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너무 중요해서 디자이너에게만 맡길 수 없다.” 중요한 디자이너가 배워야 할 최후의 세계사이자 최초의 디자인 역사책

역사는 디자인된다

세계사의 큰 줄기를 따라 구성해 본 디자인의 역사

윤여경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7년 1월 6일 | ISBN 978-89-374-3392-4

패키지 양장 · 46판 128x188mm · 380쪽 | 가격 25,000원

책소개

“디자인은 너무 중요해서 디자이너에게만 맡길수 없다.”
중요한 디자이너가 배워야 할 최후의 세계사이자 최초의 디자인 역사책

“이 책은 주어진 서구 디자인 역사의 틀 안에서, 그 디자인 자체의 균열을 시도하고 있는 소중한 실험이다. 승인할 것을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개축하려는 의지와 방법 그 자체가 신선한 실험이다. 우리로서는 최초로 실천하는 현장 디자이너의 열정적 모험이기에 더욱 값지고 소중하다.” -정병규(그래픽 디자이너)

“이 책에서 윤여경은 디자인 그 자체에 있는 인식론적 역량을 통해 역사를 연표화하고, 이번에는 다시 바로 그 역사 연표를 가지고서 디자인 자체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것이 그가 디자인의 역사를 쓰는 독특하고도 유일무이한 방식이다. 윤여경의 연표가 내포하는 보편 학문적 잠재성은 디자인과는 다른 영역에 있는 실천가나 연구자 들에게도 지적인 영감과 빛을 줄 수 있다.”
-이성민(철학자)

“디자인 역사를 단지 디자인 역사(Design History)라는 대문자 역사의 술어를 쓰는 행위로 간주하지 않고, 바로 디자인 역사라는 주어 자체를 성찰의 대상으로 삼은 점을 매우 높게 산다. 이러한 태도는 역시 한국 디자인계에서 매우 희소한 까닭이다. 그러니까, 윤여경은 좁은 길을 가려고 하는 것 같다. 길고 외로운 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큰길이 아니라 좁은 길, 곧은길이 아니라 굽은 길로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모로 가도 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모로 가야만 닿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최범(디자인 평론가)

“디자인은 너무 중요해서 디자이너에게만 맡길 수 없다.”라는 《가디언》 편집자 데이비드 헵워스의 문장을 디자이너는 두 가지 방식으로 직업 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소통 능력을 키워 더욱더 협조적으로 되는 것, 다른 하나는 몹시 중요한 디자인을 주도적으로 맡고 있는 자신이니만큼 자부심과 사명감에 한껏 고취되어 디자인에 임하는 것일 텐데, 같은 문장으로 이전보다 소극적이 될 수도 적극적이 될 수도 있다. 후자의 태도를 따르되, 깊고 넓은 공부를 제안하는 책이 바로  『역사는 디자인된다』다.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한 “중요한 디자이너가 배워야 할 역사책”이라는 표현에서 ‘중요한’은 일부가 아닌 디자이너 전체를 수식한다.
오늘날 수많은 직업과 직군이 그러하겠지만, 디자이너는 종종 혼란에 빠진다.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순수 예술가처럼 홀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디자인 작업의 시작점에 클라이언트의 요청이 자리한 까닭이다. 그렇다고 클라이언트 잡과 인하우스 직업만 있냐 하면, 꽤 다채로운 작업을 스스로 동기 부여하여 선보여 내는 일군의 디자이너들이 있다. 그들이 내놓는 그래픽 작업은, 감상자로서는 순수 예술인지 디자인 결과물인지 알아맞히기 어렵다. 테트리스처럼 떨어지는 디자인 과제, 클라이언트와의 끝나지 않는 줄다리기 속에서 디자이너들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과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이란 건 무엇이고 우리가 추구하는 미는 예술의 그것과는 어떻게 다른가.’
경향신문에서 오랫동안 아트디렉팅을 하고, 수많은 정보를 간략한 그래픽으로 표현해 온 바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윤여경은 그가 잘하는 ‘압축’ 능력을 통해,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역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유구한 인류 문화의 흐름 속에 존재한 디자인의 뿌리를 발견함으로써, 외부에서 이식될 수 없는 제 주체성과 정체성을 심고 가꾸자는 제안이다. 특히 세계사의 큰 줄기를 따라 구성한 기다란 디자인 역사 연표는 디자인적 성실성은 물론 인류 역사에 대한 빛나는 통찰력을 보여 준다.

