 중에서)

 

 

■ 한스 홀바인의 명작 <대사들>로 표지 연출, 제임스표 문학적 감각과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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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홀바인, 「대사들」(153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대사들』은 사십 년 만에 새로이 번역된 헨리 제임스의 최고작인 만큼 제작에 각별히 신경 썼다. 표지 이미지의 경우, 한스 홀바인의 동명의 작품인 「대사들」을 삽입했는데, 이는 이 작품 안에 담긴 바니타스(Vanitas)의 상징적 의미가 작품의 주제와 부합하기 때문이다. 왕의 특명을 받은 이들답게 화려하게 치장하고 진귀하고 값비싼 물건들에 둘러싸여 당당히 정면을 마주보고 서 있는 두 명의 대사들. 그들 사이에 놓인 길쭉하고 기이한 이미지는 해골의 형상을 하고 있다. 영원히 부와 영예를 누릴 것 같은 대사들 사이에 놓인 해골의 이미지는 이들의 명성이 헛됨을, 결국 죽음과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헨리 제임스는 그 어떤 작가보다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삶의 본질에 대한 내밀한 성찰을 작품을 통해 보여 주었다. 뒤늦게 깨달은 삶의 가치를 알아보고 이전과 다르게 살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안정된 부와 명성을 포기한 스트레더의 면모가 작가의 이러한 정신을 잘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삶의 겉치레보다 ‘알아보는’ 가치를 중시하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홀바인의 작품이 전하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무엇보다 국제적 주제에 관심을 기울인 제임스이기에, 스트레더의 이러한 행위는 구세대가 신세대를 위해 행하는 실천의 의미를 내포한다. 삶을 삶답게 사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몹시 중요하기에 이 책을 통해 그 여정에 대해 응원과 격려를 받기를 바라 본다.

 

 

■ 본문 중에서

 

“당신이 실패한 사람이라 정말 다행이에요. 그래서 내 눈에 띄었군요! 요즘 그것 말고 다른 건 다 끔찍해요. 주위를 둘러보세요. 저 모든 성공들을요. 정말 맹세코 그중 하나가 되고 싶은 거예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저를 보세요.” 그 말에 잠시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알겠어요.” 스트레더가 대답했다. “당신도 거기 들어 있지 않군요.”(1권 84~85쪽)

 

“어두컴컴한 구석에 오랜 세월 묻혀 있던 얼마 안 되는 씨앗들이 파리에서 마흔여덟 시간을 보내고 나자 다시 싹트기 시작했다. 어제 하루는 정말이지 오래전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것들이 다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들썩거리며 살아나는 것을 실감한 시간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문득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일이나 나무에 달린 열매만큼이나 싱싱한 레몬색 표지의 책들을 투명한 유리판 너머로 갈망하듯 뚫어지게 바라봤던 기억까지 돌풍처럼 순식간에 몰려들었다.”(1권 132쪽)

 

“스트레더는 스페인을 여행하던 여행객이 시계에서 보았다는 라틴 문구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그것을 채드의 첫째, 둘째, 셋째 여성에게 적용해 보았다. Omnes vulnerant, ultima necat. 모두가 상처를 주지만 마지막 것이 끝장을 낸다. 마지막 여성이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다.”(1권 140쪽)

 

“빨간 머리칼에 다리가 긴 그들은 좀 예스러우면서도 이상야릇하고 익살스럽고 사랑스러웠다. 그곳이 미국 영어로 시끌벅적했는데, 그로서는 그 언어가 그렇게 두드러지게 현대 예술에 적합한 언어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예술이라는 현악기를 맹렬하게 울려 대면서 멋진 곡조를 뽑아내고 있었다. 이 삶의 면모에 탄복할 만한 순진성이 담겨 있었다.”(1권 177쪽)

 

“제가 볼 때는 당신은 — 아니면 울렛의 사람들은 — 별것 아닌 몹쓸 여자가 분명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별것 아닌 몹쓸 여자는 절대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녀는 힘주어 단언했다.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아닌 것 같아도 누군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게 기적이라는 사실은 인정했으니 그 사람은 그냥 아무나일 수 없는 거죠. 그런 기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뭐겠어요?”(1권 225쪽)

 

“그의 면전에 거역할 수 없는 생생한 형태로 있는 그녀가 바로, 지금까지 그렇게 자주 들어 보고 책에서 보고 상상도 해 봤지만 한 번도 실제로 만난 적은 없는 그런 드물고 진기한 여성이라는 느낌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떠올라 이 모든 것의 배경을 이루었다. 그 존재 자체, 그 표정과 목소리만으로, 그녀와 이 시간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상황이 일단 눈앞에 펼쳐지기만 하면 그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바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1권 320쪽)

 

“그 두 사람이 상당히 젊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가장 싱싱할 때라든가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한창인 나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런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문제이니까. 중요한 건 나한테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요, 나의 젊음이지요.”(1권 422쪽)

 

