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회복, 그것은 창의력의 바탕이 되며, 공감력뿐만 아니라 생산성까지 회복하는 길이다!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

온라인 시대에 혁신적 마인드를 기르는 대화의 힘

원제 Reclaiming Coversation

셰리 터클 | 옮김 황소연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8년 6월 5일 | ISBN 978-89-374-3690-1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5x215 · 524쪽 | 가격 21,000원

책소개

야후와 IBM은 왜 재택근무자를 다시 회사로 불러들였을까? 그 이유는 “대화를 많이 나눌수록 생산성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기술심리학자들의 연구는 긍정적인 가정들을 뒤엎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멀티태스킹은 흥분도를 높이기 때문에 마치 성취도가 높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오히려 유니태스킹이 집중력을 높인다는 역설. 또 공유와 연대를 자랑하는 SNS 활동은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박탈하고 있다는 사실. 연결돼 있지 않으면 분리불안을 느끼는 SNS세대는 느슨한 연대를 강한 결속으로 착각하고, 고독을 즐기는 능력을 발전시키지 못함으로써 창의력과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경고.

 

우리야말로 대화를 잃어버린 ‘로스트 제너레이션’이 될 수도 있다. ‘더 빨리’를 위해 ‘더 깊이’를 잃어버리고, ‘능률’만 따지다가 ‘본질’에서 벗어나고, ‘편리’를 위해 ‘관계’를 희생시키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잃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공감 능력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고독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은 ‘살아 있는 대화’에 의해 증진된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SNS의 익명 댓글들이 시사하는 바는 테크놀로지가 아직 책임감 있는 민주주의 시민을 길러내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고독은 혁신의 필수조건이며, 마음공간은 창의력의 시작점이며, 프라이버시는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다. 우리는 왜 대화를 회복해야 하는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공감력을, 회사 차원에서는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라고 셰리 터클은 주장한다.

편집자 리뷰

‘더 빨리, 더 많이’에서 벗어나 ‘깊이’를 추구하라.

 

갈수록 ‘혼자’에 익숙한 세대라고 한다. 온전히 얼굴을 마주하는 대화의 부재는 더 이상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TV, 인터넷, 모바일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러했듯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페이스북에서의 우정과 데이트앱을 통한 사랑 같은 새로운 형태의 상호작용과 빠르고 효율적인 시민운동 등 새로운 측면에 주목하며, 우리의 진보한 소통 기술을 그저 축하하면 안 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했던 나지만, 셰리 터클이 관찰해 낸 학교와 가족, 노동 현장의 모습은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일부 사례들은 두렵기까지 했다.

갈수록 시선을 맞추지 않는 우리 모두가 이 글에서 말하는 문제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미래에 뒤처지기를 바라지 않기에 멈추지 못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테크놀로지와의 로맨스를 망치지 않더라도,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재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곧 로봇과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도록, 지금은 물러설 때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은 필요하며, 그녀는 이미 토론의 장을 펼쳐보였다.

―김소영 아나운서(당인리책발전소 대표)

 

야후와 IBM은 왜 재택근무자를 다시 회사로 불러들였을까? 그 이유는 “대화를 많이 나눌수록 생산성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기술심리학자들의 연구는 긍정적인 가정들을 뒤엎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멀티태스킹은 흥분도를 높이기 때문에 마치 성취도가 높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오히려 유니태스킹이 집중력을 높인다는 역설. 또 공유와 연대를 자랑하는 SNS 활동은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박탈하고 있다는 사실. 연결돼 있지 않으면 분리불안을 느끼는 SNS세대는 느슨한 연대를 강한 결속으로 착각하고, 고독을 즐기는 능력을 발전시키지 못함으로써 창의력과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경고.

 

우리야말로 대화를 잃어버린 ‘로스트 제너레이션’이 될 수도 있다. ‘더 빨리’를 위해 ‘더 깊이’를 잃어버리고, ‘능률’만 따지다가 ‘본질’에서 벗어나고, ‘편리’를 위해 ‘관계’를 희생시키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잃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공감 능력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고독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은 ‘살아 있는 대화’에 의해 증진된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SNS의 익명 댓글들이 시사하는 바는 테크놀로지가 아직 책임감 있는 민주주의 시민을 길러내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고독은 혁신의 필수조건이며, 마음공간은 창의력의 시작점이며, 프라이버시는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다. 우리는 왜 대화를 회복해야 하는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공감력을, 회사 차원에서는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라고 셰리 터클은 주장한다.

 

 

 

● 아이가 그토록 핸드폰 메시지에 집착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얼까?

 

아이들이 진짜 부모와의 대화를 싫어할까? 지금 아이들이 SNS 속을 헤매고 있는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자.

 

“아빠가 신문을 읽고 있을 때라면 주말 스포츠 경기라도 질문하며 방해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아빠가 노트북컴퓨터 앞에 있을 땐 달라요. 아빠가 사라져 버리거든요.”

