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우울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에 관한 모든 것

원제 Noonday Demon

앤드류 솔로몬 | 옮김 민승남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4년 6월 15일 | ISBN 89-374-2518-1

패키지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724쪽 | 가격 25,000원

분야 논픽션

책소개

2001년 <내셔널 북 어워드> 논픽션 부문 수상작 뉴욕타임스 선정 <주목할 만한 책>출간 1년 만에 25만 권이 판매된 베스트셀러22개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 인간 내면의 “공포”와 “멜랑콜리”에 대해 설득력 있게, 과학적이면서 역사적, 정치적 근원을 캐낸다. 이 책은 고통에 대해 중요한 책이며, 희망에 대해서는 더욱 중요한 책이다. -케이 재미슨(존스홉킨스 의대 교수)▶ 우울에 대한 모든 것, 우울증의 특징, 사외, 문화, 역사, 치료와 전망을 조리 있게 잘 엮었다.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를 지적 호기심과 잘 섞어낸 점이 훌륭하다. -해럴드 블룸(유욕 대학교 영문과 교수)

편집자 리뷰

◆ 우울은 인간 역사와 함께했지만 우울증 환자의 증가는 분명 현대성의 결과다
프로작이라는 녹색 알약은 우울증을 경험한 수백만 미국인들의 삶 속에 들어와 이제 아스피린만큼이나 흔한 약이 되었다. 아티반에서 졸로프트까지 시장에 기분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약이 널린 사회. 우울증의 추적은 바로 현대인의 정신세계로의 여행이다. 현대인의 삶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소외감은 더욱 커지고 수면 시간은 짧아지고 있다. 현대인의 점증하는 스트레스는 우울증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미국인의 3퍼센트(약 1900만 명)가 만성적인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이 중에서 어린이가 200만 명이 넘으며 조울증 환자는 230만을 헤아린다. 우울증은 또한 젊은 여성의 경우 두 번째, 젊은 남성의 경우 세 번째 사망 원인이다. 질병부담률로는 우울증이 심장병 다음인 2위다. 우울증은 알코올 중독에서 심장 질환에 이르는 여러 병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사실상 제1의 사망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신 장애 가운데 우울증의 비율이 가장 높다. 2003년 10월 대한우울조울병학회가 서울에 거주하는 20~60세 주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5퍼센트가 경증 이상의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회적인 심각성은 우울증의 발병률이 특히 어린이들 사이에서 증가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우울증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는 전체 우울증 인구의 6퍼센트에 불과하며, 자신의 우울증을 인지하는 경우는 40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반면 슈퍼모델의 등장이 비현실적인 기대와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한 것처럼, 즉각적인 이미지와 반응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복잡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신적인 슈퍼모델처럼 자신의 정신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관리하려는 경향을 띠면서 증상이 가벼운 우울이나 격한 슬픔을 못 견디고 쉽게 프로작을 쓰기도 한다. 인간의 자의식과 우울증은 뗄 수 없는 관계지만, 우울증 환자의 증가는 분명 현대성의 결과다. 삶의 속도, 기술 혁신이 초래한 혼돈, 소외와 고독, 전통적인 가족 구조의 붕괴, 믿음 체계의 와해가 불러오는 파국의 결과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밀로 간직한 채 보이지 않는 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살아간다.” ◆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해방의 공간을 마련한다
자신이 우울증을 겪고 있는 저자 앤드류 솔로몬은 1998년 《뉴요커》에 “멜랑콜리에 관하여”라는 글을 발표한 후 천여 통의 편지를 받았다. 저널리스트 솔로몬은 수많은 주제를 다루었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할 말이 많은 주제는 없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 작품의 저술 동기다. 그리하여 솔로몬은 인터뷰와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과학, 철학, 역사, 정치, 문화 전 분야에서 “멜랑콜리”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우울함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졌으나 결국 빠진 것은 종합이다. 그 결과 혼돈의 영역이 되었다. “이 책의 첫 번째 목적은 공감이며, 두 번째 목적은 질서다.” 단순한 일반화가 아닌 경험론에 기초한 질서. 솔로몬이 이 방대하고도 난해한 작업을 독자에게 아름다운 노래처럼 들려줄 수 있었던 힘은 인간에 대한 그의 애정과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그의 믿음에서 나온다. 