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의 스케치

버지니아 울프 회고록

버지니아 울프 | 옮김 이미애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9년 12월 9일 | ISBN 978-89-374-2960-6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3x188 · 152쪽 | 가격 9,800원

시리즈 쏜살문고 | 분야 쏜살문고

책소개

이 작품을 보라!
쏜살 문고로 만나는 여성 문학의 멋진 신세계

여성이 마주한 세상,
여성이 기록한 경험,
여성이 분투한 운명,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만나다

지난 2016년 7월 민음사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쏜살 문고’의 첫 책을 펴낸 이래, 이번 「여성 문학 컬렉션」을 출간하며 총 50권을 돌파하였다.(「동네 서점 에디션」 및 「워터프루프북」 등 특별판 제외.) 새로운 출판 플랫폼을 구현하겠다는 기치 아래, 과거 ‘문고판’ 도서의 틀을 쇄신하며 작품 선정과 편집,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도전을 이어 온 ‘쏜살 문고’가, 2019년 마침내 ‘동서고금의 여성 문학’과 함께 다시 독자들 곁을 찾았다.
지난 삼여 년의 시간 동안 면밀히 기획해 온 이번 「여성 문학 컬렉션」은, 2016년과 2017년 사이에 출간한 「세계문학전집 속 거장 컬렉션」 그리고 작년에 펴낸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과 마찬가지로 ‘문고 속 작은 우주’를 표방하며, 하나의 독자적인 큐레이션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2019년 11월, 「여성 문학 컬렉션」 1차분으로서 세상에 내놓은 이번 여섯 권의 책을 디딤돌로 삼아, 우리 출판계가 마땅히 주목하고 기억해야 할 여성 문학의 ‘멋진 신세계’를 차례로 펼쳐 보이도록 하겠다.
2016년 「세계문학전집 속 거장 컬렉션」의 첫 권으로 출간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2017년 21세기 페미니즘 문학을 선도하는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화제작 『엄마는 페미니스트』, 2018년 ‘여성적 글쓰기(écriture féminine)’의 정수를 보여 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에 이르기까지, ‘쏜살 문고’ 속에서 매년 커다란 궤적을 그려 온 여성 문학이 이번 「여성 문학 컬렉션」을 통해 거대한 성좌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왜 지금 ‘여성 문학’인가?
문학은 작가 개인의 기록인 동시에, 작가의 육체와 내면을 가로지는 모든 시공간의 집적(集積)이자 독자와 역사가 선택하는 시대적 증거물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살아남은 작품에는 저마다 가치가 있고, 우리들은 그것을 ‘고전’이라 부르며 매 순간 새로이 읽고 또 기억한다.
오늘날 여성 작가와 여성 독자, ‘책’을 둘러싼 문화와 산업 전반에 걸쳐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꼈다. 세상의 절반이 여성이라면 그만큼의 ‘고전’이 우리 곁에 있기 마련이고, 더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거둘 수 없었다. 여성의 육체를 둘러싼 내밀한 경험, 여성의 성장과 자아실현을 위한 이야기들, 여성 억압의 역사 속에서 수난당해야만 했던 고통의 서사, 여성이 여성으로서 털어놓을 수 있는 ‘자기만의 목소리’ 등 우리 세계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하여, 매서운 분투 속에서 생존한 ‘여성 문학’을 새로이 기념하기 위하여 「여성 문학 컬렉션」을 펴내기로 하였다.
‘법이 금지한’ 임신 중절 경험을 극도로 정제된 문체로 용기 있게 서술한 아니 에르노의 『사건』을 필두로, ‘무민 시리즈’의 작가이자 북유럽 현대 문화·예술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토베 얀손의 작가적 재능과 인생을 관조하는 시선이 오롯이 녹아 있는 『여름의 책』과 『두 손 가벼운 여행』 그리고 한국 문학계의 거목이자 현대 우리말로 쓰인 여성 문학의 결정적인 작품들, 강경애의 『소금』, 박완서의 『이별의 김포공항』, 강신재의 『해방촌 가는 길』까지 한자리에 모았다. 이후 버지니아 울프, 마르그리트 뒤라스, 히구치 이치요, 캐서린 맨스필드와 거트루드 스타인 등 전 세계의 중요한 여성 작가와 여성 문학을 지속적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더불어 「여성 문학 컬렉션」의 표지 디자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민음사에서 눈부시게 활약해 온 최정은, 최지은, 유진아 디자이너를 비롯하여 김린 디자이너, 박연미 디자이너 등 국내의 여성 디자이너들이 각각 표지를 맡아 주었다. 쏜살 문고 「여성 문학 컬렉션」의 첫 독자로서 하나하나의 작품들과 깊이 교감한 이들 디자이너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함께 주목해 보자.

