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옮김 이미애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7년 4월 7일 | ISBN 978-89-374-2912-5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3x188 · 212쪽 | 가격 8,800원

책소개

게을러도 되는 게 아니라 게을러야만 합니다
직면하는 용기에 뿌리내린 탁월하고도 분명한 인생 전망

진정한 행복은 어떻게 시작하는가의 문제이지 어떻게 끝내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의 문제이지 무엇을 소유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 본문에서

사자는 동물의 왕이지만 집 안의 애완동물로는 적합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사랑은 지나치게 격렬한 열정이라서 어떤 경우에도 가정에 적절한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본문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성공하라는 것이 불문율로 통용되는 사회에서 게으름을 부리라는 권고는 허튼소리로 들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스티븐슨이 역설한 게으름이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규 교육 과정이나 사회의 지배적 규범에서 인정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다. 젊으나 늙으나 인간은 모두 “마지막 유람 중”이고, 젊은 시절에는 삶에 열린 자세로 실험하고 모험하는 것이 가장 신중한 일이다. — 「옮긴이의 말」에서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의 원제는 Virginibus Puerisque로, “젊은이들을 위하여”라는 뜻의 라틴어다. 스티븐슨 자신이 살며 느낀 바를 진솔하게 후배에게 전달하는 친근하기 그지없는 산문들의 모음으로, 이번 쏜살문고판에서는 그중에서도 작가의 인생관이 가장 잘 스며든 산문의 제목으로써 소개한다. 이미 『지킬 박사와 하이드』, 『보물섬』 등 모험소설로 우리나라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스티븐슨이지만, 산문집으로는 국내 첫 번역이다.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은 19세기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며 브레히트와 프루스트, 헤밍웨이 등 수많은 후배 작가에게 칭송받았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섬세한 문체는 물론, 인생 진면을 꿰뚫는 통찰과 혜안을 음미할 기회를 선사한다.

편집자 리뷰

“우리는 창문이 많이 달린 집이다.”
“우리는 삶(life)이 아니라 생활(living)을 사랑한다.”
꼭 필요한 장식으로 수놓아진 미문의 향연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별명은 ‘이야기꾼’이었다. 아서 코넌 도일은 그를 “가장 강력하고 유능한 스토리텔러”라고 극찬한 바 있고, 스티븐슨이 말년을 지낸 사모아 섬의 주민들은 그를 Tusitala(투시탈라, 이야기꾼이라는 뜻)라는 자기들의 말로 애정을 담아 불렀다. 그의 문장에 대한 재능은 접근하기 어려운 고상한 문체에서가 아니라, 고상함과 평이함을 넘나드는 언어적 스펙트럼과 절묘한 수사에서 찾아진다. 철학적인 주제를 일상적으로 서술하거나 일견 닮아 보여 혼란스러운 삶의 단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분류, 대조하는 그의 논리적인 스토리텔링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는 속된 것을 비범한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우리가 얼마나 비장한 각오로 저녁 식탁의 일상적 위험에 맞서는지 생각해 보라. 식탁이야말로 역사상 어떤 전쟁터보다도 위험해서 아주 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거기서 비참하게 뼈를 묻었다!”) 대수로운 것을 박소한 것으로 취급하여 문제를 푼다.(“병실에서 매일 죽는 것보다는 사는 듯이 살고 끝내는 편이 낫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 유희에는 날카로운 칼날보다는 능청스러운 인간애가 숨어 있다.

