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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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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김지녀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0년 10월 30일

ISBN: 978-89-374-0896-0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48쪽

가격: 10,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276

분야 민음의 시 276


책소개

익숙한 풍경의 리얼리티 속에서
낯선 새의 울음처럼 튀어 오르는 모더니티


목차

1부 너의 등 뒤로 미끄러지듯이 닫히는 문
정물화 15
정착 16
나무와 나 나무 나 18
일방통행로 20
유리컵 22
폭풍우 24
레인룸 26
굉음 27
1846년 살롱의 저녁 29
수단 항구 32
무성영화 33

2부
오늘 여러 장 37
검은 봉지 38
꽁치 40
패널들과 아침을 42
팔레트 속 44
동의를 구합니다 46
우리 모두의 못 48
모기의 구체성 50
참여시에 대한 논문을 읽다가 52
밥을 주세요 54
역방향 55
폭이 좁고 옆으로 긴 형식 58

3부
과오일기 63
쿠바에서 방배동으로 가는 버스 64
두드리는 삶 67
같다 70
누군가 내 창문을 다 먹어 버렸다 73
그가 며칠째 전화가 없다 76
일광욕 78
사람의 힘으로 끊어 낼 수 없다는 말 80
스승의 날 82
개미에 대한 예의 84

종이 87
밤이 깊을 림(㝝) 89

4부
모레이가 물고기를 셉니다 93
스너글러 L의 손이 커서 95
악취감식가 스니퍼 97
날씨 변경 감시자 99
도그 워커 101
거미 랭글러 103
코르크 엽서 105

5부
깨무는 버릇 109
미래 110
흐리고 곳곳에 비 112
모래 축제 114
착시 116

머리칼 118
미래 120
고양이의 눈 속에서 밤이 길어진다 122
점 124
묘지 산책 125

작품 해설–박혜진(문학평론가)
입속의 살찐 잎 127


편집자 리뷰

첫 시집 『시소의 감정』과 두 번째 시집 『양들의 사회학』을 통해 섬세한 인식과 탁월한 형상화 능력을 인정받아 온 시인 김지녀의 세 번째 시집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가 민음의 시 276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집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는 익숙한 멜로디의 악장으로 구성된, 들은 적 없이 웅장하고 낯선 교향곡과 닮았다. 시인은 능숙한 지휘자로서 각각의 시편들을 부드럽게 연주하고 적소에서 변주한다. 안전하고 아름다운 음역대로 연주되는 피아노곡에 갑자기 날카롭고 위태로운 바이올린이 등장하는 것처럼. 잔잔해 보이는 수면 아래 정체 모를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처럼. 정연함을 아는 사람이 건네는 균열은 우리의 일상에도 파문을 일게 한다. 김지녀의 시는 지상에 발붙인 생활 속에서 유유히 머물다가, 불현듯 상공의 예술을 향해 몸을 띄우거나 비튼다. 마치 정물처럼 앉아 있던 새가 한순간 날아오르듯 시가 전개되는 그 자연스럽고도 예측 불가한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단정한 리얼리티의 함정

묘사하기가 어렵다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정착」에서

시집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에 나타나는, 시 속 생활의 풍경들은 단정하고 미덥다. 마치 정확한 박자에 정확한 건반을 누르는 왼손의 반주 같다. 단순해서 틀리기 쉽고 그래서 더 어려울지도 모르는 이 기본기를 시인은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활용한다. “공원에는 나무와 나”(「나무와 나 나무 나」)뿐인 상황이나 “베이커리로 향하며/ 단팥빵을 생각”(「일방통행로」)하는 순간, “냉동실에 넣어 둔 지 오래”된 “검은 봉지”(「검은 봉지」) 같은 사물 들은 언제든 우리 주변에서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아는 골목, 아는 공원, 아는 집, 아는 꽃병, 아는 냉장고, 아는 텔레비전이 등장할 때 우리는 편안함과 친숙함에 이완된다. 그러나 시인이 이용하는 리얼리티라는 반주는 우리를 조금 더 속수무책 시로 빠뜨리는 함정과도 같다. 익숙하고 아름다운 골목의 풍경에 푹 빠져 걷다가 골목이 끝나는 코너가 꽤 급한 커브라는 것을 알게 될 때의 놀라움 같은 것이 이 시집 안에는 있다. 가장 잘 알기에 안전하다고 믿었던 골목에서 저도 모르게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당혹스러움, 그런 것은 삶의 진실과 닮아 있기도 하다.