「여성 문학 컬렉션」 출간 및 예정 리스트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 이미애 옮김
엄마는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황가한 옮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마르그리트 뒤라스 | 윤진 옮김
사건 아니 에르노 | 윤석헌 옮김
여름의 책 토베 얀손 | 안미란 옮김
두 손 가벼운 여행 토베 얀손 | 안미란 옮김
이별의 김포공항 박완서
해방촌 가는 길 강신재
소금 강경애 | 심진경 엮고 옮김
런던 거리 헤매기 버지니아 울프 | 이미애 옮김
지난날의 스케치 버지니아 울프 | 이미애 옮김
물질적 삶 마르그리트 뒤라스 | 윤진 옮김
뭔가 유치하지만 매우 자연스러운(근간) 캐서린 맨스필드 | 박소현 옮김
엄마 실격(근간) 샬럿 퍼킨스 길먼 | 이은숙 옮김
제복의 소녀(근간) 크리스타 빈슬로 | 박광자 옮김
세 가지 인생(근간) 거트루드 스타인 | 이은숙 옮김

편집자 리뷰

불확실과 음울로 가득한 세계로부터 떠올라 계속 이야기하기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자기 방식대로 깨닫고 큰 소리로 말하기

나는 그것을 말로 옮김으로써 실재로 만든다. 그저 말로 옮김으로써 완전하게 만든다. 이 완전함은 그것이 내게 상처를 줄 힘을 상실했음을 뜻한다. 말로 옮김으로써 고통을 없앴으므로 나는 단절된 부분들을 결합하면서 큰 기쁨을 얻는다. 이것이 내게 가장 큰 기쁨일 터다. 그것은 글을 쓰면서 내가 무언가의 속성을 발견하고 어떤 장면을 제대로 살려 내고 어떤 인물을 결합할 때 느끼는 환희다. 여기서 이른바 나의 철학이랄까, 어떻든 한결 같은 생각에 이른다. 즉 목화솜 뒤에 어떤 패턴이 숨어 있고, 우리 즉 모든 인간은 그 패턴에 연결되어 있으며, 온 세계는 한 편의 예술 작품이고, 우리는 그 예술 작품의 일부라는 생각이다. (……) 산책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혹은 전쟁이 나면 유용할 일을 배우는 대신 지금 글을 쓰면서 오전 시간을 보냄으로써 나는 이것을 입증한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훨씬 더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본문에서

20세기를 ‘옛날’로 부르는 데 어느 누구도 스스럼을 느끼지 않는 지금, ‘오늘날’이라는 낱말과 함께 근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빈번히 소환되는 이름,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을 넓은 강당에서 연설하던 그와 『등대로』에 가감없이 그려진 가정의 끈적한 그림자 속 딸 사이에는 몇 개의 연결고리가 빠져 있을까. 이 순간도 우리가 버지니아 울프를 가장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하고 가장 사적인 자리에서 묵독하는 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평생 천착해 파고든 ‘자기’라는 주제가, 결국 우리 여성의, 우리 인간의 유의미한 케이스스터디인 까닭일 터다. 2019년의 마지막 달, 민음사 쏜살문고에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내밀한 기록을 가려 뽑은 산문집과 회고록을 소개한다. 겉으로 드러내도 손상되지 않는 내밀함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인생이 어떤 토대 위에 서 있다면, 인생이 우리가 계속 채워 가는 그릇이라면, 그렇다면 내 그릇은 의심할 바 없이 이 기억 위에 서 있다. 그것은 잠이 들락 말락 한 상태에서 세인트아이브스의 아이 방 침대에 누워 파도가 하나둘 하나둘 부서지며 해변에 밀려오고 노란 블라인드 뒤에서 하나둘 하나둘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다. 바람이 블라인드를 휘날리며 바닥의 작은 도토리를 끌어가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다. 가만히 누워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빛을 보며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하며 더없이 순수한 황홀함을 느낀 기억이다. -본문에서