 

부모는 자식들이 집에 없을 때는 주변을 맴도는 ‘헬리콥터’가 되지만, 정작 시야에 있을 때는 휴대폰으로 주의를 돌린다. 아이가 눈에 안 보일 때만 관심을 갖는 패러독스 현상이다. 심지어 가족 캠핑에서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다며 부모가 아예 휴가를 일찍 끝내버린 사례도 있다. 셰리 터클은 아이들이 친구들의 우정을 휴대폰에 즉시 응답하는 대기상태로 그 기준을 정하는 이유에 대하여, 부모에게 기대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설명한다.

 

● “고독한 군중”의 시대에서 “함께 외로운” 시대로

 

2000년대 초에 SNS는 기회 확대를 가져다주는 신천지였는데, 지금은 그 반대로 심리적인 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FOMO(Fear of Mission Out)로 알려진 ‘기회 상실의 두려움’은 SNS의 편리성이 주는 대표적인 불안 요소로서,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늘 나의 선택이 최선이 아니라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현상이다. 그렇게 신중치 못한 선택 앞에서 구조적으로 후회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더 이상 ‘카르페 디엠’을 즐기지 못하고 끊임없는 불안감을 겪는다.

 

특히 대화를 주고받는 순간에도, “지금 여기가 최선일 수 있다는 걸” 잊고는 다른 잃어버린 기회들을 생각하느라 깊은 대화로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현재에 집중하지 못함으로 인해 깊은 관계로 들어가는 기회도 놓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비인격화된다. 20세기가 ‘고독한 군중’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함께 외로운’ 시대가 됐다.

 

SNS는 ‘공감을 위한 보조 바퀴’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본말이 전도되고 있다. 셰리 터클은 테크놀로지의 적극적인 활용을 주장하는 기술심리학자이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서 존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기술에 지배당하지 말고 기술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키우자고 역설한다.

 

● 기술에 지배당하지 말고 기술을 다스려라!

 

지금 아이들은 우정을 정서의 필수 요건으로 생각지 않고,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라는 유용성 차원에서 판단하게 되었다. 이들은 친구를 “온라인 대화에서처럼, 언제나 원하면 바로 끊을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앱의 사고방식은 무엇보다도 모든 관계를 비인격화시킨다. 깊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를 저해하고 복잡한 인과관계를 간과하게 만들어 우정과 사랑조차 자판기 커피 뽑듯 단순한 주고받기나 상품화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지루함을 내면에서 흥미로운 것들을 찾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 우리의 마음은 일하는 중에도 공상에 잠길 때가 있다. 마음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환상에서 귀환할 때 마침맞은 것이 딸려 오기도 한다. (……) 그러나 앱의 사고방식은 세상 이치가 알고리즘처럼 돌아간다는 발상에서 시작된다. 특정한 행동들이 예측 가능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 앱의 사고방식은 우정에서도 공감력의 부재로 표출될 수 있다. 우정을 관리해야 하는 것, 많이 거느리는 것, 도구를 가지고 대처하는 것으로 본다.”

 

● 공감력을 희생시키지 마라!

 

이러한 사고방식이 왜 문제일까? 이처럼 매뉴얼화된 사고 패턴은 학교와 일터에서 창의력을 저해하고 혁신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격적인 삶과 능력 있는 삶 모두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셰리 터클은 디지털 러다이트를 주장하는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테크놀로지를 우리의 창의, 혁신,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재설정할 것을 요구한다.

 

인간에게 애착관계 형성은 평생에 걸친 중요한 과제다, 우리의 보호막이기도 하면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굴을 맞대지 않고 상대의 반응을 정서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SNS 대화에 익숙한 아이들은 눈앞에 있는 사람도 표정과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대하기 쉽고, 그 결과 평소 온순한 아이들도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급격하게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시선의 마주침을 통해 공감 능력을 키워 사랑을 배우게 되는데,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핸드폰만 내려다보고 있는 청소년들은 그 공감 능력을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사랑이란 그 사람 앞에서 스마트폰을 확인하고픈 욕구가 잘 들지 않는 것”이다.

 

“공감은 내가 상대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의 기분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을 상대가 믿을 때까지 오래 머무는 것이다. 공감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감정 훈련이 필요하다.”

 

● 가면 되로 숨으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라

 

우리는 실제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하면서 마치 관계를 갖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우정이 아닌데 우정이라고 착각하는 느낌, 사랑이 아닌데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느낌을 쫒는다. 온라인상의 소통은 쉽게 없던 일이 되는 ‘매체의 패러독스’가 생기고, 연애앱 사이트들은 부지불식간에 거절과 매칭이 이루어져 부담을 없애는 ‘마찰 제로’ 시스템을 개발한다. 그런데 이런 편리한 관계들은 상대를 상품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그 결과 우리는 점점 더 비인격화되고 마침내는 사고 현장 앞에서조차 V자를 그리며 인증샷까지 찍기에 이르렀다.

