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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인선40]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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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카피: 시각적인 실험시의 계보를 잇는 박상순 시인이 온전히 한글화하고 해석한 이상 시 50편 전집!

부제: 해석판 이상 시전집

원제 I WED A TOY BRIDE

이상, 박상순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9년 9월 10일

ISBN: 978-89-374-7540-5

패키지: 변형판 140x210 · 464쪽

가격: 16,000원

시리즈: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50주년 기념) 40

분야 세계시인선 40


책소개

“이상은 한국 문학사상 최초의 아방가르드 시인으로 모더니즘, 다다, 초현실주의를 시도했고 실험적인 시각시를 처음 발표했다. 큐비즘을 비롯한 서양화의 표현기법을 문학적으로 전환해 감정과 상징에서 벗어난 시각 중심주의로 한국 모더니즘 시의 역사를 열었다. 실험적 언어로 암호처럼 쓰인 이상의 시는 억압적 질서와 식민 제국주의에 대한 문학적 해부, 강한 대결성을 품은 한국 시의 혁명이었다.” ―박상순(시인)


목차

● 차례
1부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
꽃나무
거울
이런시
오감도
시 제1호
시 제2호
시 제3호
시 제4호
시 제5호
시 제6호
시 제7호
시 제8호 해부
시 제9호 총구
시 제10호 나비
시 제11호
시 제12호
시 제13호
시 제14호
시 제15호
I WED A TOY BRIDE
•흰•꽃•을•위•한•시•(소영위제)
거리 밖의 거리 (가외가전)
산책의 가을
명경
역단
역단
화로
아침
가정
행로
지비
지비-어디갔는지모르는아내
보통기념
위독
금제
절벽
봄을 사다(매춘)
생애
침몰
내부
자상
백화
추구
위치
문벌
육친
정식
파첩
실낙원
최저낙원
무제 1
무제 2
1933, 6, 1

2부 모형 심장과 동적 시노그래피

에필로그
부록 발표 시 원문
작가 연보


편집자 리뷰

● 한국 문학사에서 모더니즘, 다다, 초현실주의를 시도한 최초의 아방가르드 시인!

시각적인 실험시의 계보를 잇는 박상순 시인이 온전히 한글화하고 해석한 이상 시 50편 전집이 출간되었다. 이상은 한국 문학사에서 모더니즘, 다다, 초현실주의를 시도한 최초의 아방가르드 시인이다. 국문학과 논문 주제 1순위가 될 정도로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이면서 동시에 약 100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적인 감각의 원천이 되는 매력적인 시인이다. 특히 국내 최초 초현실주의 문학동인지 《삼사문학(三四文學)》에 발표한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I WED A TOY BRIDE)」(1936)에서 이상은 ‘장난감 신부’를 통해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아폴리네르의 마네킹 모티프, 사진작가 만 레이와 한스 벨머의 인형 이미지, 그리고 화가 막스 에른스트의 ‘신부(bride)’의 상징성까지 아우르면서 “인간의 몸에서 움직이는 마네킹을 발견”하고 “체제에 구속당한 신체의 반영”을 드러내면서 현대적 성찰과 국제적 감각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상은 한국 문학사상 최초의 아방가르드 시인으로 모더니즘, 다다, 초현실주의를 시도했고 실험적인 시각시를 처음 발표했다. 큐비즘을 비롯한 서양화의 표현기법을 문학적으로 전환해 감정과 상징에서 벗어난 시각 중심주의로 한국 모더니즘 시의 역사를 열었다. 실험적 언어로 암호처럼 쓰인 이상의 시는 억압적 질서와 식민 제국주의에 대한 문학적 해부, 강한 대결성을 품은 한국 시의 혁명이었다.”
―박상순, 「모형 심장과 동적 시노그래피」,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에서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 해석판 이상 시전집』은 이상의 국문시 50편을 실었다. 그동안 산문으로 보았던 「산책의 가을」, 「실낙원」, 「최저낙원」 세 편을 시의 영역으로 위상을 조정했다. 처음으로 발표한 한글 시 세 편 가운데 하나인 「1933. 6. 1」에서 이상은 “무게를 재는 천칭 위의 과학자, 뻔뻔히 살아온 사람에서 벗어나 마침내 자신을 드러내겠다”는 다짐을 한다. 1933년은 이상이 총독부를 사직하고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해다. “이상의 시는 객체화든 객관화든 타자화든 간에 근대적 주체의 인식과 파기이다. 1933년 이날의 다짐은 그동안 일본어로 써서 발표한 시와의 이별일 수 있다.” 그래서 박상순 시인은 ‘이상 시전집’에서 일본어 시를 제외한다.

