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의 깊이

동양 사상으로 본 언어, 언어 철학

이즈쓰 도시히코 | 옮김 이종철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4년 4월 25일 | ISBN 978-89-374-2378-9

패키지 반양장 · 신국판 152x225mm · 270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동양 철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이즈쓰 도시히코는 이 책에서 동서고금에 걸친 철학과 종교 텍스트를 언어 철학적 관점에서 소화하고 해석해 낸다. 일반 언어학이 언어의 의미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 데 비해 이즈쓰의 언어 철학은 언어의 의미 밖으로 솟구친다. 그리하여 그는 의미가 생성되는 바로 그 자리로 가려고 한다. 이즈쓰가 수많은 텍스트에서 주의 깊게 추려내는 것은, 의미가 생성되는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의 사색의 궤적이다.

편집자 리뷰

●의미의 세계는 깊다. 한없이 깊다. 나는 그것을 생생히 느꼈다. 그런데도 종래의 언어학은 아무렇지도 않게 ‘의미’라는 현상을 너무나 자명한 상식적 사실로 취급하고 있으니, 나는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일반 언어학은 어디까지나 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즉 사람들이 사회생활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관습적 ‘의미’만을 고찰한다. 간단히 말해 ‘표층적’ 의미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언어학자나 기호학자의 ‘의미’에 대한 이런 표층주의를 넘어 ‘의미의 심층’으로 다가가고자 했다. ―「지은이 후기」 중에서
■ ‘이슬람 철학의 원점’ 이즈쓰 도시히코, 동양의 철학적 전통들을 두루 살펴 끌어안다
이슬람 철학과 동양 철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권위 있는 언어학자인 이즈쓰 도시히코의 저서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국내의 이슬람 사상 연구 성과가 워낙 미미한 탓에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이즈쓰 도시히코는 일본 사상계에서 ‘이슬람 철학’의 원점이라 칭송받을 정도로 이슬람 사상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통한다. 일례로 일본에서는 그가 최초로 일본에 번역, 소개한 ꡔ코란ꡕ을 표준 번역으로 사용하고 있고, ꡔ이슬람 사상사ꡕ 역시 《월간 아사히》가 선정한 ‘일본을 아는 백 권의 책’에 선정될 정도로 많이 읽히고 있다.무엇보다 사상가로서 이즈쓰의 본령은 이슬람 사상 연구에만 국한되지 않고 동양의 여러 사상적 전통들을 ‘동양 철학’이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 재배치한 데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서양의 철학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거대한 사상사적 흐름으로 한 공간 안에 정리되는 데 반해, 동양의 철학은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서로 별개의 배경과 논리를 지닌 사상인 양 여겨지기가 쉬워서, 하나의 공간 안에 그러모으는 작업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우리가 동양에서 찾아내는 철학이란 복잡하게 뒤엉키며 병존하고 있는 ‘복수의 철학 전통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척박한 상황에서 이즈쓰는 동양 철학의 여러 전통을 분석하면서 그 근원적 사상 패턴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많은 사상적 조류들을 ‘동양 철학’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다시 배치함으로써 동양 철학 연구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그리하여 ‘서양 철학’에 나란히 설 수 있는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로서의 ‘동양 철학’이 정리된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흔적은 이 책 ꡔ의미의 깊이ꡕ에서도 예외 없이 찾을 수 있다. 동서양 사상들 사이에서 대화의 길을 계속 모색한 철학자 이즈쓰 도시히코는 우리에게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지향한다)도 아니고, 단순한 동양중심주의도 아닌 제3의 ‘대화’의 길을 보여 준다. ■ 공시적 구조화와 심층 의미론―동양 철학을 하나로 묶기 위한 시도
동양 철학을 정립하기 위해 이즈쓰가 취한 방법론을 ‘공시적(共時的) 구조화’라 한다. 이즈쓰가 목표로 했던 것은 단지 동양의 많은 사상 조류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의 현 상황에서 철학적 사유의 창조적 원점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어떠한 인위적, 이론적 조작을 가한 것이 바로 ‘공시적 구조화’다. 이 조작은 우선 동양의 주요한 철학적 전통을 현재 시점에서, 하나의 이념적 평면으로 옮겨 공간적으로 다시 배치하는 데서 출발한다. 즉 각각의 철학적 전통들을 시간 축에서 떼어내 그것을 범형론적(範型論的)으로 재구성하고 그 모든 철학적 전통들을 구조적으로 감싸 안는 하나의 사상 연관 공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동양인의 철학적 사유를 심층적으로 규제하는 근원적 유형을 찾아내, 그 위에 자기 자신의 동양 철학적 관점이라 할 만한 것을 세워나간다. 