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자크 프레베르 | 옮김 김화영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7년 12월 30일 | ISBN 978-89-374-7527-6

패키지 소프트커버 · 변형판 140x210 · 160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샹송 <고엽>의 작사가이자 영화 <천국의 아이들>의 시나리오 작가

20세기 프랑스 대중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진수를 담은 시선집 출간

편집자 리뷰

● 명백한 단순미 속에 풍부한 맥락을 담은 프랑스 대표 시인

 

자크 프레베르는 행복한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되찾은 자유의 향기가 아련히 배어 있는 시로,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는 시인 중 하나이다. 그의 시에서는 약한 자들, 희생당하고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거칠지만 마음 깊은 애정이 묻어난다. 그는 평생 동안 굽힘없이 평화주의를 옹호했으며 그것은 곧 따뜻하면서도 격렬한 그의 시적 서정성의 바탕을 이룬다. 초판 발행 이후 프랑스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독자의 호응을 얻은 이 시집(원제 『말(Paroles)』)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수많은 이들에게 애송되고 있다. 프레베르 시의 매혹에 끌린 어느 출판업자 친구가 뿔뿔이 흩어져 있던 작품들을 한데 모은 『말』은 불과 몇 주일 만에 5000부의 초판이 팔리는 등 폭발적인 ‘사건’으로 회고되었다.

 

당신은 거기

벤치 위에

미소 지으며

꼼짝 못한 채 앉아만 있다

바로 곁에는 아이들이 놀고

행인들

조용히 지나가고

새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가고

당신은 거기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다

당신은 안다 당신은 안다

이제 다시는 저 아이들처럼

놀 수 없음을

이제 다시는 저 행인들처럼

조용히 지나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에서

 

이 사랑은

대낮같이 아름답고

날씨처럼 나쁜 사랑은

날씨가 나쁠 때

이토록 진실한 이 사랑은

이토록 아름다운 이 사랑은

이토록 행복하고

이토록 즐겁고

또 이토록 하찮은

―「이 사랑」에서

 

프레베르에 대하여 프랑스 평론가 가에탕 피콩은 “그는 글을 쓴다기보다는 말을 한다. 그는 걸어가면서 말을 하는 사람처럼 글을 쓴다.”고 말했다. 프레베르가 대중의 호흡과 가장 밀착된, 가장 고아한 의미에서 ‘대중적’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어느 평론가가 언급했듯이 프랑스에서는 대중적 시인이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었으나, 1946년에 ‘발견된’ 프레베르의 이 시집에 의해 그 불가능은 눈앞에 실현되었다.

 

내가 너에게 반말을 한다고 서운해 말아라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너라고 부른다

내가 그들을 본 것이 오직 한 번뿐이라 해도

나는 서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너라고 부른다

내가 비록 그들을 알지 못한다 해도

기억하는가 바르바라

잊지 마라

―「바르바라」에서

 

그는 머리로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슴으로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제가 좋아하는 것에게는 그렇다고 하고

그는 선생에게는 아니라고 한다

―「열등생」에서

 

 

● ‘프랑스 대중시’라는 불가능한 영역을 개척한 항거와 해학의 시인

 

1900년 프랑스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 태생인 자크 프레베르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학교를 떠나 온갖 잡역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도 연극평론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연극과 영화 구경을 자주 했다.(여섯 살 터울의 동생 피에르 프레베르는 프레베르 영화 인생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동반자가 된다.) 1920년 군 복무 중 만난 화가 이브 탕기를 통해 제대 후 초현실주의파 문인들을 만나면서 초현실주의 문학 운동에 가담했다. 그러나 1928년 초현실주의 그룹을 탈퇴한 후, 조르주 바타유, 로베르 데스노스 등과 반브르통 유인물을 배포하기도 한다. 이후 광고 회사에 근무하며 단막극, 장시, 영화 시나리오, 대중가요 가사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그때그때 쓰고 싶은 욕구와 충동, 기쁨만을 위해 글을 썼다.

틈틈이 시를 쓰고 발표했지만 정작 그는 스스로 시인이라고 자처한 바 없다. 첫 시집 『말』이 나온 것은 그가 마흔여섯 살에 이르러서였다. 절대적인 인기를 누린 첫 시집의 놀라운 판매 실적은 전쟁을 겪는 동안 지하 운동시를 접한 적이 있던 대중이 ‘대중적인 시’를 갈구한 시대적 배경과 프레베르 시 특유의 친밀한 분위기가 맞닿은 결과였다. 그의 시는 형태 자체가 쉽고, 자세히 보아도 기교를 부린 구석이 없다. 때문에 프레베르의 시는 ‘민중 언어의 천분과 결합하는 본능적이면서도 행동적인 웅변이 담겨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

꽃집 아가씨는 꽃을 싸고

남자는 돈을 찾으려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꽃값을 치를 돈을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갑자기

가슴에 손을 얹더니

쓰러진다

 

그가 쓰러지는 순간

돈이 바닥에 굴러가고

그 남자와 동시에

돈과 동시에

꽃들이 떨어진다

돈은 굴러가는데

꽃들은 부서지는데

남자는 죽어 가는데

(…)

그 여자는 무언가 해야 한다

 

꽃집 아가씨는

그러나 그 여자는 어찌할지 몰라

그 여자는 몰라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를

―「꽃집에서」에서

 

탁자 위에 오렌지 한 개

양탄자 위에 너의 옷

내 침대 속에 너

지금의 감미로운 선물

밤의 신선함

내 삶의 따뜻함.