우울증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 작업이 무엇보다도 저자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또 다른 가치가 있다. ꡔ한낮의 우울ꡕ은 먼저 저자 자신의 우울증에서 시작하여 타인의 유사한 우울증, 타인의 색다른 우울증, 그 다음에 전혀 다른 환경의 우울증의 순서를 따라 접근한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족할 것이 없던 저자에게 우울증은 모든 논리를 거부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황, 그 다음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 때 찾아오는 차분한 절망감.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 탄생한 ꡔ한낮의 우울ꡕ이 전하는 희망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고통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책은 없지만 나는 그 고통의 범위를 보임으로써 우울함으로 시달리는 이들의 해방을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 ♥♥♥ 1991년 솔로몬의 어머니는 난소암 진단을 받은 지 2년 만에 세코날 마흔 알을 삼키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이때 솔로몬은 자살의 전염성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솔로몬 자신의 우울증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 찾아왔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극복한 뒤였고, 첫 소설의 평도 좋았고, 처음으로 자기 집을 마련한 다음이었다. 이후 솔로몬은 우울증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번은 어느 잡지의 특집기사로 가난한 우울증 환자들에 관한 초고를 썼는데, 잡지사 측으로부터 자신의 글이 의심스럽다는 항의를 받았다. 저자가 소개한 우울증 환자의 인생담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끔찍해서 차라리 코미디 같으며, 그들의 회복 이야기도 너무나 드라마틱해서 사실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울증은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지만 이처럼 사람들의 이해가 가장 부족한 영역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로부터 “지나치게 사회화된 유형”이란 말을 들을 만큼 자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지만, 솔로몬은 이 책에서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포기했다. 그는 자신이 광기에 차서 친구를 때려 눕혔던 에피소드와 당시 잊을 수 없는 심경까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한편 신의 저주일 수도 있는 우울증 속에서 순간의 소중함과 희망의 메시지를 찾아낸다. 링컨이나 처칠 같은 사람들은 우울증을 겪었으면서도 정신적인 불안과 걱정을 위대한 지도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책을 마무리할 때쯤 솔로몬은 세 번째 우울증 삽화를 겪었다. 그래도 이 책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힘은 인간에 대한 그의 애정과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그의 믿음에서 연유한다. ♥♥♥ ■ 통찰
솔로몬은 상충하는 모든 가설과 원인과 편견을 내놓으면서 어느 것 하나 완전히 옹호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강점이다. 다양한 환자들과 의학 전문가들의 모든 의견과, 약물의 종류와 작용 방식에서부터 명상까지 모든 치료 방법을 무게 있게 다루었다. 또한 자살, 약물 중독, 불안, 유전자,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관계, 그리고 우울증이 야기하는 인간관계와 성격의 변화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 정도 우울증에 잘 걸리지만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에 이를 확률은 여성보다 남성이 네 배 정도 더 높다는 사실 등을 사회문화적인 틀 안에서 설명한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좌파와 우파의 시각 차이를 통해 단지 우울증과 관련된 시스템뿐 아니라 이익집단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편 우울증은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기보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 점에 대해 프로이트는 “우울증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진실을 보는 눈이 더 날카롭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교묘히 회피했던 문제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미래에는 좀 더 적절히 대응할 능력을 갖추리라는 낙관론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우울증 상태에서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상상력의 결여가 현실에 대한 예리한 인식으로 연결된다고 지적하면서 역설적으로 인간의 상상력의 힘을 긍정한다. 이처럼 솔로몬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우울증의 변화무쌍함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 어떤 과학 잡지도 말해 주지 않는 우울증에 대한 진실을 보여 준다. ■ 희망
