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라캉으로 영화 읽기
글 권택영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01년 5월 15일
ISBN: 978-89-374-2474-8
패키지: 반양장 · 국판 148x210mm · 300쪽
가격: 10,000원
분야 논픽션
영화 <아메리칸 뷰티>, <잉글리쉬 페이션트> 등 12편의 유명 영화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재조명한 책. <글래디에이터>가 많은 관객들을 매혹하는 이유를 단순히 폭력과 잔인성을 즐기려는 군중 심리가 아니라 죽음 충동의 양면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또한 라캉의 <주이상스> 개념을 빌어 주인공 막시무스는 주이상스가 욕망을 낳는 승화의 과정을 실천하는 인물로, 코모두스는 주이상스로 하강하여 자신을 파괴하는 과정을 대표하는 인물로 규정했다.
서문일러두기
I 프로이트를 애도하며1. 반복 2. 무의식3. 죽음 충동4. 전이
II 라캉으로 영화 읽기1. 판타지의 주체 – 「글래디에이터」, 「파리, 텍사스」, 「공동경비구역 JSA」2. 신경증과 도착증 – 「러브 레터」와 「감각의 제국」3. 사드 곁의 칸트에서 욕망이 태어난다 – 「아메리칸 뷰티」4. <오브제 프티 아>로서의 음성 – 「접속」과 「잉글리시 페이션트」5. 주이상스의 정치성 – 「선셋 대로」6. 전이의 두 양상 – 「시민 케인」과 「유주얼 서스펙트」7. 궁정풍 사랑과 응시 – 「롤리타」
라캉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시점에 발간된 이 책은 라캉의 복잡하고 난해한 이론들을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로 설명하고 있어 누구나 쉽고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
20세기의 인문학과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정신분석학은 전문적인 연구자나 학자들의 영역을 넘어서서 유행처럼 널리 알려져 누구나 그 한 구절쯤을 들어본 경험이 있을 정도이다. 특히 <욕망>, <충동>, <꿈의 분석> 등은 이미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용어들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언제부터인지 단순히 즐기는 문화의 한 장르를 넘어서서 영화를 읽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러나 이 둘을 정치하게 결합시켜 진지하고 명쾌하게 접근한 예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한편 그간에 영화에 관련된 책들의 저자들은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학자나, 현장 비평가들이 대부분이었고, 간혹은 영화와 다른 문화 장르를 결합시킨 크로스 오버식의 서적들이 출간되기도 했다. 전자의 경우는 영화의 기법이나 스토리를 중심으로 분석한 경우가 다종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면 후자의 경우는 시도 자체에만 의의를 둔 채 깊이 있게 분석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의 저자인 권택영 교수는 오랫동안 라캉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 온 학자로 정신분석과 영화라는 두 영역을 결합시키되, 어느 한쪽에만 무게 중심을 두지 않고 양자를 조화롭게 보여주고 있다.
책 읽는 즐거움 하나 – 영화로 라캉 읽기
이 책의 Ⅰ부는 <프로이트를 애도하며>라는 제목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과 그를 계승하는 라캉의 주요 개념을 반복, 죽음 충동, 무의식, 전이 등의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딱딱하고 난해한 이론을 영화, 미술, 문학 작품 등의 예와 함께 설명하고 있어 접근하기가 쉽게 쓰여 있다는 점이 특이할 만하다. 예를 들어 「반복」에서는 우리가 즐거웠던 기억이나 경험보다는 끔찍하고 공포스러웠던 기억을 더 자주 하게 되는 원인을 프로이트의 <언캐니(uncanny)>와 라캉의 <실재계>로 설명하고, 그런 근거로 여러 가지 예술 작품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언캐니는 현실에서보다 서사 속에서 더 비옥하게 살아난다. 서사란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강력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현실 원칙에 거스르는 쾌감 원칙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허구의 세계다. 이상이나 고흐가 보여 주는 공포와 괴기스러움은 경직된 현실을 파괴하고 억압된 욕망을 드러내는 독특한 예술의 세계다. (중략)우리가 과거의 불쾌한 기억이나 상처를 자꾸만 떠올리는 일도 어쩌면 그런 반복이 즐겁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치 공포 소설이나 괴기스러운 영화를 즐기는 것처럼, 기막히게 속았을 때 즐거운 것처럼, 우리는 수동적인 상처를 능동적으로 경험하는 데서 기쁨을 맛본다. (본문에서)
그렇다면 이 영화는 남북이 그렇게 대치되어 현상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인가? 아닐 것이다. 통일이 염원이라면 타자를 알고 그것을 어떻게 조정할지를 먼저 배워야 한다는 암시이다. 같은 민족이 지역으로 나뉘고 학연으로 나뉘는 갈등을 줄일 수 있을 때 남북의 화해도 안심할 수 있다는 주체에 대한 반성이다. 남북이 공동으로 경비해야 할 것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오브제 아>요, 판타지가 투사된 타자라는 점이다. (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