상습적 거짓말쟁이가 아주 정직한 사람일 수 있으며 아내나 친구들과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 반면에 의례적인 거짓말을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음과 얼굴 모두 하나의 거짓일 수 있다. —102쪽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상대가 거의 없다. “날 용서할 거예요?” 사랑하는 부인, 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용서의 의미를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이는 전과 똑같죠?”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그것은 끝없이 달라지지요.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내 마음의 벗입니다. “날 이해해요?” 아무도 모르죠.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107~108쪽에서

거짓말쟁이가 진솔하고, 거짓말을 모르는 사람의 인생 전체가 거짓일 수 있다는 역설에서는 “당신의 몇 가지 거짓말은 눈감아 줄 수 있으니, 내게 진실한 애정을 보여 주세요.”라는 호소가 들려오는 듯하다. 가족과 연인 간에 오가는 흔한 우문에 대한 스티븐슨의 현답에서는 쾌감이 느껴질 정도다. 우리 사이는 전과 같지 않고 끝없이 달라지지만, 여러 변수가 있음에도 여전히 서로에게 마음의 벗이며, 타인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지만 타인을 사랑하고 신뢰할 수는 있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나아가 이러한 거짓/진실에 대한 담론은 그의 문학론으로도 이어진다. “문학의 어려움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쓰는 데 있고, 그저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바 그대로 정확히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 데 있다.”라고 한 데서 허구(fiction)라는 도구를 통해 그가 전하려고 했던 것이 능란하게 부푼 환상이 아니라, 그저 선선한 진심이었음을 헤아리게 된다.

“진정한 지혜란 늘 시의 적절한 것이고, 변화하는 환경에서 선선히 달라지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사심 없는 예찬과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정직한 격려

스티븐슨의 ‘이야기꾼’적 면모는 발화 방식, 즉 문체에서 직관적으로 드러나지만, 문장의 미감을 곱씹는 중에 다가오는 인생에 대한 혜안, 즉 실속은 더욱더 놀랍다. 스티븐슨에게 있어 의견이나 가치관이란 “형성되는 과정에 있을 뿐이고, 공들여 세운 견해도 한낱 인상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시시때때로 바뀌고 가변적인 것이므로 무게가 덜 나가는 만큼 무시해도 좋다는 속 편한 회의주의로 귀결하지 않고, “시의 적절한” 지혜를 탑재하고 “변화하는 환경에서 선선히” 달라지자는 젊은이다운 용기를 그는 청유한다. “어린아이였을 때는 장난감을 좋아하고, 젊은 시절을 모험적이고 명예롭게 이끌어 가고, 때가 되어 정정하고 쾌활한 노년에 정착”함으로써 “인생의 훌륭한 예술가”가 되자고 추킨다. 이렇듯 “힘차고 쾌활하게 고동친 마음은 희망찬 충동을 세상에 남겼고 인간의 전통을 개선해 왔다.”라는 것이다.

게으른 자는, 미안한 말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그려 낸다. 그는 시간을 들여 제 건강과 정신을 보살폈다. 무엇보다도 야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몸과 마음에 유익했다. (……) 분주한 습성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은 그 자신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 친구와 친척, 기차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도 고통을 받는다. 인간이 자기 일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지속적 헌신은 다른 것들을 지속적으로 소홀히 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 —15~17쪽에서

유행하는 슬로건을 입에 올리는 것은 의견을 품은 것과 다르고, 의견을 스스로 구축한 것과는 더더욱 다르다. 사람들이 뭔가 주장한답시고 내뱉는 이런 슬로건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이런 슬로건은 지적인 논박으로 통용되고, 많은 점잖은 사람들이 오직 이런 슬로건에 기대어 살아간다. (……) 물론 세상은 수많은 면에서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이 사실을 확신할 수 있으려면 조금은 혹독한 시련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서 뭔가를 하고, 뭔가가 되고, 뭔가를 믿어야 한다. (……) 나는 사회주의의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잃은 후에도 살아 있음을 그리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45~47쪽에서

모든 실수는 현재의 진실이 불완전함을 진술하는 강력한 방식이다. 젊은이의 어리석은 행동은 아기나 젖먹이의 당혹스러운 질문 못지않게 건전한 이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들의 반사회적인 행동은 우리 사회의 결함을 가리킨다. —55쪽에서