시인은 지역어, 소수어, 변방어, 그런 미미한 말들의 발화자이다. 민족어나 모국어의 혈통적, 민족적 문제가 아니다. 시인은 어떤 하나의 언어 속에서 고통, 초라함, 혼란, 미미한 존재들의 소리를,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소리 내야만 하는 언어 그 자체이다. 그것이 시인을 만들고, 그것 때문에 시인은 그것을 선택한 시인이 된다.
―박상순, 「모형 심장과 동적 시노그래피」,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에서

「1부 나는 장난감 인형과 결혼한다」는 박상순 시인이 한글과 옛 표현을 현대어로 옮긴 이상의 시 50편을 실었고, 「2부 모형 심장과 동적 시노그래피」는 박상순 시인의 이상 해석이자 시인으로서 펼친 한 편의 시론이기도 하다. 부록에서는 이상이 시를 발표할 당시 원문을 그대로 붙였다.

“문학은, 특히 시는 더 많은 다수를 향한 말이 아니라 홀로 남겨진 한 사람을 위한 소리여야 한다. 시는 한 사람이 모두이고, 모든 것이 한 사람인 역사이다. 그래서 고독한 개인으로서의 시인는 절망하고 실패한다. 그러나 절망과 실패를 안고 한국 모더니즘 시의 역사는 더 생생하게 이어질 것이다.”
―박상순, 「에필로그」,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에서

● 시각적인 실험시의 계보를 잇는 박상순 시인이 온전히 한글화한 이상 시 50편 전집!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는 박상순 시인이 이상의 시를 온전히 한글화한 최초의 시도다. 한국문학의 모더니즘의 계보에서 이상의 시를 현대화하는 작업은, 시각적인 실험시의 계보를 잇는 박상순 시인의 연구과 경험 위에서 가능한 작업이다. 예를 들어, 「오감도, 시 제7호」의 원문을 보자. “久遠謫居의地의一枝●一枝에피는顯花●特異한四月의花草●三十輪●三十輪에前後되는兩側의 明鏡”는 “아주먼귀양살이의땅에가지하나●한가지에피는밝은꽃●특이한사월의화초●30송이●30송이둘레의전후되는양쪽의 거울”로 번역되었는데, 여기서 ‘삼십륜(三十輪)’은 ‘30송이’로 옮겼다. 지금까지 ‘수레바퀴’로만 번역되었던 ‘륜(輪)’은 ‘다륜화(多輪花)’(한 줄기에서 여러 개의 꽃이 피는 화초)나 ‘월륜(月輪)’(둥근 달)의 경우처럼 ‘꽃송이’나 ‘둥근 것’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므로 ‘화륜(花輪)’이라고 쓰면 꽃목걸이나 화환이 된다. 이상의 시에서 ‘륜(輪)’은 꽃송이와 날짜를 암시하는 바퀴(차례, 윤회)의 뜻이 함께 있는데, 여기서는 앞의 꽃을 가리키는 꽃송이의 뜻이 강하다. 또한 30일 전후의 날짜를 가리키는 이중적 의미이기 때문에 ‘둘레’(둥글게 돌기, 윤회)의 뜻이 강하기 때문에 “30송이둘레의전후”로 옮겼다. “30전후는 달의 삭망 주기 29.5일을 가리킨다. 30바퀴는 아니다. 30바퀴라고 쓰면 30곱하기 29.5일이 된다. 1바퀴를 도는 달의 공전으로 30송이 꽃으로 만든 1개의 화환 모양이다.”

