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중섭

한 예술가의 비극적 삶과 예술의 성취

고은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1999년 4월 1일 | ISBN 89-374-2421-5

패키지 반양장 · 신국판 152x225mm · 322쪽 | 가격 10,000원

분야 논픽션

책소개

시인 고은의 이중섭 평전은 최초로 쓰인 이중섭에 대한 연구서일 뿐 아니라, 그의 일생 동안 이중섭권을 형성했던 주변인들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이중섭을 ‘근대 한국미술의 출발점’으로 삼는 속론은 피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13년 만의 이중섭 유작전과 함께 새롭게 쓰인 <화가 이중섭>은 바로 화가로서의 열정과 좌절,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나약함을 솔직하게 보여 주는 이중섭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편집자 리뷰

그림과 인간, 예술과 진실을 일치시킨 한국 근대 미술의 천인(天人) 이중섭!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옮기며 살아간 그의 짧은 인생 40년


천재의 광기인가, 인생의 향기인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1999년의 시작은 그렇게 13년 만의 이중섭 유작전의 열풍으로 뜨거웠다. 9만에 이르는 관람객과 연장 전시, 그리고 이미 9월의 학술 세미나, 12월의 특별 전시 일정까지 잡혀 있는 상황이다. 가난과 병마,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요절이라는 예술가적 삶의 전형에 부합하는 그의 짧은 인생이, 식을 줄 모르는 이중섭 열풍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만들어 낸 신화의 거품이 아닌, 인간 이중섭이 절망의 순간순간에 피어 낸 예술혼의 승리라고 보야야만 할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이 천재의 광기를 내뿜기보다는 인생의 향기를 배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화가 이중섭, 그의 예술혼
어렸을 때부터 사과를 주면 먹지 않고 그리기부터 했다는 중섭이 그의 소재라 할 소와 닭을 관찰하다가 소도둑으로 몰리고 닭 이가 옮았다는 이야기는, 일면 인간 이중섭의 순수함과 화가로서의 집요함을 보여 주는 일화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면모가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데는 어떠한 힘도 되어 주지 못했다. 첫아들을 잃었을 때도 한밤중에 일어나 아들이 먹을 천도를 그려 놓은 아버지, 멀리 떨어진 가족이 그리워 잠자리에서 혼자 부인과 아이들의 목소리를 흉내내던 그를 지켜보며, 평생 중섭의 보호막이 되어 준 구상이 염려하던 것은 바로, 이런 중섭의 동심이 세상에 상처받아 그의 예술 작업을 지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중섭이 그의 주요 소재라 할 소와 닭과 동자상에 본격적으로 몰두한 것은 일본에서의 귀국 이후 펼쳐진 원산 시절이었다. 피난지였던 제주도 서귀포 시대 역시 또 하나의 중요한 소재라 할 게를 발견한 때이다. 공예미술가 유강열의 배려로 이루어진 통영 시절은 그야말로 다작의 시기로 왕성한 작업 의욕을 보여 주었다. 1955년 이중섭 최초의 개인전은 서울 화단과 문단을 동요시키며 열렸지만 정작 중섭은 너무 빨리 그림을 완성했다는 자책과 좋은 물감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으로 괴로워했다. 자기 작픔에 대한 열정은 대구 전시회 때 미국 공보원의 맥타카드가 소를 보고 스페인의 투우와 비교하자 자신의 소는 싸우는 소가 아닌 한국의 소라고 울부짖은 데서도 나타난다.
이후 중섭은 그림에 대한 미움을 나타내면서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린다. 한밤중에 일어나 가짜라고 외치며 그림을 불태우며, 자신은 예술을 한답시고 세상을 속였노라 말하기도 한다. 이런 예술적 자학 자학 증세는 대구 성가 병원에서 청량리 병원으로 중섭을 전전하게 만들었지만, 병원에서마저 그는 환자들을 그리면서 자신의 마지막 삶에 대한 위로를 그림에서 찾았다. 중섭의 마지막 모습은 이것이 전부이다. 홀로 맞은 죽음은 아무에게도 자신의 마지막 얼굴을 보여 주지 못했다.

