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외진 곳

장은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0년 1월 31일 | ISBN 978-89-374-9100-9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5x205 · 324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오늘 밤 왜 중심가로 가지 않았나요?”

흐린 창 너머로 보이는 타인의 삶
전시하지도 과시하지도 않는 자기만의 고독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외진 곳」 수록

 

편집자 리뷰

2019년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가 장은진의 세 번째 소설집 『당신의 외진 곳』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두 번째 소설집 『빈집을 두드리다』 이후 8년 만에 묶어 내는 신작 소설집이다. 첫 번째 소설집에서 “자학적인 고립과 결여 상태를 감수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출구 밖 타인들을 향한 소통에의 욕구를 포기하지 않는다”(김형중)는 평을, 두 번째 소설집에서는 “밖을 갈구하지만 안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책”(정실비)이라는 평을 들은 바 있는 장은진의 소설 세계는 세 번째 소설집에 이르러 만조에 다다른 듯하다. 바다가 가장 높은 순간 파도가 끝까지 일렁이는 모습처럼, 작가는 한 권의 소설집에 춥고 사나운 마음을 자유자재로 부려놓는다. 혼자라고 생각하는 이들, 혼자라고 생각해서 남아 있는 관계를 스스로 끊는 이들, 외로움에 몸서리치더라도 혼자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기 위해 작가는 오랜 시간 흐린 창 앞에 서 있다. 웃풍이 드는 그곳에서 기꺼이, 가만히 타인의 고독을 살핀다.

■그럴 듯해 보이지 않는 삶일지라도
체념한 듯 체념하지 않는 태도는 장은진의 인물들의 특징이며, 장은진의 소설의 특기다. 작가는 중심에서 얼마간 소외된 인물을 그리면서도 부풀리지 않는다. 남에게 자신이 사는 방식을 좀 더 세련되게 보여주려고 애쓰거나 인생에 힘든 구간에 있음에도 짐짓 밝아 보이려 ‘척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각자가 겪는 고통과 불안을 그만큼의 사이즈로 들여다볼 뿐이다. 작품마다 인물들은 삶의 숨통을 틀어막는 극심한 가난이나 불행은 겪지 않지만, 자신이 어쩌다 이런 곤란에 머무르게 되었는지 오래 생각한다. 곤란의 사이즈를 정확히 아는 그들이므로, 소망하는 것 역시 대단한 판타지가 아니다. 그들은 아주 약간의 소망만을 지닌 채 산다. 지금 몸을 뉘인 이 방의 넓이가 조금만 더 넓기를, 온도가 조금만 더 따뜻하기를, 그리고 그렇게 ‘조금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자신을 누군가는 조금만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삶을 이어 간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고(「외진 곳」), 끊임없이 길을 걷고(「이불」), 마을 벽에 일기를 쓰며(「안나의 일기」). 그들은 현재에 좌절하여 미래를 염원하면서도 삶 전체를 방기하지는 않는다. 보리차를 끓이고, 달걀말이를 부치고, “자기 숨으로 덥힌 공기로 추위를 조금씩 누그러뜨리며”(「외진 곳」) 일상을 지켜 간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스스로 온도를 높이며, 스스로의 슬픔을 감내하며 사는 일뿐이므로.

■당신의 창에 불이 켜질 때까지
장은진의 인물들은 어디에나 있다. 어두운 도심의 아파트에, 서울의 외곽 빌라촌에, 중심가가 아닌 변두리에 각자의 사정을 곱씹으며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외진 곳」의 자매는 사기를 당해 원래 살던 원룸의 반 토막만 한 ‘네모집’의 작은 방으로 이사를 오고, 「울어 본다」의 여자는 깊은 새벽 냉장고에 등을 기대고 냉장고 없던 시절의 어머니와 자신을 생각하며 긴긴 불면의 시간을 보낸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류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고독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타인의 창이다. 「외진 곳」의 주인공은 네모집의 다른 세입자들의 귀가를 신경 쓰고, 「울어 본다」의 여자는 까마득히 멀지만 분명히 보이는 맞은편 창에 같은 시간 자신처럼 잠들지 못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얻는다. 일견 아무것도 나누지 못하는 사이 같지만 작가는 이 거리감으로 소외를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장은진의 소설은 당신이 비록 외진 곳에 있어도 그 창에 불이 켜지기를 먼 곳에서 바라는 이 역시 있을 거라는 믿음을 일깨워 준다. 당신이 꾸역꾸역 일상을 살아내고 돌아와 밝히는 그 불빛을 멀리서 누군가가 보고 힘을 낸다는 점. 우리는 각자 고독하고 서로의 고독을 해결해 줄 수 없지만, 외따로인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추천의 말

