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 부활 1

원제 Воскресение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옮김 박형규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3년 11월 11일 | ISBN 89-374-6089-0 [절판]

패키지 반양장 · 변형 130x225 · 408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19세기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이자 사상가, 톨스토이의 대표작
『부활』은 톨스토이가 일흔이 넘어 완성한 만년의 역작이다. 집필을 시작한 후 일 년여 뒤 그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오늘의 시선으로 사물을 조명하면서 기나긴 숨결의 장편소설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 나 자신의 모든 구상들을 결합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서 톨스토이는 한 귀족과 창녀가 정신적으로 부활하는 과정을 통해, 당대 러시아의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날 선 비판을 가하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근본으로 하는 자신의 사상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톨스토이의 소설은 단지 예술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이다. – 매튜 아널드▶ 만약 세계가 스스로 글을 쓸 수 있었다면, 톨스토이처럼 썼을 것이다. – 이자크 바벨

편집자 리뷰

『전쟁과 평화』(1863~1869), 『안나 카레니나』(1873~1877) 등 대작을 집필, 작가적 명성을 누리던 톨스토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인 위기를 겪게 된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기독교적 인간애를 근간으로 하는 톨스토이즘을 체계화한다. 톨스토이의 종교적인 전향 후인 1899년 발표된 『부활』은 예술가이자 사상가 톨스토이의 면모가 뚜렷하게 살아 있는 작품이다. 기본 줄거리는 유명한 법률가 A.F.코니의 소송 사무와 관련된 사건에 바탕을 둔다. 그는 1887년 여름, 톨스토이와 함께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에 관해 담화를 나누는 가운데 자신이 관계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중 한 가지가 ‘불쌍한 로잘리야 오니와 그녀의 유혹자 이야기’이다. 그 유혹자는 자기 때문에 파멸한 처녀의 판결에 어쩔 수 없이 배심원으로 참가하게 된 뒤 깊은 도덕적 동요를 겪게 된다. 자신의 범죄를 보상하기 위해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하지만 로잘리야의 죽음으로 상황은 마무리된다. 이야기를 듣고 흥분한 톨스토이는 두 주인공 네흘류도프와 카튜샤를 중심으로 집필에 착수한다. 작품의 도입부는 대략 다음과 같다. 네흘류도프 공작은 살인 혐의를 받고 법정에 선 창녀의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하게 된다. 그런데 그녀는 한때 자신이 잠시 사랑하다 버렸던 카튜샤였다. 카튜샤는 이후 혼자 아이를 낳고 생계를 잇기 위해 창녀가 된 것이었다. 카튜샤는 무책임한 배심원들로 인해 죄도 없이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는다. 이로써 네흘류도프는 도덕적으로 무책임했던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며 죄책감을 갖게 된다. 그는 카튜샤를 감옥에서 꺼내 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며 자신의 정신적 부활을 향한 발돋움을 시작한다. 톨스토이가 『부활』을 완성하기까지는 십 년이 걸렸다. (물론 그 기간 내내 톨스토이가 『부활』의 집필에만 몰두했던 것은 아니다. 또한 작품을 끝마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톨스토이와 종교에 대해 같은 뜻을 가지고 있던, 국가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의 캐나다 이주 자금 문제였다.) 그 시간 동안 톨스토이는 두 남녀 주인공의 문제뿐만 아니라 당대 러시아의 사회구조가 안고 있는 문제들까지 작품 속에 흡수시키며 작품의 완성도를 더했다. 그리하여 톨스토이는 범죄자를 교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범죄자를 양산할 뿐인 처벌 제도, 가난한 농민들을 더욱 가난 속으로 몰아넣는 토지 제도,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 전례의 형식만을 중시하는 러시아 정교의 문제점들을 때로는 네흘류도프의 눈을 통해 생생하게 제시하며, 예술작품 속에 사상가 톨스토이의 시각을 불어넣었다. 『부활』이 발표된 뒤 V.V. 스타소프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창조 위에서 19세기가 끝나고 20세기가 도래한다.” 그의 말처럼 『부활』은 19세기 예술의 총결산이다. 나아가 톨스토이가 의도했던 바대로 “사물에 대한 오늘의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시공을 초월한 주제를 감동적으로 풀어낸 고전이다.

목차

제1부제2부(상)

작가 소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828년 러시아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844년 카잔 대학교에 입학하나 대학 교육에 실망,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한 생활을 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로 가서 군대에서 근무했다. 이듬해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하여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을 하기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사유재산 및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영면하였다.

박형규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러시아 연방 국제 러시아어문학 교원협회 상임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 러시아문학회 고문으로 있다. 러시아 연방 국가훈장 및 우호훈장, 푸슈킨 메달을 받았다. 역서로는 『전쟁과 평화』, 『인생독본』,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가난한 사람들』, 『백치』, 『의사 지바고』, 『톨스토이 단편선』 등이 있다.

독자 리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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