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문학의 서양 콤플렉스

이진우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1999년 8월 16일 | ISBN 89-374-2802-4

패키지 반양장 · 신국판 152x225mm · 240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은 모두 비판적 담론의 광장에서 태어났다. 그것들은 또한 이 땅에서 철학하는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투쟁의 산물들이기도 하다. 나는 한때 카프카와 릴케를 좋아했으면서도 나중에 한국 문학을 하겠다는 핑계로 이 사실을 숨겼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퇴계보다는 칸트를 좋아하고 또 니체를 노자만큼이나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단지 내게 중요한 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서 이루어지는 삶의 의미를 해명하는 데 퇴계와 칸트, 니체와 노자를 얼마만큼 소화시켜 의미 있게 서술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 역시도 서양 콤플렉스를 극복하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억압된 욕구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이 억압의 과정과 내용을 반성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것’을 말하지 않으면서 ‘우리 것’을 찾아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편집자 리뷰

매년 새로운 저서를 출간하며 의욕적인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이진우 교수의 『한국 인문학의 서양 콤플렉스』라는 논쟁적인 제목의 저서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1,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 실려 있는 <이 땅에서 철학하는 나는 누구인가>, <왜 \’지금 그리고 여기서\’ 철학을 하는가>, <한국인과 한국 문화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좌파는 진보적이고 우파는 보수적인가> 등 4편의 글들은 주로 우리의 고정관념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2부에는 <‘인문\’학\’이 죽어야 인문 \’정신\’이 산다>, <포스트모던 사회와 인문학의 과제>, <포스트모더니즘과 동양 정신의 재발견>, <한국 철학의 역사성과 무역사성>, <세계 체제의 도전과 한국 사상의 변형> 등 1부의 문제 제기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글들이 실려 있다.
 
그의 글쓰기는 \’지금 그리고 여기\’라는 화두로 시작된다. 왜냐하면 그는 \”철학은 끊임없는 문제 해결의 과정인 삶에 기여할 때에만 비로소 생명력과 역사성을 획득하기 때문에 현실의 철학이 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기술 문명과 자본주의의 논리와 핵심을 포착하는) 서양철학자로서, (이성에 대한 자기반성을 기회 삼아 우리 사유의 전통으로부터 새로운 이성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로서, (우리가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경험적 현실의 배후에는 반성적 거리 두기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다른 논리가 지배하고 있음을 확신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그는 이 책에서 \’나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우리 학문의 자리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다.
 
이진우 교수는 한국 학계의 서양 콤플렉스를 신랄하게 들춰내는 한편, 우리 지성계의 숨통을 옥죄고 있는 식민성의 정체를 밝혀내고 있으며, 한국적 학문의 독자적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학자들의 기존 작업에서 허와 실을 명쾌하게 구별해 내는 한편, 앞으로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학문이 식민지화되어 있고 주체성이 없다는 비판은 많지만,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생산적인 논쟁의 방향 제시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의 학계에서 자생적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지나치게 역사와 전통을 강조한다. 우리가 한국적 학문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전통의 단절\’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말에 아무런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은 전통의 단절이라는 사실만을 절대화할 뿐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소화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말해 주지 않는다. 이진우 교수는 우리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를 억압하는 식민성의 정체는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통찰이 다음 문장에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퇴계를 읽는 대신에 칸트를 읽는 것을 서양 추수주의라는 이름으로 질타하지만, 그들은 칸트가 우리에게는 퇴계만큼이나 가깝고 퇴계는 칸트만큼이나 멀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성계의 식민성과 서양 추수주의를 타박하기 이전에 우리는 먼저 퇴계를 읽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통 사상이 자본주의와 기술 문명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읽어 내는 데 있어서 별 의미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아마 가장 커다란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는 자본주의와 기술 문명이 지배적인 우리의 현실 환경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또 스스로 구성해 갈 수 있는 언어와 사상을 우리의 전통으로부터 발전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 지성계의 숨통을 옥죄고 있는 식민성의 정체이며 본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창의적으로 계승해야 할 전통은 무엇인가? 이 교수는 그것을 단순한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현재에 활동적인 문화적 힘이라고 말한다. 정체성은 본래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기에 특수와 보편, 역사와 전통의 변증법적 대결이 없이는 그 모습을 그려 낼 수 없다. 변화된 조건 속에서 스스로 변하지 않는 전통은 이미 전통이 아닌 것이다.
 
또한 그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독자적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시도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세 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전통을 형식적으로 절대화함으로써 세계적 보편타당성을 지닌 거시적 이론을 창조하고자 하는 \’내용적 보편주의\’, 동서양의 패러다임을 비교 분석하면서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절충적 보편주의\’, 우리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글로벌 데모크라시의 실현 가능성을 탐색하는 \’실천적 보편주의\’. 그는 이러한 입장들은 조동일, 이승환, 조한혜정이 각각 대변한다고 보고 각각의 허와 실을 명확히 짚어 낸다.
 