 

‘선택의 패러독스’에 따르면 선택지가 많을수록 행복할 것 같지만 오히려 피로감은 높아지고 만족감은 줄어든다. 그래서 뭐든 최상을 추구하느라 무수한 선택의 우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최상주의자’보다 ‘만족 추구자’가 더 높은 질의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SNS를 다스리지 못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집착과 무력감’에 빠지고 ‘단순한 삶’을 살지 못한다.

 

SNS가 깊은 관계를 방해하는 핵심은 ‘대리인’, 즉 자신의 최상의 모습만 보내는 데 있다. 이것은 연애나 우정에서 초기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전략이지만 SNS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대리인만 보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이것은 관계를 오래 맺어도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데이트폭력이나 돈을 뜯기는 사기까지 당하는 결과도 초래한다. “문자 메시지가 전달한 것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 그가 되고 싶어 한 자신이기” 때문이며, 이때 ‘적당한 만큼만’ 자신을 공유해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골디락스 효과’는 그저 ‘느낌’일 뿐이다.

 

● 멀티태스킹의 신화를 깨고 유니태스킹이 주목하라!

 

셰리 터클은 멀티태스킹이 신경화학적 흥분도를 높이기 때문에 마치 집중력이 올라가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은 ‘감정을 읽는 능력’을 떨어뜨릴 뿐이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멀티태스킹이 주도하는 삶은 우리를 각성과 유사한 상태, 일종의 지속적인 경계 상태로 몰고” 가기 때문에 스트레스 강도도 높아진다. 전자기기가 멀티태스킹의 신화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셰리 터클은 오히려 “멀티태스킹이 주도하는 삶은 선택권을 제한하기 때문에 스스로 ‘고를’ 수 없다.”면서, 미래의 교육 방향은 “깊이 집중하기와 초단기 집중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을 추구하는 방식을 고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굴의 에릭 슈밋은 온라인 상태에서는 책을 읽지 못하게 되었다며 심각한 경각심을 느꼈다. 그리고 여기에 공감하는 신경과학자들이 속속 내놓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관심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스스로 ‘탈바꿈’ 하는 뇌가 SNS의 영향으로 집중력을 잃어버리고 마는데, 이것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깊은 독서 교육에 있다! 또한 학교에서는 정보가 지식으로 연결되는 맥락 훈련이 이루어지는 방식의 교육공학이 실천되어야 한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정보를 창의력의 기반으로 만들 것인가 정보로 창의력을 대체할 것인가? “테크놀로지 덕분에 더 생산적이 되기는 하지만, 그대가로 내 사고의 질은 낮아지고 있다.”

 

온라인교육이 확대되고 있는 현실과 달리 대면교육의 결과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 앞에서, 우리는 개인들의 책임감을 높이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교육공학과 교육철학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연구 결과를 통해 깊은 통찰과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 야후와 IBM은 왜 재택근무자들을 다시 일터로 불러들였을까?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자가 집중력이 높으며, 이것은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는데, 지금처럼 3분마다 SNS를 확인하며 연결돼 있지 않으면 분리불안을 느끼는 상태는 이러한 집중력과 고독의 시간을 방해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화는 바로 이 고독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킨다.

 

야후와 IBM은 능률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행한 재택근무를 금지하고 직원들을 다시 일터로 불러들였다.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근무가 오히려 “생산성과 창의력”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로펌 회사에서부터 컨설턴트 회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때 ‘효율성’ 증진을 위해 점점 더 대면회의를 없앴지만, 그 결과 오히려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한 질적 향상을 희생시키고 말았다고 한탄한다. SNS는 모든 사람들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 모았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대화의 불씨를 꺼트리고 협업을 무너뜨렸다. 셰리 터클이 지적하는 사례들을 함께 들여다본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목차

1부 ┃ 대화를 위한 변론

1 공감 일기

2 대화의 단절

2부 ┃ 첫 번째 의자

3 고독

4 자아 성찰

3부 ┃ 두 번째 의자

5 가족

6 우정

7 로맨스

4부 ┃ 세 번째 의자

8 교육

9 일과 직장

5부 ┃ 앞으로 가야 할 길

10 광장

11 시간의 접점

6부 ┃ 네 번째 의자

12 망각의 끝

작가 소개

셰리 터클

1948년 뉴욕 주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파리 고등정치연구소를 거쳐 미국 래드클리프 대학을 졸업했다. 1976년 하버드에서 사회학,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MIT 사회학 교수로 부임했으며, 정신부넉의로 활동했다. 1991년부터는 같은 대학에서 과학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책으로는 <라캉과 정신분석 혁명 Psychoanalystic Politics>, <제2의 자아> 등이 있다.

황소연 옮김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기획 및 영어를 한국어로,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 『더티 잡』, 『찌꺼기』, 『파랑 피』, 『점퍼 3』, 『말리와 나』, 『믿음의 엔진』, 『안녕하세요 나는 당신입니다』, 『호오포노포노의 비밀』 등이 있다.

독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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