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원제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유진 오닐 | 옮김 민승남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2년 11월 1일 | ISBN 89-374-6069-6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4 · 240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작품 -유진 오닐

1936년 노벨문학상 수상,  퓰리처상 4회 수상 미국 최고의 극작가 유진 오닐의 대표작</SPAN

편집자 리뷰

밤으로의 긴 여로는 오닐의 마지막 희곡이자 리얼리즘이 가장 뚜렷하게 구현된 작품으로, 가족과 자신의 삶에 대한 위대한 용서를 담고 있다. – 아서 밀러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지만 안으로는 고통 받고 방황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작가 오닐의 대표작. – 뉴욕 타임스
이보다 더 감동적인 유진 오닐의 작품은 없다. – 뉴욕 헤럴드 트리뷴
미국 최고의 극작가 유진 오닐의 대표작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가 (주)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오닐은 미국에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극작가이자 사후 3년째 되던 해에 수상한 것을 포함하여 총 4회 퓰리처 상을 받은 작가이다. 그러나 실제 오닐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장엄한 비극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불행하였다. 「밤으로의 긴 여로」에는 비극적인 그의 가족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현대 작가 중에서도 가장 음울하고 비관적인 작가로 꼽히는 오닐의 의식 세계를 가장 극명히 알 수 있다.안개 인간들을 위한 진혼곡
가난하고 무지한 아일랜드계 이민 출신으로 연극배우로 성공하지만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가정과 자신의 배우 인생을 망치고 마는 아버지 제임스 오닐, 마약 중독자였던 어머니 엘라 퀸랜, 술에 절어 방탕한 삶을 살다가 결국 알코올 중독 합병증으로 일찍 세상을 마감한 형 제임스 오닐 2세―이들을 발가벗겨서 드러내는 것은 오닐에게 “사랑에 대한 신념”과 용기가 필요한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오닐은 캘리포니아의 타오 하우스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1939년에 이 글을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소뇌 퇴행성 질환으로 인한 마비 증세로 손을 제대로 쓸 수도 없었을 뿐더러 자신과 가족들의 상처를 파헤치는 고통 또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것이었다. 부인 칼로타의 술회에 따르면 오닐은 “들어갈 때보다 10년은 늙은 듯한 수척한 모습으로, 때때로 울어서 눈이 빨갛게 부은 채” 작업실에서 나오곤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을 탈고한 뒤 오닐은 자신의 사후 25년 동안은 발표하지 말고 그 이후에도 절대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에게는 그만큼 사적이고 아픈 이야기였던 것이다.「밤으로의 긴 여로」에 등장하는 티론 가족은 어머니의 이름이 엘라가 아닌 메리이고, 두 살 때 홍역으로 죽은 둘째 에드먼드와 셋째 유진의 이름을 맞바꿔놓은 걸 제외하면 실제 오닐 가족의 모습과 똑같다. 따라서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닐의 가족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우선 아버지 제임스 오닐 일가는 1848년 아일랜드에 감자병이 돌면서 무시무시한 기근이 아일랜드 전역을 덮치자 가난을 피해 미국으로 떠나온 이민자들이었다. 제임스 오닐의 부친은 미국에 온 지 1년 만에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조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세상을 하직했으며, 남겨진 가족들은 가난하고 비참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는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공장 일을 하면서 진저리나는 가난을 체험한다. 이후 그는 독학으로 연기 공부를 하고 아일랜드식 억양을 없애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로 인정받게 되지만 우연한 기회에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역을 맡아 부와 명성을 거머쥐게 된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계속 흥행에 성공하자 돈에 눈이 어두워진 제임스 오닐은 25년간 미국 전역을 돌며 6천 회 이상의 순회공연에 매달린 끝에 결국 셰익스피어와는 거리가 먼 흥행 배우로 주저앉고 만다. 그는 가난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가족들에게는 병적으로 인색하게 굴면서 악착같이 땅을 사들인다. 한편 어머니 엘라 퀸랜은 유복한 중산층 출신으로 피아노 연주에 재능이 있고 수녀가 되기를 꿈꾸던 감수성이 예민하고 경건한 인물이었으나 19세에 미남 배우 제임스 오닐과 사랑에 빠져 자신의 꿈을 접고 그와 결혼한다. 조용하고 예민한 성격이었던 그녀는 ‘싸구려 호텔’을 떠돌며 가정다운 가정을 꾸리지도 못하고 사는 외로운 생활에 염증을 느낀다. 그러다 친정어머니에게 맡겨두었던 둘째 아들 에드먼드가 홍역으로 죽자 자신과 남편과 홍역을 옮긴 큰아들 제이미를 원망하고 증오하게 된다. 