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와 몸

알프레트 되블린 | 옮김 신동화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9년 5월 31일 | ISBN 978-89-374-2951-4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3x188 · 144쪽 | 가격 9,800원

책소개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독창적 문체로 그려 낸 20세기 독일 문학의 거장
알프레트 되블린의 문학적 정수가 담긴 열두 편의 이야기

알프레트 되블린은 위대한 이야기꾼이다. -토마스 만
되블린은 여러분을 불편하게 만들고 꿈자리를 사납게 하며, 결국 변화시킬지니 스스로 만족하며 사는 자는 이 작가를 조심해야 한다. -귄터 그라스
나는 되블린으로부터 서사시의 본질을 배웠다. 그의 작품과 이론은, 나의 연극에 현저하고도 명백한 영향을 끼쳤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편집자 리뷰

“이 작가를 조심하라!”
20세기 독일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알프레트 되블린

20세기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사람이자 현대 독일 문학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거장 알프레트 되블린의 단편 소설집 『무용수와 몸』이 민음사에서 쏜살 문고로 출간되었다.
전후 독일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는 일찍이 되블린을 “나의 스승”이라 칭하며 토마스 만, 베르톨트 브레히트,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반열에 놓았다. 유명한 문학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1945년 이후 독일 소설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로 카프카 그리고 되블린을 꼽았으며, 그의 영향력은 W. G. 제발트, 잉고 슐체, 우베 욘존, 아르노 슈미트, 볼프강 쾨펜 등 수많은 후배 작가, 더 멀리는 전통적인 소설 형식과 관습을 부정한 누보 로망(nouveau roman)에까지 미친다. 특히나 되블린의 대표작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은 현대 대도시의 비인간적이고 불안한 풍경을, 영화 몽타주 기법 등 지극히 당대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그려 낸 걸작이다.
하지만 되블린의 작품은 문학적 중요성과 가치에 비해 막상 대중에게 널리 읽히지는 않는다. 가령 토마스 만은 되블린을 “위대한 이야기꾼”이라 평가하면서도 “되블린의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라고 언급했고, 되블린을 찬양하는 귄터 그라스조차 독자가 그의 문학에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 상황이 이런 데에는 되블린의 실험적이고 복합적인 서술 기법과 방대한 작품 분량이 큰 몫을 한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참을성 있게 다가가야만 되블린의 매력적인 문학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국내에 알려진 작품 역시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이 전부라 해도 무방하다.
되블린은 순탄하지 못했던 성장 환경과 정신과 의사이자 유대인으로서 맞닥뜨려야 했던 두 차례의 세계 대전(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군의관으로 복무하였고, 2차 세계 대전 때에는 나치를 피해 연거푸 망명해야만 했다.)을 전부 감당하며, 급격한 현대화의 흐름 속에서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된 대도시 풍경과 사람들의 피폐한 내면을 집요하게 탐구하였다. 눈부시게 발전해 나아가는 서구 문명과 넘쳐흐르는 부(富)의 이면에 자리한 깊은 어둠을 누구보다 먼저 간파하였던 되블린은 현대인의 영혼을 잠식하는 낯선 증상들을 과거의 문학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해야만 한다고 직감하였다. 따라서 “광인 그리고 어린아이들과 있을 때에만 마음이 편안해진다.”라는 되블린의 고백은 결코 과장이 아니며, 앞으로 닥쳐올 물질적, 정신적 위기를 재빠르게 진단하고 내다보았던 그에게는 정녕 불가피한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
‘읽기 어렵지만 읽어야만 하는’ 되블린의 문학을 살피는 데에 『무용수와 몸』은 완벽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공포와 절망을 각기 다른 열두 가지 군상으로 생생하게 묘파해 낸 『무용수와 몸』에는, 되블린 문학의 주요 주제와 독창적 기법이 모두 빠짐없이 깃들어 있다. “이 작가를 조심하라! 당신의 꿈자리를 사납게 만들고 삶을 변화시킬지니…….” 우리는 『무용수와 몸』의 책장을 펼치기 전에, 귄터 그라스의 ‘경고’를 진지하게 되새겨야 하리라.

