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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과 소년과 계절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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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안웅선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7년 11월 10일

ISBN: 978-89-374-0860-1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48쪽

가격: 10,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240

분야 민음의 시 240, 한국 문학


책소개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위한 소년의 기도

오래된 세계의 비밀을 발설하는 나직한 목소리


목차

1부

환절기
탐험과 소년과 계절의 서
표류
밀연(謐戀)
청록, 포도가 자라는 자리
미사
검은 잎에 흰 바람
자수
편지들의 이스파한
우기
라플란드의 오로라
발신
섬의 하루

2부

놀이터로 가기
미션 스쿨의 하루
오랜, 고요한 복도
과학 경시대회
꼬마 하마 키보코
묵음
정화(靜話)
오늘
Michelle
면(麵)
구름 속에서는 안부를
초콜릿
지붕 위의 여우들
사생 대회 불참의 변
기적을 되돌리는 숲
펭귄, 펭귄, 펭귄
박물학자의 고백 전집
자서
엔딩 크레딧

3부

내일
핑크 팬더와 바닐라 맛 웨하스
스페이드, A
도망자의 비탈
기념 촬영
희망봉을 돌아서
외국인 묘지
밀수꾼의 지팡이
바빌로니아의 달
마르첼리누스
사도들
대책 없는 파랑
폭설과 체리
바다와 사과
위험한 독해
페르가몬의 양피지
단념
태양은 가득히

작품 해설–장은석
미지의 친구들에게


편집자 리뷰

2010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안웅선 시인의 첫 시집 『탐험과 소년과 계절의 서』가 민음의 시 240번으로 출간되었다. 안웅선은 “쇳물이 녹아떨어지는 듯 강렬한 이미지들의 병치 효과와 고고하고 서늘한 언어를 구사한다”는 평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탐험과 소년과 계절의 서』에서 시인은 종교와 세속, 삶과 죽음을 섬세한 감각으로 탐구한다. 운명을 떠받치고 있는 두 축들은 평행한 듯 교차하고, 따로 떨어진 듯 한 몸이다. 이 세계의 아이러니는 시집을 관통하는 쓸쓸하고 오래된 비밀이다. 그것을 발설하는 안웅선의 화자들은 한없이 투명하고 유약한 성장기의 소년처럼 보이는 동시에, 세상을 전부 살아 버린 노인처럼 보인다.

 

■난독증을 앓고 길을 잃는, 가장 약한 존재가 보내 온 엽서

나는 혀에 통증의 지도를 그려 온 사람들의 얼굴을 돌에 새겨 신을 기른다

(……)

나는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뒤집혀 날아가 버린 우산과 꺾여 버린 가지에 남아 있는 잎들에 대하여
눈 감은 나를 돌아보고 대답하는 대신, 태풍은 아직 내게 비 오는 밤 내어 준 당신의 젖은 등이라고 비에 젖어 구멍 난 종이 가방에 색종이를 오려 붙여 주어야 한다고
-「표류」에서

상처 입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상처 입는 일에 민감하다. 안웅선의 화자들은 언제고 상처를 입었던 듯하다. 세계에 의해, 무수한 타인들에 의해, 스스로에 의해 따돌림당하고 약해진 소년 화자는 상처의 흔적을 안고 탐험을 떠난다. 표제작 「탐험과 소년과 계절의 서」에서 “난독증을 앓는 소년”이 헤매는 것은 문장과 문장 사이뿐만이 아니다. 너무 일찍 고통을 알아 버린 소년은 “살아 있는 것만”, “아름다움만” 보고 싶었으나 정작 그는 모든 죽어 가는 것들, 고통받는 이들을 응시하게 된다. 필연적인 고독과 고통을 목격하게 될 때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한 글자 한 글자 “모두의 이름을 받아 적”는다. 그 와중에 “누구의 편도 들어 줄 수 없어 슬퍼지는” 소년의 마음은 『탐험과 소년과 계절의 서』에 드리워진 묵직한 정서다. 유약한 소년이 그의 언어로 다시 써낸 고통의 장면은 오래된 설화처럼, 혹은 먼 곳에서 온 엽서처럼 우리에게 도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해되지 않는 타인을 위해 내미는 손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했으면 좋겠어

(……)

그러면, 지붕 위의 아찔함에도 비켜서지 않는 고집이 생길 텐데
평원에 장미가 자라고 꽃잎을 빻는 향기에 취해 나는 인간이 되었을 텐데

밤이면 사뿐히 지붕을 넘나드는 여우들
혼자서만 꾸는 꿈으로도 나는 셀 수 없는 편지를 쓴다
-「지붕 위의 여우들」에서

종교와 세속, 삶과 죽음처럼 서로 등을 맞댄 채 떨어지지 않는 세계의 아이러니는 인간이 지닌 욕망의 아이러니와도 닮아 있다. “나를 위해 기도합니다”와 “나에게 필요한 건 너였는지도 모릅니다”(「미션 스쿨의 하루」) 사이에는 타인으로부터 영원히 오독될 것이라는 불신과, 독해되기를 기대하는 일말의 믿음이 한데 자리한다. “네 얼굴에서/ 내 말들은 언제부터 쓸모가 없어진 걸까”(「사도들」)라고 묻는 시인은 발신한 언어가 제대로 수신되지 못하고 독해되지 못한 채로 남은 상황에 비애를 느낀다. 그러나 시인은 가 닿지 못하고 힘을 잃는 말들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때 “아찔함에도 비켜서지 않는 고집”과 “결의”(「지붕 위의 여우들」)를 품는다. 아이러니가 세계를 작동하게 하듯, 상반되고 엉켜 있는 욕망 역시 ‘나’의 삶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시인은 삶의 비밀로서의 오독을 껴안으며, 자신을 오독하거나 수신 거부한 타인을 독해하기 위해 다시 한번 손을 내민다.

 

■본문에서

운동화 끈을 묶으며 보이스카우트들은 매듭법을 배우고 그걸 우리에게 자랑하고

자랑할 것이라고는 매듭법뿐인 세계도 좋겠다 그러니까, 놀이터로 가자 몰래 울어 보기 좋은 곳 친구가 되기 좋은 곳 스스로 무덤이어야 하는 곳 그래 누구나 신발을 벗어 주고 오는 곳

(……)

새 신발을 사는 놀이와 신발을 밟아 더럽히는 놀이 우리와 놀이가 웃고 떠드는 동안 사라진다

-「놀이터로 가기」에서

 

걱정하지 마, 속지 마,

모래의 세상이야 가도가도 끝이 없는 옥수수 밭일 뿐이야

접어 둔 페이지로 되돌아와 이제 나는 너를 미워할 수도 있겠다 모서리에 베여 피를 흘릴 수도 있겠다 나무에서 떨어진 벌레를 발로 밟아 그릴 불운을 선물할 수도 있지

한때의 어엿한 애인으로 지나쳐야 하니까 하나의 끼니를 나누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악보를 읽고 외국어를 공부해야 하니까

(……)

시든 골목은 아름다워라 우리는 아직 발도 들여놓지 못했는데

-「위험한 독해」에서

■추천의 말

안웅선의 시는 절망적인 세계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비명을 외면하지 않지만, 동시에 함부로 편을 가르고 어느 편이 듣기에 달콤한 말을 속삭이려는 태도 역시 경계한다. 그의 시어는 바짝 마른 재료들에 불을 붙이기보다 충분한 시차 속에서 그것이 천천히 섞이고 반응하면서 스스로 탄성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문학평론가 장은석/ 작품 해설에서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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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웅선

1984년 순천에서 태어났다.

2010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