피카소도, 고흐도 아닌 인간 이중섭 그대로
1960년 최초의 유작전 이후, 현대화랑의 15주기 기념전, 호암갤러리의 회고전 그리고 올해의 특별전까지, 비극적인 삶과 예술의 완성으로 한국 근대 미술의 천인(天人)으로 기억되는 화가 이중섭은 늘 우리 곁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를 전설 속의 거장으로 기억하려 한다.
이번 이중섭 전시회의 열풍이 그를 게르니카의 피카소와 같이, 고단한 일생의 빈센트와 같이 신화로 만들려 했다면, 중섭이 생전에 서구의 어떤 미술사조로부터도 독립적이었으며, 그런 틀 안에 자신을 논리적으로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가족에게 보내는 엽서 속의 그림과 \’판잣집 화실\’에서 그려지는 화가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중섭은 자신을 고단한 삶을 짊어지고 그림을 그리고자 한 화가로서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은의 <화가 이중섭>은 \’인간 이중섭\’의 솔직한 삶 자체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중섭의 그림이 아닌 그의 인생에 귀기울이게 될 것이다.

목차

고도 농가의 아들 어머니라는 원시적 경험 어린 시절의 평양 체험 눈부신 오산 시대 중섭 예술의 첫걸음 조선적 그리고 조선적 또 하나의 고향 원산 동경제국미술학교 자기 자신의 주제와 예술 방법 문화학원의 <루오> 동경 전람회의 데뷔 숙명의 야먀모토 그들은 사랑을 만들었다 프랑스, 태양상 기타 그녀의 순애보 화실 속의 열정 소, 생선 그리고…… 중섭의 원산 시대 또 하나의 소재, 닭 해방된 항구에서 동자 한 러시아인의 예찬 공산주의와의 충돌 사물의 소실점 원산 시대의 현실적 불명예 북진과 후퇴 사이에서 피난 예술가의 동해 예술에 대한 첫 회의 범일동 아카자키 창고 부산의 자유 중섭 동지나해에 가다 순수의 서귀포 시대 게와 까마귀와 파이프와 생명의 우의 부산의 예술군상 중섭 전설 하나 둘 그 찬란한 싸구려 술 그의 첫 그룹 기조전 남덕의 일본 귀국 은지화의 예술 방황과 극복 중섭의 예술 도그마 중섭 에로티시즘 전설은 전설을 낳고 회화는 캔버스로만 가능한가 중섭은 화가냐 시인이냐 이데올로기 피해 망상 마음속의 일본행 통영 시대의 정열 중섭 회화의 중간적 극치 1953년 겨울의 도일 동경에서의 만남 일본에서의 5일간 중섭 업적의 경이 거제도의 충동 진주 파노라마 중섭의 미완성 예술 남덕의 편지 대구 시외의 사생 서울의 중섭 신화 1950년대 원형광태 급성의 제작 생활 북방의 향수 스폰서 오산 학교 1955년 <이중섭 작품전> 중섭전의 얼굴 미술의 잔치, 술의 잔치 마지막 대구 생활 대구의 이중섭전 경북 여관 9호실의 드라마 드디어 성가 병원 정신 이상의 거식증 삼선교 시대의 낙서 다시 한번 명동 화단 절필 \”돌아오지 않는 강\” 중섭의 만가 후기 다시 책을 펴내며 이중섭 연보

작가 소개

고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래 시, 소설, 평론 등 근 130여 권의 저서를 낸 우리 시단의 거목이다. 『고은 시 전집』, 『고은 전집』, 『백두산』 등 다수의 전집을 선보였으며, 『만인보』 전 20권을 필두로 시와 소설을 왕성하게 발표해 왔다. 영어, 독어, 불어, 일어 등으로 번역된 저서도 상당수에 이른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를 지내며 《실천문학》을 창간했다. 1988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초대 의장을 지냈고, 1994년부터 경기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1999년 미국 하버드대 옌칭 스쿨과 버클리대에서 한국문학과 시를 강의하였다. 한국문학작가상, 만해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대산문학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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