우울증에 빠지면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은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육체적인 고통 없이는 정신적 불안을 견딜 수 없어서 자신의 상처에 뜨거운 커피를 들이붓던 앤젤은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비로소 개인이 가진 유전적 취약성이 성격 및 환경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우울증은 성격을 깔아뭉개는 병이지만, 우울증을 방종의 구실로 삼는 사람들은 원래 자신 안에 내재한 폭력성이 제어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우울증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덮고 있는 고통스러운 실체를 드러낸다.” 우울증이 성격을 과장시키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우울증이 선한 사람은 더 선하게, 악한 사람은 더 악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울증은 균형 감각을 빼앗고 망상에 빠지게 하고 거짓 무력감에 젖게 하지만 진실의 창이 되기도 한다.” 우울증으로 인해 망가진 사람들이 더 많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우울증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회복력과 힘과 상상력이 존재하는지 보면 우리는 우울증의 끔찍함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력의 복잡성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들이 내게 도움이 되었듯이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어떤 이들은 가벼운 우울증에도 완전히 무능력자가 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낸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그런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덜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다. (…) 자살이나 고통, 슬픔의 바로미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질환과 성격은 상호 작용을 하기 때문에 어떤 환자들은 심각한 증세들도 잘 견디고 어떤 환자들은 거의 아무것도 견디지 못한다. (…) 우울증은 심각하게 의욕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이 견디려면 상당한 생존 욕구가 필요하다. 뭐니 뭐니 해도 유머 감각이 회복의 가장 강력한 척도이며 그것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도 하다.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희망이 있다.” 한편 고통스러운 시간도 되돌릴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에 인내로 견디면서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간을 꽉 붙들어라. 삶을 피하려 하지 마라. 금세 폭발할 것만 같은 순간들도 당신의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 치유
“고통은 변형되어야 하되 잊혀져선 안 되고, 부정되어야 하되 지워져선 안 된다.” 솔로몬은 상실의 순간에 인간의 이해력은 예리해진다고 말한다. “유리로 된 물체가 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나는 그것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은 행복에 대해선 항상 그 덧없음을 느끼는 반면 우울한 감정에 빠져 있을 때는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느낌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배가 똑바로 나아가려면 바닥짐을 실어야 하듯, 우리에겐 늘 어느 정도의 근심이나 슬픔이나 결핍이 필요하다.”(쇼펜하우어)고 말한다. 저자는 매일 손바닥에 놓인 흰색, 분홍색, 빨강색, 청록색 알약들을 바라본다. 하루에 두 번씩 “자신의 장례식을 삼키는 느낌”이지만, 희망을 가지고 자신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의무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약은 약한 독이고, 사랑은 무딘 칼이며, 통찰력은 무리하게 잡아당기면 끊어지고 마는 밧줄이고, 의지력은 부질없는 몸짓에 불과”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합치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솔로몬은 이 책에서 인간이 격심한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의 목적은 우울증으로 인해 살아 있는 시체처럼 살아가는 것을 근절하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적극적으로 약물치료를 권하기도 한다. 정신분석은 문제를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문제의 해결에는 효과적이지 못하다. 저자는 우울증 때문에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을 보면 밀려드는 파도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사람이 연상된다고 한다. 물론 병의 근원에 대해선 알아야 한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데는 약물치료가 필수적이지만 심리치료는 재발을 막는 보호 효과가 있다. 또한 심리치료는 환자가 약물치료를 통해 새로 획득한 자아를 이해하고 우울증 삽화 중에 일어난 자아의 상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인지행동치료와 대인관계치료를 포함한 심리치료의 작동 방식, 그리고 항우울제를 SSRI, 삼환계, MAOI 계열로 나누어 각각 부작용과 중독 여부 및 장단점을 설명하고, 전기치료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약이 삶을 흐릿하게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저자는 “더 중요한 순간에 더 그럴듯한 이유로 고통 받을 수 있게 해 준다.”고 답한다.