이질적인 여러 동양 사상들이 범형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심층 의식와 표층 의식이 동시에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이론적으로 세련화한 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바, ‘심층 의미론’이다. ■일반 언어학의 표층주의를 넘어 의미의 심연으로 향하다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절대적 사실로 가득 차 있다고 믿는 현실의 세계는, 이즈쓰의 표현을 빌리면, 언어적 의미에 따라 형성된 상대적 세계일 뿐이다. ‘의미’란 것이 인간의 마음 작용을 근원적으로 규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의미’라는 것이 무엇일까. 이즈쓰는 일찍이 ‘의미’라는 것의 기묘함을, 그것이 인간이 경험하는 현상적 존재 질서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한없는 깊이를 감추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감지하고 언어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종래의 언어학은 아무렇지도 않게 ‘의미’라는 현상을 너무나 자명한 사실로 취급했고, 이에 이즈쓰는 한계를 느꼈다. 이즈쓰는 이렇게 말한다.기존의 일반 언어학이 이렇게 평범한 ‘의미’ 이해에 안주해 버리기 쉬운 까닭은, 원래 이 학문이 말 자체를 주로 사회 관습적으로 코드화되고 시스템화해서 작용하는 것으로 국한해서 고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즉 사람들이 사회생활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관습적 ‘의미’만을 고찰한다. 그리고 관습적 의미의 틀을 벗어나는 것은 ‘뉘앙스’이며, 화자가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행하는 개인적인 의미 창조 행위라고 치부해 버린다. 이렇게 표층적 의미만을 생각하는 일반 언어학을 비판하면서 그는 의미의 심층으로 눈을 돌린다. 그리고 그것을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다루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 결실은 불교 유식 철학의 아라야식을 원용한 ‘언어 아라야식’이라는 중층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폭류(暴流)와 같이 소용돌이치며 변화하는 의미’로 나타난다. 우리 하의식의 어두운 심층에서는 무수한 잠재적 의미 형상이 매 순간 점멸하고 매 순간 모습을 바꾸면서 소용돌이친다. 그것은 하나의 에너지이며, 따라서 유동체다. 이렇게 유동하는 의미 에너지의 여러 부분이 상황에 따라 단독으로, 또는 몇 개가 연합하고 활성화해서 표층 의식의 환한 빛 속으로 떠오른다. 즉 우리가 평소 일상적 생활의 차원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는 말도, 실용적, 상식적 ‘의미’의 두꺼운 껍질 바로 아래에서 ‘의미의 심층’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ꡔ의미의 깊이ꡕ에서 이즈쓰는 여덟 개의 글을 통해 유식(唯識), 화엄(華嚴) 철학과, 자크 데리다의 에크리튀르론, 이슬람 시아파의 순교 정신,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 그리고 홍법 대사 구카이(空海)의 사상, 장자의 혼돈 사상을 깊이 있게 살펴보면서, 그 각각의 사상 속에서 의미의 심층 이론을 찾아낸다. 1부에서는 지구 사회화 과정에서 인간 실존이 처한 심각한 위기 극복과 이문화(異文化) 간의 대화를 위해 전통적 동양 철학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다루고, 2부에서는 현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해체 철학과 그중 핵심인 에크리튀르론을 언어 철학적으로 해명한다. 그리고 3부에서는 이슬람 시아파의 순교자 정신이 어떻게 인간의 심층 의식을 지배하는지와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이 보이는 심층 의미론적 측면을 고찰하고, 구카이의 진언 사상과 장자의 사상에서 나타나는 의미의 분절 과정을 살펴본다. 이는 각 동서 사상을 언어 철학이라는 일관된 관점에서 고찰함으로써 사상들의 의의를 재정립하는 것인 동시에, 의미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 책은 언어적 의미의, 신비로 가득 찬 저 싶은 심연으로 읽는 이를 유혹한다. 이즈쓰는 우리에게 의미의 표층과 심층, 의식의 표층과 심층, 존재의 표층과 심층을 동시에 보기를 권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무(無)와 유(有)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눈”을 지니는 것이다. ■언어의 의미에서 동서양 철학의 대화 가능성을 찾는다