“저의 병든 영혼을 빨리 도와주십시오!”
알프레트 되블린의 문학적 정수가 담긴 열두 가지 이야기

그녀는 몸을 유폐하고 쇠사슬로 묶었다. 그것은 이제 그녀의 몸, 그녀의 소유물이었고 그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몸은 그녀가 사는 집이었다. 사람들은 그녀 집을 내버려 두어야 마땅했다. 매일 사람들은 망치로 가슴을 두드렸고 심장의 대화를 엿들었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가슴 위에 그녀 심장을 그렸다. 그 속에 숨은 빛을 끄집어냈다. 아, 사람들은 그녀를 약탈했다. 온갖 질문을 하며 그녀의 일부를 가져가 버렸다. 바늘과 탐침보다도 미세한 독극물로 그녀에게 침입했다. 그녀의 전부를 알아냈고, 그녀를 완전히 여우 굴로 되몰았다. 도둑들이 그녀에게서 모든 걸 가져갔기에 그녀는 자신이 날마다 점점 더 쇠약해지고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게 누워 있어도 놀랍지 않았다. -「무용수와 몸」에서

민들레꽃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 꽃이 이미 죽었다는 걸 도대체 어떻게 안단 말인가? 나뭇가지로 받쳐 거나 머리와 줄기 같은 데에 반창고를 감아 주면 다친 꽃을 다시 낫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신사는 걸음을 서두르고 자제력을 잃고 달리기 시작했다. 기대감에 부풀어 갑자기 몸을 떨었다. 그리고 길이 굽은 곳을 따라가다 벌목된 나무줄기로 쓰러져 가슴과 턱을 부딪히고 크게 신음했다. 몸을 추슬렀을 때 그는 모자를 풀밭에 두고 깜박했다. 지팡이가 부러져 소매가 안쪽에서 찢어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하, 날 막으려 하다니. 무엇도 날 막을 수 없어. 곧 민들레꽃을 찾을 테니까. 신사는 다시 길을 내려갔다. 어디더라? 그곳을 찾아야 했다. 민들레꽃을 부를 수만 있다면. 그런데 이름이 대체 뭐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민들레꽃 살해」에서