‘외진 곳’은 추상적 비장소가 아니며 단순한 변두리가 아니다. 인사말조차 생략하고 사는 이 추운 삶에도 함께 눈덩이를 굴려 눈사람을 만드는 놀이가 있고 자전거를 나눠 쓰는 인정이 있으며 갑질을 일삼는 편의점 사장에게 “뻑큐를 날리”는 결기가 있다. 비가시적인 이들의 가시적인 삶이 작가의 집요한 묘사 속에서 오롯이 모습을 드러낸다. 주변이 중심이 되면 중심은 곧바로 주변이 된다. 장은진은 이런 방식으로 남성/여성, 중심/주변, 유산자/무산자, 자연/문화, 어른/아이 등의 위계를 역전시킨다. 이제 그로써 외진 곳, 모든 방에 불이 켜진다. 이곳은 더 이상 어둡지 않다.
-양윤의(문학평론가)

■본문에서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잖아요.”
“크리스마스가 오는 데라 그럴까요…….”
그렇게 말하던 여자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 한밤중에 도망치듯 이사를 가 버렸다. 어쩌면 여자가 간 곳은 여기보다 더 바깥일지도 몰랐다. 크리스마스마저 오지 않는 곳. 우리는 자전거를 더는 빌려 탈 수 없게 되었다.
-「외진 곳」에서

그곳에는 불이 또렷하게 켜져 있다. 그 집을 보고 있으면 묘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나 혼자만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게 아니라는 위안. 나와 비슷한 사람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 있어도 힘이 될 때가 있다. 비록 서로의 얼굴은 몰라도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렇다.
-「울어 본다」에서

“여기는 모범적일수록 살기 편한 곳이에요. 굳이 모범적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되긴 하지만요.”
여자는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물을 마저 펐다.
“무슨 죄를 지으셨나요?”
남자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네?”
갑작스러운 남자의 질문에 당황한 여자는 바가지에담긴 물을 바닥으로 조금 쏟고 말았다.
-「망상의 아파트」에서

내 집에서 당장 꺼지라고, 땅으로 꺼지든 하늘로 꺼지든 푹 꺼지라고 푹푹 찼다. 하지만 푹은, 평생을 세상으로부터 맞고만 살아서 맞는 데 이골이 났다는 표정으로 꼼짝하지 않았고 자리를 피하지도 않은 채 인터넷에만 푹 빠져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푹은 훨씬 크고 훨씬 더 검어지고 훨씬 더 더 무거워져 있었다. 더 말랑해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점거」에서

■작품 소개

▶외진 곳
‘나’와 동생은 보증금을 사기당해 하루아침에 공용 화장실과 공용 세탁실을 사용해야 하는 비좁은 방으로 이사한다. ‘나’는 한가운데 마당이 있는 ‘네모집‘이라고 불리는 이곳을 언제쯤 떠날 수 있을까, 화장실과 세탁기가 방 안에 있는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상상하지만 동생의 아르바이트는 잘 구해지지 않고 임용시험을 치는 ‘나’의 결과는 번번이 낙방이다. 견디다 못한 동생은 일본으로 가 프리터로 살겠다고 선언하고, 겨울이 지나면 혼자 남게 될 ‘나’는 그날 밤 마당에 서서 네모집 세입자들의 방에 하나둘 불이 켜지길 기다린다.

▶울어 본다
깊은 새벽, 사방이 고요해지면 냉장고가 운다. 냉장고 소음에 섞여 여자도 운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여자는 냉장고에 등을 기댄 채 시간을 보낸다. 기억을 거슬러 가다 보면 냉장고가 없던 유년 시절로 돌아가 있다. 원 없이 얼음을 얼려 먹고 싶었던 때. 냉장고를 사고 싶어 일부러 음식을 쉬게 하고 배탈이 난 척했던 때. 이제 여자의 냉장고에는 냉장 냉동 칸 모두 음식이 가득 채워져 있는데, 어쩌다 냉장고에 이렇게 의지하게 되었을까……. 여자는 새 냉장고를 사고 열심히 음식을 하던 엄마를 생각한다.

▶이불
늙은 어머니가 무릎 수술 때문에 고향에서 올라와 모처럼 아들의 집에 머물고 있지만, 아들은 조금 곤란하다. 아직 어머니에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수술을 끝내고 돌아올 때까지 영락없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 돈을 아껴야 하므로 통신사 포인트를 긁어 영화를 보고, 첫눈이 내리는 거리를 걸으며 남자는 자신이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생각한다. 결혼을, 프러포즈를 꿈꿨던 날이지만 직장도 애인도 남자에게 멀어져 버렸다.

