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없음

장은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6년 11월 25일 | ISBN 978-89-374-7314-2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8x188 · 268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1년째 잿빛 눈이 내리는 폐허의 회색 도시

고독한 실험가 장은진이 선보이는

불안하고 아늑한, 차고 따뜻한 재난 로맨스

 

편집자 리뷰

세상은 끝나 가는데, 사랑이 시작됐다

이상기후, 폭설, 재난, 그리고 마지막 하루
종말에 대처하는 연인의 자세

장은진 장편소설 『날짜 없음』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날짜 없음』은 긴 겨울이 계속되는 기이한 재난을 배경으로, 모두가 떠나 버린 텅 빈 도시에서 살아가는 연인의 하루를 다채로운 감정과 대화 들로 채워 넣은 장은진식 고립형 재난 로맨스다. 장은진의 소설에는 대부분 혼자만의 공간에 고립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타인과 단절되고 싶은 동시에 연결되고 싶은 욕망을 그려 내는 것은 장은진의 특기다. 대개 종말소설에서는 재난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긴 여정을 떠나거나 험난한 생존 게임에 휘말리는 인물의 이야기를 보여 준다. 그러나 장은진이 주목하는 이들은 떠나지 않고 남은 자들, ‘하지 않을 것’을 택한 사람들이다. 추위와 공포를 무릅쓰고 도시를 탈출하면 더 나은 곳에 도착할지도 모른다거나 먼저 떠나보낸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보다, 그들에겐 지금 하고 있는 연애가 중요하다. 미래에 대한 이 젊은 연인의 태도는 우리 세대 청년들이 미래에 대해 지니는 태도 혹은 가치관에 대한 거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재난으로부터 탈출하지 않는 종말소설
종말을 예고하는 혹한의 재난, 혹은 종말 이후의 디스토피아적 공간을 그린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일반적으로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먼 길을 떠나고 역경을 이겨 내야 한다. 이러한 종말소설들과 달리 장은진의 『날짜 없음』은 ‘모험담’이 아니다. 『날짜 없음』 속 도시에는 1년 동안 겨울이 계속되는 이상기후가 이어지고, 이 재난의 끝에 최후의 날이 도래한다는 소문이 돈다. 마지막 날이 가까워지자 거의 모든 사람들은 행렬을 이뤄 도시를 떠난다. 사람들이 떠난 텅 빈 도시 한켠에 놓인 작은 컨테이너 박스, 그곳에는 행렬을 따라가지 않고 남기로 약속한 연인이 있다. 그들은 떠난 사람들을 의심하고 질문한다. 종말이 어떻게 닥쳐오는지, 이 도시를 떠나면 종말을 피할 수 있는지, 떠난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지. 요컨대 ‘왜’ 떠나야 하는지. 그리고 이 질문들은 이제껏 독자들이 내심 궁금해했지만 종말소설들이 묻지 않았던 질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그들은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연인이다. 아직 해 보지 않은 것, 나누지 않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떠나지 않은 그들은 확신한다. 여기 아닌 다른 곳을 찾아 떠난 연인이 있다면 그들은 “서로에게 들려줄 새로운 이야기가 없”어서일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절대로 따라가지 말아요.” 거듭 약속하는 연인의 결심은 단호하다. 끝나지 않는 폭설 속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그들에게는 보장된 미래가 없다. 이곳을 떠난다면 더 나은 곳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미래 없음’과 ‘확신 없음’ 사이에서 그들은 ‘떠날 이유 없음’, 함께 남을 것을 택한다. 그들은 하루를 1년처럼 생생히 감각하고 기억하며 보내려 애쓴다. 컨테이너 박스 바깥은 회색 눈에 뒤덮인 무채색의 세상, 영하의 온도에 얼어붙은 무감각의 세상이다. 그러나 연인이 대피한 컨테이너 박스 안은 그들이 나누는 설렘과 질투, 신뢰와 다툼 같은 다양한 색채를 띤 감정과 서로를 더 깊이 껴안으려는 감각 들로 채워져 있다. 마지막까지 함께일 수 있다면 죽어도 좋은 이들. 소설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하루’를 고민하는 연인의 밀고 당기는 하루를 보여 준다.