▶ 고독*** 고독은 인간의 존재론적인 본질이지만 우울증은 삶의 의미를 앗아가는 고립이다
슬픔은 우리에게 강하고 분명한 생각들과 자신의 깊이에 대한 이해를 남기는 허름한 옷차림의 천사다. 그리고 우울증은 우리를 겁에 질리도록 만드는 악마다. “디프레션”, “멜랑콜리”라 불리는 우울증은 “기능이 마비된 정신의 깊은 고통”이며 “자신의 비참함을 충분히 인지하기 때문에 광기보다 훨씬 비참한 고통”이다. 우울증은 세로토닌 및 코티솔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코티솔 수치가 계속 높아지면 코티솔 체계가 파괴되어 스트레스가 없어져도 코티솔 수치가 떨어지지 않거나 작은 스트레스에도 코티솔 수치가 치솟는다. 정신에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 심각한 “생활사건”(주로 소중한 사람의 상실, 역할 상실, 자아 관념의 상실이나 굴욕감)이 우울증의 초기 발병의 주요 원인이지만(외인성 우울증) 시간이 지나면 만성화되어 세 번째, 네 번째 삽화는 이유 없이 “자체의 추진력으로 발병”(내인성 우울증)한다. 지친 정신은 작은 것에도 그냥 손을 들어 버린다. 이처럼 우울증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생물학적 변화를 불러온 결과다. 우울증은 불안 증세를 동반한다. 불안증과 우울증은 “이란성 쌍둥이”다. “우울증은 과거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고 불안증은 미래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고독은 인간의 존재론적인 본질이다. 그러나 “슬픔은 상황에 걸맞은 우울함이지만 우울증은 상황에 걸맞지 않은 슬픔이다.” 인간이 자신에 대해 의식하는 존재인 이상 우울은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 “고통은 세상에 무력한 인간의 첫 경험이며 평생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안락한 자궁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에 대해 분노하지만, 그 분노가 사그라지기 무섭게 세상의 고뇌가 그 자리를 메운다.” 사르트르는 실존적 절망의 징후를 그린 ꡔ구토ꡕ에서 현대적 우울증의 전형을 이루는 증세들에 대해 묘사한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병처럼 분명하지 않게 찾아왔다. 그것은 교활하게 조금씩 조금씩 왔다. 나는 조금 이상하고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낀 것이 다였다. 그것은 일단 자리를 잡자 옴짝도 않고 조용히 머물렀고,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자신을 설득할 수 있었다. (…) 나의 희미한 영상이 내 의식 속에서 흔들린다. 그리고 갑자기 그 ‘나’는 희미하게 사라져 간다.” 이것은 의미의 종말이며, 특히 인간관계의 파괴로 이어진다. “우울증은 자아를 변질시키고, 마침내는 애정을 주고받는 능력까지 소멸시킨다. 우울증은 우리의 내면이 홀로임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자신과의 평화를 유지하는 능력까지 파괴한다.” 우울증 환자들은 “고통의 순간을 견딜 수 없어서라기보다는 그런 고통의 순간들이 다시 찾아올 것을 알기 때문에 비참하다.” 버지니아 울프도 삶의 덧없음과 한계에 대한 예리한 인식에서 오는 이러한 우울증을 ꡔ제이콥의 방ꡕ에서 자세히 묘사했다. 우울증은 “눈물이 모두 말라 버린 뒤에 오는 철저한 유린의 메마른 고통”이며 슬픔, 유머 감각, 사랑에 대한 신념도 앗아가고 빈껍데기만 남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의미의 상실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우울은 의미의 상실로 이어진다. 나는 침묵하게 되고… 죽는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모국어가 이방의 언어가 된다. 그들이 쓰는 죽은 언어는 자살의 전조다.” 우울증은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솔로몬은 첫 우울증 삽화를 겪는 동안 절교한 친구가 여섯 명이라고 말한다.