『무용수와 몸』은 되블린이 1912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집 『민들레꽃 살해』를 우리말로 모두 옮긴 책이다. 원래 표제작은 「민들레꽃 살해」이나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가장 짧지만 가장 강렬한 작품인 「무용수와 몸」을 골라 제목으로 삼았다.
열두 편의 보석 같은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객관적 사실의 묘사나 조화와 완결성 같은 시민적, 전통적 예술의 틀을 벗어나 내면의 감정과 에너지, 현대인의 (주로 부정적이고 혼란스러운) 체험을 생생하게 표현하려 한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인 ‘표현주의’ 사조를 대표한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민들레꽃 살해」는 표현주의 문학의 상징이라 평가된다. 어느 날 산길을 걷다 충동적으로 민들레꽃을 ‘살해’해 버린 한 상인의 기이한 체험을 그린 이 단편은 현대인의 정신 불안, 인간과 자연의 관계, 부르주아의 위선적 삶에 대한 비판 등 다양한 주제를 절묘하게 엮어 놓았다. 또 『무용수와 몸』에 수록된 단편 하나하나에 나타나는 감각적이고 강렬한 묘사와 인상적인 색채 이미지에서는 당대 표현주의 미술과의 친연성 또한 엿볼 수 있다.
되블린 스스로는 이 책을 “환상적이고 익살스럽고 그로테스크”하다고 표현했는데, 확실히 각 단편의 이야기는 대체로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이다. 죽은 자의 환영이 산 자의 앞에 나타나고(「항해」), 죽음의 조력자가 뉴욕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을 평온한 죽음으로 인도하고(「조력자」), 옛날 바다 괴물이 깨어나 난동(「푸른 수염의 기사」)을 피우기도 한다. 때로는 동화나 전설이, 때로는 성경 속 모티프가 기묘하게 변주되어 나타난다. 되블린은 평범한 사람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비이성적이고 모순적인 행동과 광기, 분노, 우울, 공포와 같은 심층 감정을, 정신 병원에서 근무하였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듯 끈질기게 파고든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도 다양한 유형의 광인들이 등장한다. 「무용수와 몸」에서는 정신과 육체가 분열된 무용수를, 「아스트랄리아」에서는 기적을 기다리는 광신자를, 「변신」에서는 끝없는 우울 속에서 허우적대는 여왕과 부군을, 「틀린 문」과 「제삼자」에서는 각각 그릇된 확신과 결코 위로받을 수 없는 의혹에 사로잡힌 인물들을 낱낱이 묘사한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과 기독교적 주제를 비튼 「마리아의 수태」, 「수녀원의 여인과 죽음」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패러디한 「냉담한 남자의 회고록」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무용수와 몸』이 발표된 1912년은 타이타닉호의 침몰이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 현대 자본주의와 기술 문명의 낙관적 발전론이 빛을 잃고 세계에 몰락의 기운이 드리운 때이기도 하다. 이에 되블린은 합리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해 나가는 근대 문학의 주인공이 아니라 현실에서 휘청이는 개인의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그리고 더 나아가 현대 사회의 심리적 병증을 그려 내는 데에 주력했다. 이처럼 되블린 문학의 출발점이자 그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무용수와 몸』은 되블린이 구축한 기묘하고도 잔혹한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데에 더할 나위 없이 걸맞은 작품이다.

목차

항해
무용수와 몸
아스트랄리아
마리아의 수태
변신
조력자
틀린 문
민들레꽃 살해
푸른 수염의 기사
제삼자
냉담한 남자의 회고록
수녀원의 여인과 죽음
옮긴이의 말

작가 소개

알프레트 되블린

1878년 독일 슈테틴에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888년에 베를린으로 이주, 베를린 대학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그 후 유대인 가문 출신의 정신과 의사로 2차 세계대전 동안 질곡의 세월을 겪었다. 나치의 등장으로 1933년 취리히를 거쳐 파리로 망명하여 시민권을 얻었으나, 1940년 프랑스가 나치에 항복하자 극적으로 탈출해 미국으로 다시 망명했다. 전쟁이 끝난 뒤 1945년에는 프랑스 군정부의 문화 고문 자격으로 독일로 돌아왔다. 그러나 스스로 독일에 설 자리가 없다고 느끼고 1953년 4월 다시 파리로 이주했다. 표현주의 잡지 《슈투름》을 펴내고 표현주의 작품 다수를 발표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강렬한 문체로 내면의 신비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꾼 첫 소설 『왕룬의 세 번의 도약』(1915)으로 폰타네 상을 받았다. 이후 자연 및 집단의 힘에 대한 개인의 무능력을 다룬 『발렌슈타인』(1920)을 거쳐 대도시 현실을 내적 독백과 몽타주 기법으로 담아낸 대표작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1929)에 이르기까지 문학적으로 다양한 변모를 거듭했다. 1954년에 마인츠 예술원 문학상을 수상했다. 마지막 작품 『햄릿 또는 기나긴 밤은 끝났다』(1956)에서는 군국주의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말년에 독일로 돌아와 요양소에서 지내다 1957년 6월에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신동화 옮김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특별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게르하르트 노이만의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프란츠 카프카의 시적 인류학』, 알프레트 되블린의 『무용수와 몸』, 토마스 만의 『괴테와 톨스토이』, 레오 페루츠의 『9시에서 9시 사이』와 『심판의 날의 거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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