■고립된 사람들이 나누는 느슨한 연대
눈먼 개와 함께 모텔을 전전하며 떠돌아다니는 남자(『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스스로를 감금시키고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 여자(『앨리스의 생활 방식』) 등 장은진의 전작은 줄곧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 혼자인 동시에 혼자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줄곧 혼자이지만, 결국 누군가와 만난다. 작가의 중요한 키워드인 ‘고립’와 ‘만남’은 신작 『날짜 없음』에서 그 색채와 의미를 더욱 짙게 드러낸다.
연인의 컨테이너 박스는 회색 도시에서 유일하게 노란 불빛을 밝히고 있는 곳이다. 일분일초가 흘러가는 것을 생생히 느끼는 그와 그녀의 공간에, 도시에 얼마 남지 않은 이웃들이 방문한다. 달라져 버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매일 가게 문을 여는 분식집 아주머니, 재활용이 의미 없어진 도시에서 폐지를 주우며 돌아다니는 할머니, 끊임없이 내리는 유독한 눈에 부자가 된 우산 장수, 재난에도 우울해지지 않는 당돌한 고등학생, 그리고 남자의 옛 애인까지. 재난으로 인해 각자 고립된 이들.
컨테이너 박스에 들른 사람들은 연인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발을 고치고 커피를 얻어 마시거나 곶감을 나눠 주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컨테이너 박스를 방문하는 이웃 사람들과의 만남은 스쳐가는 듯 짧다. 모두에게 마지막일지도 모를 하루. 마지막일지도 모를 인사를 하려 폭설 속을 걸어 찾아온 이웃의 태도는 얼어붙은 도시에서도 따뜻한 온도를 품고 있다. 서로에게 건네는 이 짧은 인사는 각자의 이유로 도시를 떠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일상을 지키려 애쓰는 고독한 사람들의 ‘날짜 없는’ 연대다.

 

■본문에서

폭설로 홍설(洪雪)이 진 후 도시는 더 이상 도시라 부를 수도 없게 되었다. 도로에서 차는 사라졌고, 수도는 얼어 버렸으며, 전기와 통신은 걸핏하면 두절되기 일쑤였다. 신경이 마비된 도시는 유능한 기능들을 하나씩 잃거나 빼앗겼다. 도시는 한때 재밌게 잘 갖고 놀다가 시시해졌다며 미련 없이 내다 버린 거대한 완구와 다를 바 없었다.
-9쪽

그는 나와 다투면 얼마나 거칠고 못된 문장을 내뱉는 사람일까. 애정이 좀 더 깊어지면 어떤 단어를 문법에 넣어 표현하려 할까. 권태가 시작됐을 때는 내게 무슨 비유를 들어 자신의 게으르고 시들해져 버린 심정을 전달하려 애쓸까. 나는 그에게 부탁하고 싶어졌다. 오늘 하루 동안 좀 더 깊은 연애도 해 보고, 다퉈도 보고, 권태도 느껴 보자고. 저마다 안에 간직해 두거나 감춰 둔 문장들을 모조리, 미리 다 찾아서 써 버리자고.
-58~59쪽

그게 온다고 한다.
그게 온다면 그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마지막이 될 것이다. 사람은 마지막에 입고 있던 옷을 죽어서도 쭉 입고 산다지. 그러니 그게 온다 해도 이제 나는 그를 어디서든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찾아내면 쫓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엉뚱한 색으로 꿰맨 단추와 스웨터 어깨 솔기를 보면 그라는 걸 금방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그도 단추와 스웨터를 보면서 나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잊지 않을 것이다. 그때 행주로 상을 닦으며 그가 물었다.
“쫓아와서 어쩌려고요?”
“연애하려고요. 그쪽이랑. 죽어서도.”
그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183쪽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우리는 해 본 것보다 해 보지 않은 게 많았다. 우리가 만났을 때 세계는 이미 눈에 덮여 있어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함께 자전거를 탄다거나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 하루종인 침묵으로 걸어도 전혀 심심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사이였지만 우리는 말없이 길고 곧게 뻗은 산책로를 걸어 본 적이 없었다. 길은 어디로도 가지 못하도록 사방이 막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보냈다.
-197쪽

목차

■차례

날짜 없음 7
작가의 말 262

작가 소개

장은진

1976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04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로 2009년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키친 실험실』, 『빈집을 두드리다』 장편소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앨리스의 생활방식』,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등이 있다.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7년 2월 22일

ISBN 978-89-374-7354-8 | 가격 9,100원

독자 리뷰(8)

독자 평점

4

북클럽회원 11명의 평가

한줄평

나는 어떤 날을 기다리고 있을까

밑줄 친 문장

ㄴㅋㅇㄴㅋㅇㄴㅋㅇㄴㅋ
세상은 거대한 딸기맛 아이스크림 케이크 , 마트료시카같은 그림자
집은 우리의 기억이 태어나는 곳이자 추억이 보관되는 냉장고 같은 장소였다. 집이란 우리 뇌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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