▶ 문화*** 같은 병이라도 드러나는 방식은 정치, 사회, 문화에 따라 다르다
역사를 살펴보면 특정한 정신과적 질병이 특정 시기에 특정 사회 계층을 특정 방식으로 괴롭힌다. 똑같은 병이 18세기에는 졸도와 경련성 울부짖음으로, 19세기에는 히스테리성 마비나 경축(痙縮)으로, 이제는 우울증이나 만성피로 증후군, 거식증으로 불린다. 흑인의 경우에는 인종차별로 인해 우울증이 심해진다. “세상에서 회피 대상이 되고 범죄자로 의심받는 것은 몸과 마음을 녹초로 만드는 일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도 심하게 오해를 받다 보면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편 폴란드인에게 1970년대는 자유가 제한된 암울한 시기였다. 1981년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대대적인 체포가 이루어졌는데, 수감자들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희망의 상실”이었다. “일종의 정치적 우울증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공론을 펼칠 수 없게 되자 사론도 포기하게 되었고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 이들은 “침울하고, 퉁명스럽고, 단절되고, 속을 터놓지 않고, 폐쇄적인” 모습으로 변해 갔다. 반면 노동 운동을 위해 가정을 내팽개쳤던 여성들은 이제 전통적인 역할로 돌아와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남성들을 보살피는 데에서 자신의 목적의식을 발견했다. 1980년대 초반은 폴란드 근세사에서 여성들에겐 우울증이 가장 적었고 남성들에겐 우울증이 가장 심각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15-17세기에는 자신이 유리로 만들어졌다고 믿은 나머지 다른 사람의 접근을 못 견디는 사람이 많아서 “유리 망상”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프랑스 왕 샤를 6세도 이러한 망상에 시달려서 옷에 쇠창살을 달고 다녔고, 세르반테스는 이런 망상에 시달리는 사나이에 대한 글 「유리 학사」를 썼다. 과거의 망상증이나 현대의 망상증, 누군가 자신을 향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공포증 및 삶이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이 자신의 능력 밖이라는 기분이 우울증의 공통점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떻게 일어나야 할지를 난감해하거나 전화가 울리는데도 전화를 받지 못해서 불안해하기도 하는데, 그 구체적인 근거를 댈 수가 없다. 이러한 불합리한 현상들이 고대나 근대인의 생각에는 유리나 버터로 만들어졌다는 설명을 댄 것이다. 한편 감정적으로 절제가 필요한 사회에는 우울증이 더 많이 나타난다. 그린란드의 이누이트들은 인구 80퍼센트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 보통 전통 사회의 방식들과 현대 사회의 현실이 통합되는 과정에 있는 사회에 우울증 발병률이 높다. 그러나 이누이트들은 전통적으로 우울증이 많고 자살률도 높아서 매년 인구의 0.35퍼센트가 자살한다.(텔레비전이 들어오면서 반 가까이 떨어진 수치다.) 그린란드는 석 달씩 밤이 지속되는 땅이라서, 주로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린란드의 자살률은 5월에 가장 높다. “자연이 풍요롭고 즐거울수록 마음의 겨울은 더 깊어지고, 우리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갈라놓는 심연도 더 넓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랜 세월 계절에 따른 빛의 변화에 적응해 온 이누이트들은 어둠의 계절에도 적절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그린란드의 봄은 온화한 기후대의 봄보다 두 배는 더 극적인 변화를 보이기 때문에 1년 중 가장 잔인한 시기다. 그린란드의 자연 환경은 너무나 가혹해서 “생존” 자체만으로 위대한 일이다. “우리는 다른 문명의 사람처럼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거나 훌륭한 건축물을 지은 적은 없지만, 이 땅에서 수천 년 동안 생존해 왔어요.” 대가족을 이루는 이누이트들은 겨울에는 집 안에서만 몇 달을 함께 보내야 하기 때문에, 불평을 하거나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거나 타인을 비난할 여지가 없으며 불평 자체를 금기로 여긴다. 그린란드의 우울증은 기온과 빛의 간접적인 결과이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관습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20세기 초 기록에는 “극지방 히스테리”가 나온다. “해마와 물개와 고래의 피로 자란 젊은 피가 솟구치면서 슬픔에 휘말린다. 처음엔 동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이내 삶이 지긋지긋해진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조증과 울증이 뒤섞인 동요성 우울증이다. 문화가 다르면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과 종류도 다르지만 우울증이 사람을 고립시킨다는 점에선 공통적이다. 그린란드 사람들은 외부 환경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조차 사치다. 우울증이 선진 사회의 유한계급의 병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사치를 누리는 사회에서만 우울증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 자살*** 자살은 인간 의식(意識)에 따르는 짐이자 자의식의 대가이다
세로토닌 수치가 낮은 경우 자살 경향이 높은데, 이는 유전적일 수도 있고 아동 학대에서 연유하기도 한다. WTO는 1998년 전 세계인의 죽음 가운데 자살이 2퍼센트 가까이 되며, 이는 전쟁에 의한 사망자 수보다도 높다. 조증 환자의 절반이 자살을 기도하고 중증 우울증 환자는 다섯 명에 한 명 꼴로 자살을 기도한다. 가난한 동네 사람들은 자식을 모두 잃거나 장애자가 되거나 평생 사랑이란 걸 받아 본 적이 없어도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삶에 매달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전도양양한 사람들이 어처구니없게도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자살은 힘겨운 삶의 정점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의식을 넘어서는 미지의 장소”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살과 우울증의 인과 관계가 분명하진 않지만 공존하는 경우가 많으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별개의 실체들이다. 자살은 고통을 “귀신을 쫓아내듯 몰아내려는 시도”이다. 솔로몬은 죽음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전에는 모험을 걸지 말고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한다. “자살은 하나의 실험으로, 인간이 자연에게 던지는 하나의 의문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죽음이 인간의 존재와 사물의 본질에 대한 통찰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 것인가이다. 죽음은 의문을 제기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의식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툰 실험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우울증 환자들은 대개 삶의 공포에 압도당하여 자살을 많이 생각한다. “삶의 공포가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삶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현재의 공포는 일시적일 것이라는 믿음으로 자살 유혹을 이겨 낸다고 한다. 자살은 실제로 일시적인 문제에 대한 영구적인 해결책인 경우가 많으며, 충동적인 경향이 강하다. 동물 실험으로는 자살 연구를 할 수 없다. 동물들은 자신의 유한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모색할 수 없다. 자살은 인간을 동물과 다른 존재이게 하는 의식(意識)의 짐이자 자의식의 대가인 것이다. 자살은 우울증에 대한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불안 반응에 가깝다. “자살은 정신의 자기 반란이며 우울의 극에 이른 정신이 이해할 수 없는 복잡성을 지닌 이중적인 환멸이다. 그것은 자신을 저절로 해방시키기 위한 고의적인 행동이다. 날카로운 자기 인식이 있어야 그 인식의 대상을 파괴할 수 있으므로 온순한 우울증 상태에서는 자살을 상상하기도 힘들다. 자살은 지극히 약하거나 비겁한 행동이라기보다는 그릇된 용기와 불행한 힘에 의한 행동이다.”

