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는 돌아오지 않는다

니시와키 준사부로 | 옮김 김춘수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2년 6월 20일 | ISBN 89-374-1851-7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0x210 · 108쪽 | 가격 5,500원

책소개

니시와키의 시는 현란하고도 슬픈, 풍요롭고도 쓸쓸한 패러독스의 세계를 보여 준다. 그는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가장 고대적인 면모를 보여 준 시인이다. 그는 어느 시대든 두루 동하는 그런 시인으로서 동서고금의 서정시가 간직한 서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김춘수(시인)

편집자 리뷰

▶국내 초역, 시인 김춘수 선생의 번역
일본의 첫 모더니스트 시인 니시와키 준사부로의 시선집이 김춘수 선생의 번역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니시와키 준사부로는 해방 후 1세대 시인들 다무라 류이지, 아유가와 노부오 등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시인으로서 국내에서는 몇몇 시인들의 시론에 잠시 언급되었을 뿐 본격적으로 조명되지 못했다. 이번 시선집은 우선 국내 초역이라는 점과 무엇보다 일본에서의 시인의 문학적 행보와 입지에 걸맞은 대시인 김춘수의 최초의 우리말 번역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김춘수 선생은 일본 유학 시절에 처음으로 이 시인의 시를 접했고 올해 여든하나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니시와키의 시로부터 받은 감동을 간직하고 있다가 지난해 여든의 나이를 기념하며 조심스레 원고를 출판사 쪽으로 건네었다. “언젠가 꼭 한번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싶었는데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번역 소감을 밝힌 시인은 “이웃 나라 일본의 시를 우리 젊은 세대들은 너무 모르고 있는 듯하다.”라며 후학들의 편중된 독서를 가볍게 나무랐다.
▶ 시인의 일생
니시와키 준사부로는 일본의 첫 모더니즘 시인으로서 태평양전쟁 이후 일본 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시인이다. 50년에 걸친 시작 과정에서 14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은 서구의 모더니즘을 동양 철학, 동양의 정서와 혼합하였고 그만의 독특한 시적 스타일로 지속적으로 승화시켰다.다음은 시인의 삶에 대한 간략한 메모이다.
시인은 니카타 현 오지야 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거대한 시나노 강과 그것을 둘러싸고 우뚝 솟은 산들의 훼손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자라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성공한 상인 가문이자 은행가 집안이었고 18세가 되기까지 보호받는 유년을 보냈다. 그는 그림과 영어 학습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진학을 위해 도쿄로 갔다. 파리에서 공부하면서 미술가가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마지못해 게이오 대학에서 경제학을 택하였지만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등과 같은 서양 언어들을 혼자서 공부하였다. 그런 능력으로 인해 1923년 그는 고대 및 중세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옥스퍼드 대학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향후 그의 생을 주도하게 될 창조적인 동력을 만난다. 그 당시 런던은 초현실주의, 입체파cubism와 미래파와 같은 모더니즘 운동이 펼쳐지는 현장이었던 것이다. 이 모더니즘 운동들은 니시와키 자신과 그의 꿈을 그 뿌리까지 매혹시켰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1925년 런던에서 영어로 쓴 시를 모은 첫 시집 『스펙트럼Spectrum』을 출간한다. 이 시집은 당시 《타임스 문학란》(1925. 10.29)과 《데일리 뉴스the Daily News》(1925. 11. 17) 등에 서평이 실리는 등 서구의 문단에 파란을 일으켰다.그의 런던 생활과 옥스퍼드에서의 수학이 그의 시가 취한 일반적인 방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와 1926년 게이오 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니시와키는 초현실주의를 옹호하면서 일본 모더니즘을 이끄는 선구자가 되었다.
▶ 파격과 도전, 전위적 모험으로 이루어진 시세계–「존재를 부수는 것이 미의 시작이다」
