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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노트르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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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원제 Notre-Dame de Paris

빅토르 위고 | 옮김 정기수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05년 2월 23일

ISBN: 89-374-6114-5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5x225 · 512쪽

가격: 10,000원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114

분야 세계문학전집 114


책소개

호메로스, 단테, 셰익스피어의 뒤를 잇는 세계 4대 시성(詩聖) 빅토르 위고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원작 ▶ 하늘에서 내려온 드문 영혼, 빅토르 위고. -샤를 보를레르▶ 희곡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소설에는 위고가 있다. -알퐁스 드 라마르틴▶ 위고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시인이다. -앙드레 지드▶『파리의 노트르담』은 진정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위고는 눈물의 제왕이다. -앨프레드 로드 테니슨「노틀담의 꼽추」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파리의 노트르담』은 1831년 발표된 이래 수없이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70번 이상 영화화될 만큼 시대를 초월해 사랑 받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1998년 초연한 이래 500만 장의 티켓 판매, 1000만 장의 음반 판매를 기록하는 등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5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벌이는 사랑과 질투, 증오와 연민의 사건을 펼쳐가는 『파리의 노트르담』은 찬연한 고전 시대의 문화가 서서히 몰락하는 그늘 아래서 무지와 탐욕이 순결한 영혼을 파멸시키는 비극이며, 뭇사람들의 조롱과 질시 속에서 피어나는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 카지모도와 순수하고 아름다운 집시 처녀 라 에스메랄다의 사랑 이야기다. 이 판본에서는 원로 불문학가 정기수 전 서울대학교 교수가 번역을 맡아 다른 판본들에서는 누락되었던 부분을 모두 되살리고,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목차

제7부제8부제9부제10부제11부작품 해설작가 연보


편집자 리뷰

15세기 파리의 풍광과 생활상을 정밀하고 생생하게 되살린 완역본 『파리의 노트르담』은 두 개의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룬다. 주요 인물들이 이끌어가는 인간의 드라마와, 노트르담 성당을 비롯한 파리의 건축물들이 중심이 되는 유물 이야기가 함께 짜여 있는 것이다. 위고는 지금은(19세기에는) 사라져 버리고 없는 15세기 건축물들의 아름다움과, 후대 사람들의 무지가 어떻게 과거의 값진 유산을 파괴했는지 묘사하면서 이 같은 문화유산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특히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노트르담 대성당은 괴기스러운 조각물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원화창이 대조를 이루면서, 웅장하고 아름다운 동시에 한편으로는 어둡고 음울한 모습으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그와 함께 15세기 파리 서민들의 생활상도 자세하게 묘사된다. 작품 전반부의 광인절 축제 풍경이라든가 거지들의 소굴인 기적궁을 묘사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파리 서민들의 모습은 추악하고 천박하면서도 솔직하고 해학적이다. 마땅한 여흥거리가 없었던 그들은 귀족들에게 야유를 보내거나 죄인 공시대에서 채찍질당하는 죄수를 구경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았다. 피지배층에 대한 통제와 탄압의 수단이었던 당시의 비합리적인 사법 제도를 여흥거리로 탈바꿈시켜 버리는 파리 서민들의 어리석음은 오히려 실소를 자아낸다.하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마지막에 노트르담을 습격하는 거지 패들의 모습에서는 대혁명의 기운도 찾아볼 수 있다. 얼떨결에 기적궁에 들어간 시인 피에르 그랭구아르를 사형시키려 할 때 기적궁의 ‘왕초’가 내세우는 논리는 ‘바깥세상에서 너희들이 우리에게 하는 것을 여기서는 반대로’ 한다는 것으로, 이는 만민 평등에 입각한 대혁명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타고난 사회적 계급에 따라 일생을 살아야 한다는 순응적 태도에서 벗어나, 왕권의 상징물이자 중세에는 왕권보다 더 강력했던 신권의 상징이었던 노트르담 대성당을 무력으로 습격하고 무너뜨리는 거지들의 모습은 귀족과 천민이 다르지 않다는 평등사상이 그들 안에서 이미 싹트고 있었음을 보여준다.이러한 15세기 풍광에 대한 자세하고 면밀한 묘사는 이전에 나왔던 한국어 번역본들에서는 대부분 누락되었던 것들이다. 원작의 방대한 분량도 부담스러웠겠지만 하나하나 각주를 달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파리의 생소한 문물들이 수없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런 누락분을 모두 되살렸을 뿐 아니라 상세한 주까지 달았다. 특히 당시 식자층이었던 귀족들과 성직자들이 사용하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이주해 온 거지들이 사용하는 헝가리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원문을 그대로 살리는 동시에 번역하고 발음까지 병기함으로써, 천편일률적으로 우리말로 번역했다면 살릴 수 없었을 원문의 느낌을 생생히 전달해 주고 있다.인본주의에 입각한 냉철한 사회 비판 『파리의 노트르담』은 무엇보다도 카지모도와 라 에스메랄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위고는 많은 부분을 인간 본성에 대한 비판과 사회 전반, 특히 사법 제도에 대한 공박에 할애하고 있다. 다른 주인공들 역시, 일반적인 선악 대립 구도의 작품이었다면 착한 쪽과 나쁜 쪽으로 뚜렷하게 구분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모든 인물들은 선악이 혼재되어 있어서, 독자가 감정이입할 대상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인 카지모도만 해도, 라 에스메랄다를 향한 그의 사랑은 그지없이 순수하고 아름답지만 세상 사람들을 향한 심술과 잔인함은 이해에 앞서 우선은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 라 에스메랄다는 페뷔스가 ‘백마 탄 기사’처럼 나타나서 자신을 구해 줬다는 이유로, 혹은 그가 잘생겼다는 까닭에 첫눈에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한 순수함이 그녀의 매력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녀를 하룻밤 상대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난봉꾼 페뷔스의 정체를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무서운 외모 때문에 끝까지 카지모도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편협함은 독자로 하여금 어느 정도 비판적 거리를 갖게 만든다.한편 재판 진행이나 형 집행 장면 묘사를 통해 15세기 프랑스 사법제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15세기의 형벌 제도는 지배계급의 변덕 혹은 개인적인 원한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 또는 서민계급의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재판관이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 ‘귀머거리일 것’이 언급되고 있으며, 어떠한 성문법상의 법률에도 의거하지 않은 채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이란 공정한 판결이 내려지기 위한 과정이 아닌 형식상의 절차에 불과하였다.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판결은 이미 내려져 있었으며, 재판관은 그 판결을 정당화하기 위해 피고를 고문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내곤 했던 것이다. 또한 마녀 재판이 횡행하고 동물을 피고로 하는 재판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볼 때, 연금술과 더불어 중세 암흑기를 지배했던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사고방식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빅토르 위고 Victor Hugo 1802년 2월 26일 프랑스 브장송에서 태어났다.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유럽 각지를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 일찍부터 고전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샤토브리앙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라는 포부를 품고 있었다. 1819년 열일곱의 나이로 평론지 《르 콩세르바퇴르 리테레르》를 창간하고, 1822년 첫 시집 『송가와 다른 시들』을 발표하며 계관시인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운문 희곡 「크롬웰」(1827)과 「에르나니」(1830)를 통해 진정한 낭만주의 작가이자 자유주의자로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1831년 『파리의 노트르담』을 펴내며 소설가로서 명성을 굳혔고, 입헌군주 루이 필리프의 집권을 기념하는 시 「1830년 7월 이후」를 발표한 후부터 수많은 정치 시를 발표하며 정치적 참여 시인으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841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뽑히고 1845년 상원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문학적 업적을 널리 인정받았다. 그러나 1848년 2월 혁명을 계기로 왕당파에서 철두철미한 공화주의자로 변신하여 루이 나폴레옹과 날카롭게 대립했다.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집권과 함께 시작된 20여 년의 망명과 추방 생활 동안 그는 아내와 자식들을 차례로 잃었다. 고난 속에서도 식지 않는 창작열로 또 다른 대작 「레 미제라블」(1862)을 발표하여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870년 예순여덟의 노구로 파리에 귀환하여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말년에 살았던 파리의 엘로 거리는 80세 생일을 기념하여 ‘빅토르 위고 거리’로 개칭되었다. 1885년 5월 22일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프랑스 정부는 국장으로 예우했으며 “그의 시신은 밤새도록 횃불에 둘러싸여서 개선문에 안치되었고, 파리의 온 시민이 판테온까지 관의 뒤를 따랐다.”(G. 랑송)라고 전해진다. ▶ 옮긴이 정기수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보르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북대학교, 서울대학교, 공주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문화교육부 국어 심의회 및 교육 과정 심의회 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프랑스 교육 문화 훈장 수훈자 협회 한국 지부 회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La Corée et l\’Occident―la culture française(Paris: Minard), 역서로 『레 미제라블』, 『악의 꽃』, 『랑송 불문학사』 등이 있다.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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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

