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의 문명사

만리장성에서 미국-멕시코 국경까지, 장벽으로 본 권력의 이동과 세계 질서

원제 Walls (A History of Civilization in Blood and Brick)

데이비드 프라이 | 옮김 김지혜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0년 10월 30일 | ISBN 978-89-374-1782-5

패키지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408쪽 | 가격 20,000원

책소개

장벽, 누가 그것을 세웠는가?
‘언택트’ 시대에 읽는 연결과 단절의 세계사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과 그에 맞선 방역, 격리는 삶의 방식을 크게 바꾸고 있다. 이제 우리는 사소한 습관 속에서, 타인과 맺는 관계 속에서 안전이라는 가치를 재발견한다. 역사를 통틀어 보면 벽 안쪽에서 안전을 추구해 온 사람들이 보인다. 교활한 적들을 피해 벽 안에서 구원을 찾은 사람들이다.
『장벽의 문명사』는 유라시아 대초원에 숨겨진 장벽들로, 로마 병사들이 지키는 제국 최북단의 방벽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할리우드 스타들의 낙원 말리부로 우리를 이끈다. 스파르타인들의 기괴한 영웅주의에서, 베를린을 무대로 한 스파이 영화에서 우리는 벽과 그 시대정신을 발견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벽과 우리 사이에 있는 놀라운 연결 고리를 점진적으로 드러내고, 흥미로우면서도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장벽이 문명을 가능하게 했는가? 우리는 벽 없이 살 수 있는가? 오늘날 장벽을 쌓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 대학의 역사학 교수이자 장벽에 관한 독보적 전문가로 알려진 데이비드 프라이가 벽(wall)이라는 주제를 통해 지난 수천 년간의 인류 문명사 전체를 조망한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4000여 년 전에 세워진 고대 시리아의 장벽에서 출발해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 중국, 로마, 몽골, 아프가니스탄, 미시시피강 하류, 중앙아메리카를 거쳐 오늘날의 미국-멕시코 국경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그동안 우리가 간과해 온 벽의 양면성을, 즉 안전을 보장하는 폐쇄성과 교류를 촉진하는 개방성을 모두 강조한다. 또한 전염병과 마약, 불법 이민자 같은 가장 최근의 불안 요소들이 어떻게 21세기에 벽의 부활이라는 르네상스를 불러왔는지 주목한다.

편집자 리뷰

21세기의 새로운 만리장성: 트럼프 장벽

오늘날 많은 미국인이 남쪽 국경 너머를 의심 어린 눈초리로 경계한다. 그곳에서 온갖 좋지 않은 것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장벽을 세워 국경을 봉쇄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최근에는 그 거리 두기의 대열에 도널드 트럼프가 합류했다.
만리장성은 엄밀히 따지면 시황제만의 작품이 아니다. 시황제는 이미 존재하던 장성들을 연결했을 뿐이다.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이전에 세워진 장벽이 국경 곳곳에 있다. 여러 미국 대통령이 관련 법안에 서명하고 힐러리 클린턴 같은 유력 정치인들이 지지해 준 덕택이다. 트럼프의 장벽 건설 현황을 살펴보면 새로운 구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기존의 장벽을 보수하고 대체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다면 2200여 년 전의 시황제와 오늘날의 트럼프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피와 벽돌로 문명을 쌓아 올리다: 장벽 건설자들