▶ 조동일은 마음으로는 \’우리 학문으로 남의 학문 넘어서기\’를 바라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바깥의 학문적 조류와의 진정한 토론과 대결 없이 \’우리 학문 절대화하기\’의 내용적 보편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조동일은 결국 구체적 현실에 대한 이론적 의미와 적실성을 검토하지 않음으로써 생극론이라는 특수한 사상에 거대 이론이라는 보편주의적 형식을 덧씌우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 동서양의 패러다임을 비판적으로 비교 분석함으로써 이를 극복하려는 이승환은 두 패러다임의 장점만을 종합하는 절충주의를 시도한다. 절충주의는 일견 모든 것을 단숨에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체적 문제를 보편주의의 이름으로 은폐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이한 두 문화의 공통분모를 암묵적으로 전제함으로써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구체적 문화적 내용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 조한혜정의 실천적 보편주의는 민주주의 이념의 구체화 가능성만을 절대화함으로써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전통과 역사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즉 \’보편성 속의 특수성을 찾을\’ 뿐이지 우리의 구체적 문화 속에 들어 있는 보편성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서양 콤플렉스는 한국인들에게, 한국 학계의 큰 문제이다. 이진우 교수는 카프카와 릴케를 좋아했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이 사실을 숨겼던 자신의 기억, \’나\’와 \’우리\’의 주관적 어법을 즐겨 사용하는 스타일리스트들, 바깥의 도전에 대해 \’우리\’와 \’우리의 것\’을 허구적으로 대립시킴으로써 감정적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경향, \’우리 것\’이라는 특수에만 매달리면서 자생적 담론이라는 말만을 되새김질하는 지식인들, 문화적 자긍심을 결여한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며 그 극복의 방향과 근거를 제시한다.
 
왜 우리는 우리의 학문을 자생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는가?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학문이어야 할 철학이 오늘날 가장 추상적이며 가장 비현실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한국에서의 학문을 한국적 학문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삶과 의미 있게 결합되어 있는 \’우리의 문제의식\’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지금 그리고 여기의 문제를 성찰하고 해결하려는 문제의식에서 전통과 현대, 고유한 것과 낯선 것의 갈등을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지금 한국의 학문에 고유한 정체성과 생명력을 부여하려면 과거를 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삶에 기여하지 않는 과거는 망각되거나 창조적으로 변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창조적 무역사성\’이라고 주장한다.
 
김형철 교수(연세대 철학과)는 \”니체를 전공한 사람답게 이진우 교수의 글에서 시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 교수보다 더 쉽고 명료하게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을 설명해 나간 한국 철학자를 보지 못했다. 글을 어렵게 쓰고, 말을 비비 꼬면서 하는 사람은 대개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진우 교수는 아마 포스트모더니스트 가운데 가장 \’계몽\’된 철학자가 아닌가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가독성 있는 문체, 차근차근한 논리 전개가 돋보이는 그의 글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자는 그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그의 글쓰기는 <지금 그리고 여기>라는 화두로 시작된다. 왜냐하면 그는 \”철학은 끊임없는 문제 해결의 과정인 삶에 기여할 때에만 비로소 생명력과 역사성을 획득하기 때문에 현실의 철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기술 문명과 자본주의의 논리와 핵심을 포착하는) 서양철학자로서, (이성에 대한 자기 반성을 기회 삼아 우리 사유의 전통으로부터 새로운 이성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로서, (우리가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경험적 현실의 배후에는 반성적 거리 두기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다른 논리가 지배하고 있음을 확신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그는 이 책에서 <나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우리 학문의 자리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다.
이진우 교수는 한국 학계의 서양 콤플렉스를 실랄하게 들춰내는 한편, 우리 지성계의 숨통을 옥죄고 있는 식민성의 정체를 밝혀내고 있으며, 한국적 학문의 독자적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학자들의 기존 작업에서 허와 실을 명쾌하게 구별해 내는 한편, 앞으로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학문이 식민지화되어 있고 주체성이 없다는 비판은 많지만,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생산적인 논쟁의 방향 제시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의 학계에서 자생적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지나치게 역사와 전통을 강조한다. 우리가 한국적 학문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전통의 단절>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말에 아무런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은 전통의 단절이라는 사실만을 절대화할 뿐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소화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말해 주지 않는다. 이진우 교수는 우리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를 억압하는 식민성의 정체는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통찰이 다음 문장에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퇴계를 읽는 대신에 칸트를 읽는 것을 서양 추수주의라는 이름으로 질타하지만, 그들은 칸트가 우리에게는 퇴계만큼이나 가깝고 퇴계는 칸트만큼이나 멀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성계의 식민성과 서양 추수주의를 타박하기 이전에 우리는 먼저 퇴계를 읽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통 사상이 자본주의와 기술 문명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읽어내는 데 있어서 별 의미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아마 가장 커다란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는 자본주의와 기술 문명이 지배적인 우리의 현실 환경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또 스스로 구성해 갈 수 있는 언어와 사상을 우리의 전통으로부터 발전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 지성계의 숨통을 옥죄고 있는 식민성의 정체이며 본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창의적으로 계승해야 할 전통은 무엇인가? 이 교수는 그것을 단순한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현재에 활동적인 문화적 힘이라고 말한다. 정체성은 본래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기에 특수와 보편, 역사와 전통의 변증법적 대결이 없이는 그 모습을 그려낼 수 없다. 변화된 조건 속에서 스스로 변하지 않는 전통은 이미 전통이 아닌 것이다.
또한 그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독자적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시도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세 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전통을 형식적으로 절대화함으로써 세계적 보편타당성을 지닌 거시적 이론을 창조하고자 하는 <내용적 보편주의>, 동·서양의 패러다임을 비교 분석하면서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절충적 보편주의>, 우리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글로벌 데모크라시의 실현 가능성을 탐색하는 <실천적 보편주의>. 그는 이러한 입장들은 조동일, 이승환, 조한혜정이 각각 대변한다고 보고 각각의 허와 실을 명확히 짚어낸다.