―「알리칸테」

 

프랑스 시에서는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여겨 왔던 대중적 시의 포문을 열 수 있었던 이유는 프레베르가 과거 초현실주의자로서 전통적인 글에 반(反)하여 그 특유의 맑고 시원하게 흘러가는 말의 형식을 배워 간직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름난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면모도 시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구어체로 반복법을 구사하는 시부터 영화의 한 신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시까지 다양하다. 이 시집에 가장 처음으로 소개된 「아름다운 계절」은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을 갑작스럽게 멈춰 보여 주는 듯하다.

 

빈 속에 길 잃은 채 싸늘해진

외롭고 무일푼인

열여섯 살 소녀가

꼼짝 않고 서 있는

콩코르드 광장

정오 8월 15일

―「아름다운 계절」

 

프레베르는 또한 누구보다 뛰어난 항거와 해학의 시인이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도 증오란 말을 쓴 일이 없다.” 부정적인 항거의 목소리 속에 그보다 더 강항 긍정의 힘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인 프레베르의 반엘리트주의, 반종교적 성향은 그의 시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유 지역」에 등장하는 새와 군 지휘관과의 대화는 치밀한 상하 관계로 짜인 서열 체제 일체를 풍자한다.

 

그래 이젠 경례도 안 하긴가? 하고

지휘관이 물었다

아뇨

이제 경례는 안 합니다 하고

새가 대답했다.

아 그래요?

미안합니다 경례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하고 지휘관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누구나 잘못 생각할 수도 있는 법이지요 하고

새가 말했다.

―「자유 지역」에서

목차

아름다운 계절 LA BELLE SAISON

알리칸테 ALICANTE

너를 위해 내 사랑아 POUR TOI MON AMOUR

하느님 아버지 PATER NOSTER

센가 RUE DE SEINE

열등생 LE CANCRE

귀향 LE RETOUR AU PAYS

나의 집에 DANS MA MAISON

느긋하고 푸짐한 아침 LA GRASSE MATINÉE

가정적 FAMILIALE

이 사랑 CET AMOUR

작문 PAGE D’ÉCRITURE

아침 식사 DÉJEUNER DU MATIN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LE DÉSESPOIR EST ASSIS SUR UN BANC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POUR FAIRE LE PORTRAIT D’UN OISEAU

위대한 사람 LE GRAND HOMME

멋진 가문 LES BELLES FAMILLES

국립 미술 학교 L’ÉCOLE DES BEAUX-ARTS

깨어진 거울 LE MIROIR BRISÉ

자유 지역 QUARTIER LIBRE

크고 붉은 IMMENSE ET ROUGE

불어 작문 COMPOSITION FRANÇAISE

일식 L’ÉCLIPSE

옥지기의 노래 CHANSON DU GEÔLIER

첫날 PREMIER JOUR

메시지 LE MESSAGE

꽃집에서 CHEZ LA FLEURISTE

일요일 DIMANCHE

공원 LE JARDIN

꽃다발 LE BOUQUET

바르바라 BARBARA

바른 길 LE DROIT CHEMIN

말[馬] 이야기 HISTOIRE DU CHEVAL

난 본래 이런걸 뭐 JE SUIS COMME JE SUIS

밤의 파리 PARIS AT NIGHT

가을 L’AUTOMNE

 

작가 연보

작품에 대하여: ‘대중적’ 시의 참다운 가능성 (김화영)

작가 소개

자크 프레베르

프랑스의 시인 1900년 2월 4일에 태어났다. 시, 희곡, 노랫말, 시나리오 등을 썼다. 자기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가지고, 사조나 학파와 거리가 먼 시를 많이 썼다. 1977년 4월 11일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크 프레베르"의 다른 책들

김화영 옮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안목과 유려한 문체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작품들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는 한편 정치한 문장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탁월한 평론을 선보이는 전방위 문학인이다.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되었고,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문학 상상력의 연구』, 『행복의 충격』,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알제리 기행』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미셸 투르니에, 파트릭 모디아노, 로제 그르니에, 르 클레지오 등의 작품들과 『알베르 카뮈 전집』, 『섬』, 『마담 보바리』, 『지상의 양식』, 『다다를 수 없는 나라』,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를 비롯해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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