최초의 장벽 안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전사일 필요는 없음을 깨달았다. 많은 남자가 무기를 내려놓고 전사의 의무에서 해방되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장벽이 없었다면 중국의 학자도, 바빌로니아의 수학자도, 그리스의 철학자도 없었을 것이다.” 그 어떤 발명도 문명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벽보다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벽 안의 삶도 녹록하지는 않았다.
성벽 안에서 남성들은 허약해졌다. 수메르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조차도 도시 바깥에서 온 엔키두의 야성을 꺼렸다. 성벽 밖은 위험으로 가득했다. 청동기시대의 어느 왕은 자기 신세가 ‘새장에 갇힌 새’와 같다고 한탄했다. 스파르타인들은 성벽을 가리켜 ‘여성의 처소’와 다를 것이 없다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벽 안에 웅크린 채 불안에 떨던 사람들이 바로 문명을 만든 사람들이었다.
최초의 문명을 건설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도시를 토벽으로 둘러쌌다. 진흙은 점토판을 만드는 데는 유용했지만, 벽돌을 만드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다. 비가 내리면 벽돌에서 진흙이 흘러내려 배수로를 막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진흙 바구니를 이고 나르며 벽 쌓기를 멈추지 않았다.
벽 쌓는 일이 고단하기로는 중국도 만만치 않았다. 한 여인이 사흘 밤낮을 통곡해 만리장성을 무너뜨린 뒤에도 중국인들은 건설을 멈추지 않았다. 한 무제 시절에도, 약 1500년 뒤의 명 왕조 치하에서도 중국인들은 여전히 장성을 쌓고 있었다.
로마인들도 벽을 쌓는 사람들이었다. 아리스티데스는 ‘부서지지도 허물어지지도 않는’ 로마의 장벽을 찬양했다. 그에 따르면 장벽으로 보호받는 로마 제국은 학문과 미술, 과학의 낙원이었다. 과장되기는 했어도 어느 정도는 사실을 담은 주장이었다. 장벽에는 큰 수고를 들일만 한 가치가 있었다.


벽의 유용성에 관하여: 난공불락이라는 신화

무너져 내리는 벽만큼 이해하기 쉽고 직관적인 메시지가 있을까?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만화 「진격의 거인」에서, 영화 「퍼시픽 림」에서 벽은 결국 무너지고 만다. 벽의 붕괴와 함께 외부의 위협이 들이닥치고, 위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1453년, 그 운명의 날에도 벽은 무너졌다. 오스만 제국의 군대는 파괴된 성벽을 넘어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내로 진입했다. 위대한 도시의 함락이라는 주제는 곧 많은 작가를 사로잡았다. 특히 오스만 측의 신무기인 대포는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헝가리인 기술자가 만든 무시무시한 대포 앞에서 옛 시대의 유물인 낡은 성벽은 무력하게 묘사된다. 그 덕분에 이 삼중 성벽이 도시를 1000년 가까이 지켜 냈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되곤 한다. 저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벽이야말로 그 의도를 가장 성공적으로 달성한 벽이라고 말한다.
만주족은 중국을 정복했지만, 만리장성을 정복하지는 못했다. 산해관을 지키던 명의 장군이 문을 열어 준 뒤에야 비로소 장성을 넘을 수 있었다. 오늘날 관용어로 살아남은 마지노선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기갑부대는 마지노선을 피해 우회했을 뿐,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마지노선을 지키던 프랑스군은 독일군을 상대로 선전하다가 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마지못해 항복했다.


무엇을 막을 것인가?: 새로운 개념의 장벽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살던 시대에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급격한 감소는 큰 문제였다. 조지 워싱턴은 사라져 가는 인디언들을 보호하려면 ‘중국식 장벽’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향해 장벽을 지어야 한다는 이러한 발상은 장벽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서베를린은 동독 영토 한가운데에 떠 있는 자본주의 진영의 섬이었다. ‘자유’를 찾아 떠나는 동독인들에게 서베를린은 매력적인 탈출구였다. 1961년의 어느 일요일까지는 그랬다. 동독 정부는 자국민의 이탈을 더는 두고 보지 않았다. 철조망과 콘크리트로 구성된 장벽이 서베를린을 통째로 에워쌌다.
처음에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베를린 장벽을 반겼다. “그 장벽은 전쟁보다 훨씬 나은 지옥이다.” 장벽은 그 당시에 서방의 지도자들이 우려하던 핵전쟁보다 훨씬 나았다. 그러나 언론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곧 베를린 장벽은 냉전의 상징으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 되었다.
장벽을 건설함으로써 동독 정부는 체제의 우월성을 두고 벌인 경쟁에서 패했음을 시인한 셈이 되었다. 그 장벽은 공산주의가 얼마나 억압적인지 생생하게 보여 주는 증거였다. 저자는 베를린 장벽이 동독 정부에 해롭기만 했던, 역사상 가장 쓸모없는 벽이었다고 단언한다.