▶수리수리 마수리
중고 가전을 수거하여 먹고사는 여자는 이 동네 소문의 진원지다. 사람들은 여자를 두고 입방아 찧기를 즐긴다. 눈짓 손짓만 해도 남자를 유혹하는 거라고 수근 댔고 그런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자 레즈비언일 거라고 마음대로 추측한다. 고장 난 가전제품을 고쳐 주는 수리상인 남자에게도 그런 시선이 따라 붙는다. 볼품없고 말수가 적고 소극적이어서 결혼 한 번 못 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소문은 무성하지만 진정 교류하는 이 없는 둘 사이를 오가는 것은 야광 우산을 든 채 롤러블레이드를 신고 달리는 어린 소녀, ‘야광이’뿐이다.

▶망상의 아파트
203호 남자가 사는 아파트에 한 여자가 이사를 온다. 평범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감시 아래에 있는, 저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이 흘러들어 오는 이곳의 비밀을 모르는 신참에게 남자는 단단히 주의를 주려는 참이다. 이 아파트를 지키는 감시인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여기에서는 서로서로 믿지 않으니 어떤 태도로 타인을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마침내 여자에게도 묻는다. 이곳에는 감옥이에요. 전부 죄를 지은 사람들만 살아요. 당신은 무슨 죄를 지으셨어요? 그 말에 여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안나의 일기
안나는 마을 성당의 종지기다. 그러나 그가 유명해진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안나가 마을 벽 이곳저곳에 적는 일기 때문이다. 안나의 일기는 게릴라처럼 언제 어느 곳에 나타날지 알 수 없으며, 마을의 어떤 비밀을 까발릴지 알 수 없다. 작은 몸에 총명한 눈과 귀로 마을을 누비는 안나는 마을 사람들의 치명적이거나 치졸한 비밀을 숨김없이 일기에 적는다. 물론 그 솔직함의 대상에는 안나 자신도 포함된다. 사람들은 어느새 일기의 독자가 되고, 안나의 글에 따라 서로를 이해하거나 등 돌리고 싸우거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층집
집은 이층이지만, 가족 중 그 공간을 제대로 누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층은 젊은 부부에게 세를 줬기 때문이다. 김 과장과 박 여사, 삼남매와 치매 걸린 시어머니까지 여섯 가족은 한데 복닥거리며 산다. 자매인 수영과 유진은 매번 옷과 화장품을 가지고 다퉜으며, 박 여사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곤두서 있다. 김 과장은 그 모든 일을 방관한 채 딸들의 치마 길이를 단속하기에 바쁘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년 만에 세를 들었던 부부가 이사를 나가고, 비어 있는 이층으로 ‘자기만의 방’을 못내 바라던 두 자매가 올라가게 되는데…….

▶점거
어느 날 집에 커다란 검은 트렁크 같은 물체가 자리를 잡았다. 여자는 그것을 관찰하던 도중 놀라운 사실을 깨닫는다. 그 물체가 왼쪽 어깨를 들썩이는 버릇을 가졌다는 것. 그것은 아버지의 버릇이다. 아버지가 여기에 왜? 놀란 감정은 분노가 되고 괘씸함이 되어 여자는 검은 트렁크를 걷어찬다. 푹, 푹, 푹, 푹. 여자의 발길질에도 아버지는 꿈쩍 않고 오히려 더 뻔뻔하게 눌러앉는다. 가장 안락한 자신의 공간을 여자는 편히 누릴 수가 없다. 나가라고 악을 쓰다가 도리어 아버지를 피해 여자가 나와 버린다. 순식간에 아버지에게 집을 점거당했다. 여자는 어디로 가야 할까?

목차

외진 곳 7

울어 본다 41

이불 79

수리수리 마수리 121

망상의 아파트 157

안나의 일기 195

이층집 231

점거 275

 

작가의 말 313

추천의 글 315

작가 소개

장은진

1976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04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로 2009년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키친 실험실』, 『빈집을 두드리다』 장편소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앨리스의 생활방식』,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등이 있다.

독자 리뷰

독자 평점

4.8

북클럽회원 4명의 평가

한줄평

소외에 대해 이만큼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밑줄 친 문장

그 집을 보고 있으면 묘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나 혼자만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게 아니라는 위안. 나와 비슷한 사람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 있어도 힘이 될 때가 있다. 비록 서로의 얼굴은 몰라도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렇다.
기준은 단순했다. 부엌에 냉장고가 있느냐 없느냐. 친구들 중 냉장고가 없는 집은 여자네뿐이었다. 물론 전에도 여자는 자기 집에만 냉장고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창피한 일이라던가 집에 냉장고가 있다는 걸 부러워해야 할 만큼 대단한 일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냉장고가 있으면 여름에도 음식을 신선하고 차갑게 보관할 수 있다는, 냉장고의 필요성이나 좋은 점에 대해 배워 알고는 있지만 ‘없음’에는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니까 생길 만한 이유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생기리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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