그의 젊은이에 대한 이해와 응원은, 자신은 늙었고 자신은 젊은이를 지나 왔고 젊은이는 타인이자 대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아이의 놀이」에서 아이의 사고방식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다른 아이들보다도 어린 스티븐슨을 대면한다. 자기 유년의 기억을 불러오고 어린이의 시선에 이입하여 오히려 어른인 자신을 대상화해 보는 노력을 벌인다. 사회에서 유망 전도한 청년, 이어 산업 역군으로서 제 몫을 다하는 장년이 지속적으로 다른 가치들을 소홀히 하게 되리라는 위험을 알려 주는 것은 스티븐슨 역시 “사회주의의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잃은 후에도 살아” 있기 때문이고, 그 사실이 그리 자랑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젊은이의 반사회적(反社會的)인, 적어도 반사회적(半社會的)인 면모가 “우리 사회의 결함을 가리킨다.”라는 스티븐슨의 통찰은 관념적인 위선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가 게으른 자를 위해 변명하는 것은 게으른 자가 “달아나도록 가르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한층 조심하며 행군할 수 있”게 돕고 싶은 까닭에서다. 희망찬 사람은 “최고의 기품과 미덕에 당장 도약할 수 없어서 분개”하는 반면 신뢰하는 사람은 제 나약함을 의식하면서 한 해가 오고 갔어도 명예를 조금이나마 지켜 냈다는 데 긍지를 느낀다. 스티븐슨은 자신과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 후배들에게 미숙한 기대(희망)이 아니라 성숙한 신뢰(믿음)를 품는다. “가만히 앉아 사색하고, 욕망 없이 여자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질투심 없이 타인의 위대한 행위를 떠올리며, 공감 속에서 모든 것이 되어 보고, 어디에든 가 보지만 자신이 있는 곳과 자기 존재에 만족하는 것”, 이것이 스티븐슨이 얘기하는 게으른 행복이다.

목차

1부 인생을 위한 준비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엘도라도
세 겹의 놋쇠
심술궂은 노년과 청춘

2부 사랑과 결혼의 미로
1장
2장
3장 사랑에 빠지는 것에 관하여
4장 교제의 진실성

3부 삶의 양면
목신의 피리
남쪽 여행
도보 여행

4부 일상의 단면
영국 제독
레이번의 초상화
아이의 놀이
가스등을 위한 간청

연보
옮긴이의 말

작가 소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1850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해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요양을 했다. 원래는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등대를 설계하고 건설하는 공부를 할 생각이었으나, 공학 공부가 마음에 맞지 않아 법을 공부했다. 그러나 변호사 자격증까지 땄음에도, 이미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기 때문에 실제로 변호사 일은 하지 않았다. 스티븐슨은 수필과 시를 써서 발표하는 한편 유럽을 돌아다니다가 1880년에 미국인 패니 오즈번과 결혼했다. 오즈번에게는 전 남편에게서 얻은 아들이 있었는데, 1881년의 어느 비 오는 날 아침 스티븐슨은 바로 이 아들과 함께 그린 섬의 지도를 보다가 ?보물섬?의 영감을 얻는다. 잡지 ≪영 포크스≫에 연재했을 때에는 그렇게 반응이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1883년 책으로 출간하게 되자 곧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어린이 문학의 고전으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스티븐슨은 아내와 함께 남태평양 사모아에 정착하여 평온한 삶을 살다가 1894년 마흔넷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대표 작품으로는『보물섬』외에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Dr. Jekyll & Mr. Hyde』『납치당한 사람 Kidnapped』등이 있다.

이미애 옮김

현대 영국 소설 전공으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교에서 강사 및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조지프 콘래드, 존 파울즈, 제인 오스틴, 카리브 지역의 영어권 작가들에 대한 논문을 썼고, 역서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조지 엘리엇의 『아담 비드』, J. R. R. 톨킨의 『호빗』, 『반지의 제왕』(공역),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 『톨킨의 그림들』, 토머스 모어의 서한집 『영원과 하루』, 리처드 앨틱의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 등이 있다.

독자 리뷰(2)
도서 제목 댓글 작성자 날짜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김씨 2017.6.8
쉽지않은 그러나 긴여운
bambipunk 201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