그러던 중 셋째 유진을 낳고 진통이 가시지 않아서 호텔의 주정뱅이 돌팔이 의사에게서 진통제로 모르핀 주사를 맞게 된 후, 모르핀 중독자가 되고 만다.이러한 그녀의 마약 중독은 두 아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만다. 큰아들 제이미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결국 인생의 실패자, 알코올 중독자로 죽음을 맞게 되며, 막내 유진은 책에만 파묻혀 살며 형 제이미를 숭배한다. 형처럼 방탕하게 살던 그는 결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쫓겨나 배를 타고 떠돌기도 하고 뉴욕 뒷골목에서 부랑자 노릇을 하다가 1911년에는 자살 기도까지 한다.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인 1912년은 어머니 엘라가 중독 증세가 호전되어 요양원에서 돌아오고 유진이 방랑 생활을 접고 신문사에 기자 겸 시 기고가로 입사한 시기이다. 작품 속에서 티론 가족은 그들의 유일한 집인 여름 별장에 모여 모처럼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생활한다. 그러나 커튼처럼 드리워진 자욱한 안개와 병든 고래의 신음 소리 같은 음울한 무적이 암시하듯 1막부터 이들은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이미 메리는 다시 모르핀을 맞기 시작했고, 단순한 독감인 줄 알았던 에드먼드의 병은 심각한 증세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짐짓 태연함을 가장하던 가족들은 두려움이 엄연한 현실로 다가오자 메리는 마약에서, 아버지와 두 아들은 술에서 도피처를 찾는다. 메리는 마약의 힘을 빌려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 그곳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세 남자는 술기운으로 절망과 쓰라림을 견딘다. 4막에서 에드먼드가 아버지에게 “이 빌어먹을 집구석에선 이해를 해줘야지 안 그러면 돌아 버린다.”고 했듯이, 아버지의 인색함은 가난 탓으로, 어머니의 마약중독은 돌팔이 의사 탓으로, 제이미의 냉소주의와 뒤틀린 질투는 인생에 대한 좌절 탓으로, 에드먼드의 병적인 비관주의는 다우슨, 니체, 보들레르 탓으로 돌려진다. 식구들마다 마약이나 술기운을 빌려 자신을 변호하는 장광설을 늘어놓으면 피붙이다운 연민과 애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보들레르가 노래한 “그대의 어깨를 눌러 땅바닥에 짓이기는” 현실의 무게는 그들로 하여금 서로를 잔혹하게 할퀴고 증오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티론 가족은 순간순간 서로를 이해하는 듯하지만 끝내 화해하지도, 구원 받지도 못하고 죽음과 같은 절망의 나락에 빠져 들 뿐이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결코 가혹하지만은 않다. 그것은 오닐 자신이 그토록 고통에 차서 방황하던 네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쓴 글이기 때문이다. 실로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그는 “돌지 않기 위해서”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난 연민과 이해와 용서로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를 끝없이 괴롭히고 방황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그를 최고의 극작가로 키워낸 밑거름이었던 가족들에게 위대한 극의 형식으로 보답한 것이다. 그는 메리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칼로타 몬트레이는 고인의 뜻에 따르지 않고 1956년에 「밤으로의 긴 여로」를 발표하게 되는데, 미국 관객들보다 더 오닐을 사랑하고 인정했던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있는 왕립극장이 초연 장소였다. 장장 4시간 반 동안 공연된 초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스웨덴의 비평가들은 오닐을 그리스의 비극 시인 아이스퀼로스와 셰익스피어의 맥을 잇는 최고의 극작가라고 극찬하였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같은 해에 미국 예일 대학교 출판부에서 책으로 출간됨과 동시에 뉴욕 무대에도 올려졌다. 뉴욕 공연 역시 “스트린드베리가 대사를 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같다.”는 찬사를 받으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밤으로의 긴 여로」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인간의 보편적인 진실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으며 1957년에는 그에게 다시 퓰리처 상을 안겨주었고, 영화와 텔레비전 극으로도 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연극무대에 올려지고 있다.비극적인 삶, 그리고 연극