“울렛에서는 내 또래의 남자가, 특히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남자들이 희한하게도 늘그막에 특이하거나 이상적인 것을 찾아 나서는 이상한 돌발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지켜본 바에 따르면 울렛에서 평생 살다 보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 같아요.”(2권 81쪽)

 

“어쩐지 모든 일이 나한테 떨어질 거란 ‘감’이 와요. 그래요 내가 빠짐없이 그 일에 연루될 것이고, 그 일을 위해 이용되는 거예요!” 그러한 미래를 넋을 잃고 보는지 말이 없다가, 시적으로 이 상황을 표현했다. “마지막 남은 내 피 한 방울까지!”(2권 108~109쪽)

 

“그녀는 과연 뛰어내릴 것인가? 뛰어내릴 수 있을 것인가? 거기는 안전한 장소일 것인가?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창백한 얼굴빛과 꽉 다문 입술, 의식적인 눈길 등에서 그런 질문들이 연상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당면한 주요 문제로 돌아왔다. 그녀는 결국 매수될 것인가?”(2권 135쪽)

 

“이 시간 이 장소에 무엇보다 가득한 것은 자유로움이었다. 그로 하여금 아주 오래전 놓쳐 버렸던 자신의 젊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 자유로움이었던 것이다. 어쩌다 젊음을 놓쳐 버렸는지,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왜 그게 마음이 쓰이는지는 이제 와서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었다.”(2권 195쪽)

 

“오래전 놓쳐 버린 젊음.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이 가득하지만 또한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만질 수 있고 맛볼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도 있을 뿐 아니라 그 깊은 숨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는 기묘하고 구체적인 실체로서의 젊음. 그것은 안쪽만이 아니라 바깥공기에도 있었다.”(2권 196쪽)

 

“갈수록 점점 크게 보이는 거죠. 점점 불어난 끝에 이제 드디어 그 전체를 볼 수 있게 된 거고요.”

“전체를 보게 되었죠.” 차갑고 푸른 북극해에 떠 있는 거대한 빙산을 응시하듯이 시선을 고정한 채 그가 별 생각 없이 되풀이했다. 그러더니 좀 뜬금없이 외쳤다. “얼마나 웅장한지!”(2권 231쪽)

 

“그는 최근 자신의 행적을 보여 줄 만한 이미지 하나를 곧바로 떠올렸다. 베른에 있는 오래된 시계의 인물상이 그것이었다. 그것은 정해진 시간에 시계탑 한쪽에서 튀어나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춤을 추며 정해진 길을 돌아 다른 쪽으로 들어간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춤을 추듯 정해진 길을 걸어왔고, 이제 겸손하게 물러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2권 331쪽)

목차

1권

 

뉴욕판 서문 7

 

1부 37

2부 87

3부 147

4부 197

5부 249

6부 307

7부 364

 

2권

 

8부 7

9부 69

10부 129

11부 191

12부 265

 

작품 해설 338

작가 연보 351

작가 소개

헨리 제임스

1843년 뉴욕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지원으로 유럽 등지를 여행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62년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으나 학업을 접고 1864년 첫 단편 소설인 「실수의 비극」을 발표했다. 이후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을 여행하며, 1871년 첫 소설 『파수꾼』을 출간했다. 1875년 파리로 이주한 그는 투르게네프, 플로베르, 에밀 졸라, 알퐁스 도데 등과 만나 교류하며 유럽 예술의 영향을 받았으며,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발전시켰다. 1877년 『아메리칸』에 이어 『유럽인들』(1878), 『데이지 밀러』(1879), 『여인의 초상』(1881), 『나사의 회전』(1898)을 발표해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호평을 얻었다. 이후 제임스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집필에 몰두해 『비둘기 날개』(1902), 『대사들』(1903), 『황금 주발』(1904) 등 총 스물두 편의 장편 소설과 113편의 단편 소설, 그리고 수많은 비평, 여행기, 희곡, 자서전 등을 남겼다. 1904년 미국으로 돌아가 곳곳을 여행하며 『미국 기행』(1907)을 썼고 1911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1912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다. 1915년 영국으로 귀화한 후 이듬해 영국 국왕 조지 5세로부터 명예 훈장을 받았으며, 같은 해인 2월 28일 일흔세 살의 나이로 런던에서 생을 마쳤다. 헨리 제임스의 작품은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체와 아울러, 사실에 대한 설명에서 나아가 등장인물의 심리와 국면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기법으로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을 받는다. 소설은 “가장 독립적이고 가장 탄력적이며 그 무엇보다 놀라운 문학적 형식”이라 여긴 헨리 제임스의 문학관은 T. S. 엘리엇, 버지니아 울프 등 수많은 후세대 작가들에게 문학적 영감을 제공했다.

정소영 옮김

번역가. 영문학자. 용인대학교 영어과에 재직했으며, 옮긴 책으로 윌리엄 모리스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에릭 H. 클라인의 『돌 세 개와 꽃삽』, 너새니얼 호손의 『일곱 박공의 집』, 베시 해드의 『권력의 문제』, 유도라 웰티의 『유도라 웰티』, 진 리스의 『진 리스』, 권헌익의 『전쟁과 가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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