편집자 리뷰

역사는 디자인된다

카는 역사적 사실이란 “널리 승인된 판단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의 외교관이었던 슈트제레만의 사례로 역사적 사실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슈트제레만은 독일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의 외교 정책을 담당했다. 그는 300상자 정도의 자료를 남겼다. 그의 비서는 이 자료들을 요약해 세 권의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이 다시 영문판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1/3 정도가 생략되었다. 자료가 요약되고 생략되는 과정에는 역사가의 주관적 선택이 개입되었다. (……) 과거 사실은 현재 역사가에 의해 발견되고 서술되어야만 비로소 역사적 사실이 된다. 과거 사실은 이미 역사가의 시선으로 굴절되었으므로 순수하지 않다.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가가 왜 그 사실을 선택했고 어떤 맥락으로 해석했는지 고려해야 한다. -65~67쪽에서

디자이너가 디자이너 자신을 알기 위해서, 바꾸어 말해 인간이 인간 자신을 알기 위해서 살펴볼 수 있는 자기 자신은 ‘과거’(의 자기 자신)에 한정된다. 이때 우리에게 주어진 과거 우리의 단서들을 늘어놓고 연결 지어 이해하는 행동이 역사 공부다. 제대로 학문화되지 않은 디자인의 영역을 파헤치기에 앞서 저자는 E. H. 카를 들어 역사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300상자의 사료는 그대로 보존되지 않고, 역사가의 손을 거쳐 세 권의 책으로, 다시 한 권 분량으로 선택되고 압축된다. 이러한 역사의 정체를 표현하는 데 design(고안하다)이라는 단어가 적격인 점은 흥미롭다. 책 제목에도 밝혔듯 “역사는 디자인된다.” 우리가 선형적으로 기록하고 전승하는 역사는 특정한 주관적 관점에 따라 고안된(디자인된) 결과라 볼 수 있다. 특정한 가치관의 틀에 따라 파악된다는 점에서 모든 역사는 ‘디자인’의 과정을 거치는 셈이다.

18세기 말 진화론이 대두되면서 기능(function) 개념이 유행했다. 건축 분야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용성의 개념을 ‘용도’에서 ‘기능’으로 전환했다. 기능은 용도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미래의 목적과 변화까지 고려한다. 용도는 과거의 형태를 답습하면 되지만 목적을 고려한 기능은 새로운 형태를 상상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글씨를 쓰는 용도인 연필 형태는 고정되어 있다. 제작자는 글씨 쓰기라는 용도를 위해 기존의 연필 형태를 따라서 만들면 된다. 반면 꽃의 형태는 기능에 따라 변한다. 즉 ‘꽃’의 형태는 주어진 생식 여건에 적합하게 변해야만 한다. 환경에 따라 생물들의 형태가 변하듯이 기능은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유용성 개념이다.
이렇듯 기능은 진화론의 생물학적 특징이 반영된 개념이다. 1859년 다윈은 생물의 형태는 자연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는 자연 선택 진화론을 발표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많은 분야들이 다윈의 개념을 수용했고 공예와 건축 분야도 진화론에 영향을 받았다. 진화론에 근거한 기능 개념은 기계적 건축이 아닌 유기체적 접근을 요구한다. 하나의 생명체가 생태계의 일부이듯, 하나의 건물도 도시 생태계의 일부다. 생명체와 환경이 상호 진화하듯 건물과 도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한다. -291쪽에서

“역사는 디자인된다.”라는 문장은 “역사는 디자인(이) 된다.”로도 읽힌다. 18세기 말 전 영역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던 진화론은 디자인/공예/건축 분야에 역시 영향을 끼쳤다. 당대의 가장 강력한 시대적 가치관, 역사적 분기점은 디자인 문화를 변모시키고, 이 문화는 다시 다가오는 역사에 적응, 흡수된다.