버지니아 울프 자신의 유년 시절과 가족들에 대한 무작위적인 일기의 모음 『지난날의 스케치』에는 독특한 형태와 빛깔을 지닌 하나의 ‘그릇’이 등장한다. 이 그릇을 울프는 60년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채워 갔다. 이 그릇은 조금은 빛바래고 조금은 마모되며 고유한 멋을 띠게 되었지만, 아주 오랜 시간 파도 소리가 들리는 해변의 작은 별장에 놓여 있었다. 울프의 대표작이라 볼 수 있는 장편 소설 『등대로』와 『댈러웨이 부인』이 모두 이 가족적인 기억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세 사람을 언급한 까닭은 내가 어렸을 때 그들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 보았던 대로 그들을 본다. 아주 늙은 신사인 울스턴홈은 여름철마다 우리 집에 머물렀다. 가무스름한 피부에 뺨은 퉁퉁하고 아주 작은 눈에다 턱수염이 있었다. 벌집 모양의 갈색 버들세공 의자가 둥지처럼 그에게 꼭 들어맞았다. 그는 거기 앉아 담배를 피우며 독서하곤 했다. 자두 파이를 먹을 때 과일즙을 코로 뿜어내서 회색 콧수염에 자주색 얼룩을 만든 것이 그의 유일한 특징이었다. -본문에서

그 둔탁한 강렬함은 나비나 나방이 마들바들 떨리는 끈적거리는 다리와 더듬이로 번데기를 밀어내고 나와서 아직 날개가 접힌 채 눈부셔하며 날지 못하고 부서진 번데기 옆에서 잠시 떨면서 느낄 법한 것이었다. -본문에서

그는 몸을 일으켜 서가로 걸어가서 책을 꽂고 “그 책을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부드럽고 친절하게 묻곤 했다. 나는 보스웰을 읽고 있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18세기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나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나를 보고 반가워했던 이 비세속적이고 매우 특출하며 외로운 남자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벅차올라 나는 자랑스럽고 고무된 기분으로 응접실에 돌아가서 조지가 지껄이는 말을 듣곤 했다. -본문에서

울프는 세계 대전 속 침공의 위협을 시시각각 느끼면서, 더욱더 집요하게 자기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울프가 관심을 두고 묘사하는 것은 날개를 활짝 편 나비가 아니다. 아직 젖어 있고, 눈을 제대로 못 뜬,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었던 번데기 옆에서 잠시 떠는 나비가, 그가 푹 빠져들어 탐구하는 대상이다. 자신이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무자비했는지를, 자신이 겪은 가장 큰 고통이 얼마나 현재의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지를, 수고로이 회고하면서 버지니아 울프는 이야기한다. 만일 인생이 발광한 말처럼 뒷다리로 서서 제멋대로 발길질을 해 대는 것이라면 시달릴 수밖에 없겠다고. 그러나 이를 통해 정말로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그건 바로 “나 자신”이다.

목차

지난날의 스케치

작가 소개

버지니아 울프

1882년 런던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 수준의 지적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을 앓았으며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로서 울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울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왔던 울프는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신 질환의 재발을 우려하여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이미애 옮김

현대 영국 소설 전공으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교에서 강사 및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조지프 콘래드, 존 파울즈, 제인 오스틴, 카리브 지역의 영어권 작가들에 대한 논문을 썼고, 역서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조지 엘리엇의 『아담 비드』, J. R. R. 톨킨의 『호빗』, 『반지의 제왕』(공역),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 『톨킨의 그림들』, 토머스 모어의 서한집 『영원과 하루』, 리처드 앨틱의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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