▶ 역사*** 히포크라테스는 프로작을 낳았고 플라톤은 정신분석 치료를 낳았다
고대 그리스 시인 메난드로스는 “나는 인간이며, 그것만으로도 비참하기에 충분하다.”고 읊었다. 우울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는데 우울증이 오명을 얻은 것은 우울증을 신에게 버림받은 표시로 여겼던 중세부터이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기에 우울한 천재들이 부상하자 이들의 낙담은 통찰력으로, 이들의 나약함은 예술적 상상력과 복잡한 영혼의 대가로 여겨졌다. 17세기 이후에는 과학의 시대가 열려 뇌의 조직과 기능을 밝히기 위한 생물학적, 사회학적 연구들이 이루어졌고, 현대에는 프로이트, 카를 아브라함, 에밀 크레펠린의 정신분석 경향이 강하다. 우울증을 현대병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시각이다. 베케트의 말마따나 “이 세상의 눈물의 양은 항상 일정”하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우울증을 종교적 힘으로 치료하는 자들을 협잡꾼들이라고 했고, 소크라테스는 심각한 장애는 철학자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플라톤의 체계화한 자아 개념은 프로이트의 이론과 매우 흡사하다. 결과적으로 히포크라테스는 프로작을 낳았고 플라톤은 정신분석 치료를 낳았으며, 이후 지금까지 그 두 사상은 온갖 변종으로 계속 등장했고, 우울증을 천재성으로 보는 견해와 어리석음으로 보는 견해가 번갈아 나타났다.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신이 육체 위에 존재하기 때문에 정신은 육체적 질병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라 믿었으며, 따라서 정신적인 질병은 사탄의 개입이라고 생각했다. 신비주의자 힐데가르트 수녀는 “아담이 신의 말씀을 어긴 바로 그 순간에 멜랑콜리가 그의 피 속에서 응고되었다.”고 설명한다. 중세는 질서가 불확실한 시대였던 만큼 마음의 무질서는 특히 두려운 일이었다. 고대 사상가들은 정신을 육체에서 분리하지 않았는데, 중세 기독교도들은 영혼은 육체와 합일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런 전통에서 우울증을 수치로 여기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반면 르네상스 시대의 합리주의가 중세의 미신을 밀어내자 우울증은 악령보다는 의학적인 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7세기 데카르트 혁명 이후 우울증은 “화학적인 불균형”인지 “정신적인 나약함”인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18세기는 예의범절과 관습에 집착했으며 관습을 위협하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계층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엄중한 사회적 벌을 가했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수용되었다. 프로이트와 함께 시작하는 20세기의 우울증 치료는 정신분석학과 에밀 크레펠린의 정신생물학으로 대변된다. 우울증에 대해 처음으로 논리적인 설명을 내놓은 사람은 카를 아브라함이다. “우울증은 증오가 사랑하는 능력을 방해할 때 일어난다. 사랑을 거부당한 이들은 세상이 자신을 적대시한다는 망상에 빠져 세상을 증오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그런 증오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불완전하게 억압된 사디즘’을 키우게 된다.” 우울증의 특징은 자아 존중감의 상실이다. 프로이트는 “슬픔에 빠지면 세상이 초라하고 공허해 보이지만, 멜랑콜리에 빠지면 자신이 초라하고 공허해진다.”고 말했다. 우울증의 개념을 자크 라캉의 난해한 해체주의에 대입한 자크 아순은 “불안 없는 자율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과 적절히 분리되어 있지 못하며 자신을 세상과 접해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타인을 갈망하는 것은 리비도의 본질이며 우울증 상태에서는 분리된 타인을 인식할 수 없기에 갈망의 근거를 갖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부터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닿아 있기 때문에 우울한 것이다.”고 설명한다. 한편 마이어는 윌리엄 제임스와 존 듀이 같은 미국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실용주의적 접근을 시도했으며, 크레펠린과 프로이트에 반기를 들고 정신과 뇌를 조화시켰다. 인간은 무한한 적응력을 지녔으며 그것이 바로 사고의 유연성이다. 모든 환자들이 절대적인 정의들에 부합되는 것은 아니며 각 환자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치료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앤드류 솔로몬Andrew Solomon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예일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지저스 칼리지)를 졸업했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뉴요커》, 《아트포럼》, 《뉴욕 타임스 매거진》 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스탠퍼드, 예일, 하버드, 브라운 대학교 등에서 우울증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그 밖에 셰익스피어 프로젝트, 세계문화유산기금 위원회 등 예술과 인문학 분야에 몸담고 있다. 1991년에 러시아 예술가들을 연구한 <글라스노스트 시대의 소비에트 예술가들(The Irony Tower)>을 출간하고 정부에서 러시아 문제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1994년에 자전적인 소설 <스톤 보트(A Stone Boat)>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베스트셀러였다. 2001년 출간된 <한낮의 우울>은 <내셔널 북 어워드>를 포함하여 NDMDA(우울증 및 조울증 학회)의 <프리즘 어워드>, 영국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마인드 북> 등 11개 상을 받았다. 이 책은 출간 1년 만에 25만여 권이 팔렸고 22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미국도서관협회와 《뉴욕 타임스》의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에 선정되었다. 현재 런던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목차

