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머니 속의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 옮김 안정효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9년 6월 7일 | ISBN 978-89-374-2952-1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3x188 · 268쪽 | 가격 10,800원

시리즈 쏜살문고 | 분야 쏜살문고

수상/추천: 노벨문학상

책소개

새로운 계절이 날마다 눈에 담기는 파리의 거리,
그 속에서 완연한 봄날을 보낸 헤밍웨이를 따라 걷는 이색적인 안내서

젊은 시절을 파리에서 보내는 행운을 누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디를 가더라도 그 추억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간다네. 그건 파리라는 도시가 머릿속에 담아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축제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지. ㅡ『호주머니 속의 축제』에서

하드보일드한 문체와 현실에 핍진한 주제로 미국 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구축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사적인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산문집 『호주머니 속의 축제』를 민음사 ‘쏜살’ 시리즈로 소개한다. 아무 가진 것 없는 젊은이, 그러나 두 손이 빈 만큼 그 손에는 어떤 막중하고 무겁고 고귀한 것도 담을 수 있는 잠재력과 꿈이 가득한 청춘 시절의 헤밍웨이가 눈부신 파리 거리를 거니는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지는 보석 같은 책이다.
『호주머니 속의 축제』에는 글쓰기를 도구로 헤밍웨이가 한평생 좇았던 인간 존엄에 대한 애정과 경의가, 특히 가족과 몇 동료 예술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와 감정이 절절하게 스며 있다. 어디에나 나무가 심겨 있어, 계절의 흐름을 육안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파리 거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난하고 젊은 문학가의 산책과도 같은 산뜻한 생활기는 책장을 넘기는 우리 여행자 겸 생활자 모두에게 아련한 향수와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편집자 리뷰

“내가 아는 가장 진실한 문장을 하나 써야 해.”
순도 높은 열정과 의지로 빛나는 문학가의 젊음

일이 잘 풀려 좋은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면 한참 층계를 걸어 내려갈 때의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나는 무언가 성취감이 들고 보람을 느낄 때까지 작업을 했고 다음에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확실히 방향이 잡힐 즈음에 일을 끝냈다. 그러면 이튿날 분명히 순조롭게 일을 계속할 준비가 갖추어진다. 하지만 가끔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려는데 일이 제대로 진전이 되지 않으면 나는 불가에 앉아 작은 귤의 껍질을 쥐어 짜서 불의 언저리에다 즙을 떨구고는 파란 불똥이 후드득거리며 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는 가끔 창가에 멀거니 서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걱정을 하면 안 되지. 전에도 줄곧 글을 써 왔으니까 지금도 쓰는 덴 문제가 없을 거야.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참된 문장 하나를 쓰는 것뿐이야. 내가 아는 가장 진실한 문장을 하나 써야 해.’ -『호주머니 속의 축제』에서

『호주머니 속의 축제』를 우리말로 옮긴 안정효는 이 책의 원서인 Moveable Feast가 미국에서 출판되자마자 부랴부랴 구해 읽었다. 그 시기는 옮긴이가 졸업반 대학생이었을 무렵, 열심히 영어로 소설을 쓰던 습작 시절이었다. 영어로 글쓰기를 공부하던 옮긴이에게 가장 부럽고 위대한 귀감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였고, 특히 그의 빙하 이론(Iceberg Theory)은 젊은 타국의 문학 지망생에게도 유일무이한 문학적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꿈을 가진 이는, 그이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서글픔이나 회한일 때고 있고 무한한 자극일 때도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라는 굵직한 문호의 초라한 시작점을 보여 주는 『호주머니 속의 축제』 속 산문들 역시 예리한 빛을 발산하며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던 연약하고도 강인한 열망을 밝혀 준다.
‘참된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불가에 앉아 가만히 귤의 껍질을 쥐어 짜는 젊은이에게 책을 살 돈은 없었지만 책을 빌려줄 친구(셰익스피어 글방의 실비아 비치)가 있고, 거북해질 정도로 칭찬을 쏟는 조금 더 먼저 성공한 동료(스콧 피츠제럴드)가 있었다는 사실은 작은 위안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헤밍웨이에게 힘을 주는 이는, 면전에서 늘어놓는 칭찬을 모욕으로 여기고 남들이 보지 않는 데서 무기를 벼려내는 자기 자신이었다. 결코 다행과 행운이라는 말에 담을 수 없는 굳센 의지와 기운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 시절에는 결국 봄이 언제나 찾아왔다.”
가진 것 없는 시절의 사치와 평온과 쾌락