이 시선집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첫 시집 『스펙트럼Spectrum』을 제외하고 일본어로 쓴 시를 모은 첫 시선 『암바르발리아Ambarbalia』, 전쟁 후 1947년에 출간된 『나그네는 돌아오지 않는다』, 시적인 성취의 정점에 위치하는 『근대의 우화』, 끝으로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고도로 활용한 『에테르니타스』 등 네 권의 시집에서 뽑은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암바르발리아Ambarbalia』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고대의 세계’이며 또 하나는 ‘근대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세계는 동과 서의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니시와키는 고대 로마의 곡물과 포도 축제를 묘사한 Walter Peter의 Marius the Epicurean으로부터 시집 제목을 가져왔다.‘고대의 세계’에 속하는 시들은 서정적이고 단순하고 명쾌하다. 이들 시는 아침, 비, 태양과 같은 자연 현상들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엎질러진 보석)과 같은 아침몇 사람이 문간에서 누구하고 속삭인다그건 하느님 생신의 날–「天氣」
칼모진의 시골은 대리석의 산지다거기서 나는 여름을 난 일이 있다제비도 엇으며 배암도 나오지 않는다다만 풋복숭아의 덤불로 기운다소년은 개천에서 돌핀을 붙잡고 웃었다–「태양」
봄날 아침에도내 시칠리아의 파이프는 가을의 소리가 난다몇천 년의 기억을 더듬어–「카프리의 牧人」
‘고대의 세계’의 서정적 낭만주의와는 달리 ‘근대의 세계’에 속한 시들은 시적인 혁신을 감행하는 니시와키의 재능이 돋보이는데 이 시선집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나그네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Ambarbalia』와 더불어 폭넓은 독자층을 가진 시집으로, 본질적으로 동양적인 어조가 주된 기조를 이루고 있다. 하나의 주제 아래 168번까지 연결된 연작시이지만 각 시들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보여 주고 있다. 앞선 시에서와는 달리 ‘외로움’이라든지 ‘무사시노’와 같은 일본의 지명이 자주 언급되고 길가에 핀 꽃과 같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점 등이 『Ambarbalia』의 극단적이고 인위적인 유미주의와는 다른 미학을 보여 준다.
나그네는 돌아오지 않는다이 희미한 샘에 혀를 적시기 전에 생각하라 인생의 나그네그대 또한 바위 사이로 스며 나는물의 넋에 지나지 않는다이 생각하는 물도 영겁으로는 흐르지 않는다영겁의 한때가 말라버린다아아 벌레가 울어 시끄럽다가끔 이 물 속에서꽃을 받쳐든 환영의 사람이 나온다영혼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현실흘러가버리는 생명의 물소리에생각을 버리고 드디어영겁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사라지려고 바라는 것은 한갓 꿈–「1 나그네는 기다려라」 중에서
창에엷은 불빛이 비치는사람 사는 세상의 쓸쓸함–「2 창에」
이들 시에서 시인은 유한한 존재로서 개개인의 아름다움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삶의 무한성, 다시 말해 영원성에 대해 환기시킨다. 영원eternity에 대한 시인의 성찰은 4부 전체를 이루고 있는 시 「에테르니타스えてるにたす」에서 더욱 고조된다.에테르니타스는 라틴어로 eternitas로, 영원이란 뜻이다. 시인 무로 사이세이의 넋을 기리며 쓴 이 시에서는 라틴어, 불어, 영어 등이 혼용되고 있고 초기에 시인이 천착했던 고대의 세계, 그리스의 신화적 인물들이 무차별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가 가장 사랑했던 고향의 자연과 일본식 일상이 뒤섞이고 있다. 한마디로 50년에 걸쳐 변화되기도 하고 또 추구되기도 했던 그의 시적 지향성이 이 한 편의 장시에 녹아들었다고 할 수 있다. 「존재를 부수는 것이/ 미의 시작이다」(93쪽)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시인의 글쓰기는 탄탄한 학습을 바탕으로 파격과 도전, 전위적 모험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요약하자면 중세 영어, 라틴어, 또 기타 외래어 등을 여과 없이 시에 도입하여 시어들 사이에 비의성을 의도적으로 구축한 점 등을 통해 엘리엇과 조이스 등으로 대표되는 서구 모더니스트의 영향이 확인된다면 어렵긴 하지만 하이쿠의 시행처럼 짧으면서도 명징한 시어를 통해 풍부한 서정을 전달해 주는 시세계는 분명 인간 정신의 외로움을 스케치한 동양적 초상화로서 오늘날에도 유효한 시적 울림을 갖는다.

목차

1. Ambarvalia 코리코스의 노래 天氣 카프리의 牧人 비 태양 눈 접시 비너스제祭의 전날 밤 Ambarvalia 內面的으로 깊은 日記 五月 나그네 세이렌 호메로스를 읽는 남자
2. 나그네는 돌아오지 않는다 1 나그네는 기다려라 2 창에 3 자연 세상의 쓸쓸함이여 4 딴딴한 돌 72 옛날 法師가 쓴 책에 73 냇가의 모랫벌에 몇천이라고 하는 75 누가 잊고 갔는가 161 가을밤은 166 속잎의 마을 167 산에서 내려와 168 영겁의 뿌리에 닿아
3. 近代의 萬話 無常 紀行 自然詩人 돌벤의 슬픔 모양새 좋은 풍경
4. 에테르니타스 에테르니타스
옮기고 나서 작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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