이 책의 주제와 범위에 관하여 1. 슬픔과 우울 2. 정신의 몰락 3. 치료 4. 또 다른 접근 5. 환자들 6. 중독 7. 자살 8. 역사 9. 가난 10. 정치 11. 진화 12. 희망 – 주 – 참고 문헌

작가 소개

앤드류 솔로몬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예일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지저스 칼리지)를 졸업했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뉴요커》, 《아트포럼》, 《뉴욕 타임스 매거진》 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스탠퍼드, 예일, 하버드, 브라운 대학교 등에서 우울증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그 밖에 셰익스피어 프로젝트, 세계문화유산기금 위원회 등 예술과 인문학 분야에 몸담고 있다. 1991년에 러시아 예술가들을 연구한 <글라스노스트 시대의 소비에트 예술가들The Irony Tower>을 출간하고 정부에서 러시아 문제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1994년에 자전적인 소설 <스톤 보트A Stone Boat>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베스트셀러였다. 2001년 출간된 <한낮의 우울>은 <내셔널 북 어워드>를 포함하여 NDMDA(우울증 및 조울증 학회)의 <프리즘 어워드>, 영국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마인드 북> 등 11개 상을 받았다. 이 책은 출간 1년 만에 25만여 권이 팔렸고 22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미국도서관협회와 《뉴욕 타임스》의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에 선정되었다. 현재 런던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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