1802년 2월 26일 프랑스 브장송에서 태어났다.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유럽 각지를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 일찍부터 고전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샤토브리앙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라는 포부를 품고 있었다. 1819년 열일곱의 나이로 평론지 《르 콩세르바퇴르 리테레르》를 창간하고, 1822년 첫 시집 『송가와 다른 시들』을 발표하며 계관시인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운문 희곡 「크롬웰」(1827)과 「에르나니」(1830)를 통해 진정한 낭만주의 작가이자 자유주의자로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1831년 『파리의 노트르담』을 펴내며 소설가로서 명성을 굳혔고, 입헌군주 루이 필리프의 집권을 기념하는 시 「1830년 7월 이후」를 발표한 후부터 수많은 정치 시를 발표하며 정치적 참여 시인으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841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뽑히고 1845년 상원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문학적 업적을 널리 인정받았다. 그러나 1848년 2월 혁명을 계기로 왕당파에서 철두철미한 공화주의자로 변신하여 루이 나폴레옹과 날카롭게 대립했다.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집권과 함께 시작된 20여 년의 망명과 추방 생활 동안 그는 아내와 자식들을 차례로 잃었다. 고난 속에서도 식지 않는 창작열로 또 다른 대작 「레 미제라블」(1862)을 발표하여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870년 예순여덟의 노구로 파리에 귀환하여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말년에 살았던 파리의 엘로 거리는 80세 생일을 기념하여 ‘빅토르 위고 거리’로 개칭되었다. 1885년 5월 22일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프랑스 정부는 국장으로 예우했으며 “그의 시신은 밤새도록 횃불에 둘러싸여서 개선문에 안치되었고, 파리의 온 시민이 판테온까지 관의 뒤를 따랐다.”(G. 랑송)라고 전해진다.

"빅토르 위고"의 다른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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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수 옮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보르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북대학교, 서울대학교, 공주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문화교육부 국어 심의회 및 교육 과정 심의회 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프랑스 교육 문화 훈장 수훈자 협회 한국 지부 회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La Corée et l’Occident―la culture française(Paris: Minard), 역서로 『레 미제라블』, 『악의 꽃』, 『랑송 불문학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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