 

■중력을 이기고 떠오르는 모더니티

가장 안전한 곳에서 묘연해지고 있어
-「유리컵」에서

생활이란 가만히 있어도 배가 고프고 땀이 흐르는, 그래서 밥을 지어 먹고 땀을 닦아 내야 하는 일이다. 필요와 의무로 가득한 삶의 한가운데 시인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백반을 기다리면서/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미래」)리는 것. 그것은 시다. 시인의 팔레트에는 정직한 색의 물감들이 담겨 있지만 그가 붓에 묻혀 그려 내는 것들은 “한쪽 눈은 파랑, 다른 쪽은 주황”(「팔레트 속」)인 생경한 것들이다. 그리하여 시는 일상과 환상,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변주한다. 버스 노선은 쿠바에서 방배동까지 무한해지고(「쿠바에서 방배동으로 가는 버스」) “나무를 천천히 만지니까/ 손끝에서 얇은 가지 하나가 쑥 돋아”(「나무와 나 나무 나」)난다. 시인은 삶의 중력에 맞서 시가 떠오르기를, 멈추지 않고 관성에 맞서기를 바란다. 일상을 뒤집는 모더니티, “뚫고 나오는 힘”(「흰/ 머리칼」), 그것은 다름 아닌 시다. 김지녀가 생활과 예술을 한데 섞어 그려 낸 시는 우리에게 행복감과 고독감을 동시에 선사할 것이다. 그 깊고도 복잡한 감정의 빛깔은 아마도 시집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처럼 먹자줏빛일 것이다.


 

■시인의 말

질 지내요.
전화를 끊고

나는 정말 멀리 와 버린 사람이 되었다.

이제 누구에게도
잘 지내요.
인사하지 않기로 했다.


 

■본문에서

할머니는 귀가 어둡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장미와 장미가
한낮처럼 펼쳐지고
골목의 짜임새가
한 방향으로 여름을 길게 끌고 간다
할머니가 길 한복판을 걷는 동안
한껏 부풀어 오를
단팥빵을 상상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일방통행로」

 

한 번은 옆을 빌려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거절했고
다른 한 사람은 발등을 바라보며 망설이더군요
옆과 옆 사이의 어깨가 그 어떤 테두리보다 넓어서 건너갈 수 없었습니다
더 넓고 따뜻한 옆을 차지하려고 우리는 분주했고
옆에 얼마나 크고 넓은 폭포가 있는지
절벽과 진창이 있는지
가닿지 못하고
-「폭이 좁고 옆으로 긴 형식」

 
다음 날 놀이터에는 역시 나와 개미 그리고 가끔 우는 새뿐이었다
개미가 발등을 타고 내게 기어오를 때
내 다리가 살아 있어
내 귀가 간지러워
그리고 가끔 아이들은 개미 밟는 일을 즐거워하며 뛰어다녔다
개미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삶은 더듬이를 세운 앞이 아니라 뒤나 옆에서
느닷없이 불구가 된다는 것
나는 밟혀 죽은 개미들을 모아
아무도 모르는 구멍 속에 넣어 주었다
-「개미에 대한 예의」

 
해 뜨기 전에 와서 호수를 한 바퀴 돌면
물고기처럼 모레이는 잊어버립니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어제는 내일이 됩니다
모레이는 마음으로 헤아리다가 큰 소리로 물고기들을
헤아립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모레이가 물고기를 셉니다」


 

■추천의 말
김지녀의 시는 난파선 속에서 잔해 그 자체를 찾아내듯 가라앉는 침묵의 한가운데에서 떠오르려 하는 말들을 낚아 올린다. 시는 새를 묘사하지 않는다. 새가 떠난 자리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 새가 남기고 간 것들, 그러니까 새의 잔해를, 그 보물을 찾을 뿐이다. 그것은 나의 잔해이고 나의 보물이므로 다만 기이하고 기이할 뿐이다. 나는 이 끔찍하게 아름다운 기이함을 우리 마음속 낯선 새소리의 기원이라 부르겠다. 부화를 앞두고 잠수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의 시는 낮고 깊은 곳에서 도래할 것이다.
-해설에서 / 박혜진(문학평론가)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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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녀

2007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시소의 감정』, 『양들의 사회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