「오감도, 시 제9호 총구」에서는 원문 “每日가치列風이불드니드듸여내허리에큼직한손이와닷는다”를 “매일같이거센바람이불더니드디어내허리에큼직한손이와닿는다”로 옮겼다. 여기서 한자음 그대로 ‘열풍’으로 번역되던 ‘列風’을 ‘거센바람’으로 옮긴 이유는 원래 ‘열풍음우(列風淫雨)’(폭풍과 폭우)에서 온 단어이기 때문이다. “중국 문예이론서 『문심조룡』에서 유협은 『제왕세기』에 있는 표현인 ‘열풍음우(列風淫雨)’를 예로 들면서 글자 일부를 바꿔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효과를 설명했다. 모양이 비슷한 글자로 별풍회유(別風淮雨)라고 바꿔 쓴 경우인 『상서대전』을 소개했다. 그래서 ‘열풍음우’라는 말은 오자처럼 바꿔 쓰는 표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동안은 이 시에서의 열풍(列風)을 오자라고 생각해 열풍(烈風)으로 바꿔 놓기도 했다. 열국(列國), 열차(列車)가 동시에 늘어선 여럿을 가리키듯 한꺼번에 몰려오는 바람이다.”

「위독: 봄을 사다(매춘)」의 본래 한자어 제목은 매춘(買春)인데, 일반적으로 몸을 판다는 뜻의 ‘매춘’의 ‘팔다[賣]’ 대신에 ‘사다[買]’라는 한자를 썼다. ‘봄을 사다’에서 ‘봄’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그 해석이 불명확했다. “성매매를 지칭하는 말을 조금 바꾼 언어유희일까? 그렇지 않다. 이상은 전체 구조가 아닌 자잘한 말놀이에는 몰두하지 않는 사람이다. 몽롱한 봄을 산 것이다.” 그렇다면 봄은 무엇인가?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鄭歚)이 그림을 그리고 서예가 이광사(李匡師)가 글씨를 쓴 『24시품(二十四詩品)』이란 유명한 화첩이 있다. (……) 그중에 여섯 번째 시 「전아(典雅)」는 ‘옥호매춘 상우모옥(玉壺買春 賞雨茅屋, 옥으로 만든 병에 술을 사 담고, 초가에서 비를 보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봄’은 ‘술’이다. 몸을 팔고 사는 행위(성매매)나 계절(봄)만도 아닌, 술을 사는 것을 뜻한다. 당나라 무렵에는 매춘이 그런 뜻(술)으로 쓰였다. 사공도의 시 『24시품』은 16세기쯤 조선에 들어와 19세기까지 시인이며 화가인 자하 신위, 추사 김정희를 비롯한 여러 문인들에게 널리 읽혔고, 서화 작품으로도 표현했던 문학 작품인 동시에 전통문예미학의 지침서였다.
그렇다면 이상의 시 「매춘」은 술을 사 마신(취한) 상황이 된다. 술을 생각하며 시를 다시 읽으면 정신과 신체의 이런 상태는 더 설명할 것도 없다. 술과 감정과 사이펀은 또 얼마나 적절한 결합인가. 따라서 이 시는 술에서 촉발하여 그것을 시적으로 전환한 작품이다. 차원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시적 언어가 아니다. 그러니 술마저도 잊어버리고 다시 보자. 정신과 신체가 어긋난 자신의 모습, 타는 듯한 더위에 생선이 썩는, 술에 취한 시대의 위독한 풍경이다.
―이상, 「모형 심장과 동적 시노그래피」,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에서

지금껏 해석상 완전하지 못한 부분들을 이처럼 이상이 지닌 동양 문예의식과 고전 텍스트를 살폈고, 또한 이상이 당시 경험한 구체적 사건들도 따졌으며, 특정 시어가 이상이 쓴 소설과 산문들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꼼꼼한 교차분석’을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시인으로서 창조적인 번역’을 이루어 냈다. (한글로 바꾼 것과 뜻을 풀어 옮긴 부분은 서체를 다르게 표시했다.)