오닐은 1888년 뉴욕 브로드웨이의 한 호텔 방에서 태어났다. 순회극단의 배우로 전국을 떠돌던 아버지를 따라 호텔을 전전하며 살다가 일곱 살 무렵에 기숙학교에 들어가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책을 읽거나 형에게 장문의 편지들을 쓰면서 지냈다. 1906년에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하지만 얼마 못 가서 퇴학당하고, 이후 6년간 바다에서 선원 노릇도 하고 남미와 뉴욕에서 부랑자로 떠돌며 인생 체험을 한다. 1912년에 그는 결핵에 걸려 6개월 동안 요양소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도스토예프스키와 스트린드베리를 접한다. 오닐이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1913년 겨울에 스트린드베리를 읽게 되면서 나는 현대극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 알게 되었고 처음으로 극작가가 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라고 밝힌 것처럼 특히 스트린드베리와의 만남은 그를 극작가로 새로이 태어나게 한다. 아버지 제임스 오닐이 몸담았던 “고래고래 소리나 질러 대는 과장되고 감상적인 통속극”을 경멸하면서 자란 그가 스트린드베리와 입센으로 대표되는 현대극을 통해 비로소 극의 예술성과 매력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하버드 대학교 조지 피어스 베이커 교수의 ‘워크샵 47’ 희곡 창작 강좌에서 습작 활동을 거친 후 오닐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현대극의 여러 형식들을 실험하며 20편의 장편과 수많은 중, 단편들을 써냈다. 대표작으로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주의 계열의 「지평선 너머」, 니체와 프로이드, 융의 영향을 받은 표현주의 계열의 「털북숭이 원숭이」, 그리스 비극의 형식을 빌린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불출들의 달」과 「밤으로의 긴 여로」, 이 밖에도 「안나 크리스티」, 「느릅나무 밑의 욕망」, 「기묘한 막간극」, 「아아! 황야」, 「얼음장수 오다」 등이 있다. 이러한 풍부한 작품 활동과는 대조적으로 오닐의 사생활은 불행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불신으로 얼룩진 유년을 보냈던 오닐은 세 번의 결혼 생활에서 얻은 자신의 자식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이루지 못했다. 오닐의 재능을 물려받아 예일 대학교 영문학 교수가 된 장남 유진 오닐 2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딸 우우나가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찰리 채플린과 결혼하자 딸과 의절해 버렸다. 육체적으로는 알코올 중독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형처럼 끊임없이 술의 유혹에 시달렸으며, 말년에는 소뇌 퇴행성 질환으로 인한 마비 증세와 우울증이 악화되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1953년 초겨울 무렵 그는 아내 칼로타의 도움을 받아 미완성 원고들을 모두 찢어 버렸다. 완전하지 못한 원고들을 비평가들의 도마 위에 올리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의 작품을 다른 작가가 마저 완성하는 것은 더욱 원치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말년에는 오랜 동반자였던 아내 칼로타와도 극심한 불화를 겪는 등 불행이 끊이지 않았다. 1953년 11월 27일, 그는 65세의 나이로 보스턴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는데, “빌어먹을 호텔 방에서 태어나 호텔 방에서 죽는군.”이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1920년 「지평선 너머」로 첫 퓰리처 상을 받은 오닐은 이후 「안나 크리스티」, 「기묘한 막간극」, 「밤으로의 긴 여로」로 총 4회 퓰리처 상을 수상하였고, 1936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옮긴이 민승남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마법의 등: 잉마르 베리만 자서전』, 『항해뉴스』, 『룸메이트』 등이 있다.

작가 소개

유진 오닐

뉴욕의 한 호텔에서 연극배우였던 제임스 오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텔을 전전하며 살다가 기숙학교에 들어가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퇴학당한다. 이후 육 년 동안 남미와 뉴욕을 떠돌며 선원 노릇을 하거나 방랑자 생활을 하던 오닐은 1911년 자살을 기도하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낸다. 그 후 결핵에 걸려 요양소에 입원하게 된 오닐은 스트린드베리를 접하면서 연극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되고, 퇴원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습작 활동을 한 후 신극 운동가들과 함께 뉴욕 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1920년 「지평선 너머」로 첫 퓰리처상을 받은 오닐은 이후 「안나 크리스티」, 「기묘한 막간극」, 「밤으로의 긴 여로」로 총 4회 퓰리처상을 수상하였고, 1936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독자 리뷰(12)

독자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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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회원 7명의 평가

한줄평

심연부터 주저앉고마는 나의 이야기

밑줄 친 문장

세상에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과거는 바로 현재예요, 안 그래요? 미래이기도 하고. 우리는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애써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인생은 그걸 용납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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