내가 얼마나 깐깐했으며 우리 사정이 얼마나 나빴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일을 하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 사람은 힘겨운 가난을 크게 꺼리지 않는다. 나는 욕실과 샤워와 수세식 화장실이라면 우리들보다 열등한 사람들이나 누리는 무엇이거나 여행을 다닐 때만 기대하는 사치라고만 생각했으며, 우리들은 여행이라면 자주 다니는 편이었다. -『호주머니 속의 축제』에서

강변을 거닐 때면 조금도 외로운 줄을 몰랐다. 나무가 그토록 많은 도시에서는 다가오는 봄을 눈으로 날마다 확인할 수가 있으며, 어느 날 밤 따스한 바람이 불고 아침이 오면 완연한 봄날을 맞게 된다. 때로는 차가운 비가 심하게 내려 봄을 쫓아버린 탓에 새 계절이 절대로 오지 않을 듯싶고, 그러면 내 인생에서 계절을 하나 통째로 잃어버리겠다는 기분조차 든다. ……하지만 우리는 얼었던 강물은 틀림없이 다시 흐른다는 순리를 알고, 그리하여 어김없이 봄은 꼭 찾아오리라고 믿는다. -『호주머니 속의 축제』에서

뤽상부르 공원을 하릴없이 걸으며 점심시간을 보내고 나서, 점심시간에 맛본 화려한 식사에 대해 호들갑스러운 이야기를 꾸며 아내에게 들려주던 헤밍웨이에게 “굶주림은 훌륭한 스승”이었다. 이 시절 파리의 봄을 봄답게 만드는 것은 염소도 나무도 파리라는 도시도 아니었다. 이를 배경으로 걷고, 달빛을 받으며 잠을 청했던 가난한 젊은이들, 그 인물들이 놓인 풍경이 비로소 봄을 봄답게 만든 셈이다. 『호주머니 속의 축제』에서는 단순한 배경에 놓인 단순하지 않은 인물들이 스스로가 속한 도시를 미로처럼 아름답고 신비롭게 헤맨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 몇 해 전에 썼던 이 청춘의 수기에는 그래서 ‘축제’라는 제목이 붙었다. ‘젊은 시절’은 ‘행운’이고 ‘축제’다. 오래 지속되지 않지만, 기억으로서는 평생을 간다. 『호주머니 속의 축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짊어지고 한평생 가야 할 ‘추억’에 관한 이야기다. 호주머니에 담긴 축제처럼 언제든 툭 튀어나와, 늙은이를 장난스럽게 괴롭히는 젊은 날의 봄에 관한 기록이다.

우리는 둘 다 밤중에 두 번이나 잠이 깨었고 이제 아내는 얼굴에 달빛을 받으며 포근히 단잠을 잤다.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알고 싶었지만 나는 머릿속이 너무나 멍했다. 아침에 내가 잠이 깨어 봄 같지 않은 봄이 왔음을 깨닫고, 염소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의 피리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서 경마 신문을 샀을 때는 삶이 너무나 단순하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파리는 아주 오래된 도시였고, 우리들은 젊었고,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심지어는 가난이나, 갑자기 생긴 돈이나, 달빛이나, 옳고 그름이나, 달빛을 받으며 옆에 누운 사람의 숨소리까지도 단순하지 않았다. -『호주머니 속의 축제』에서