1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 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다. 나는지금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다. 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를하는중일까.
2
죄를품고식은침상에서잤다. 확실한내꿈에나는결석하였고의족을담은 군용장화가내꿈의 백지를더럽혀놓았다.
3
나는거울있는실내로몰래들어간다. 나를거울에서해방하려고. 그러나거울속의나는침울한얼굴로동시에꼭들어온다. 거울속의나는내게미안한뜻을전한다. 내가그때문에갇혀있듯이
그도나때문에갇혀서떨고있다.
4
내가결석한나의꿈. 내위조가등장하지않는내거울. 무능이라도좋은나의고독의갈망자다. 나는드디어거울속의나에게자살을권유하기로결심하였다. 나는그에게시야도없는들창을가리키었다. 그들창은자살만을위한들창이다. 그러나내가자살하지아니하면그가자살할수없음을그는내게가르친다. 거울속의나는불사조에가깝다.
5
내왼편가슴심장의위치를방탄금속으로엄폐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을발사하였다. 탄환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하였으나그의심장은바른편에있다.
6
모형심장에서붉은잉크가엎질러졌다. 내가지각한내꿈에서나는극형을받았다. 내꿈을지배하는자는내가아니다. 악수할수조차없는두사람을봉쇄한거대한죄가있다.
―이상, 박상순 옮김, 「오감도, 시 제15호」,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에서

● 다다에서 초현실주의까지 회화적 언어로 억압적 질서에 대항한 한국 시의 혁명!

이상은 집안 형편을 고려하여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 건축과)에 진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했으나, 어릴 적부터 화가를 꿈꿨기 때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입선하기도 했다. 시인으로서는 ‘구인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는데, 1934년 연작시 「오감도」를 신문에 연재했으나 독자들의 항의로 중단했다. 또 박태원의 신문 연재소설에 삽화를 그렸고, 친구였던 화가 구본웅의 출판사에서 잠시 편집자로 일하면서 김기림 시집 『기상도』 등을 편집하고 표지디자인도 했다. 자신의 단편소설 「날개」에 삽화도 직접 그렸다. 박상순 시인도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수백 권의 책을 편집하고 디자인했다. 즉 화가로서, 북디자이너와 편집자로서, 그리고 실험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거의 동일한 경험을 공유한 해석자인 것이다.

이상의 문장은 불명료한 반건축적 문체, 겉모양 또한 발 들여놓을 틈도 없는 시멘트 덩어리이지만 축조를 지향한다. 질료에도 돌, 유리, 철 등 근대건축적 특징이 있고, 소재나 용어도 가끔은 건축 분야에서 가져온다.
각각의 대상들은 충돌하며 움직인다. 비대칭적 평형 또는 부정합 중심의 조형적, 회화적 구성이다. 시간이나 장소의 상대성과 일상성은 인상주의, 자기 표현성은 후기 인상주의나 표현주의, 물질적, 기하학적, 다중적 혼종은 세잔이나 큐비즘, 구축주의, 반체제성과 수행성은 다다, 아방가르드. 절대성이나 언어의 독립성은 추상회화의 관점이다. 하지만 그것에 버금가는 동양 전통의 정서와 문예성 또한 작동한다.
촉지적 근접 지각을 강화하고, 과거의 전형성을 거부하고 자연이나 사물의 표현 및 구조 재편성 방식은 근대 이후 회화의 주된 관심거리였다. 이런 회화적 특징이 이상 시의 바탕 또는 구성 방식으로 작용했다. 1900년대 유럽에서 등장한 이미지즘, 초현실주의 시 또한 회화적 이미지, 시각 중심이다. 청각이나 감정, 관습적 의미에서 이미지와 시각적 표현으로 시의 중심이 이동했다.
―박상순, 「모형 심장과 동적 시노그래피」,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에서

“문학은 개념을 다루는 반면 미술은 물질을 다룬다.” 예를 들어, 문학에서 ‘백지’는 ‘창백함’에 대한 은유일 수 있지만 시각적 감각과 물질성에 예민한 이상의 경우 ‘창백하다’는 의미를 그대로 창백하다고 쓰지 ‘백지’를 그런 상징성으로 쓰지 않는 편이며 오히려 ‘촉각’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박상순 시인은 당시 이상이 접했던 모더니즘 사조들을 바탕으로 미술가로서 이상이 그러한 이미지성을 어떻게 문학에서 독창적으로 구현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 1973년 시작하여 가장 긴 생명력을 이어온 문학 시리즈!