장벽 건설은 계속된다: 우리 시대의 장벽들

1989년의 요란한 희극과 함께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그리고 왕년의 스타 데이비드 해셀호프만큼이나 빠르게 잊혔다. 베를린 장벽의 콘크리트 파편은 기념품에서 흉물로 전락했다. 이제 장벽을 언급하는 것은 촌스럽고 비효율적인 일로 보였다.
이처럼 쇠락하는 듯했던 장벽은 놀랍게도 21세기에 들어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인도,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케냐, 튀니지, 리비아, 에콰도르 등에서 새로운 장벽이 솟아나고 있다. 난민의 대량 유입, 테러, 전염병, 마약 등에 대한 두려움이 장벽 건설을 전 세계적 현상으로 만들었다. 트럼프 이후에도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의 건설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통념적으로 다리는 연결의 상징으로, 장벽은 단절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오히려 반대인 사례를 발견하게 된다. 로마인들은 강 건너편을 침공하기 위해 다리를 건설했다. 그에 반해 저자는 장벽이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긴장을 완화하고 개방과 평화를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스파르타인들이 성벽을 거부했기에 오히려 자유를 잃었음을 떠올려 보면 장벽의 역설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장벽 건설은 다음과 같은 선택지만을 제시하는 듯하다. 고립될 것인가, 고립시킬 것인가? 무엇을 고르든 고립은 피할 수 없다. 각국이 유형과 무형의 장벽을 쌓아 올림으로써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는 지금, 이 책이 보여 주는 통찰력이 필요한 이유다.

목차

선별 연표

서장: 황무지를 막아선 벽

1부 건설자와 야만족

문명의 산파: 역사 여명기의 장벽 건설자들
─ 고대 서아시아 (기원전 2500~기원전 500년)
벽을 쌓을 것인가, 말 것인가?
─ 그리스 (기원전 600~기원전 338년)
‘통곡’
─ 중국 (기원전 214년)
장벽 건설자와 전사: 벽 너머의 삶
─ 유라시아 (기원전 2000~기원후 1800년)

2부 위대한 장벽의 시대

위대한 장벽 시대의 서막: 알렉산드로스의 문
─ 시대를 초월한 민담
장벽이 유라시아를 연결하다
─ 중국과 중앙아시아 (기원전 100년 무렵)
하드리아누스 방벽
─ 로마 제국 (117~138년)
잃어버린 낙원
─ 로마 제국 (300년 무렵)
장벽 안의 무방비
─ 로마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 (400~600년)
장벽의 주기와 폭군들
─ 중국 (280~1600년)
장벽과 묵시록
─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500~1300년)

3부 전환되는 세계

끔찍한 포격
─ 콘스탄티노폴리스 (1453년)
페일 너머
─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러시아 제국 (1494~1800년 무렵)
상심의 요새
─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선사시대~1800년)

4부 상징들의 충돌

최후의 전투
─ 중국과 프랑스 (1933~1940년)
‘전쟁보다 훨씬 나은 지옥’
─ 베를린 (1961~1989년)

종장: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나 네 울타리를 허물지는 말라.”
─지구 (1990~현재)

감사의 글
각 장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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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데이비드 프라이

고대 후기를 전문으로 하는 역사학자로 듀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 대학의 교수로서 고대사와 중세사를 가르치고 있다. 영국과 루마니아에 있는 로마 제국의 고대 국경을 발굴하는 등 국제적인 고고학 발굴 작업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장벽의 역사에 관한 독보적인 전문가로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과 학자 모두를 위한 글을 쓰고 있다.

김지혜 옮김

역사 교육과 서양사를 전공했고, 현재는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역사서들을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시인을 체포하라』와 『주변부의 여성들』(공역), 『혁명 전야의 최면술사』, 『각주의 역사』,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면화의 제국』, 『역사의 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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