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화엄경』은 고은에 대한 또 다른 체험이다. 지난 20여 년간 그가 준 인상은 솔직히 세속의 먼지가 풀풀 날리는 약간은 거칠고 요란스런 그 무엇이었다. 소설 『화엄경』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 준다. 참됨의 아름다움, 거룩함의 아름다움에다 추구와 탐색의 아름다움이 있으며 말의 아름다움, 사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비어 있음의 아름다움이며, 잃어버림의 아름다움이 있고 낯섦의 아름다움, 뒤틀림의 아름다움이 있다. 거기서는 자칫 잡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관능의 세계도 아름다움이고, 심지어는 집요함과 치우침도 아름다움이다. 물론 소설 『화엄경』은 내용에 따라 분류하면 소년 선재(善才)를 주인공으로 하는 구도소설이다. 전란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가 첫번째 문수보살로부터 마지막 보현보살까지 쉰셋의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면서 배우고 깨우쳐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가만히 읽어 가노라면 이 글은 소설이라기보다는 한편의 휘황한 서사시란 느낌을 받는다. 리얼리티니 구도니 하는 소설적인 규범에 얽매임이 없는 전개 방식도 그렇거니와 역사와 신화, 현실과 환상 사이를 거리낌 없이 넘나드는 의식에서도 그러하다. 거기다가 시인 특유의 미려한 문체가 있어 때로는 인용된 시구보다 지문이 더욱 시적이다. 이런 형태의 기독교문학으로는 번연의「천로역정」이 있고, 더욱 시적으로 소화되기는 단테의 「신곡」이 있지만, 솔직히 소설 『화엄경』이 주는 감동은 그 두 작품을 뛰어넘는 데가 있다. 하기야 화엄경에도 「마하바라타」나 「라마야나」 같은 고대 인도의 서사시나 고전 산스크리트 문학의 설화적인 기법에 바탕한 요소가 있을 것이다. 또 전통적인 불교와는 거리가 있는 부분도 있어 그게 우리에게는 오히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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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동자의 구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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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oile | 2015.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