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피스트

김이강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8년 8월 21일 | ISBN 978-89-374-0870-0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26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빛과 어둠으로 말하는
조도照度의 시, 시의 조도照度

편집자 리뷰

2006년 《시와 세계》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이강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타이피스트』가 민음의 시 250번으로 출간되었다. 첫 번째 시집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이후 6년 만이다. 이전 시집에서 일상에 환상을 접붙여 황홀하고 불안한 상상을 길러 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빛과 어둠으로 세계를 드러내는 독창적 시선을 연출한다. 빛과 어둠은 『타이피스트』에 흐르는 시적 에너지의 발산처인 동시에 세계의 이미지를 기록하는 ‘타이피스트’다. 세계의 ‘타이피스트’가 기록한 빛과 어둠의 감각은 이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언어와 이미지를 경험하는 익숙하고도 낯선, 순간적이고도 영원한 찰나를 제공할 것이다.

 


 

빛과 어둠 속에서 영원을 꿈꾸는 “너”

검고 하얗고 고요한 너의 윤곽 안으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늬들이 가득 찬다.

―「태양이 밀려드는 바다」에서

 사진과 영화 같은 이미지 매체는 빛을 이용해 세계를 드러낸다. 김이강의 시는 그런 점에서 한 장의 사진이거나 한 편의 영화를 닮았다. 빛의 양을 조율하며 언어를 탐구하고 이미지를 재연하는 시인은 사진가나 영화감독에 가깝다. 시간은 빛을 통해 전개되고, 시는 그 빛들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무늬이기 때문이다. 이때 빛과 어둠이 드러내는 대상은 다름 아닌 “너”다.

“너”는 내 곁에서 눈을 감고 노래한다. “너”는 누구라고 정의할 수 없는 다수이며, 특정할 수 없는 시간이다. ‘태양이 밀려드는 바다’처럼 이미지는 어딘가에 고착화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임을 시인은 “너”를 통해 나타낸다. 이 반복이 꿈꾸는 것은 영원성이다. 그러나 현실의 공간에서 시간은 유한하다. 바다에 “괴로운”이라는 말을 새겨 놓은 것은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무한을 꿈꾸지만, 그것은 유한 속에서 어렵게 일어나는 사건임을 씁쓸하게 새겨 놓으며 시인은 현실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배제하지 않는다. 고난을 배제하지 않는 것. 이는 『타이피스트』의 윤리이기도 하다.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감각들의 개화

거대한 어둠이었다 토마토는 익히면 무언가 강력해진다고 어디선가 들었던 일을 떠올렸고 프라이팬이 있고 잘 구워져 부드럽게 핏빛이 도는 고기가 있고

―「낮과 밤 그리고 멈추어지지 않는 것들」에서

빛과 어둠의 또 다른 역할은 그들 아래 혹은 위에 있는 질료 자체의 질감을 더욱 생생하게 만드는 것이다. 김이강의 시에서 어둠은 우리가 시의 질료와 분위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끔 시선을 유도한다. 특히 「낮과 밤 그리고 멈추어지지 않는 것들」 속의 식탁은 몰입을 위해 시인이 연출한 독창적 공간이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우리의 시선은 토마토의 둥그스름한 형태와 부드러운 핏빛에 고정된다. 이 어둠이 극에 달할 때, 시인은 양초에 불을 붙인다. 갑작스러운 빛의 침입에 시선은 분산되고 잘 차려진 식탁은 자리에 앉아 보기도 전에 환상처럼 녹아내린다. 이미지에 잠재된 새로운 색감과 열기, 촉감이 개화하는 순간이다. 이들은 질료를 더욱 들여다보게 할 뿐만 아니라 일상의 감각을 흐트러트린다. 안정화가 깨어지면서 나타나는 것은 ‘불안’이다. 어둠이 이미지의 밑바탕에서 끊임없이 요동쳐 새로운 감각들을 깨어나게 했듯이, 불안도 마찬가지로 우리 내부에서 끊임없이 요동쳐 잠재된 기억을 회복하게 한다. 시인이 시 내부에서 일으킨 변화가 시 바깥으로, 우리에게로 흘러들어 오는 것이다.


 

■ 깊고 넓은 회복을 거쳐 눈부신 세계로

깊고 넓었지

부수어진 나를

능숙하게 조립하는 너의 손

―「The Typist」에서

“너”는 해와 함께 나를 따라오며, 이로 인해 “나”는 어깨가 잘린 옷을 입고 있다. 어깨가 잘렸으니 소매도 없고 손도 없다. 손뿐만 아니라 나머지 몸마저 잘려 가는 모습은 일견 언어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일차원적으로 재현하고 해석하려는 방식으로 인해 단순화되고 도구화되는 언어의 현실 말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자꾸만 돋아나고/ 자꾸만 움직이는” “너의 손”으로 회복시킨다. 여기에서의 “너” 역시 재현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서의 “너”다.

“너”의 손짓으로 부수어진 언어를 다시 깊고 넓게 회복시키는 것. 언어에 더 많은 빛을 비추고 어둠으로 이미지에 잠재된 가능성을 일깨우는 것. 시인이 꿈꾸며 추구했던 것이 아닐까. 『타이피스트』에 수록된 50편의 시는 그 눈부신 꿈을 타이핑하는 타이피스트의 경쾌하고 적극적인 손짓이다.

목차

1부

안개 속의 풍경
등대로
태양이 밀려드는 바다
길 언덕 그리고 타워
메리언배드
해변의 작은 식당에서 우리가 했던 일
그 빛에 입구가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고릴라와 함께
센느
기우
코르크 마개
슬로바키아로 가는 길목의 누드 비치
낮과 밤 그리고 멈추어지지 않는 것들
바다가 보이는 주유소
석양의 버스

 

2부

지금은 양파
코르크 마개
서늘한 식당에서
극장 앞에서
바위산
나사의 회전
정거장 가는 길
The Typist
하오의 문
동거
푸르고 녹슨 밤
분수대 근처
헤겔의 안개
폭포수는 국경을 넘고
낮과 밤, 그 밖의 날
먼 바다

 

3부

표지가 꽂힌 욕실
다리가 있는 강가
만개
화병이 있는 창가
서울, 또는 베를린의 겨울에 대한 생각
우리의 숲은 끝나지 않는다
네가 잠든 동안
그곳에 가지 못한 날
의자 머플러 밤
탐험
봄날

기린 산책
흐린 날 오후 앉거나 걷기
자전거 여행
폭설
해변 속의 너
브라티슬라바

작품 해설-그 말(빛)이 시간 속에 삶을 깃들게 하였다(송종원)

작가 소개

김이강

1982년 여수에서 태어났다. 2006년 《시와 세계》로 등단했다. 시집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가 있다. 제2회 혜산 박두진 젊은 시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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