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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초능력은 우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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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윤종욱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0년 8월 28일

ISBN: 978-89-374-0894-6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48쪽

가격: 12,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274

분야 민음의 시 274


책소개

알 수 없는 너에게, 닿을 수 없는 내가
우리가 되자고 건네는 연약하고 아름다운 혼잣말


목차

1부
누구에게 13
철학자 15
철학 17
콘텍스트 19
우리 존재는 부재의 산물 21
단계적으로 22
재생 24
있지 않기 26
원년 28
어둠이 있었다 29
현실적인 30
비현실적인 32
못 34
직전의 말 36
나의 측면에서 38
천사 40
인간 이후 42
악마 44
다분히 악의적인 것 46
빗면 48
이면에서 50
해프닝 52
표면적으로 54
차 례
고백적 56
퇴적된 것 58
사람처럼 60
피크닉 62
이전에게 64

2부
행진 67
두 다리는 나쁘고 네 다리는 좋다 69
서툰 사람 70
염소들 72
덩굴 74
방사능 76
미생물 78
인간성 80
숲 82
방의 전개 84
타이밍 86
밤에 88
낮에 90
방의 발단 92
눈을 쳐다보는 일 94

3부
윤리는 침울하다 99
나의 윤리 101
시행착오 103
무용론 105
무슨 말인지 알지 106
사피엔스 사피엔스 108
노력 110
에일리언 112
행 114
인간적인 우리에게 116

작품 해설 양순모
너에게 119


편집자 리뷰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윤종욱 시인의 첫 시집 『우리의 초능력은 우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해』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우리의 초능력은 우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해, 라는 문장은 어떤 음가와 빠르기로 읽느냐에 따라 모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불가능과 포기와 낙담으로 읽힐 것이고, 동시에 가능과 겸허와 믿음으로 읽힐 것이다. 이처럼 다정하되 슬픈 제목을 초대장 삼아 시의 처소로 입장하면 우리는 이곳이 삼각형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인이 무수히 벼려 둔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모서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속에 시인이 부려놓은 말들은 고립을 자처한 자의 독백처럼 들리기도, 연결을 갈망하는 자의 구조 신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 수많은 목소리들은 뾰족하고 단단하게 남는다. 시집을 덮은 후 우리는 각자의 삼각형을 오래 매만지게 될 것이다.


 

■차가운 우울의 동굴에서도

우리는 증발하지 않는 기체
혓바닥보다 낮은 곳에 괸 채
발화를 기다리는 동안
말 이전의 말은 더욱 무성해지고
-「직전의 말」에서

윤종욱 시의 화자는 대체로 바깥으로 노출하고 발산하기보다 안쪽으로, 더 안쪽으로 침잠하고 파고든다. 아마도 마주하게 될 목소리는 낮고 고독하며, 그 자세는 웅크린 모양일 것이다. 자칫 그가 머무는 곳은 “슬픔의 장소”이며, 자꾸만 관계에서 “뒷걸음질”치고, 자신이 건네는 수많은 말들을 모조리 “잠꼬대”( 「철학자」)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 있는 축적된 짙은 우울의 색이 우리를 물들인다. 이 우울은 차가운 동굴 속, 매 초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로 만들어진 작은 웅덩이처럼 오래 고인 것 같다. 시인은 그 동굴 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시로 적었을 것이다. 떨어지는 우울, 고이는 우울, 웅덩이가 된 우울을. 그 우울의 한 방울들이 시가 되었을 때 그것은 동굴 밖으로 새어나가는 작은 목소리가 된다. 윤종욱의 시는 우리 모두 마음 깊은 곳 한켠에 저마다의 동굴을 지니고 있으며, 그곳에 고이는 우울과 슬픔들이 결국 목소리를 내게 될 것임을, 그 목소리를 듣는 일이 동굴에서 몸을 일으키거나 그곳에 빛이 들게 하는 일임을 말해 주는 듯하다. 각자의 우울이 목소리가 얻는 순간을 위해 시인은 기꺼이 차갑고 좁은 동굴 안에 웅크리는 것이다.