목차

머리말
생-미셸 광장의 멋진 카페
스타인 여사의 가르침
“Une Génération Perdue”
셰익스피어 글방
센 강변의 사람들
봄 같지 않은 봄
도락의 끝
굶주림은 훌륭한 스승
포드 매독스 포드와 악마의 제자
새로운 예술의 탄생
돔에서 파스킨과 함께
에즈라 파운드와 벨 에스프리
꽤나 이상한 종말
죽음의 그림자가 깃든 남자
라일락숲 카페에서 에반 시프먼과
악마의 사신
스콧 피츠제럴드
매는 나눠 먹지 않는다
크기가 문제
파리의 얘기는 끝을 모른다
옮긴이의 말

작가 소개

어니스트 헤밍웨이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의 오크파크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적십자 부대의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다. 휴전 후 《토론토 스타》에서 기자로 일하던 중 1921년 특파원 자격으로 파리로 건너가 거트루드 스타인, F.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과 교류했다. 이후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여러 전쟁을 취재하며 다양한 경험을 소재로 소설 창작에 전념했다. 전후 세대의 모습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1926)로 ‘길 잃은 세대’의 대표 작가로 부상했으며, 전쟁문학의 명작으로 꼽히는 『무기여 잘 있어라』(1929)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서사시적 장편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 이후 이렇다 할 작품 없이 작가 생명이 끝났다는 비판까지 들었으나, 십여 년 만에 발표한 『노인과 바다』(1952)로 이듬해 퓰리처상 수상에 이어 1954년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회복했다. 이 작품은 망망대해 위 노인의 사투를 통해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는 실존 철학을 간결하고 응축된 수법으로 담아낸 수작이다. 이후 1959년부터 건강이 악화되면서 우울증, 알코올중독증에 시달리다 1961년 7월 2일 아이다호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으로 삶을 마감했다.

안정효 옮김

안정효는 1941년 서울, 시장 골목의 한 구멍가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고, 그에게는 한국전쟁 때 죽은 동생을 포함하여 모두 다섯 명의 동생이 있는데 지금은 모두 미국에서 산다. 중고등학교 때 안정효는 단지 영화를 너무 좋아하여 정학을 두 번 맞은 것 외에는 별 두드러진 면모가 없었다. 다만 그가 3년 동안 집필한 1500페이지에 달하는 만화는 급우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당시 몇몇 만화잡지에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던 그는 친구의 설득으로 만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서강대학교 영문과로 진학한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영문으로 7권의 장편소설을 쓴 그는 미국의 여러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지만 계속 실패했다. 그러나 영어로 많은 작품을 쓴 덕택에 그는 쉽게 대학 4학년 때(1964)《코리아헤럴드》기자로 입사했다가 1966년 군대로 갔다. 그는 제대 1년을 남겨놓고 월남으로 가서『하얀전쟁』의 배경을 이루는 수많은 얘기를 엮어《코리아 타임스》에 칼럼을 집필하고, 월남과 미국의 영자신문과 잡지에 기고하여 그의 명쾌한 문체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귀국한 후《코리아타임스》,《주간여성》기자로 일했고『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서 편집부장으로도 일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문학사상』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백년동안의 고독』을 번역, 연재하면서 ‘번역문학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온 번역서는 지금까지 150여 권에 달한다. 작가로서의 열망을 내밀히 간직해오던 그는 1984년이 되어서야『실천문학』에『전쟁과 도시』(후에『하얀전쟁』으로 제목을 바꿈) 를 연재하며 등단하게 된다. 그후 그는 장편소설『가을바다 사람들』과『갈쌈』(후에『은마는 오지 않는다』로 제목을 바꿈), 단편인 <학포장터의 두 거지>, <동생의 연구> 등을 발표한다. 『전쟁과 도시』는『White Badge』라는 제목으로 뉴욕의 소호출판사에서 출판되고 《뉴욕타임스》 등 여러 매체로부터 격찬을 받는다. 이 장편소설은『하얀전쟁』이라는 제목으로 1989년 한국에서 재출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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