▶ 조동일은 마음으로는 <우리 학문으로 남의 학문 넘어서기>를 바라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바깥의 학문적 조류와의 진정한 토론과 대결 없이 <우리 학문 절대화하기>의 내용적 보편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조동일은 결국 구체적 현실에 대한 이론적 의미와 적실성을 검토하지 않음으로써 생극론이라는 특수한 사상에 거대 이론이라는 보편주의적 형식을 덧씌우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 동·서양의 패러다임을 비판적으로 비교 분석함으로써 이를 극복하려는 이승환은 두 패러다임의 장점만을 종합하는 절충주의를 시도한다. 절충주의는 일견 모든 것을 단숨에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체적 문제를 보편주의의 이름으로 은폐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이한 두 문화의 공통분모를 암묵적으로 전제함으로써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구체적 문화적 내용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 조한혜정의 실천적 보편주의는 민주주의 이념의 구체화 가능성만을 절대화함으로써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전통과 역사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즉 <보편성 속의 특수성을 찾을> 뿐이지 우리의 구체적 문화 속에 들어 있는 보편성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서양 콤플렉스는 한국인들에게, 한국 학계의 큰 문제이다. 이진우 교수는 카프카와 릴케를 좋아했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이 사실을 숨겼던 자신의 기억, <나>와 <우리>의 주관적 어법을 즐겨 사용하는 스타일리스트들, 바깥의 도전에 대해 <우리>와 <우리의 것>을 허구적으로 대립시킴으로써 감정적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경향, <우리 것>이라는 특수에만 매달리면서 자생적 담론이라는 말만을 되새김질하는 지식인들, 문화적 자긍심을 결여한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며 그 극복의 방향과 근거를 제시한다.
왜 우리는 우리의 학문을 자생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는가?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학문이어야 할 철학이 오늘날 가장 추상적이며 가장 비현실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한국에서의 학문을 한국적 학문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삶과 의미 있게 결합되어 있는 <우리의 문제 의식>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지금 그리고 여기의 문제를 성찰하고 해결하려는 문제 의식에서 전통과 현대, 고유한 것과 낯선 것의 갈등을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지금 한국의 학문에 고유한 정체성과 생명력을 부여하려면 과거를 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삶에 기여하지 않는 과거는 망각되거나 창조적으로 변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창조적 무역사성>이라고 주장한다.
김형철 교수(연세대 철학과)는 \”니체를 전공한 사람답게 이진우 교수의 글에서 시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 교수보다 더 쉽고 명료하게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을 설명해 나간 한국 철학자를 보지 못했다. 글을 어렵게 쓰고, 말을 비비 꼬면서 하는 사람은 대개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진우 교수는 아마 포스트모더니스트 가운데 가장 <계몽>된 철학자가 아닌가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가독성 있는 문체, 차근차근한 논리 전개가 돋보이는 그의 글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자는 그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세기말의 반시대적 시대 비판 1부 1. 이 땅에서 철학하는 나는 누구인가 2. 왜 <지금 그리고 여기서> 철학을 하는가 -철학적 글쓰기에 관한 어느 철학자의 편지 3. 한국인과 한국 문학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4. 좌파는 진보적이고 우파는 보수적인가

작가 소개

이진우

2001년 현재 인천 심곡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다. 제2회 푸른 환경 가꾸기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환경부 장관상(대상)을 수상하였다.

독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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