■좀처럼 체념할 수 없는

꿈을 꾸면서는 우리가 끝장날 거라는 걸 몇 번씩이나 외웠었는데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잠깐
까먹게 돼
필연이 머리를 짓밟으며 비척비척 걸어가고 있다는 거
우리가 아까부터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거
-「인간적인 우리에게」에서

오해와 몰이해와 오역과 착각. 이것들은 전부 다르지만 겹쳐 보이는 한 군데를 가리키고 있다. 관계의 불가능성. 시인에게 ‘우리’는 거듭 다가가고 싶지만 수많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실패’로 결론짓게 되는 관계다. 시집 『우리의 초능력은 우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해』의 이곳저곳, 수많은 시편들에 책갈피처럼 얇게 저민 허무와 슬픔이 끼워져 있다. 나와 너와 우리로 이루어진 삼각형을 만들고 싶은데 자꾸만 가닿지 못하고, 나와 너만 남은 기나긴 선에서 끝 모르고 미끄러지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어리석고, 필패를 알면서도 자꾸만 ‘우리’이기를, 그것을 소망하는 것을 그만두지 못한다. 시인의 슬픔은 그로부터 연유한다. 그리고 시를 읽는 우리도 시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어리석게도 자꾸 희망을 품는 인간들이다. 과거의 무수한 실패로 만들어진 미끄러운 선 위에서 우리는 또다시 노력한다. 미래를, 약속을, 사랑을. 우리의 관계가 희망을 품었다가 절망으로 텅 비게 되는, 작은 새가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날아가는 “앙상하게 남은 새장”(「서툰 사람」)에 가까울지라도 영영 새장 문을 잠그지는 않는 인간의 필연적 사랑이 이 시집에는 있다.


■본문에서

한때 우리의 모든 울상이었던
너에게
기립하는 자신과 직면하게 될 무렵을 선물할게
아직은 작은 무게뿐이지만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형용사를
너의 죽을 것 같은 기분 앞에다 둘게
-「누구에게」에서

나는 몸이기를 그만둔 몸짓을 추슬러
잠 속에 밀어 넣으며
개켜지지 않는
너를 향한 마음을
나는 푸른색의 무게를 재기 위해
수없는 새벽을 매달아야 하고
-「철학자」에서

너의 입속에 양팔을 집어넣고
고백을 꺼내다가
유리로 된 몸을 관통하다가
우리는 인간이라는 공간에 점점 더 늦어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몸속에 불을 피워
마음을 밝히다가
-「인간 이후」에서

잘 마른 햇빛을 걷기 위해
우리는 빈방을 따돌리고 나왔다
기분은 우리에게서 파생된 단어였다
우리는 삼키고 있던 지진을 꺼내
제자리처럼 펼쳐 놓으며
바쁘게 뛰는 심장을 만끽했다
-「피크닉」에서


 

■추천의 말
독자는 일종의 우울로부터의 수기라고 읽을 수 있을 이 한 권의 시집에서 우울의 현장에서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기 위한 노력의 목소리를 듣는다. 비록 저 ‘나’의 목소리가 증상으로서 ‘너’에 닿지 못한 것이라 하더라도, 내 안의 ‘너’에 닿기 위한 한계적인 ‘나’의 노래라 할지라도, 추락하기를 바라면서도 그것과 갈등하고 긴장할 수밖에 없는, 좀처럼 납득하지 못할 자기 안의 어떤 목소리를 발견한 시인이 이를 악물고 쓴 기록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독자는 긴장 속에서 불연속적으로 기술되는 ‘나’-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며 저마다의 우울 이야기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완성해 간다.
-작품 해설에서 │양순모(문학평론가)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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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욱

1982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예대 문창과를 다녔다.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