이제 이즈쓰의 연구를 통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동양적 정신세계에서 떨어져 살 수 없는 우리는 동서 철학이 의미론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의미론적 대화를 가능케 하는 실마리는 바로 언어다. ꡔ의미의 깊이ꡕ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사상들은 모두 의미의 심층을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이고, 그것은 동서양 철학의 경계를 초월해 새로운 철학적 관점을 세울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이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상이 있어, 그것들을 하나하나 깊이 있게 알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그저 단편적으로 알아가는 데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입문서를 읽는다 해도 이는 마찬가지여서 표면적으로만 훑고 마는 책들이 대다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는 각 사상의 독특한 언어 사용법이나 구성 방법에 의해, 여러 사상들을 포괄적으로 그리고 일관적으로 깊이 고찰한 ‘모범적인 예’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동서고금의 텍스트들 위를 종횡무진하면서 각 사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그 자신의 언어로 다시 정의해 설명한다. 이슬람 사상, 유대교의 카발라 사상, 희랍 사상, 노장 사상, 주역 사상, 음양 사상, 대승 불교의 공(空) 사상, 유식 사상, 선(禪) 사상, 구카이의 진언(眞言) 사상, 데리다의 해체 사상이 다채롭게 등장하는 가운데, 그것들의 본질을 파악하는 탁월한 인식의 중심에는 ‘의미가 생성되는 현장’ 이 있다.이즈쓰는 의미가 생성되는 바로 그 자리로 가려고 하고, 그가 동서고금의 텍스트에서 주의 깊게 추려내는 것이 바로 의미가 생성되는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의 사상이다. ■천재 스무 명을 합쳐 놓은 인물
이즈쓰의 사상적 관심은 실로 넓고도 깊다. 그는 동서고금에 걸친 철학과 종교 텍스트를 거의 예외 없이 언어 철학적 관심에서 소화하고 해석해 낸다. 막강한 인식력, 이를 바탕으로 마치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화려하면서도 우아하게 전개되는 의미의 심연에 대한 그윽한 통찰력, 이러한 천부적 자질 뒤에 숨어 있는 구도자적 치열함, 이 모든 정신적 요소가 이즈쓰라는 한 사상가에게 응축되어 있다. 이미 일본의 유명한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가 이즈쓰를 두고 ‘천재 스무 명을 합쳐 놓은 사람’이라고 격찬한 바와 같이, 그의 열정과 천재성은 언어 능력에서도 발휘됐다. 그는 서른 개 이상의 고전어 및 현대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는데, 영어, 프랑스어와 같은 현대어는 너무 쉽고 단순해 재미가 없고 고전 아랍어,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희랍어 같은 고전어 정도라야 도전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 지은이 이즈쓰 도시히코(井筒俊彦)
1914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37년 게이오(慶應義塾) 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1968년까지 게이오 대학 문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이후 캐나다 마길 대학 교수, 이슬람 왕립 철학 아카데미 교수를 거쳐, 현재 게이오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Institut International de Philosophie 회원이다. 언어 철학과 이슬람 철학을 전공했다. 지은 책으로는 『이슬람 사상사』, 『이슬람 탄생』, 『이슬람 철학의 원상(原像)』, 『이슬람 문화』, 『신비 철학』, 『러시아적 인간』, 『의식과 본질』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코란』, 『존재 인식의 길』,『루미 어록』이 있다. 또 영문 저작으로는 Language and Magic; Sufism and Taoism-The Comparative Study of the Key Philosophical Concepts; Toward a Philosophy of Zen Buddhism이 있다.
● 옮긴이 이종철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도쿄 대학에서 인도 철학과 불교학을 전공하며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The Tibetan Text of the Vyakhyayukti of Vasubandhu(Tokyo: Sankibo Press, 2001), 『세친 사상의 연구』(東京: 山喜房, 2001) 등이 있고, 논문으로 「중관 사상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와수반두의 언어관」 등이 있다. 현재 주요 관심사는 인도 불교와 동아시아 불교 사상의 비교 연구다.

목차

1부 1 인간 존재의 현대적 상황과 동양 철학 2 문화와 언어 아라야식 -이문화 간 대화의 가능성에 대해 2부 3 데리다 속의 유대인 4 쓰기 -데리다의 에크리튀르론에 대해 3부 5 시아파 이슬람 -시아적 순교자 의식의 유래와 그 연극성 6 수피즘과 언어 철학 7 의미 분절 이론과 구카이 -진언 밀교의 언어 철학적 가능성 8 혼돈-무와 유 사이 지은이 후기-동양 철학에서 언어의 문제 옮긴이 후기

작가 소개

이즈쓰 도시히코

1914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37년 게이오 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1968년까지 게이오 대학 문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이후 캐나다 맥길 대학 교수, 이슬람 왕립 철학 아카데미 교수와 게이오 대학 명예교수를 역임했다.

이종철 옮김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도쿄 대학에서 인도 철학과 불교학을 전공하며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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