디자인은 역사가 된다

저자가 소개한 연표의 제목은 ‘역사 연표’가 아니라 ‘디자인 역사 연표’다. 그린 목적이 인류사의 이해가 아닌, 디자인 역사와 문화의 이해이기 때문이다. 책의 초반부에서 다룬 역사의 본질과 인류 역사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후반부에서는 시대별 예술과 디자인의 시공간적 특징을 분별한다. ‘디자인 역사 연표’를 통해 시각(그래픽)적 역사를 밝힘으로써, 저자는 역사를 만드는 주체로서의 디자이너가 지녀야 할 정체성과 소명의식을 환기한다.

B.C.550년부터 현대까지 약 2500년 동안, 회색 파동은 400년 단위로 오르락내리락하며 큰 산 네 개를 형성한다. 상승할 때는 이념과 종교 등 관념이 중요해지고, 하강할 때는 생존과 안전 등 현실적 삶이 중요해진다. 올라가는 흐름에서는 이상적인 태도가, 내려가는 흐름에서는 현실적인 태도가 강조된다. 디자인 모형의 흐름처럼 상승에서는 감성(엔트로피)이, 하강에서는 이성(네트로피)이 작동한다. 디자인 모형의 순환 구조가 연표에서는 상승과 하강의 파동으로 표현되었다. -172쪽에서

붉은색 전환기와 파란색 이행기의 패턴 구분으로 예술과 공예/디자인의 특징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환기에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 다양한 문제 제기가 쏟아져 나온다. 다소 감성적인 활동으로 개성이 강해진다. 이행기에는 파편적인 개성들이 융합되어 보편성이 강조된 사상들이 등장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적절성을 추구하며 새로운 공통 감각을 형성한다. ‘문제 제기’와 ‘문제 해결’로 구분되는 두 시기의 특징은 각각 예술과 공예/디자인에 상응한다. -195쪽에서

디자인 현상을 역사적으로 규명하면서, 저자는 디자인에 내재한 시대적 영향력에 주목한다. 시대상을 대변하는 디자인이 있는가 하면, 시대의 괴로움과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이 있다. 물론 두 가지의 선후는 닭과 달걀처럼 구분하기 어렵지만, 저자의 관점에 따라 예술을 “문제 제기의 행위”로 디자인을 “문제 해결의 행위”로 이해해 본다면 확실히 역사적 난제의 해결은 디자이너 손에 달려 있는 듯하다. 문맹률이 높았던 19세기 말 노동자들 대상으로 그림 문자 ‘아이소타입’을 개발한 오토 노이라트를 사회학자이자 디자이너로 볼 수 있지만, 달리 이해해 보면 모든 디자이너는 사회학적 성격과 임무를 띤다.

아이소타입은 19세기 말에 새롭게 발명된 문자다. (……) 오토 노이라트의 노력이 탄생시킨 아이소타입은 현재 공항이나 올림픽 등 국제 행사에 유용하게 쓰인다. 디자이너들은 보편적인 이미지 글자인 아이소타입을 다룸으로써 언어를 초월한 소통을 할 수 있다.
문자를 알면 사고의 폭이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주체적인 사고를 추구하게 된다. 실제로 문자를 배운 사람들은 더 높은 삶의 질을 추구했다. 합리적 이성을 믿고 비판 정신을 지니게 되어 자신의 의지로 삶을 개척한다. 이런 태도를 근대정신 혹은 근대성이라고 말한다. -275쪽에서

 

역사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

현대인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즐겨 쓰는 것만 보아도, 우리들은 복잡성을 싫어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복잡보다 문제 되는 것은 혼란이며, 디자인 행위의 본질은 혼란한 상황을 이해 가능하도록 바꾸는 데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다만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정리하는 디자인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단순미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는 적지 않은 디자인이 환경 문제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촉발하고 부추긴 사례를 본다. 막강한 힘을 지닌 정보들의 순환과 소통을 돕는 디자이너의 역할에 있어, 문자를 오독하거나 의미를 잘못 그래픽화하는 미숙성은 종종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온다.

