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성석제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1998년 9월 1일
ISBN: 89-374-0269-6
패키지: 반양장 · 신국판 152x225mm · 268쪽
가격: 6,000원
분야 한국문학 단행본
성석제의 소설은 마치 ‘농담’처럼 진행된다.
농담이란 억압적인 권위와 권력에 대한 조롱이다. 그것은 엄숙하고 진지한 척하는 담론들에 대한 야유이며 ‘진담’을 거부하는 권력 지향적 담론들에 대한 야유다. 진정한 의미의 농담들은 그 안에 삶의 복잡성과 아이러니에 대한 이해를 깔고 있다. 이 농담의 세계에서 성석제 소설의 발랄한 구연성과 탈리얼리즘적인 화자의 전략은 새로운 소설의 영토로 독자를 안내한다. 그곳은 모든 자기 중심적 담론들의 중심이 해체된 영토, 웃음과 자유로움의 땅이다. 성석제라는 눈부신 개성으로 인해 90년대 후반의 우리 소설사가 갱신되리라는 것은 이제 가능성의 차원이 아니다. 이 빼어난 소설집에서 이미 ‘소설의 좌절’에 대응하는 ‘서사의 개방’이라는 문학적 성취의 일부를 읽을 수 있다. ―─ 이광호(문학평론가)
조동관 약전 경두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 이인실 통속 유랑 고수 칠십년대식 철갑 비밀스럽고 화려한 쌍곡선의 세계
\’90년대 후반 우리 문단의 눈부신 개성\’이라는 수사를 받으며, 명쾌한 문체와 특유의 페이소스가 담긴 유머로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한 작가의 창작집에는 표제작을 포함,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조동관 약전(略傳)」,「경두」,「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이인실」,「통속」,「유랑」,「고수」,「칠십년대식 철갑」,「비밀스럽고 화려한 쌍곡선의 세계」
*「조동관 약전(略傳)」은 지방 소읍을 주름 잡는 한 깡패의 인생 유전을 \’성장-사랑의 좌절-죽음\’이라는 궤도에 따라 기술한 작품이다.
*「경두」는 오토바이를 몰아 음식 배달을 하는 소년의 척박한 삶을 속도감 있는 문체로 묘사한 수작이다. 1997년 <동인문학상> 후보작이었다.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는 위엄과 허세와 연약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험한 공사판에서 난 아직 살아 있다고 외치고 싶어하는\” 아빠의 미워할 수 없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인실」은 무서운 깡패의 연약한 내면을 보 주는 소설이다. 주류 도매상을 하는 기세 좋은 깡패가 자신의 약화된 육체 앞에서, 병원이라는 제도적 권력 앞에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를 실감 나게 보여 준다.
*「통속」은 옛 애인과의 재회, 바람둥이의 엽색 행각, 룸살롱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상담 등 통속적인 삶을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통속적이지만, 날카롭고 냉정한 문체로 통속성의 아이러니를 절묘하게 드러내며 수준 높은 풍자를 달성한다.
* \’취생옹 첩실 하세가와 도미코의 봉별서\’라는 부제가 붙은「유랑」은 고색창연한 부제에 걸맞게 \’서(序)-서(書)-후(後)\’의 고전적인 형식과 의고체를 구사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 일본 여인의 파란 많은 인생 유전을 통해 \’현대성\’에 관해 말하고 있다. 소설은 과거적인 것의 재현에 주력하고 있음에도, 그것의 허망한 몰락의 순간을 통해 현대적인 것의 악마적인 파괴력을 역설적으로 환기한다.
*「고수」는 한 내기 바둑꾼의 이야기를 변형된 액자 소설 형식으로 풀어 나간다.
*「칠십년대식 철갑」은 통속적인 연애 소설의 문법을 빌려 인간의 미숙한 의사 소통을 기지 넘치는 언어로 다루었다.
*「비밀스럽고 화려한 쌍곡선의 세계」는 한 시인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성 팬의 에피소드를 다루었다. 이 이야기는 \’우윳빛 나는 피부\’를 욕망하는 시인의 꿈을 반영하면서, 그 꿈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독자 대중의 꿈을 반영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화자는 그 꿈의 실체 없음을 환기한다.
각각의 단편들은 저마다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만큼 서로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띠면서도 하나의 공통분모 위에 놓여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지와 냉정한 분석력이다. 그리고 기지와 냉정한 분석력이라는 공통분모는 농담과 해학의 거름이 되고 있다. 성석제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이 세상은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요,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이라는 호레이스 웰포울(Horace Welpole)의 경구가 생각난다. 그의 희극적 소설들은 그만큼 지적이다. 그의 소설이 추구하는 것은 냉소에 가까운, 차갑고 명료한 성찰이다. 그는 재미있는 이야기,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써 나가며 세상에 대한 성찰을 완성한다. 여기에 웃음은 필수적이다. 웃음을 터뜨리는 자는, 왜 그 사건이 우스꽝스러운지, 어떤 불합리와 부조리가 지배하고 있는지를 모두 투시하고 있기 때문에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석제의 소설들은 세상의 우스꽝스러움을 드러내는 데서 끝나지는 않는다. 성석제 소설에서의 농담과 웃음은 삶의 복잡성과 아이러니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호흡을 남겨 둔다. 그 안에서는 어떤 이야기든지, 그것이 \’너무나 통속적인 이야기\’든 \’허망한 인생 유전\’이든 \’인간적인 깡패의 이야기\’든, 따뜻한 이해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농담을 하는 자는 \’참\’ 또는 \’거짓\’이라는 딱딱한 관념을 떠나 자유롭게 지껄이고, 농담을 듣는 자는 마음껏 웃을 수 있다.
너 나 없이 세기말의 우울이라는 병에 감염된 듯, 화자의 지루한 독백과 물기 어린 감정의 토로만이 성하고 있는 소설들에 지치고 물린 독자들에게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는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성석제가 구사하는 발랄한 언어는 독자들을 새로운 소설의 영토, 웃음과 자유로움의 땅으로 안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