“탄광촌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세계시인선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키웠다.” ―최승호 시인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어른이 됐고, 시인이 됐다.” ―허연 시인

<민음사 세계시인선>은 1973년 시작하여 반세기 동안 새로운 자극으로 국내 시문학의 바탕을 마련함으로써, 한국 문단과 민음사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문학 총서가 되었다. 1970-1980년대에는 시인들뿐만 아니라 한국 독자들도 모더니즘의 세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때로는 부러움으로, 때로는 경쟁의 대상으로, 때로는 경이에 차서, 우리 독자는 낯선 번역어에도 불구하고 새로움과 언어 실험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러한 시문학 르네상스에 박차를 가한 것이 바로 세계시인선이다.

민음사는 1966년 창립 이후 한국문학의 힘과 세련된 인문학, 그리고 고전 소설의 깊이를 선보이며 종합출판사로 성장했다. 특히 민음사가 한국 문단에 기여하며 문학 출판사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바로 ‘세계시인선’과 ‘오늘의시인총서’였다. 1973년 12월 이백과 두보의 작품을 실은 『당시선』,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검은 고양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 네 권으로 시작한 세계시인선은 박맹호 회장이 고 김현 선생에게 건넨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보는 외국 시인의 시집이라는 게 대부분 일본판을 중역한 것들이라서 제대로 번역이 된 건지 신뢰가 안 가네. 현이(김현)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프랑스나 독일에 다녀온 이들 아닌가. 원본을 함께 실어 놓고 한글 번역을 옆에 나란히 배치하면 신뢰가 높아지지 않을까. 제대로 번역한 시집을 내 볼 생각이 없는가?”

대부분 번역이 일본어 중역이던 시절, 원문과 함께 제대로 된 원전 번역을 시작함으로써 세계시인선은 우리나라 번역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당시 독자와 언론에서는 이런 찬사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요, 또 책임 있는 출판사의 책임 있는 일이라 이제는 안심하고 세계시인선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세계시인선은 문청들이 “상상력의 벽에 막힐 때마다 세계적 수준의 현대성”을 맛볼 수 있게 해 준 영혼의 양식이었다. 특히 지금 한국의 중견 시인들에게 세계시인선 탐독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밑바탕이었다. 문화는 외부의 접촉을 독창적으로 수용할 때 더욱 발전한다. 그렇게 우리 독자들은 우리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시성들과 조우했고, 그 속에서 건강하고 독창적인 우리 시인들이 자라났다.

하지만 한국 독서 시장이 그렇게 시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시문학 전통이 깊은 한국인의 DNA에 잠재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토대에서 자라난 시문학은 또 한 번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국내 출판 역사에서 시집이 몇 권씩 한꺼번에 종합베스트셀러 랭킹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세상을 향해 보다 더 인상적인 메시지를 던져야만 하는 현대인에게 생략과 압축의 미로 강렬한 이미지를 발산하면서도 감동과 깊이까지 숨어 있는 시는 점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씨앗을 심어 왔던 세계시인선이 지금까지의 독자 호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리뉴얼을 시작했다.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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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1910년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해경, 본관은 강릉이다. 8살 되던 해 신명학교에 입학하여 화가 구본웅과 만나 오랜 친구로 지낸다. 학창 시절, 미술에 관심이 많아 화가를 꿈꾸다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한다. 학교 추천으로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발령받아 근무한다.

1930년, 잡지 《조선》 국문판에 첫 작품이자 유일한 장편 소설 「십이 월 십이 일」을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한다.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서양화 「자상」이 입선하고,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 시 「이상한 가역 반응」 등 20여 편을 발표한다. 폐결핵으로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를 그만둔 후, 1933년 서울 종로 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한다. 1934년 박태원, 정지용, 이태준 등의 도움으로 연작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하고 ‘구인회’ 회원이 된다. 1936년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 창간호를 발간하고 단편 소설 「지주회시」, 「날개」를 발표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는다. 1936년 가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37년 2월에 ‘사상 혐의’로 일본 경찰에 피검되어 조사를 받던 중 폐결핵이 악화되어 병원으로 옮겼으나 같은 해 4월, 2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이상"의 다른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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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순

시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1996년 현대시동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6은 나무 7은 돌고래』, 『자네트가 아픈 날』 등이 있다.

"박상순"의 다른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