20세기 후반 환경 문제와 각종 사회 문제가 대두되면서 디자이너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되었다. (……) 디자인의 본질과 뿌리는 공동체와 사용 가치에 있다. 디자이너가 사용성을 외면하고 스타일링만 지향하면 결국 디자인도 실패하고 스스로의 신뢰도 추락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전문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에게 질문해야 한다. 디자인의 가치가 무엇인가. 교환 가치에 매몰되지 않았는가. 사적인 문제와 공적인 문제를 혼동하지 않았는가. 나아가 디자이너가 만든 디자인이 현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되물어야 한다. -246~247쪽에서

마지막으로 문자는 가장 중요한 디자인 대상이다. 다양한 개념을 품은 추상적 문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소통 수단(데이터)이기에 디자인이라는 정보화 과정이 요구된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반드시 문자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문자의 시각적 특징만이 아니라 문자의 본질인 읽기와 쓰기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 문자를 이해하지 못한 디자이너는 그릇된 정보를 멋지게 디자인함으로써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단순히 보이기만을 바라는 디자인은 제대로 된 정보를 구성해 내지 못하기에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미국 스리마일 원자력 사고도 잘못된 정보 디자인으로 일어난 참사 중 하나다. -278쪽에서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주체성을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정체성을 “타인과의 맥락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관계적 접근”으로 나누며, 경쟁을 위해서는 주체성을, 협업을 위해서는 정체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작금의 디자인 교육은 주체성을 찾는 데 적극적인 반면 이론적/역사적 정체성을 찾는 노력은 빈약하기에, 주체적 디자인으로 무장하고 발딛은 새내기 디자이너가 디자인 현장에서 겪을 괴리를 염려한다. 이때 다시금 역사 공부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현재의 나를 과거의 나, 미래의 나와 연관 짓는 역사 공부는 정체성 찾기의 좋은 연습이 되며, 클라이언트나 사회 등 외부 요인과의 관계 속에서 고민하는 디자이너에게 필수적인 입사 의식이 된다. 나아가 “적절성과 협업을 지향하는” 디자인의 참기능을 잘 알고 활용하는 디자이너는 “흩어진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주요한 역사적 역할을 감당하게 될 터다.

목차

차례

 

들어가기 전에
디자인 역사 연표로 무엇을 할까(이성민)
들어가며

1부 역사와 인간
1장 역사는 기억이다
2장 기술과 문명 그리고 환경

2부 역사란 무엇인가
1장 역사란 무엇인가
2장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
3장 진보와 진화

3부 디자인 방법과 모형
0장 안개 위의 방랑자
1장 문제 해결 모형
2장 디자인 모형
3장 디자인 모형의 구조: 사고·소통·순환

4부 디자인 역사 연표
1장 디자인 역사 연표
2장 연표의 파동으로 패턴 읽기
3장 생산 시대와 소비 시대
4장 기술 및 문자의 확대

5부 예술과 디자인
1장 디자인 개념의 형성
2장 현대 디자인의 등장
3장 교훈

나오며
참고 도서 및 자료
모로 가야 닿는 곳(최범)

작가 소개

윤여경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저술가, 이론가, 교육자다. 저서로는 『런던에서 온 윌리엄 모리스』(지콜론북, 2014),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스테파노반델리, 2012)가 있으며, 《지콜론》, 《GRAPHIC》, 《디자인평론》 등 잡지와 평론지에 기고했다. 국민대학교 그린 디자인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경향신문 정보 그래픽 디자이너, 국민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겸임 교수로 재직한다. 2014년 온라인 디자인 공부 사이트 ‘디자인학교(designerschool.net)’를 열 어 모바일 시대에 적합한 디자인 교육을 시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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